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특집] 전집과 벽돌책 완독법
<월간 채널예스> 2023년 7월호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벽돌책, 대하소설, 전집을 휴가 때 몰아서 읽으려는 야심 찬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이들의 경험담을 듣는 일이 마음부터 든든하게 할 것이다. (2023.07.06)
집에서 쉬는 시간을 누리는 데 어느 정도 숙련된 우리에게, 멀리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된 우리에게, 또다시 여름휴가가 다가왔다. 바다 가까이에 자리한 전국의 작은 책방으로 떠나보거나, 휴양지 기분을 낼 수 있는 요리를 빠르게 만들어볼 수도 있겠다. 미뤄두었던 두꺼운 책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밤공기가 선선해진 어느 날, 여름의 시간을 웃으며 돌아볼 수 있도록. |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벽돌책, 대하소설, 전집을 휴가 때 몰아서 읽으려는 야심 찬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이들의 경험담을 듣는 일이 마음부터 든든하게 할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동네 작은 책방의 조합원들이 막걸리를 마시다 나왔다고 한다.
"우리 『토지』 읽기 모임 만들래요? 항상 읽고 싶었는데 엄두가 안 났어요."
어느 월요일 오전 열 시 반, 책방에 모인 다섯 명은 간단히 자기소개를 마치고 1권 첫 장을 넘겼다. 서문을 읽는 순간 앞으로의 여정 내내 만나게 될 수려한 한국어의 바다와 감동의 파도를 예감했다. 목표는 1년 안에 21권 전권을 완독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하려면 보름에 한 권은 끝내야 했다. 각자 돌아가며 소리 내어 한 페이지씩 읽으면 한 시간 반 동안 대략 30~40쪽의 진도가 나갔고, 등장인물의 대사가 나올 때 누군가 구성진 사투리를 구사하면 즐거움은 배가되었다. 혼자 하면 못 했겠지만, 같이 하니까 가능했다. 실은 대학생 시절 여름 방학 때 『토지』에 푹 빠졌던 적이 있는데 끝내 마무리를 못 했다. 그러다 번역가로 일하면서 토종 우리말을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 것이다. 소리 내어 『토지』를 다시 읽는 모임. 올해 제일 잘한 일 중 하나로 나는 이 일을 꼽을 것 같다. 노지양(번역가)
책 읽기에도 근육, 즉 '독서 근육'이 필요하다고들 하니, 스포츠 선수들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 '힘을 빼라'는 조언을 책 읽기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마음의 힘을 빼라는 것. 2020년 여름, 일을 그만두면서 서울에서 대전으로 이사해 세계 문학 전집을 읽기 시작했다. 이삿짐을 푼 직후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부터 2021년 봄의 염상섭 『삼대』까지 작품 수로 70편, 권수로는 100권을 읽은 기록을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로 묶었다. 이 시간 동안 무엇보다 내가 엄청난 책을 읽고 있다는 생각을 지웠다. 당연히 무슨 도전이나 미션을 수행하고 있으며,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내 삶의 가치가 달라지리라는 말도 안 되는 망상 또한 버렸다. 개인적으로 고전이니 필독서니 하는 말들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편이다. 내겐 마치 사회 정의 구현이니 선진화니 하는 말들처럼 공동체를 영위하기 위한 전략적 캐치프레이즈로만 여겨질 뿐이니까. 그러니 나와 책 사이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지 않도록 유지하며 한 장 한 장 읽어보자. 관심이 있다면 말이다. 김정선(『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저자)
리베카 솔닛의 글을 읽을 때면 종종 덩굴이 얽힌 길을 한참 돌고 돌다가 결론에 도착하는 듯한 경험을 한다. 그런데 나는 솔닛이 의도한 대로 잘 헤매고 있는 걸까? 특히 524쪽에 걸쳐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야만의 꿈들』을 읽을 때 '이 인물은 왜 이 시점에 나온 걸까?' 하며 자주 헤맸다. 물론 세부 사항을 무심하게 지나쳐버려도 좋지만, 솔닛의 글은 본문에 나온 온갖 인물이나 사건의 배경지식을 알면 알수록 독자에게 더 큰 즐거움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리베카 솔닛 전작 읽기' 북클럽을 시작한 이유다. 매달 솔닛의 책을 한 권씩 읽고, 솔닛이 책에서 언급한 세부 사항을 정리하고 나누다 보면 그가 전혀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일관적으로 희망에 대해 말해 왔다는 걸 알게 된다. 결국 그가 말하는 '희망'의 모습을 보게 된다. 노혜지(독서 커뮤니티 '들불' 운영자)
까치글방에서 출간한 592쪽짜리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아카넷에서 두 권으로 출간해 총 900쪽에 달하는 헤겔의 『정신현상학』 같은 철학책 앞에 서면 누구라도 주눅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철학책을 완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함께 읽기'에 있다. 1000쪽짜리 책도 열 번으로 쪼개면 한 번에 100쪽씩만 읽으면 되니까!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도 같이 고민하면 풀리기도 하고, 내가 전혀 관심 가지지 못했던 요소가 책 속에 있음을 느낄 수도 있다. 발제할 때는 힘들어도 일단 해보고 나면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발제를 듣고 새로운 영감을 떠올릴 수도 있다. 요컨대 철학책 읽기에서 함께 읽기는 선택이 아니라 어쩌면 필수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끝까지' 읽는 건 왜 중요할까? 그 끝에 최종 해답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깨닫게 되는 건 철학책에도 그런 해답은 없다는 사실, 그 해답 없음으로부터 각자의 해답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일이다. 박동수(『철학책 독서 모임』 저자)
벽돌책의 엔딩을 보는 법을 쓰겠노라고 했지만, 실은 자격 미달이다. 언제나 벽돌책에 도전하지만 매번 벽돌에 깔리는 건 나이기에. 696쪽인 루스 오제키의 『우주를 듣는 소년』은 흔히 말하는 벽돌책에 가까운데, 반쯤 항의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의 편집자가 된 나는 뜻밖에도 취향을 저격당했다. '소년'과 '책'의 교차 서술이라는 독특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단순히 사건의 결말에 대한 궁금증만이 책장을 넘어가게 하는 힘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책은 한 인격체로서 책만의 방식으로 소년의 입장을 대변하고, 종종 옆길로 새서 철학·인문학적 지식을 알려주면서 인간의 삶을 다채롭게 서술해 간다. 책이 이토록 신나게 떠는 수다를 어떻게 탓할 수 있을까. 그렇다. 모든 벽돌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는 법. 이 마음가짐만 있다면 앞으로 어떤 벽돌책을 만나도 두려움이 조금 사라질 것 같다. 하지만 잊지 말자. 벽돌책의 엔딩을 보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의 독서가 실패는 아니란 사실을. 허문선(인플루엔셜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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