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하고 씩씩한 모험 에세이 『등고선 없는 지도를 쥐고』
『등고선 없는 지도를 쥐고』 권민경 작가 인터뷰
『등고선 없는 지도』에 빼곡히 적힌 권민경 시인의 대처법은 우리가 각자의 언덕과 고개들을 보다 가뿐히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쾌한 태도를 지닌다.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담담함, 인생을 관조할 줄 아는 여유로움, 그리고 유머까지... (2023.05.15)
모든 결과에는 당연히 시작의 순간이 있기 마련이듯이, 한 시인에게도 문학이 시작되었던 수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친구를 생각하며 문득 글을 써 볼까 생각했던 순간, 예상보다 길고 고된 언덕길을 산책하며 언덕 구르기를 하는 아이들을 만났던 순간, 영화나 시를 감상하고 처음 가슴 뛰었던 순간. 그렇게 시작된 여정에서 우리는 야속하게도 촘촘한 등고선을 지닌 고개들을 여럿 만나게 되는데, 『등고선 없는 지도』에 빼곡히 적힌 권민경 시인의 대처법은 우리가 각자의 언덕과 고개들을 보다 가뿐히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쾌한 태도를 지닌다.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담담함, 인생을 관조할 줄 아는 여유로움, 그리고 유머까지... 『등고선 없는 지도를 쥐고』를 한 장의 지도로 삼아 보아도 좋겠다.
등단 이후 첫 산문집입니다. 시를 쓰는 것과 에세이를 쓰는 것,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떻게 같았을지 궁금합니다.
시와 산문은 근본적 발동 원리가 다른 것 같아요. 시가 이미지와 어떤 추상적인 감정을 한순간에 잡아 놓는 것이라면, 산문에는 아무래도 서사가 들어가니까요. 물론, 시와 산문이 겹치는 단계도 있긴 합니다. 모든 일이 딱 떨어지는 게 아닌 것처럼요. 그래서 일단 소설 쓰듯이 글을 쓴 다음에 시로 고치는 경우도 있어요. 소설에서 에세이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고요. 물론 시와 소설을 쓸 때보다 에세이를 쓸 때 형식에 덜 구애받기 때문에, 약간 더 힘을 빼고 쓰는 게 있긴 해요.
제목에 담긴 의미가 궁금합니다. 산문집의 제목을 '등고선이 없는 지도를 쥐고'로 지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번 책을 만들며 편집자인 정기현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제목을 정하는 것도 꽤 고심했습니다. 후보가 많았는데 정기현 선생님과 서로 나눈 몇 가지 제목 후보를 보여 드린다면,
- 사람에게 총을 겨누지 마세요 - 눈물 많으나 가려서 움 - 내 기분은 쓸쓸하고 씩씩함 - 그래도 씩씩하고 조금은 쓸쓸한 - 상세 불명의 신생물 - 나는 좌절과 좌절, 그리고 뜻밖의 |
위와 같습니다. 제목이 어딘지 계속 아쉬웠어요. 결국, 마지막에 정기현 선생님이 『등고선 없는 지도를 쥐고』가 어떠냐 제안해 주셨는데, 책과 잘 어울리고, 어렵지 않은 제목이라 좋았어요. 높낮이를 무서워하지 않고 아무 데나 쏘다니는, 철딱서니 없는 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니 참 적합한 제목이죠. 쓸쓸함의 함량도 분명 있지만, 그보다 씩씩함의 함량이 더 큰 이 책의 신나는 모험 분위기와도 어울리고요.
시를 통해 '나를 비롯한 누군가의 상처를 착한 짐승처럼 핥을수 있을거라 믿는다'고 하셨습니다. 독자분들께 이 산문집이 어떻게 읽히길 바라시나요?
그동안 제 시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요, 뭐, 제가 의도적으로 어렵게 쓴 건 아니고, 그렇게 쓸 수 밖에 없어서 쓴 것들이 대부분이라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런데 좀 아쉽긴 하죠. 문학 작가들은 약간 피드백에 목마른 상태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큰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니고, 그냥 저자인 저를 독자들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며 시간 때우기에 성공하신다면 기쁠 것 같아요. 모든 문학이 어떤 깨달음을 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좋은 오락거리가 되길 바랍니다.
시의 동력이 되는 뮤즈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번 에세이를 준비하면서 가장 큰 동력이 되어준 뮤즈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너무 많아요! 다시 생각해 봐도 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담은 것 같아요. 친구, 가족, 외할머니, 이모, 그리고 자세히 쓰지 않았지만 좋아했던 캐릭터까지... 확실히 주변인들은 주로 시보다 산문의 뮤즈가 되어 주는 것 같아요.
'모든 시에 다정한 어깨가 존재한다면 당신은 언제든 눈물을 펑 터뜨려도 좋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작가님께서 이 산문집 속 '다정한 어깨'라고 생각하시는 문장은 어디일까요?
내 글을 읽고 당신이 쓰지 못한 이야기를 당신 보라고 썼구나, 느꼈으면 좋겠다.
59쪽에 실린 구절인데요. 이 책에는 이렇게 독자들을 적극 상정하며 말하는 부분이 좀 있어요. 책에서 이런 구절을 찾아보시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권민경에겐 어깨가 두 개뿐인데, 이 책에는 여러분들이 기대라고 다정한 어깨를 많이 배치해 두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나의 나 도슨트」 챕터가 인상 깊었습니다. 이 챕터를 제외하고도 '오늘의 운세', '소문', '초신성', '안락사' 등 작가님이 쓰셨던 그간의 시들이 곳곳에 수록되어 있는데요. 혹시 독자분들께 꼭 도슨트 하고 싶지만 빠트린 작품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가 고르기 어려워 저희 안사람이자 시인 겸 사진가인 이효영 씨한테 제 시 중에서 뭘 가장 좋아하는지 물어봤는데요. 두 번째 시집 『꿈을 꾸지 않기로 했고 그렇게 되었다』에 실린 「서킷으로」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달리고 싶다'는 말이 반복되는 단순한 시인데, F1 드라이버가 된 마음으로 썼던 시입니다. F1도 다른 스포츠처럼, 사람을 벅차오르게 하는 구석이 있어요. 시를 노래하는 '트루베르'가 이 시에 곡을 붙여 주셨는데요. 관심 있으면 아래 영상 시청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차기작으로 생각하고 계신 시집이 있으신가요?
세 번째 시집 원고를 5월 중에 넘길 생각이긴 한데, 게을러서 마음대로 될까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여기에 말해 두었으니 지키려고요. 그리고 여름에 새드엔딩 작품들에 대해 자신만의 해석이랄지, 생각을 이야기한 산문집이 나올 예정이에요.
*권민경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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