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 특집] 성해나 "글 쓰는 사람에겐 자기 확신, 낙관이 필요"
<월간 채널예스> 2023년 6월호
글을 쓸 때도, 그 바깥에서도 늘 진심을 다하려 애쓰려 해요. 제가 사랑하는 이들이 계속해 살아가길 바라서요. (2023.06.02)
예스24는 2015년부터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7년간 147명의 젊은 작가들을 소개했고, 180만 9798명의 독자가 투표에 참여했습니다. 올해도 6월 12일부터 7월 9일까지 투표를 진행합니다. 문학의 힘을 믿는 독자분들의 변함없는 응원을 기대합니다. |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6인'에 든 소감
연락을 받고 종일 들떴어요. 독자분들이 직접 뽑는 투표라 긴장도 되고, '젊은 작가'라는 어감도 좋더라고요. 작품 활동을 한 지 오 년 정도 되었는데, 이런 자리가 생길 때마다 여전히 반갑고 벅찹니다. 더 오래 글을 써도 지금과 같을까요?
첫 책 『빛을 걷으면 빛』의 기억
처음에는 오히려 담담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고 독자분들의 평을 접했을 때에야 첫 책이 나왔구나, 실감했습니다. 책을 낸 뒤 독자분들의 존재가 더 명징해졌어요. 몇몇 분들께는 애정 어린 메일과 메시지도 받았는데요. 지금도 글이 잘 안 써지거나, 갈피가 잡히지 않을 때 그것들을 읽어요. 저를 지탱해주고 계속 쓸 용기를 주는 버팀목이에요.
매일 실천하는 글쓰기 루틴
플랭크 5분, 스쿼트 5분. 이 두 가지는 무조건 합니다. 아침 루틴이기도 한데, 몸을 적당히 데운 뒤 씻고 개운한 상태로 글을 써야 가장 잘 써져요. 몸 쓰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체력 관리에 큰 힘을 쏟는 편도 아니지만 오래 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운동을 병행해야 하는 것 같아요. 해서 의식처럼, 일어나면 거실에 매트를 깔고 타이머를 맞춥니다. 간단한 운동이지만, 다 하고 나면 오늘도 쓸 수 있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어요.
글 쓰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세 가지
자기 확신, 낙관, 독자. 글을 쓰다보면 내 문장이 의심스럽고 조악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잦아요. 그럴 때 나를 완강하게 만들어주는 건 자기 확신과 낙관인 것 같아요. 나를 다독이고 내 문장을 신뢰하고. 저에게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나라도 내 문장을 믿어야지, 되뇌며 쓰고 있어요. 동일 선상에서 큰 확신을 주는 건, 나의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예요. 글쓰기는 고독한 작업이잖아요. 홀로 낙관하며 나아가기엔 한계가 있죠. 글 바깥에서 나를 북돋고 격려하고, 때로는 비판도 마다않는 존재가 그래서 필요한 것 같고요. 그들 덕에 버텼고 지금도 쓰고 있어요.
나를 쓰게 하는 사소한 것들
아이패드, 플레이리스트, 잘 짜인 계획. 이런 것들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원래 집에서만 글을썼는데 아이패드가 생긴 뒤로는 들고 다니며 수시로 작업해요. 작업실의 개념이 더 넓어졌지요. 구상부터 시작해 퇴고까지 전부 아이패드로 하고요.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전,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별하는 게 제 고질인데요, 음악 없이는 잘 안 써지더라고요. 해서 플레이리스트를 꼭 만들어요. 그 과정이 즐겁기도 하고, 소설을 이루는 골조 중 하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계획하고 도모하기를 좋아해요. 소설을 쓸 때도 그날의 일과를 촘촘히 짠 뒤 지키려 노력하죠. 일과뿐 아니라 구상을 할 때도 인물의 전사나 배경을 면밀히 생각해요. 서사가 무너지지 않게 도와주는 보강재라고 할 수 있답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가장 좋아해요. 그녀의 소설을 읽고 난 후에는 쓰고 싶다는 열망을 잃기도 해요. 울림이 크고 완벽하고 아름다워서요. 나는 언제쯤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동경만 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녀의 소설은 전부 좋지만, 한 권만 꼽자면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고르겠습니다. 우리는 왜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는 걸까, 그 마음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는 걸까. 글을 읽으며 내내 되뇌었어요. 사랑했지만, 사랑한다는 말 대신 아픔을 안겨주었던 몇 사람도 떠올랐고요. 마음을 깊이 건드린 소설이에요.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말
한때는 거창한 말들이 나를 살아가게 한다고 믿었어요. 성취에 대한 인정이나 과도한 관심, 기대가 어린 말들이요. 요즘은 그렇게 생각지 않아요. 근래에 한 독자분이 두 번째 책의 출간을 축하하며 제게 "장하다"고 해주셨는데요. 그 말을 듣고 울컥했던 것 같아요. 애정과 다정이 듬뿍 담겨 있어서요. 온전한 진심이 담긴 말들은 사람을 계속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글을 쓸 때도, 그 바깥에서도 늘 진심을 다하려 애쓰려 해요. 제가 사랑하는 이들이 계속해 살아가길 바라서요.
글쓰기 작업에 영감, 도움을 줬던 책
저는 건축서를 즐겨 읽어요. 건축서를 읽으면서 작법을 익히기도 하고, 읽기에 지칠 때는 건축 작품집을 꺼내 맥락이나 순서에 개의치 않고 보는 편입니다. 무결하게 짜인 것들에서 안락함을 느끼나 봐요. '짓다'라는 단어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나, 다수의 작가들이 소설 창작을 집짓기에 비유하는 것처럼 문학과 건축은 한 몸을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기용 건축가를 특히 좋아하는데요, 그의 작품집을 자주 꺼내 봐요. 춘천 자두나무집이나 광주 목화의 집 같은, 정주하는 이들의 삶이 자연에 조심스럽게 스며든 건축물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혼자 꿈꾸는 것이 아닌 함께 나아갈 도시'를 만들고 싶다는 정기용의 말을 아로새기며 귀감을 얻습니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슬럼프를 길게 앓은 적이 있어요. 나의 한계와 부족한 역량이 절감되어서, 쓰는 게 슬프고 괴로운 일이 되어버려서 마음이 무거웠어요. 돌이켜보면 저 자신에게 너무 가혹해 그랬던 것 같아요. 나를 돌보고 살피기보다는 오늘은 글을 쓰지 못했다는 불안 때문에 스스로를 혹사했어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건 글쓰기를 향한 어긋난 애정이었던 것 같아요.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크면 고통이 따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 중에는 그때의 저와 같은 그늘을 안고 있는 분도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럴 때에는 글과 논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스스로를 격려하며 쓰시기를 바라요. 내일 쓰면 돼, 괜찮아. 근심 없이 태평하게요.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문학이 내가 편히 몸 누일 곳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
두루미사상서에서 나온 장준하의 『우리는 특권계급의 밥이 아니다』를 읽고 있어요. 60년도 전에 쓰인 글인데도 작금의 상황과 맞닿아 있는 지점들이 보여요. 독선과 은폐의 시대에서 문학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언지 고민하며 읽고 있습니다.
*성해나 1994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수평의 세계」로 제 7회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 대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동아일보 「오즈」로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첫 책 『빛을 걷으면 빛』을 시작으로 『두고 온 여름』 등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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