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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의 소설 쓰고 앉아 있네] 글쓰기에 관한 세 가지 오해 (2)

'문지혁의 소설 쓰고 앉아 있네'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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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한 번에, 쉬지 않고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쓰레기와 다르지 않았던 우리의 글을 얼마나 어떻게 고쳐서 좋은 글로 만들 수 있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2023.06.22)


격주 목요일, <채널예스>에서
소설가 문지혁의 에세이 ‘소설 쓰고 앉아 있네’를 연재합니다.


언스플래쉬

물론 글쓰기에 있어 재능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럴리가요. 다만 재능이 출발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똑같이 바이올린을 배워도 1년 후에 우리는 같은 지점에 도착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6개월 만에 현란한 연주를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몇 년을 배워도 제자리걸음일 수 있죠. 재능은 그런 방식으로 발현됩니다.

하지만 그 재능의 유무가 우리가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는 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재능이란 시작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고, 한 가지 종류인 것도 아니며, 어떤 경우엔 몇 년 혹은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드러나기도 하니까요. 이 재능이라는 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어렵게 생각하거나, 아예 제대로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거쳐온 교육 과정에서 이미 상처를 여럿 받기도 했고요. 이 환상을 깨뜨려야 합니다.

글쓰기는 외국어나 운동, 악기를 배우는 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실현 가능한 목표를 정하고, 연습과 훈련을 반복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면 좋아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가진 (우리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재능은 이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절대적인 방향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계속하면 나아진다는 그 방향을요.

그런데 왜 우리는 글쓰기에 실패할까요? 제가 방금 말한 것 중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법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허무맹랑한 목표를 세우게 되죠. '나도 『해리포터』 같은 거 하나 써볼까' 이런 식으로요.

실제로 외부 강의를 하면서 글을 쓰고자 하는 분들을 만나다 보면 비슷한 이야기를 듣게 돼요.

"서점에 가서 베스트셀러 같은 거 읽어보니까 다 시시하더라고요. 제가 써도 그것보단 잘 쓸 것 같아요."

베스트셀러들이 얼마나 좋은 책인지와는 별개로, 이런 목표 설정은 곤란해요. 실패하기 쉽습니다.

만약 오늘 국가 대표 축구팀의 경기력에 실망한 제가 축구공을 하나 사서, '답답하니까 다음 월드컵에는 내가 국가 대표가 되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운다면 저는 그걸 이룰 수 있을까요? 아마 주변에 민폐만 끼치고 국가 대표가 되기는커녕 전혀 다른 종류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게 되겠죠.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날까요? 목표 설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오늘 축구공을 사서, 다음 월드컵 할 때쯤엔 우리 동네 조기 축구회의 주전 레프트백이 되겠다.' 이 목표는 제 노력 여하에 따라서 실현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무엇보다 거기에 맞춰 무엇을 훈련하고 준비해야 하는지가 명확한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는 한 번에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오해는 글을 '한 번에' 써야 한다는 일종의 잘못된 작가-예술가 신화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동양 문화권에서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나 일필휘지(一筆揮之), 문불가점(文不加點) 같은 사자성어들이 '잘 쓴 글'의 이상적 모델을 지칭하는 데 쓰이면서 이런 오해가 강화된 측면이 있지요. '글을 진짜 잘 쓰고, 재능까지 있다면 글쓰기를 하면서 이렇게 막힐 리가 없지 않을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다 쓰고 나면 단어 하나조차 고칠 필요 없는 글을 써야 좋은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이런 식의 착각을 하는 거죠.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어떤 뛰어난 예술가, 그중에서도 천재 작가를 그려볼까요. 그는 결코 집이나 독서실에서 글을 쓰지 않습니다. 으슥한 골목 깊은 곳의 허름한 술집, 그것도 구석에 앉아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지요. 그러다 그에게 갑자기 어떤 영감이 떠오릅니다. 불꽃이 튀는 것처럼 탓, 하고요. 그때 그는 절대 가방에서 잘 충전된 노트북이나 매직 키보드가 달린 아이패드를 꺼내서는 안 됩니다. 노트나 일기장을 가지고 다녀서도 안 돼요. 그는 테이블을 살핍니다. 그러자 김치찌개 국물이 묻은 채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냅킨이 보이는 거죠. 이게 좋겠습니다. 그는 냅킨의 남은 공간에 자신의 영감을 적으려고 합니다. 이제 가방 속 필통을 찾아 샤프나 볼펜을 꺼낼까요? 입고 있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몽블랑 만년필을 꺼낼까요? 안 됩니다. 그는 펜 같은 걸 가지고 다니지 않아요. 대신 식당 주인에게 아무거나 펜 하나만 달라고 부탁하고, 주인은 닳을 대로 닳은 모나미 153 볼펜을 건넵니다. 그는 자신에게 떠오른 영감을 물 흐르듯, 빠짐없이, 일필휘지로 적어 내려갑니다. 그런 다음 이 냅킨을 소중히 간직해서 집으로 가져갈까요? 역시 그래선 안 됩니다. 불꽃 같은 짧은 글쓰기를 마친 작가는 나머지 술을 천천히 다 마시고 (김치찌개도 조금 곁들여서), 냅킨은 처음 있었던 것처럼 아무렇게나 테이블 어딘가에 버려두고 갑니다. 마지막 손님이었던 그가 사라진 뒤 음식과 자리를 정리하던 주인이 우연히 냅킨을 발견하는 거죠. 주인은 깜짝 놀라고 맙니다. 아니, 세상에 이렇게 완벽한 글이 있다니...?

