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특집] 이건 분명 여름의 맛!
<월간 채널예스> 2023년 7월호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무더운 공기, 부엌에서 조리하는 것이 고역인 날들. 그래도 매일 때 되면 먹거리를 챙겨야 하는 이들을 위해 여름 제철 요리 레시피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2023.07.06)
집에서 쉬는 시간을 누리는 데 어느 정도 숙련된 우리에게, 멀리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된 우리에게, 또다시 여름휴가가 다가왔다. 바다 가까이에 자리한 전국의 작은 책방으로 떠나보거나, 휴양지 기분을 낼 수 있는 요리를 빠르게 만들어볼 수도 있겠다. 미뤄두었던 두꺼운 책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밤공기가 선선해진 어느 날, 여름의 시간을 웃으며 돌아볼 수 있도록. |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무더운 공기, 부엌에서 조리하는 것이 고역인 날들. 그래도 매일 때 되면 먹거리를 챙겨야 하는 이들을 위해 여름 제철 요리 레시피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얼마 전 인천 사람들에게 친근한 주전부리라는 '달걀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여름에는 기력이 떨어져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챙겨 먹으려다가도 닭가슴살을 찢고 손질하는 등 일련의 과정이 부담스러웠는데 이거다 싶었다. 약간의 도구만 구비되어 있다면 손이 많이 가지 않고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간식이 '짠' 하고 나오니까. 슬라이서로 오이와 달걀을 편으로 썰고 번갈아 쌓으면서 사이사이에 초고추장을 조금씩 뿌려주면 벌써 완성이다. 다만, 달걀이 넘어지지 않도록 제일 밑바닥에 있는 달걀의 동그란 부분 한 조각은 빼고 쌓아야 한다. 나는 요즘 달걀은 미리 넉넉하게 삶고 오이는 편으로 썰어 보관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매일 이 달걀초를 만들어 먹고 있다. 고소하고 포근하게 삶아진 달걀의 맛, 시원한 오이, 입맛을 살려주는 새콤달콤한 초고추장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중. 이건 어른들과 아이들 모두 자주 찾는 여름 간식이 될 테다. 홍지영 『도시락과 강아지의 기웃댐』 저자
지금 생각해 보면 쿠바라서 가능했던 일이다. 7년 전 숙소 로비에서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된 중년 여성 두 명과 별안간 밤마실을 나가게 됐다. 그 언니들은 흔히 미국의 부자 동네라 불리는 LA의 베벌리힐스에 사는 이웃이자 친구 사이라고 했다. 어떤 일을 하시는 분들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옆집에 조지 클루니가 산다고 했던 것만큼은 또렷이 기억한다. 성격도 화끈하고 더위도 많이 타던 한 미국 언니가 고른 메뉴는 가스파초였다.
차가운 수프의 존재를 모르던 애송이 시절이라 무더운 여름밤에 수프를 주문하는 것이 이열치열인가 싶었지만, 그녀는 그 어떤 청량음료보다 상쾌하고 시원하게 가스파초를 들이켰다. 여름밤을 떠올리면 언제나 부자 언니가 접시째 개운하게 들이켰던 가스파초가 생각난다. 조리법은 다음과 같다. 완숙 토마토 등에 십자로 칼집을 내어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뒤 껍질을 벗겨낸다. 믹서에 이 토마토와 오이, 파프리카, 다진 마늘 한 큰술, 올리브유 두 큰술, 식초 한 큰술, 소금과 후춧가루를 기호에 따라 적절히 넣고 갈아준다. 건더기는 체에 걸러도 되고 안 걸러도 되는데, 나는 거른 다음 건더기를 구운 빵 위에 얹어 먹는 것을 선호한다.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만든 뒤 올리브유, 빵을 곁들여 먹으면 영혼까지 시원해지는 수프가 완성이다. 에리카팕(텍스트 셰프)
