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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작가 26인의 '영화로 엄마의 삶을 말하기'

『우리 같이 볼래요?』 이성경, 정현주, 이효정, 홍하언니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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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여성의 삶을 탐구하는 모임 '부너미'의 엄마 작가들은 아이가 잠든 밤 10시가 되면 컴퓨터 앞에 모여 영화를 보고 글을 썼다. 평론가나 일반 관객의 시선이 아닌 엄마의 관점으로 주인공을 바라보자 영화가 달리 보였고, 삶이 더 선명해졌다. (2023.04.05)

(왼쪽부터) 부너미의 정현주, 홍하언니, 이성경, 이효정 작가 

사이코패스 성향의 아들 '케빈'과 엄마 '에바'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사회가 주입한 모성 이데올로기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케빈을 대하는 에바의 모습이 전형적인 엄마의 희생이나 사랑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에바는 케빈을 사랑하지 않았을까? 결혼한 여성의 삶을 탐구하는 모임 '부너미'의 엄마 작가들은 아이가 잠든 밤 10시가 되면 컴퓨터 앞에 모여 영화를 보고 글을 썼다. 평론가나 일반 관객의 시선이 아닌 엄마의 관점으로 주인공을 바라보자 영화가 달리 보였고, 삶이 더 선명해졌다. 『우리 같이 볼래요?』는 26편의 영화와 결혼한 여성의 삶을 직조한 에세이가 담긴 책이다.



엄마의 시각에서 영화를 보고 쓴 에세이라는 점이 신선했어요. 어떻게 기획한 책인가요? 

이성경 : 영화 <보이후드>를 좋아해서 여러 번 봤어요. 여섯 살에 부모가 이혼하며 누나, 엄마와 셋이 살게된 '메이슨'의 12년 성장기를 담은 영화죠.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엄마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이 영화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영화 감독이나 평론가들은 메이슨의 삶에 집중했지만, 저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 엄마의 삶이 궁금했어요. '남편과 이혼하고 어린아이 둘을 낳고 키운 엄마의 12년은 어땠을까?' 생각했던 거죠. 한번 질문이 생기니, 다른 영화를 볼 때도 비슷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엄마들과 영화를 보면서 모성의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상상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정현주 : 엄마들의 일상은 아주 타이트합니다. '꼭 해야 할 일'의 목록이 빼곡히 채워진 하루하루죠. 그 틈에 한가롭게 영화를 보고 있을 시간은 없어요. 문득 '내가 영화를 볼 때 어떤 기분이었지?'라는 궁금증이 들어서 극장을 찾아가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는데 '나는 오랫동안 이런 시간을 누리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과거의 저는 혼자 있고 싶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 조용한 독립영화관에 가서 끌리는 영화를 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엄마들에게 영화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책이 더욱 의미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책에는 총 26편의 에세이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글 쓰는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이성경 : 2021년 1월 '보는 부너미 모임'으로 다양한 영화를 함께 보면서 엄마의 관점으로 영화를 본다는 감각을 먼저 익혔습니다. 이후 2021년 9월 '쓰는 부너미' 과정에서 20여 명의 저자가 자신만의 영화를 선정해 글을 썼죠. 이때는 서로의 글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아이디어를 보태고, 경험을 나누었어요. 서로가 글의 첫 독자가 되어 완성도를 높인 겁니다. 책에 실린 글은 한 편당 A4용지 3장 정도의 분량입니다. 누군가는 하루 만에도 쓸 수 있는 글이겠지만, 다양한 서사를 가진 엄마들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어요. 기획부터 책이 출간되기까지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효정 : 글을 쓰는 동안 '자기 검열' 때문에 힘들었어요.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까?'라는 고민이 들었는데, 엄마들의 서사는 더 많이 쓰이고,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한다는 말에 힘을 얻었습니다. 

영화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었나요? 

이성경 : 영화를 고른 뒤에 알맞은 필자를 찾은 경우도 있고, 말하고 싶은 주제가 담긴 영화를 나중에 발견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책을 쓴 계기가 된 영화 <보이후드>는 영화 속 올리비아처럼 이혼 후 어린 남매를 키우고 있는 김은희 작가에게 추천해 주었죠. 26편의 영화가 선정된 과정은 각기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영화 이야기와 필자의 '지금' 삶이 맞닿아 있는지가 중요했어요. 또 하나 중요한 조건은 온라인 동영상(OTT) 플랫폼으로 볼 수 있어야 했습니다. 엄마들은 극장에 가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독자들 또한 책을 읽고 궁금한 영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홍하언니 : 저는 제 고민과 가장 맞닿아 있는 영화 <소공녀>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집과 여성은 굉장히 특수한 관계예요. 단순히 부동산의 가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젠더와 가부장, 신자유주의적 신분상승 등 복잡한 의미가 숨어있거든요. <소공녀>는 이 모든 것을 관통하고 있는 사람을 20대 여성으로 표현한 것이 신선했습니다. 저는 엄마로 살아가는 기혼여성의 관점으로 집의 의미를 탐구해보고 싶었어요. 

