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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멜라 "치사한 세상에 던지는 질문"

장편 소설 『없는 층의 하이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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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또렷이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들에게는 "내가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것조차 굉장한 용기와 고난이 필요한 일이더라고요. (2023.06.27)


허름한 남산빌리지 상가 건물의 201호와 202호. 등기부 등본에는 '없는 층'인 이곳에 할머니 '하이쎈스'와 손녀 '아세로라'가 산다. 남산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던 할머니는 군사 독재 시절 별안간 간첩으로 몰려 자신의 존재를 지운 채 숨어 살았고, 아픈 동생을 하늘로 먼저 떠나보낸 손녀는 혼자만 살아남은 게 죄스러워 세상을 떠나고 싶다. '사라진 존재'와 '사라지고 싶은 존재'의 공통점은 무난하게 사는 이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첫 장편 소설 『없는 층의 하이쎈스』를 펴낸 소설가 김멜라는 언제나 이들을 응시한다. 없다고 여겨지지만 사실은 살아 숨쉬는 존재들을.



없는 존재의 삶을 상상하는 일 

첫 장편 소설을 쓴 소감이 어떠세요? 

최종 교정본을 넘기고 나니까 감정의 파도가 밀려오더라고요. 단편 소설을 하나 다 썼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만, 이번에는 특히 달랐어요. 굉장히 큰 파도가 나를 덮치는 느낌이 들었죠. 장편 소설을 쓰는 건 소설의 인물들과 함께 사는 것 같아요. 장편이라는 장르에 익숙해지고 싶고, 더 잘 쓰고 싶습니다. 

『없는 층의 하이쎈스』는 창비 플랫폼 <스위치>에서 연재했던 소설이죠. 연재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온라인 플랫폼은 문예지와 다르게 조회수와 '좋아요' 수가 실시간으로 보이잖아요. 그런데 '좋아요' 수가 너무 적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소설이 업로드 되면 제가 맨 먼저 좋아요를 누르는 날이 많았어요.(웃음) 책이 나오니 독자분들의 반응이 더욱 궁금합니다. 어떻게 읽으셨는지 후기를 많이 듣고 싶어요. 

'하숙집을 하다가 간첩 누명을 쓴 할머니'와 '가족을 잃고, 걸핏하면 도끼를 휘두르는 손녀'가 숨어서 동거를 한다는 설정이 재미있었어요. 어떻게 시작된 이야기인가요?

저희 외할머니가 실제로 남산에서 하숙집을 하셨어요. 하숙집 구석구석을 넘나들며 놀던 추억이 좋아서 언젠가 그때의 기억을 소설에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그러다 재작년 무렵에 작업실을 구하면서, 우연히 남산타워가 보이는 건물에 들어가게 되었거든요. 거기서 매일 글을 쓰고 산책하다 보니 불현듯 남산에 얽힌 또 하나의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대학 시절, 남산 밑에 자리한 '서울유스호스텔'로 워크숍을 간 적이 있는데요. 훗날 알고보니 그곳이 군사 독재 시절에 시민을 통제하고 감시했던 '중앙정보부'가 있던 공간이었던 거예요. 제가 평화로운 일상을 보냈던 공간이 역사의 한 부분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졌다고 하니 섬뜩하더라고요. 이런 생각을 하다가 소설을 구상하게 됐어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작가님을 떠나지 않은 질문이 무엇인가요?

'이렇게 써도 되는 걸까?'라는 질문이요. 허구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실존 인물이나 특정한 역사적 상황을 환기시킬 수밖에 없는 스토리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웠죠. 소설을 쓸 때는 길이 정해져 있지 않은 숲에 들어갔다 나오는 기분이 들어요. '이 길이 맞을까', '내가 뭘 놓고 오지 않았을까', '숲을 함부로 훼손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죠. 이 소설을 쓰면서도 어김없이 그런 감정을 느꼈어요. 어떤 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아픈 지점을 내가 잘못 해석하는 건 아닐까 고민이 됐죠.

그 질문을 어떻게 돌파했나요?

'아세로라'라는 인물에 기대어 용기를 냈어요. '아세로라는 남산을 어떻게 볼까? 봄을 뭐라고 생각할까?'를 깊이 생각했어요. 비록 저는 그 현실을 통과해 살아보지 못했지만, 아세로라에게는 남산빌리지의 없는 층에 사는 것이 현실이잖아요. 작가인 내가 오해하고, 착각하더라도 아세로라가 느끼는 것을 쓴다면 그것은 진실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치사한 세상에 던지는 질문

주인공 '아세로라'는 굉장히 냉소적인 인물입니다. 봄꽃 향기가 풍겨오자 이렇게 생각하죠. '역겨워서 돼지갈비를 굽고 싶어지는 날이었다. 숯불에 구운 돼지갈비를 먹고 옷에 밴 냄새를 지우려고 뿌리는 방향제 같은 봄(10쪽)'

아세로라의 냉소에서 소설을 시작하고 싶었고, 그 냉소가 소설을 이끌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문장이 등장하는 소설의 도입부를 마지막까지 수정했는데 알아봐 주셔서 감사해요. 대개 봄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계절이라고 생각하지만, 아프고 소외된 사람들은 봄이 오면 더 힘들어진다고 해요. 화사하고 따뜻한 계절과 내 상황이 대비되면서 더 큰 소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거죠.  

