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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미의 혼자 영화관에 갔어] 작별의 방식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김소미의 혼자 영화관에 갔어 14화
세상을 냉소했던 너구리의 여정은 그와 비슷한 동료들의 사랑으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는 결코 더이상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던 또 다른 이별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는 또 한 번 개조되었다. (2023.05.12)
영화 평론가 김소미가 극장에서 만난 일상의 기술을 소개합니다. 서울을 살아가는 30대로서 체감한 영화 속 삶의 지혜, 격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
이별은, 그 경험의 빈도를 줄여야만 하는 우리의 생존 본능 덕분에 좀처럼 인생에서의 연습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 원치 않게 혹은 너무 빠르거나 뒤늦게 무언가와 헤어지면서 인간은 다친다. 여기서 다침은 몸과 정신, 무의식과 삶의 방향에 이르는 광범위한 실존적 요소들의 손상을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이별의 파괴력은 추상적 고통으로 이해되지 영구적인 손상, 말하자면 피가 흐르고 뼈가 부러지면서 비명을 동반하는 신체적 상해로는 잘 풀이되지 않는다. '트라우마'는 다소 남용되기는 하지만 차라리 이별의 작용과 여파를 말하기에 적절한 듯 싶다. 어쨌거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에서 생체 실험으로 탄생한 기계 너구리인 로켓에 비유하자면, 한 번 이별할 때마다 우리는 개조된다. 나로 이야기할 것 같으면 개조 과정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한 편인데, 그럴 바에는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향상심이 들었다기보다는 그나마 위안이 될 것 같아서였다. 이별의 해부학이 진화(evolution)로 이어진다면 그건 꽤 괜찮은 작별(作別)일 터였다.
군데 군데 결점이 도드라진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를 보면서 아침부터 오열했다. 왜 하필 오전 시사람... 극장 불이 켜지고 나서 황급이 줄행랑치는 이들을 발견하고 눈물이 나만의 주책은 아니란 사실에 안심했다. 1편에 주어진 찬사와 뒤따른 제임스 건 감독에 관한 논란으로 말도 탈도 많았던 시리즈가 막을 내렸다. 내가 생각하기에 시리즈물의 중요한 존재 이유 중 하나는 동일한 구성원들의 시간을 축적함으로써 끝내 헤어짐의 무게를 육중하게 만드는 기능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가오갤'처럼 몇 안되는 멤버들끼리 좁은 우주선에서 쉴 새 없이 싸워대는 경우라면 더더욱. 따지고 보면 세 편이니 훨씬 유장한 역사를 자랑하는 프랜차이즈들에 비해서는 단출한 편이고, 비주류들의 유머를 뾰족하게 깎아낸 미덕은 3편이 나온 지금도 여전히 1편의 승리처럼 보이는데 왜인지 나는 마지막 영화에 항복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를 보면서 마음 속 한켠이 순수해지면서 따뜻한 물결이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사랑할 수 밖에 없고 마침내 결속된 것 같은 애틋함까지 느끼게 되는 희한한 느낌의 출처를 고민하게 되었다. 한 편의 영화가 그런 일을 해내고 마는 것에 새삼 신기해하면서 말이다.
이야기는 우주 정거장 '노웨어'에서 시작된다. 스타로드(크리스 프랫), 드랙스(데이브 바우티스타), 네뷸라(카렌 길런), 그루트(빈 디젤 목소리), 맨티스(폼 클레맨티에프)를 포함한 가디언즈 그룹은 로켓(브래들리 쿠퍼)의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순식간에 비상 모드로 전환한다. 동물의 생명과 두뇌를 제어하는 기계 장치가 삽입되어,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로켓을 살리기 위해선 고유의 프로그래밍 칩이 필요하고, 멤버들은 그것을 구하기 위해 로켓의 과거와 만난다. 피날레의 서사는 이처럼 출생 신화로 돌아간다.
이번 영화는 누가 뭐래도 너구리의 영화다. 그리고 상념에 잠긴 루저 너구리가 라디오헤드의 <크립>을 들으며 자신의 커뮤니티를 초연히 바라보는 오프닝 장면 하나만으로 이번 영화는 볼 가치가 있다. 우주를 떠돌며 '너구리', '여우', '두더지', 심지어는 '개미핥기'라 불리는 로켓은 자신은 그 무엇도 아니라고 그저 역정을 낼 뿐이었는데, 이 오프닝 장면에서 로켓이 자신을 정체화하고 있던 방식 — 소름끼치는 존재(creep) — 이 고백된다. 사연인 즉, 로켓은 우생학을 맹신하는 빌런 하이에볼루셔너리(추쿠지 이와지)로부터 개조되었으나 그 디자인이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할 처지에 탈출한 생명체였다. 우생학의 횡포는 로켓의 몸 곳곳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들을 남겼지만, 철창을 맞대고 함께 지내던 사랑스러운 동료들이 남긴 기억은 이 트라우마 가득한 너구리에게 성격을 선물해주었다. 제각기 신체를 잃고 고통스러워하던 청소년 수달, 바다표범, 토끼, 그리고 너구리가 저마다의 병기를 쓰다듬으며 간신히 잠들던 날들이 있었다. 탈출하던 날, 소울메이트였던 수달 라일라를 비롯해 모든 친구들을 잃었고 가디언즈 그룹 내의 못된 파괴자, '크립'으로 거듭난다.
무시무시한 파더 피규어가 등장하고 고아의 영웅 신화가 펼쳐지는 이번 영화는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이다. 로켓 옆을 채우고 있는 괴짜들, 결국엔 그런 존재들로 가득찬 우주의 태피스트리가 완성되어가는 후반부에 이르면 우리가 만난다는 것, 어떤 식으로든 크고 작은, 끈끈하고 느슨한 모임을 이룬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이상한 존재(Weirdo)들이고, 이상함들이 제각기 모여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특별해진다. 시리즈의 피날레에 이르러 더 뻔뻔해진 멤버들의 허세, 묘기처럼 주고받는 말대꾸들은 이 지긋지긋한 돌연변이들이 끝내 서로를 구하기 위해서 몸을 던질 때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말미에 이르러 영화는 작별로 향한다. 이토록 깊은 사랑을 확인하고서 헤어짐을 택한다. 그동안 그룹의 리더를 자처했던 스타로드, 에고 행성에서 합류했던 맨티스가 자기만의 시간을 갖겠다며 혼자 떠나는 여행을 준비하려 한다. 그리고 로켓은 대장이 된다. 몸과 친구를 떠나보내고 세상을 냉소했던 너구리의 여정은 그와 비슷한 동료들의 사랑으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는 결코 더이상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던 또 다른 이별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는 또 한 번 개조되었다. 그리고 좋은 작별이 이끈 변화는, 전처럼 고통스럽지 않다. 시끄러운 우주에서 날아온 끝내주는 믹스테이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는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작별 방식이란 언제나 바로 곁의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일이라고 알려준다. 그런 안간힘은 저마다 만신창이인 사람들을 연결시켜 끝내 은하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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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사람. 영화를 쓰고 말하는 기자. <씨네21>에서 매주 한 권의 잡지를 엮는 일에 가담 중이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독립 영화잡지 <아노>의 창간 에디터, CGV 아트하우스 큐레이터 등으로 일했다. 영화의 내면과 형식이 만나는 자리를 오래 서성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