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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시트콤인 김치 공장에서 인생을 배우다

『김치 공장 블루스』 김원재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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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든 크든 어떤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자기 나름의 대답과 철학이 있는 사람들은 항상 티가 나는 것 같아요. 누가 알아봐 주지 않는 곳에서도 언제나 신념을 잃지 않고 더 올바른 것, 더 좋은 것을 향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큰 배움이 돼요. (2023.03.28)


'한국인의 소울푸드'하면 단연 김치가 떠오르는데, 이제껏 김치를 만드는 이의 일상을 궁금해한 적은 없다. 그래서 김치 공장의 바쁜 풍경이 담긴 『김치 공장 블루스』의 출간이 반가운지 모르겠다. 게다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 카피라이터로 일하다가 매일 김장하는 김치 공장으로의 이직을 선택한 저자의 이력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책을 들춰보면 웃음이 나오는 에피소드부터 절로 숙연해지는 단상들이 한데 버무려져 있다. 누군가 보기에 더 작은 회사, 작은 세상인 김치 공장에서 매일 김치를 담그며 인생을 배우고 있다는 작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김치 공장'과 '블루스'의 조합이 신선합니다. 『김치 공장 블루스』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광고 대행사의 카피라이터로 일을 하다가 김치 공장으로 일터를 옮기고 보니, 거의 지구 자전축이 흔들리는 것만큼의 큰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오전 10시까지이던 출근 시간도 새벽 6시 반으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나이대도 20대부터 70대까지 천차만별로, 컴퓨터 앞에서 하던 업무를 이제는 포기김치 양념통 앞에서, 그 하루하루를 돌이켜 보니 마치 블루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가수 김대중 씨의 '요양원 블루스'라는 곡을 좋아하는데요. 그 곡처럼 김치 공장의 노동자가 중얼중얼 읊조리는 고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하루하루에 대하여 써보고 싶었어요.

특히, 책을 써야겠다는 결정적 계기가 된 건 공장 사람 중 네팔인 '수딥'과의 대화였어요. 공장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수딥이 저한테 '누나, 삼성 나온 거 후회 안 하냐'고 물었거든요. 얼마나 고단해 보였으면 그런 질문을 했을까 웃기면서도, 그때 이 이야기들 하나하나를 기록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공장에서 이렇게 지내고 있다 얘기하면 즐거워하며 듣는 걸 보면서 더 많은 사람과 나누어 보고 싶기도 했고요.

대개 커리어의 도약을 위해서는 더 인지도 있는 회사로의 이직 혹은 멋진 브랜드 런칭을 꿈꾸기 마련인데요. '대기업 카피라이터'가 지닌 후광을 포기하고 공장에 오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김치 공장으로 향하게 되셨을지 궁금합니다.

사실, 어렸을 때는 절대 공장으로는 발도 안 붙여야겠다 생각했어요. 소위 낙하산이라고 하죠. 제가 바로 그 낙하산 인사인데요. 제가 이직한 김치 공장이 저희 어머니께서 18년 전에 세운 곳이거든요. 어머니가 공장 운영하시는 것을 보면, 정말 고생도 그런 생고생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공장에서 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일본에서는 집밥 문화가 사라지면서 간장을 먹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김치를 먹는 사람들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고요. 김치를 먹는 사람만 줄어든 게 아니라 김치를 생산하려는 젊은이들도 없고요. 문득 그럼 내가 해보는 건 어떤가, 엄마의 인생을 바친 일을 내가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어떻든 엄마가 김치를 해오는 모습은 꾸준히 지켜봤으니까요. 여기에 코로나가 변곡점이 되었죠. 공장에 인력이 많이 필요해져서 마침내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공장에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부대끼며 지내는 곳이더라고요. 전에 근무하시던 곳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지요?

정말 많이 달라요. 일단 대부분의 동료들이 사무실 책상이 아닌 공장의 현장에 있다는 것도 다르고요. 항상 위생모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눈빛으로 동료분들의 얼굴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도 다른 점이에요. 아직도 생산 현장의 여사님들 이름을 틀려서 가끔은 여사님들의 마음을 서운하게도 한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다르다고 생각이 되었던 건 공장의 일들은 대개 명확하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예전에는 광고주분들이 '화려하지만 소박하게', '너무 어둡지 않은 검은색'과 같은 난해한 지시 사항을 주고, 어떻게든 밝은 검은색을 찾아내야 하는 게 제 일이었다면, 공장의 문제 상황은 항상 명확해요. 포기김치 생산량이 달린다, 동치미 무가 부족하다, 이런 식이에요. 그래서 개개인의 업무 능력이 더 즉각적으로 드러나고, 또 그런 지점에서 너무나 멋있게 일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고 있어요.

