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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의 볼만한 세상]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기 위해 - <귀에 맞으신다면>

5화 - 드라마 <귀에 맞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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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에 대해 입 밖에 오랫동안 꺼내지 않으면 '좋아하는 마음'이 죽어 버린답니다. (2023.05.02)


김혜경 광고AE가 격주 화요일,
볼만한 드라마와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일본 드라마 <귀에 맞으신다면> 포스터

올해로 팟캐스트를 한 지 8년째다. 술 마시며 시 읽는 <시시알콜>이란 팟캐스트다. 처음 마이크 앞에서 어색하게 더듬거릴 때만 해도, 이 팟캐스트를 이렇게나 오래 계속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술과 시를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싶어서 시작한 거였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입 밖에 오랫동안 꺼내지 않으면 '좋아하는 마음'이 죽어 버린답니다."

일본 드라마 <귀에 맞으신다면>의 주인공 타카무라 미소노(이토 마리카)가 듣던 팟캐스트에서 나온 말이다. 무언가를 좋아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대사다. 더 좋아하고 싶어서 애끓는 마음도, 열렬하게 타오르고 나면 식기 마련이니까. 표정 하나하나에 마음 졸였던 사람도, 아무리 힘들어도 웃게 만들어 주던 최애도, 삶의 구석구석을 풍요롭게 채워주던 영화나 책도, 내 입맛에 꼭 맞던 커피를 주는 단골 카페도. 나에겐 술과 시가 그랬다. 마음에 새기고 싶은 문장을 발견하면 접어서 표시해두고, 간에 새기고 싶은 술을 마시면 사진을 찍고 메모해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애써 기록해두지 않으면 쉽게 흩어지는 기억이 야속해서, 좋아했던 것들을 뒤에 남겨둔 채 흘러가는 인생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미소노 역시 그렇다. 그는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소심한 성격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눈을 반짝이며 쉴 새 없이 떠들 수 있다. 너무 좋아해서, 그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사라지고 만다는 말을 듣고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팟캐스트를 시작해버릴 정도다. 그렇게까지 그가 열렬한 대상은 바로 '체인식'이다.

"어느 동네에나 있어서 전혀 특별하지 않지만 먹고 싶을 수밖에 없는 매혹적인 체인점 맛집들. 모든 사람들을 향해 똑같이 열려 있는 가게들이야.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그게 체인식이야!"

심지어 미소노처럼 체인식을 테이크아웃해 집에서 먹으면,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하는 나만의 공간에서 아무도 신경 안 쓰고 먹을 수 있는 행복감'까지 느낄 수 있단다. 시종일관 그가 어찌나 행복한 얼굴로 열변을 토하는지, 당장 일본으로 날아가 아무 체인점 가게나 들어가고 싶어질 정도다. 

좀처럼 말하기 어려워하는 미소노가 체인식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달변가라는 사실을 아는 회사 동료 스도 아리사(이게타 히로에)의 권유와 음향 덕후인 회사 후배 사사키 료헤이(스즈키 진)의 조언으로 팟캐스트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게 드라마의 내용이다. 그 팟캐스트가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한 '귀에 맞으신다면'이다.

퇴근길에 좋아하는 체인식을 사서 혼자 집에서 먹던 미소노의 행복한 순간에 마이크가 더해진다. 체인식 용기의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는 순간 'ON AIR' 조명이 켜지며 식당 안에 앉아 있는 것처럼 화면이 바뀐다. 뒤에서는 앞치마를 맨 식당 오너가 등장해 든든한 아군이 되어준다. 그날의 메뉴를 감칠맛 나게 설명하며 '먹방'을 하는 미소노의 얼굴에서는 행복이 흘러넘친다. 흐르는 행복의 기운은 곧 언어가 되어 팟캐스트를 통해 뿜어져 나간다.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먹을래요. 말할래요. 그렇지 않으면 두려우니까, 힘차게 먹겠습니다."

그가 팟캐스트에 소개하는 체인식을 고르는 기준이 맛뿐만은 아니다. 어떻게 맛있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는, 왜 맛있다고 생각하는 지로 이어진다. 좋아하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스스로를 알아가는 일이기도 해서, 체인식에는 미소노의 인생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체인식은 그가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돕는다. 시간이 지나면 불어나 맛이 없어지는 메밀국수를 빌미로 옆집과 용기 내어 소통하게 되고, 진한 치즈가 듬뿍 들어간 햄버그를 먹으며 이별의 순간을 곱씹다 전 애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회사에서 야식으로 다양한 맛의 타코야끼를 나눠 먹으며 잘 몰랐던 동료들을 더 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고, 엄마가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사주던 밀크 크레이프를 먹으며 엄마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게 된다. 좋아하는 음식을 힘차게 먹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이 용기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팟캐스트가 있다. 아직 한 번도 팟캐스트를 들어보지 않은 분이라면, 팟캐스트 스트리밍 플랫폼을 한 번 열어보시길.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해 신나게 떠들고 있는 미소노 같은 사람들이 곳곳에 있을 테니까.(물론 나도 포함해서!) 빼곡한 리스트를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뭔가를 좋아할 만한 세상은,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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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혜경(광고AE, 작가)

회사 다니고 팟캐스트 하고 글 써서 번 돈으로 술집에 간다. 『한눈파는 직업』, 『아무튼, 술집』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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