아세로라는 작가의 페르소나 같았어요. 희귀 면역 질환을 앓느라 시판 음식을 먹지 못하는 동생 '칭퉁이'에게 공감하는 유일한 인물이거든요. 부모님이 몰래 돼지갈비를 먹고 왔다는 사실을 알고 아세로라는 분노합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이렇게 치사해도 되는 거야? 그깟 돼지갈비 때문에?(57쪽)'라고요. 

어린이들의 순수한 마음으로는 치사한 것을 참기가 제일 힘들잖아요. 아세로라가 느끼는 세상에 대한 치사함, 소외감, 혼자 동떨어진 느낌이 이 소설을 관통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소설을 쓰면서 아세로라에게 가장 마음이 쓰였어요. 자기 아픔만 바라보는 아세로라가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고개를 들 수 있을까 생각했죠. 아세로라가 가진 슬픔, 오해, 원망 같은 것들이 깨끗이 해결되지 않더라도 자기에게 쏠려 있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거둘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동생 '칭퉁이'는 원인 모를 희귀질환에 시달리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납니다. '작가의 말'에 밝혔듯 작가님의 연인이 겪은 경험이 모티프가 되었다고요. 

남산에 작업실을 구하고 글을 쓰던 중에 연인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렸어요. 병명이 뚜렷한 질병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되지만 특별한 원인을 밝힐 수 없거나, 증상이 복잡해서 병명을 쉽게 찾을 수 없는 통증은 아프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가까이에서 그걸 지켜보면서 잊혀지고 감춰진 작은 존재들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어요. 세상에 또렷이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들은 "내가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것조차 굉장한 용기와 고난이 필요한 일이더라고요.

줄곧 냉소적이었던 아세로라는 할머니의 비밀을 알고 난 뒤부터 조금씩 변해갑니다. 소설 이후, 아세로라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조금 편안해졌을까요? 

여전히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20대라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아픔에도 총량이 있다면 아세로라는 일찍이 아픔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앞으로 다가올 아픔에 잘 대처할 수 있을 거예요. 어린 시절부터 힘든 일이 많았던 아세로라는 '어떻게 무사히 노인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요. 저는 아세로라가 분명히 좋은 노인이 될 거라고 믿어요. 많이 고통스러웠던 만큼, 아픈 사람을 민감하게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으니까요.

아세로라의 외할머니 '사귀자(하이쎈스)'는 손톱 깎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 것을 걱정할 만큼 불안을 안고 살면서도, 자신을 치장하고 삶을 즐기는 데 여념이 없어요. 세상의 편견을 깨는 인물 같더라고요. 사건의 피해자라고 해서 우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잖아요. 

맞아요. 사귀자는 말할 수 없는 불안, 감춰진 비밀을 끌어안고 살면서도 남이 자기를 함부로 생각하지 못하게 스스로를 단장하죠. 그 간극에서 오는 캐릭터를 생각했어요. 세상이 기대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깨고 싶기도 했고요. 사귀자는 다정하고, 정이 많은 할머니가 아니라 자신의 외모를 가꾸고, 온드라스 음식을 즐겨 먹는 색다른 어른이에요. 분명히 그런 노년층도 세상에 많죠. 

아세로라와 사귀자는 손녀와 할머니 사이가 아니라 친구처럼 느껴집니다. 호칭만 봐도 그렇죠. 아세로라는 할머니를 내내 '동거인'이라고 불러요.

보통 어떤 관계를 칭할 때 '언니', '오빠', '이모'처럼 가족의 호칭을 붙이곤 하잖아요. 진짜 가족이 아닌데도요. 저는 이런 호칭이 익숙하지 않더라고요.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해서 다 언니, 오빠는 아니잖아요. 아마 아세로라도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나아가 '사귀자'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죠. 아세로라가 '할머니'라고 부르자 "얘, 세상에 멋진 말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부르니? 나이도 어린 애가 생각이 경직됐구나. 경직은 사후에나 하는 거야"라고 말하죠. 그 말을 듣고 아세로라는 '동거인'이라는 새 호칭을 떠올렸을 거예요. 이 호칭이 겉보기에는 딱딱하고 형식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가까운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같이 사는 사람'이라는 표현이니까요. 단순한 혈육을 넘어 어떤 순간을 함께 겪은 존재들을 잘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했어요.

간첩 조작 사건이 일어났던 1970~80년대의 시대적 배경이 등장합니다. 시대상에 대한 자료 조사를 하면서 새롭게 느낀 것들이 있었나요? 