외국인 노동자분들에 대한 이야기도 다수 실려 있는데요. 작가님께서 이분들의 이야기를 중요하게 다룬 이유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한국의 공장들에서 외국인 노동자 이야기가 빠지면 그건 거짓말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의 생산 기반을 닦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저만 해도, 공장에서 함께 일하기 전까지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매우 수동적이고, 부당한 일 앞에서도 본인들의 의사 표현을 못 할 거라는 편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함께 일을 해보니까 전혀 아니었어요. 외국인 노동자분들의 배경도 회계학 석사부터 영어 선생님까지 천차만별로 다르고, 무엇보다 단순한 일을 하나 하더라도 항상 맥락을 생각하면서 해요. 

예를 들어, 내일 아침에 내가 출근해서 해야 하는 일이 '깍두기 생산'이라면 전날 밤에 깍두기 무를 담을 통이나 칼 같은 기구들을 미리 준비해놓고 가는 식이죠. 다음 날 아침에 우왕좌왕하지 않도록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런 생각을 먼저 하고 다음을 위한 준비를 한다는 게 정말 놀라웠거든요. 저만 해도 누가 시키지 않으면 굳이 일을 나서서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분들이 스스로 자기의 품위를 지키는 모습을 많이 보면서, 내가 글을 쓸 때만이라도 이분들의 실제 모습을 더 정확히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런 작가님의 따뜻한 시선이 문장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김치 공장에서 일하면서 달라진 생각들이 또 있었나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더 자부심을 갖자. 그건 오그라드는 일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일하고 있어요. 예전 회사에서는 광고가 온에어되어도, 그 광고가 상을 받아도 잘된 티를 내는 게 오그라들고 민망하고, 괜히 하는 자랑 같아서 그런 일은 삼갔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 공장에서는 특별히 상을 받지 않아도,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내 일을 잘하는 게 좋아서, 내가 어제 했던 것보다 오늘 그 일을 더 잘해 낸 게 기뻐서 밝은 얼굴로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저도 더 자부심을 느끼고 내가 낸 성과를 기뻐했어도 됐을 텐데, 너무 나서서 내 일에 대한 기쁨을 검열했구나 싶어서 지난 회사에서의 일들을 생각하면 조금 아쉽더라고요.

엄마인 사장님뿐만 아니라, 공장에는 여성 근로자가 많이 계신데요. 포기 여사님들도 그렇고 가정을 책임지는 여성분들 이야기가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멋진 여성들 삶의 근간엔 과연 무엇이 있는 걸까요?

사람들은 항상 큰 것을 상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멋진 여자' 하면 TV에 나오고,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일하고, 대단하고 큰 무언가를 이끌어가야 할 것 같은데, 사실 작든 크든 어떤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자기 나름의 대답과 철학이 있는 사람들은 항상 티가 나는 것 같아요. 누가 알아봐 주지 않는 곳에서도 언제나 신념을 잃지 않고 더 올바른 것, 더 좋은 것을 향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큰 배움이 돼요. 앞으로 나도 저렇게 살아가야겠다 하는 표지판처럼요. 내 인생에 더 큰 것이 오지 않아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내 인생 역시 내 자리에 맞게 빛날 것이라는 배움이요. 저보다 훨씬 많이 고생하시고 더 큰 책임감을 발휘하시는 공장 선배님들을 볼 때마다 까마득하게 어린 내가 벌써 지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돼요.

'김치를 담그며 인생을 배운다'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께서 김치 공장에서 깨달은 인생의 한 조각에 대해 나눠주세요.

김치의 날이 11월 22일이에요. 그 날짜를 선정한 이유가 열한 가지의 재료로 스물두 가지의 효과를 내기 때문이라고 해요. 인생이 참 김치와 비슷하더라고요. 만나는 사람들, 내가 하는 일들, 지금 처한 상황들 그 수많은 재료에, '시간'이라는 발효가 들어가야 인생의 맛이 완성되잖아요. 저는 코로나로 공장 문이 닫혔을 때, 한 고객님이 전화를 주셔서 식약처 자료를 막 보내주시면서 당신네 김치가 안전하다는 이야기를 왜 하지 않냐고 혼을 내셨을 때 그때 인생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람만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또 사람에게 구원을 얻기도 하는구나, 온갖 재료들로 맛을 내는 김치들처럼, 사람 사이의 모든 일이 인생의 감칠맛이 되는구나' 하고요.

대부분의 독자님께서 김치를 사드시거나, 식당이나 배달 음식에 끼워져 온 김치를 드실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의 김치는 언제나 '신뢰'와 '불신'이라는 양가감정이 공존하는 특이한 상품인데요. 그럼에도 수많은 김치 공장이 저마다의 최선을 다해서 가장 맛있는 한 포기의 김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치 맛은 비록 고객님마다 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여러분의 믿음에 보답하는 김치가 되기 위해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점, 그래서 오늘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꼭 전하고 싶어요.



*김원재

매일 김치를 만들고 그 김치를 사 먹는 사람. 대기업 카피라이터로 9년 동안 일하다가, 돌연 어머니가 20여 년간 운영해 온 김치 공장으로 이직했다. 혼자만 알기는 아까운 공장살이와 배움들을 틈틈이 기록했다. 누군가 함께 읽고 웃을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공장살이의 한 페이지를 쓴다.




김치 공장 블루스
김치 공장 블루스
김원재 저
알에이치코리아(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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