[예스24 오리지널 특집] 『메모리케어』 진보라 작가 인터뷰
『메모리케어』
『메모리케어』로 'The New Korean Voice Prize' 수상자가 되고, 문학 전문 출판사인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책까지 내게 되어 영광입니다. 주변의 시선에서 벗어나, 스스로 인생의 주도권과 기억의 선별권을 되찾고 싶은, 모든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23.07.18)
꽤 독특한 이력이 눈에 띄었어요. 그리고 공모전에 당선된 작품이기도 한데요. 어떤 마음으로 공모전에 응모하셨는지, 작품 집필을 하다가 중간에 포기하거나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사실 저는 이번 공모에서 당선될 거라는 기대가 크지 않았습니다. 장편 소설을 제대로 완성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거든요. 그저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를 후회 없이 완성하자는 마음으로 5년 전 돌아가신 친할아버지와 제 이야기를 일상의 무대인 부산이라는 공간에 입혀 『메모리케어』를 썼습니다. 초고 집필은 4개월 안에 끝냈지만, 구상과 원고를 세 번 엎는 과정을 포함하면 작품을 완성하는 데 2년 정도가 걸렸습니다. 한 작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자 했던 욕심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하나의 이야기를 둘로 분리시키는 과정이 퍽 힘들었어요. 『메모리케어』의 초기 세계관에 대해 구체적인 피드백을 해줬던 친구가 스스로 세상을 등진 사실을 뒤늦게 알고 큰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순전히 할아버지와 부산에 대한 애정으로 글을 완성했고, 공모 마감 직전에 겨우 응모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포기할 수 없도록 끊임없이 작품에 의미를 부여해준 분들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메모리케어』는 기억에 대한 작품이란 생각이 첫 느낌으로 들었습니다. 좀 더 세세하게 작품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가까운 미래. 계속되는 분쟁과 갈등에 지친 도시는 암울한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특별한 기억관리 시스템인 '메모리케어'를 만들어 냅니다. 메모리케어는 시민들의 기억을 긍정적으로 관리하고, 인간사에서 발생하는 모든 갈등의 싹인 가족의 생애 주기를 관리하며, 가족 중 고인이 된 사람의 기억을 즉시 삭제하는 방식으로 도시의 모든 트라우마를 제거하려 하죠. 기억 관리를 거부하면 살아갈 수 없는 디스토피아 세계관 속에서, 주인공인 '봄'은 갑작스레 고인이 된 할아버지의 기억을 지키기 위해, 메모리 케어 용품을 생산하는 어느 제약 회사의 비밀 마케팅에 동참하며 약물 홍보를 위해 인위적으로 시민들의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일에 앞장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도시가 40년 간 숨겨왔던 충격적인 비밀이 밝혀집니다.
'기억관리'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작가의말」을 살펴보면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에 이 작품이 집필되었다, 라고 적혀 있어요. 진보라 작가님에게 '기억'이란 무엇일까요? 더불어 소설에서 '기억'이 상징하고 있는 건 무엇일까요?
저에게 '기억'이란, '살아 있음'의 증명과도 같습니다. 매순간 과거가 되어가는 현재의 기억이 없다면 내가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나아가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세월이 흐르면서 필연적으로 왜곡과 망각을 반복한 사람의 기억은, 평생을 간직하면서 반복 재생할 수 있는 지극히 주관적인 인생 영화라는 생각도 듭니다. 일반적인 사회에서 사람들은 사회 구성원들과 자신의 기억에서 비롯된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게 되고, 그 소통의 과정은 또한 기존의 기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러나 『메모리케어』에서의 '기억'은 이러한 의미를 훨씬 넘어서는데요. 매일 어떤 기억의 꼬리표를 만들어내고 그 기억들을 긍정적으로 관리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이, 그리고 좋은 기억의 등급이 결정되는 세계니까요. 트라우마 제로를 꿈꾸는 『메모리케어』의 도시에서 기억은 돈과 비견되는 가치를 지닐 정도로 중요합니다. 은밀히 혼자서만 간직하고 싶은, 지극히 사적인 기억조차, 꼬리표 평가 경쟁을 위한 화폐처럼 숨김없이 공유되고 소비됩니다. 시민들이 걸어다니는 인간 CCTV를 자처하면서 자기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누군가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억했다가 기억을 지우는 행위는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꼬리표에 타인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건 자신의 흠이 아니니까요. 이 도시에서 '기억'은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기 위한 이야기가 아닌, 철저히 시스템에 가두고 옭아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억입니다.