바로 이것이 우리가 작가-예술가에 관해 지니고 있는 낭만적 신화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천재 작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뭐든 처음 쓰는 것은 다 쓰레기다.(The first draft of anything is shit)"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지금 상당한 의역을 했습니다.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가 쓰레기보다 더 나쁜 거라고 말했거든요. 헤밍웨이도 이렇다는데, 우리는 어떨까요? 이 말은 잔인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곱씹어보면 동시에 위로를 주기도 합니다. 글쓰기의 본질을 생각할 때 이 말은 상당히 정확하거든요. 왜일까요?

글쓰기(writing)란 언제나 다시 쓰기(rewriting)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거창한 글이 아니어도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친구에게 보낸 카톡, 업무차 썼던 이메일, 블로그나 다이어리에 적은 일기... 거기에는 수많은 수정과 퇴고와 백스페이스가 존재했습니다. 하다못해 한 글자로 답할 때에도 '네', '넵', '넹', '예', '응'처럼 무수한 선택지가 존재하잖아요? 우리는 고민했습니다. 고쳤습니다. 선택했습니다. 썼다 지웠습니다. 다시 썼습니다. 이것이 글쓰기의 본질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처음부터, 한 번에, 쉬지 않고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쓰레기와 다르지 않았던 우리의 글을 얼마나 어떻게 고쳐서 좋은 글로 만들 수 있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작가가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초고는 다 비슷하게 별로입니다. 이를 누가 더 많이, 오래, 될 때까지 끈질기게 고칠 수 있느냐가 우리를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로 나누는 기준이 됩니다. 초고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고치는 것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은 결코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

좋은 글을 쓰는 작가는 천재나 괴짜나 돌연변이가 아닙니다. 좋은 작가란 긍정적인 의미에서 직장인과 같아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일정하고 쓰고, 일정하게 좌절하고, 일정하게 고치는 사람만이, 그 길고 건조한 무채색의 지루함을 견딜 수 있는 사람만이 마침내 좋은 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1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1
J.K. 롤링 저 | 강동혁 역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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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지혁

2010년 단편소설 「체이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중급 한국어』 『초급 한국어』 『비블리온』 『P의 도시』 『체이서』, 소설집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사자와의 이틀 밤』 등을 썼고 『라이팅 픽션』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등을 번역했다. 대학에서 글쓰기와 소설 창작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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