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연령대 무관, 모두가 읽어도 좋을 그림책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26회) 『겨울 이불』, 『브루키와 작은 양』, 『다정하고 다정한 다정 씨』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23.02.02)
불현듯(오은) : 이번 주제는 책읽아웃 광부(청취자) '세희' 님의 신청 주제죠? '부모님과 함께 읽어도 좋을 그림책'입니다.
안녕달 글, 그림 | 창비
제가 안녕달 작가님의 그림책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할머니의 여름휴가』였어요. 에메랄드 바다 빛깔의 표지가 있는 작품인데요. 2016년에 나온 작품인데도, 지금까지 그 그림책의 여러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예요. 특히, 할머니가 누워서 선풍기 쐬는 장면을 되게 좋아하는데요. 저는 그림책에서 할머니들을 발견할 때 그렇게 좋더라고요. 이유를 생각해 보니까 시골집에 사는, 시골 분위기의 할머니에 대한 로망이 저한테 있는 것 같아요.(웃음)
첫 장면은 눈이 소복하게 쌓인 시골집 장면입니다. 주인공 아이가 가방을 멘 채 시골집을 바라보고 있는데요. 할머니, 할아버지의 집인 것 같아요.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주인공 아이가 부츠를 벗고 집에 들어가면서 말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나 왔어" 하고요. 이어 방에 들어가서 발을 방바닥에 딱 내려놓자마자 "아, 뜨거"라고 합니다. 뭔지 아시죠?(웃음) 방으로 들어간 아이가 바닥을 뜨거워 하면서 옷을 훌러덩 벗고 꽃무늬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데요. 이불 속을 보니까 굉장한 비밀 공간이 나옵니다. 바로 겨울 이불 찜질방인 거예요. 그렇게 주인공 아이는 겨울 이불 찜질방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죠. 제가 정말 정말 좋아했던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에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양머리 수건을 귀엽게 하시고 "우리 강아지 왔니?"라고 큰 소리로 외쳐줍니다.
작가님과 서면 인터뷰 할 때, 왜 그림책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등장하는지 여쭤봤었어요. 그랬더니 작가님이 사실은 몰랐는데,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들어서 자제하려고도 생각했다고, 의식적으로 덜 그리려고 하고 있긴 한데 계약된 책들이 나와야 하니까 계속 쓰고 있다고 솔직하게 답변을 해주셨어요. 그러면서 "제가 할머니, 할아버지, 개를 좋아하고 그래서요. 잘 안 되네요"라고 말씀을 해주시는 거예요. 이런 답변도 참 좋았던 기억이 나요. 또, 작가님이 잠 얘기를 되게 많이 하세요. 낮잠 자는 것도 되게 좋아하고, 평소에 너무 많이 자기 때문에 밤에 잠이 안 와서 힘들 때가 있다는 이야기도 하셨거든요. 만약 잠을 싫어하고 너무 부지런한 작가가 이 작품 썼으면 가짜 같았을 것 같아요.
책에 표현된 꽃무늬 겨울 이불도 너무 좋죠. 솜이 엄청나게 들어간 그 묵직한 이불을 상상하면서 읽었는데요. 부모님한테 이 책 한 번 보시겠어요, 이렇게 이야기해도 되게 좋아하실 것 같아요.
M. B. 고프스타인 글·그림 / 이수지 역 | 미디어창비
이 책은 1967년에 처음 발표된 작품이고요. 개정된 것이 1995년, 그리고 국내에는 2021년에 출간이 되었습니다. 이 책의 또 하나 멋진 점은 이 책을 옮기신 번역가 분이에요. 바로 이수지 그림책 작가님께서 번역을 하셨습니다. 그림책 번역을 그림책 작가가 한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멋졌는데, 옮긴이의 말이 또 엄청나게 멋집니다.
처음 M. B. 고프스타인의 그림책을 만났을 때, 그 자리에서 얼른 읽고 가슴에 꼭 안으며 "그래, 이게 그림책이지." 했습니다. 이보다 더 간결할 수 없는 글과 이보다 더 단순할 수 없는 그림이 만나 이토록 풍부한 울림을 전하다니요. 브루키와 작은 양이 서로를 아끼는 마음에 제 마음도 환해집니다.