같은 자료를 거듭 읽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내용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읽으면 또 소름이 돋는 경험을 했어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 가족, 친구가 순식간에 국가의 조작된 폭력 사건에 휘말려서 온 가정이 파탄나고, 삶이 완전히 변하는 이야기가 많았거든요.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걸 믿기 어려울 정도였죠. 책 마지막 장에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을 받은 자료의 목록을 밝힌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아세로라와 하이쎈스라는 가상의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그 책들로 가는 다리를 놓아주고 싶었거든요. 소설을 읽고 간첩 조작 사건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폭력과 존엄 사이』(은유, 오월의 봄 2017), 『조작된 간첩들』(김성수, 드림빅 2021), 『만들어진 간첩』(김학민, 서해문집 2017)을 꼭 읽어보시길 바라요.



자연의 하이쎈스를 배우고 싶다 

작가님의 소설에서는 인물들이 별명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죠.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였어요. '사귀자'는 '하이쎈스'로, '강호'는 '칭퉁이'로 불립니다. 이외에도 '가물치', '츱츱이' 등 다양한 별명이 등장해요. 

별명을 고민하는 게 재미있어요. 스토리를 짤 때보다 훨씬 더 재밌는 작업이죠.(웃음) 별명을 짓는 건 제가 인물들과 친해지는 과정이기도 해요. 내가 부를 수 있는 이름이 하나 더 생김으로써 그 인물과 가까워지는 것 같거든요. 

‘벌’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세로라는 '꿀벌의 날' 행사에서 어렴풋이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칭퉁이'라는 별명은 '큰 벌'이라는 뜻입니다. 예스24 <최근담>에서 쓴 소설의 제목도 「꿀로 무거워져」였어요. 

인간은 곤충이 없으면 몇 개월도 생존할 수가 없어요. 곤충이 있어야 꽃이 수정을 하고, 열매를 맺기 때문이죠. 이렇게 지구를 움직이는 건 벌과 지렁이 같은 아주 작은 존재들인데, 인간은 마치 자기가 주인인 양 행세를 하죠. 우리가 이 작은 친구들에게 엄청난 의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자연 생태계에 대한 책과 자료를 자주 찾아보았어요. 거기서 큰 위로를 받았죠. 

자연으로 시선을 돌리면 현실의 문제를 잊게 돼요. 내 모습이 초라하고, 내 글이 별로인 것 같은 순간에도 숲을 떠올리면 괜찮아져요. 나뭇잎 하나하나가 모여서 아름다운 숲을 만드는 것처럼, 나도 이 자리에서 조화롭게 존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벌도 그런 가르침을 주는 존재 중 하나예요. 저는 매일 아침 꿀차를 마시는데, 요즘 벌이 없어서 꿀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직접적인 위기감을 느꼈어요. 머지 않아 벌이 사라진 자리에 대한 위기감을 우리 모두가 느끼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을 볼 때 매력을 느끼세요?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뭐지'’라는 호기심이 드는 사람이요. 아세로라처럼 화나 있고, 혼자 구석에 앉아서 어두운 상념에 빠져 있는 듯한 사람을 보면 자꾸 눈길이 가요. 마치 저를 보는 것 같아서요. 또 하나는 이렇게 웅크려 있는 친구를 끌고 나와서 "같이 놀자. 무슨 일 있어?"라고 해맑게 물으며 그가 겹겹이 쌓아 놓은 벽을 순식간에 허무는 사람들을 볼 때 무장해제 됩니다.(웃음) 한마디로 어린 아이의 감수성과 해맑음을 가진 사람 혹은 그런 작품을 특히 좋아해요. 

이를테면요? 추천해 주실만한 작품이 있을까요? 

<찰리 앤 롤라>라는 영국의 애니메이션이 있어요. 7살 찰리와 4살 롤라 남매의 일상을 담은 만화인데, 말썽꾸러기인 동생 롤라를 찰리가 보듬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없는 층의 하이쎈스』를 쓸 때 이 애니메이션을 자주 봤어요. <찰리 앤 롤라>를 보면 사는 데 필요한 기본 생활태도를 모두 배울 수 있어요. 친구와 어떻게 친해지는지, 병원에 갈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이요. 찰리와 롤라가 서로를 이해하고, 세상을 배워가는 모습이 너무 좋아요. 복잡한 현실의 문제나 경제적인 숫자보다 더 중요한 건 이렇게 본질적인 삶의 태도를 배우는 거죠. 

사귀자는 비싼 소시지 부침을 반찬으로 내놓고, 글씨를 잘 쓰는 등 손끝이 야무져서 하숙생들에게 '높은 감각'이라는 뜻의 별명인 ‘하이쎈스’라고 불리죠. 작가님이 갖고 싶은 하이쎈스는 무엇인가요? 

자연의 하이쎈스를 따라서 살고 싶어요. 새처럼 날고, 물처럼 흐르면서요. 인간은 뇌로 현실을 통제하며 살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죠. 그럼에도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움직여요. 어김없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 매일같이 낮과 밤으로 흐르잖아요. 저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살고 싶어요. 그게 가장 큰 꿈이에요. 

이 소설을 읽을 독자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아세로라처럼 말하기 힘든 아픔을 가진 분들도 있고, 하이쎈스처럼 자기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늘 불안해하며 사는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과 상황이 혼자만 겪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소설이 스스로 외톨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멜라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4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소설집 『적어도 두 번』, 『공공연한 고양이』 등이 있다. 『소설 보다:봄2021』을 함께 썼다.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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