정성스레 요리하는 일을 좋아하지만, 그건 먹고 싶은 게 분명하고 에너지가 있을 때만 유효하다. 여름에는 입맛도 없고 가스 불을 켜는 것조차 싫을 때가 많기에, 이 계절에는 장 보러 가서 단출한 품목만을 산다. 그중 가장 많이 쟁여두는 재료는 바로 냉면 육수다. 비건이라면 한살림의 냉면 육수를 구매해 보기를. 먼저 냉면 육수를 냉동실에 넣어 살짝 얼린다. 그릇에 고슬고슬한 밥을 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썬 도토리묵과 오이, 깻잎, 상추, 토마토 등 집에 있는 채소를 숭덩 썰어 올린 뒤, 잘게 자른 김치에 참기름을 둘러 함께 담아준다. 그 위에 차가운 냉면 육수를 붓고, 김 가루와 참깨를 뿌리면 끝! 알록달록한 묵사발을 말아 먹고 나면 새콤한 맛 덕분에 입맛도 돋고, 잠깐이나마 더위가 가셔 에너지도 함께 돋아나는 기분이다. 불을 쓰지 않아도 되고 재료를 손질할 때 한 번에 2~3인분을 썰어 보관하면 다음번에 더 간편하게 만들 수 있다. 밥 대신 소면을 삶아 넣으면 훌륭한 김치말이 묵국수가 되니 다양하게 활용해 보자. 강보혜(비건 식당 '베지스' 대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자)
'면 러버'인 나는 계절에 상관없이 면식을 즐기지만, 여름이면 유독 후루룩하고 삼키는 면 요리가 당긴다. 중식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만났던 중국식 냉면은, 빵에 발라 먹는 줄만 알았던 땅콩버터를 차가운 냉면 육수에 풀어 걸쭉하게 먹는 맛이 인상적이었다. 땅콩버터 특유의 고소함을 기반으로 새콤달콤한 양념을 곁들이는데 입맛 잃은 뜨거운 여름이면 그 맛이 번뜩 입에 감돈다. 넉넉히 만들어 두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광장장'의 비빔 소스 제조법을 공개한다. 땅콩버터 크게 두 큰술, 설탕과 식초 두 큰술씩, 피시 소스 반 큰술, 소금 약간을 함께 섞어준다. 요즘엔 감칠맛을 내는 비건 소스도 많으니 피시 소스를 대신해 사용해 봐도 좋다. 조금 더 맛을 내고 싶다면 마늘을 기름에 볶아 향을 내서 더하고, 취향껏 식초와 설탕을 더하거나 빼면 소스는 이것으로 끝이다. 면을 삶고, 토마토, 오이, 참외 등등 여름 채소를 채 썰어 소스와 함께 비벼주면 완성된다. 채 썬 생감자를 물에 담가두면 아삭한 식감이 더해지니 빼놓지 말기를. 김광연(비건 옵션 식당 '광장' 대표, 『밥 먹는 술집을 차렸습니다』 저자)
콩에는 관심이 없지만 콩으로 만든 두부는 선호한다. 생오이는 별로지만 조리된 오이는 잘 먹는다. 꿉꿉하고 끈적끈적한 여름에는 이 두 가지 재료로 건강하고 입맛을 깨우는 샐러드를 자주 만들어 먹는다. 물기를 충분히 뺀 두부를 가지런히 자르고, 오이를 한입 크기로 썬다. 곁들일 소스로는 올리브유 네 작은술, 레몬즙 두 작은술, 다진 마늘 조금, 소금 한 꼬집, 후추를 적당히 갈아 넣고 섞는다. 허브인 딜 10g을 다져서 넣으면 더욱 좋다. 잘라놓은 두부와 오이에 소스를 뿌려 두부가 으깨지지 않게 버무린 뒤 레몬 제스트를 올리면 상큼한 여름 샐러드가 완성이다.
여름은 좋아하지 않지만, 여름에 먹는 음식은 좋아해서 이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어쩐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조금의 노력으로 좋아하게 되는 요즘을 살고 있는 중이다. 여름밤에 창문을 열어놓고 피아니스트 아트 테이텀의 연주가 흐르는 앨범을 틀어놓고는 두부 오이 샐러드를 먹으며 차가운 샴페인을 마신다. 그런 순간이면 싫은 부분이 많은 이 계절도 조금씩 좋아지게 된다. 김마리(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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