브루키는 소녀로 보여요, 어린이입니다. 작은 양과 함께 살아요. 브루키는 작은 양을 아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브루키가 작은 양에게 노래하는 법도 가르쳤어요. 작은 양의 목소리가 참 고왔어요. 그런데 이 작은 양이 모든 노래를 이렇게 불렀어요.
"매에 매에 매에."
그래서 브루키는 작은 양에게 읽는 법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작은 양은 모든 글자를 이렇게 읽죠.
"매에 매에 매에."
그래서 브루키가 작은 양에게 노래 책을 선물을 합니다. 이 노래책은 노랫말이 모두 "매에"라고 되어 있는 거죠. 그래서 작은 양은 이 책을 보고 노래를 아주 잘 불렀습니다.(웃음)
저는 이것이 진짜 사랑이 아닌가 생각해요. 서로의 다름과 서로의 고유한 특질들, 한 개인이 고유하게 갖고 있는 성질과 기질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사랑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관계의 핵심인 것 같거든요. 그런데 '가족'이라는 관계만큼 이 관계에 대한 고민을 덜 하는 관계가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친구를 새로 사귀거나 아니면 직장에서 동료를 만날 때 도 관계를 생각하고, 조심을 하잖아요. 약간 서로의 다름도 신경을 쓰고요. 이 사람은 어떤 걸 좋아하는지 고민해보는 과정을 거치는데요.
유독 부모님과 자식으로 엮인 관계는, 워낙 오래되고 원초적인 시간들을 지난 관계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한 명의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고민해보고, 그 사람에게 맞게 나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들을 잘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서로 그런 얘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이 책으로 계기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윤석남 저 / 한성옥 기획 | 사계절
윤석남 작가님은 나이 마흔에 작가가 되셨다고 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꿈이 미술가 혹은 소설가였는데요. 작가님의 아버님께서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때부터 작가님의 어머니께서 전심 전력으로 6남매를 키워냅니다. 안 해본 일이 없으시다고 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윤석남 작가님은 나의 어떤 생명의 근원이기도 한 어머니의 강인함이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지, 엄마를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갖고 계셨다고 해요. 그러다 작가님도 스물일곱 즈음에 결혼을 하게 되고요. 주부로서의 삶을 살다가 갑자기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 미칠 것 같아,라고 생각을 하시면서 본인을 표현하는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 책을 기획한 한성옥 작가님도 그림을 그리는 작가님이시기도 한데요. 한성옥 작가님께서 윤석남 작가님의 전시를 보고는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한성옥 작가님이 이 책에서 하신 일은 제 생각에는 큐레이션이에요. 그림들이 엄청 많았을 텐데 이 그림과 이 그림이 붙으면 좋겠다, 고심을 하셨겠죠. 그리고 그렇게 큐레이션 된 그림마다 윤석남 작가님께서 작가 노트처럼 그림에 대한 배경을 서술한 글들이 담겨 있어요.
이 그림책은 세 개의 챕터, 「다정해서」의 챕터와 「다정한」의 챕터, 「다정 씨」의 챕터로 나뉘어집니다. 「다정해서」 챕터는 "스물일곱에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다가 마흔 들어 내 방을 갖게 되었어요."로 시작되는데요. 여기서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챕터는 윤석남 작가님 개인의 이야기인 거예요. 두 번째 챕터에서는 자신과 연결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어머니 이야기도 합니다. 유일하게 어머니만 이 책에서 이름이 등장하거든요. 작가님의 어머니가 얼마나 강인하고 올곧았는지, 그러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는 에피소드가 쏟아지니 꼭 책에서 확인해보세요.
사실 저는 엄마와 딸이 읽으면 가장 이상적인 그림책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우리는 모두 어쨌든 엄마한테서 태어난 사람들이잖아요. 엄마의 삶을 한번 엿보고 싶은 사람 그리고 동시대 여성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살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 씨』를 꼭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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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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