이효정 : 저는 여성들의 우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 영화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선정했습니다. 기혼 여성의 우정 이야기를 하려고 보니, 여기서도 남편과 저의 차이가 보였죠. 아빠들은 어린 아이 양육기에도 어렵지 않게 친구들과 만남을 가지고, 가족 동반 모임을 만드는 게 눈에 들어왔거든요. 그 불평등한 일상을 말하는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영화와 제 삶을 이어가다 보니 서로에게 건강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친구들, 부너미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죠.

엄마의 관점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일반적인 관객의 시각과 어떻게 다를까요? 

이성경 : 일반 관객이나 평론가는 영화 속 엄마를 '엄마'라는 역할로 본다면, 저희는 한 명의 '개인'으로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누구나 고유한 성격, 가치관, 삶의 방식이 있지만 보통 '엄마'의 삶은 '모성'으로 뭉뚱그려 해석되곤 하죠. 출산하고 엄마가 되어도 그는 고유성을 가진 사람인데, 사회가 그걸 자주 잊는 것 같아요. 저는 영화 <욕창>을 보고 쓴 유유 작가의 글에서 '고정된 자세와 위치를 바꿀 때 그동안 짓눌려 곪은 상처가 드러난다'는 문장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이 책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엄마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된 역할과 기대를 버리고, 엄마 개인의 삶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이효정 : 영화 <결혼 이야기>를 보고 글을 쓴 단단 작가는 '니콜은 시시때때로 마시지도 않을 차를 우린다'라는 주인공의 독백에 주목해요. 이 장면에서 일과 육아를 동시에 소화하느라 차 한 잔을 다 마실 틈이 없는 니콜의 하루를 보게된 거죠. 어떤 평론가가 이 '조각난 하루'를 볼 수 있을까요? 심드렁하게 넘길 수 있는 장면조차 엄마의 시각으로 '엄마'인 주인공을 보면 달리 보입니다. 

글을 쓰고 일어난 삶의 변화가 있나요? 

이성경 : 글을 쓰기 전, 제가 하는 말은 그저 불평, 수다, 불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책으로 엮으니 똑같은 말도 사회 문제가 되더라고요. 남편과 아이들이 저를 보는 눈빛도 달라졌어요. 글을 쓰지 않았다면 저는 여전히 예민하고 유별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글쓰기로 제 말에 힘이 생겼고, 그 자리에 응원과 지지가 채워졌습니다. 

홍하언니 : 글을 써서 변했다기 보다, 글 쓰는 행위 자체를 부너미 작가들과 함께 한다는 것에 감동과 기쁨을 느낍니다. 

정현주 : 글이 중매쟁이처럼 저에게 계속 새로운 사람들을 연결시켜 준다는 거예요. 저는 운신의 폭이 좁은 편인데, 글을 쓴 덕분에 이 책의 저자들과 인연을 맺었고 독자들과도 직간접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자주 챙겨 보던 <채널예스>에 인터뷰가 실린 것도 글을 쓴 덕분이겠죠! 

『우리 같이 볼래요?』 직접 추천한다면, 어떤 상황에 있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가요? 

이성경 : 엄마의 삶을 더 깊고 넓게,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분들이요. 꼭 엄마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특히 남편들이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정현주 : 『우리 같이 볼래요?』라는 제안에 '뭘 보자는 거지?'라는 호기심이 생기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또 가끔은 누군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줬으면, 하고 바라는 순간이 있잖아요. 이 책이 그런 분들에게 먼저 내미는 손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혼자라고 생각되는 분들께서 이 책을 읽고 마음이 동하셨다면 언제든 부너미를 찾아와 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이효정 : 이 책은 한국 사회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를 폭넓게 담고 있습니다. 이른바 정상 가족을 꾸리고 좀 더 평등한 가족 문화를 만들고 싶은 분, 연로한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책임이 있는 분, 이제 막 시어머니가 된 분들께 꼭 읽어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홍하언니 : '살던 대로 살 수도 없고, 다르게 살 수도 없는 깜깜하고 막막한(169쪽)' 순간을 지나고 계신 분들이 이 책과 함께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도, 우리도 그랬거든요. 혼자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분들께 책의 문장들로 손 내밀며 작은 위로가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 부너미는 어떤 활동을 하게 될 예정인가요? 

이성경 : 지금처럼 함께 모여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다양한 활동들을 할 예정이에요. 또 다음 책을 기획 중이기도 합니다. 부너미 4번째 책의 주제는 '도로 위의 불평등, 도로 위의 자유'예요. 엄마의 삶은 가정, 사는 동네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요. 넓은 도로 위에서 '김여사'라는 혐오의 대상이 되어 움츠러드는 엄마들이 당당하게 나아가는 힘을 주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부너미

결혼한 여성들의 삶을 탐구하는 모임이다. 언제까지 세상이 바뀌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변화의 주체가 된 엄마들이 모여 함께 읽고, 쓰고, 듣고, 말한다.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를 함께 썼다.



우리 같이 볼래요?
우리 같이 볼래요?
부너미 등저
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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