근미래적인 설정이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어요. 이러한 설정에 이유가 있을까요?
메모리케어 시스템을 통한 기억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 근미래적 요소를 끌어왔습니다. 그럼에도, 『메모리케어』의 미래는 아날로그적 요소가 다분합니다. 도시의 시민들은 스마트폰 시대 이전의 퇴보된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들은 수동적으로 문자 메시지를 받는 기능만 달린 구형 폴더폰을 배급받습니다. 메모리케어의 지시 아래 기억의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도시는 인위적으로 과학 기술을 통제했고, 도시의 문화는 비교적 단조로운 과거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근미래의 디스토피아는 첨단 문명이 아닌, 아날로그를 향해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에서 여러 중심인물들이 나와요. 특히 애정이 가는 인물은 누구이며 이유가 궁금해요.
아무래도 봄의 할아버지 경식에게 깊은 애정이 갑니다. 경식은 저희 친할아버지를 모델로 탄생한 인물이니까요. 그러니까 경식은 『메모리케어』의 세계관을 만들기도 전에 이미 존재했던, 작품을 쓰기 위한 동력이기도 했습니다. 작품 속에서 경식은 산복도로 마을에서 유일하게 기억관리를 거부하고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갔던 인물인데요. 저희 할아버지도 환갑의 연세에 중국에 가서 공부를 하셨고, 침구사로 활동하셨던 이력이 있으세요. 분명 일반적인 삶은 아니지만,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않고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경식을 좋아합니다.
소설의 끝에 가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기억을 내 의지대로 기억하고 삶을 사는 건 행운일까 불행일까. 막상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소설은 그 지점을 건드리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어때요? 주인공들은 이후에 행복한 삶을 살아갈까요?
내가 쥐고 있던 기억의 주도권이 타인에게 넘어가는 순간, 내 인생은 외부의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그 힘을 쥔 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왜곡될 겁니다. 더군다나 그 기억의 흔적이 꼬리표에 남는다면? 그 순간부터 기억은 내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보여지기 위한 잘 꾸며진 전시품이 될 겁니다. 마치 인생에서 가장 멋진 순간만이 SNS에 박제되고 전시되는 것처럼요. 내게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기억을 뇌리에서 지우고, 좋은 기억마저 전시를 위해 지우는 방식으로 꼬리표의 질서에 따르기를 결정하는 건, 마약에 빠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과연 이래도 되나? 하며 시작 전에는 망설일지 몰라도, 한번 발을 들이면 빠져나오기 어려울 겁니다. 맞닥뜨리기 싫은 자신의 민낯을 마주해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끝까지 누군가에게 기억의 선별권을 내어주지 않은 주인공들은 이후에도 행복하게 살아갈 겁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내신 소감과 어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는지 궁금해요
『메모리케어』로 'The New Korean Voice Prize' 수상자가 되고, 문학 전문 출판사인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책까지 내게 되어 영광입니다. 주변의 시선에서 벗어나, 스스로 인생의 주도권과 기억의 선별권을 되찾고 싶은, 모든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보라 199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도시계획직 공무원.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거나, 또 멀어져 가고 있는 작은 지역들이 간직하고 있는 환상적인 서사를 발견해내는 취미가 있다. 그 서사를 자양분 삼아 지금의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도시의 오늘'을 사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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