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장편 펴낸 『독고솜에게 반하면』 허진희 작가 인터뷰
『노파람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날』 허진희 작가 인터뷰
일하는 동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는 얼마큼인지. 그리고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그 거리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건 '믿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2023.01.10)
『노파람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날』에는 숙식 제공 아르바이트를 하러 수상한 식당에 들어선 노파람이 다시 집에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겼다. 열일곱 살의 겨울 방학, 난생처음 가족이란 울타리를 벗어나 홀로 마주한 집 밖 세상은 때로 매력적이고 때로 가혹하다. 사람의 욕망이란 비슷한 듯하면서도 저마다 다르고, 그중 어떤 욕망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기도 하니까.
“사장님, 다 끝났어요. 지금 내가 이곳을 망하게 할 거니까요.”
강수를 두며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는 노파람의 모습은 첫날과 달리 흔들림이 없다. 일하는 동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는 얼마큼인지. 그리고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그 거리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건 '믿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독고솜에게 반하면』 이후 드디어 두 번째 장편 소설이 나왔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이번 소설은 『독고솜에게 반하면』을 출간하기 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내용이라 저도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줄은 몰랐는데요. 사실 벌써 3년이 지났다니, 잘 믿기지가 않아요. 초고 이후로 수정을 거듭하기도 했고 개인적인 건강 문제도 있었지만 그래도 벌써 3년이라니!
『노파람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날』은 저에게 굉장히 뜻깊은 소설이에요. 단순히 시간을 많이 들인 소설이어서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저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몸이 아프니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더라고요. 또,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는지 새삼 느끼게 된 덕분에 삶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어요. 그래서 요즘은 아침마다, 매일매일 행복할 수는 없어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랑하자고 다짐한답니다.
시의성 있는 설정이 눈에 띄었어요. 육식을 위한 도축이 전면적으로 금지되고 오직 실험실에서 만든 배양육을 먹는 것만이 허용되는 세계, 일명 '무해한 육식주의자들'의 세상에서는 지금 우리가 먹는 고기가 '금지육'이라 불리는데요. 어떻게 시작된 소설인가요?
때마다 제철 음식을 챙기고 특별한 날엔 그에 맞는 메뉴를 골라 기념하는, 그런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랐어요. 식사 시간을 여는 주제는 항상 밥상 위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였죠. 두릅이 벌써 나왔다든가, 시금치 가격이 올랐다든가 하는 내용이요. 저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는데, 대화의 시작이 항상 똑같아요. "오늘 저녁에 뭘 먹느냐." 그러니 제가 온갖 식재료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이 된 것,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가장 행복해하는 사람이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선 육식을 하며 느끼는 께름칙함, 혹은 죄책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죠. 몇 년 전 배양육에 대한 기사를 읽었을 때, 꼭 이 소재로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떤 이야기로 발전할지는 몰랐지만, 미스터리한 식당의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먹는 행위에 대한 관심이 인간의 욕망을 보여 주는 소설로 확장된 거군요. 한 편의 블랙 코미디처럼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헤븐'이라는 아이러니한 이름의 식당을 무대로 펼쳐지는.
아무래도 제가 이야기를 탐하는 사람이다 보니 소설의 원동력이 되곤 하는 온갖 종류의 욕망에 대해 관심이 없을 수가 없지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그들을 지켜보고 변화하는 파람의 내면이었습니다. 우리가 사회에 발을 내딛으며 가장 처음 맞닥뜨리게 되는 큰 벽은 이 세계의 부조리함이잖아요. 학교라는 울타리 내에서 경험했던 모순이 이제 보다 크게 확장되어 다가오는 거죠.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을 주저앉히는 그 거대한 덫에 걸리지 않고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기도 합니다. 주인공 노파람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이 모두 가족 이슈를 갖고 있어요. 좋든 싫든 얽힐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한 복잡하고 애증 섞인 마음에 많은 청소년 독자들이 공감할 것 같아요. 청소년 소설로서 특별히 염두에 둔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처음 구상할 땐 가족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발전할 줄 몰랐어요. 물론 독립에 대해 다루니 가족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보다는 파람이 엄마의 품을 벗어나 마주하게 될 사람들, 처음 겪게 될 경험들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이야기를 짰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마치 실타래가 풀리듯 인물들의 가족 이야기가 흘러나왔어요.
'독립'이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헤어짐을 겪어야 가능한 거잖아요. 단순히 물리적 거리를 두는 헤어짐일 수도 있고, 맺힌 감정으로부터 한발 물러서는 헤어짐일 수도 있고, 의존적인 자기 성향과의 헤어짐일 수도 있고, 금전적 지원과의 헤어짐일 수도 있겠죠. 대부분은 그 대상이 가족인 경우가 많을 테고요. 저는 그런 헤어짐들을 긍정적으로 그려 보고 싶었어요. '헤어짐'을 통해 서로에게 더욱 가까이 가닿는 관계를 그리며 진정한 독립의 단초를 찾을 수 있길 바랐습니다.
한 사람을 온전히 좋아하기만 할 수도,
완벽하게 싫어하기만 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가장 처음 깨닫게 되는 건 바로 가족을 통해서인지도 모른다.
_『노파람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날』 중에서
『독고솜에게 반하면』에서는 악역의 자리에 '단태희'라는 청소년이 서 있었는데, 이번 소설에서는 성인인 공미호가 주인공의 대척점에 서서 악역을 맡고 있습니다. 청소년 소설이기에 더욱 여러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떠셨는지요?
저는 아르바이트를 스무 살이 넘어서야 시작했어요. 그런데도 결코 만만치 않았죠. 얼떨결에 옷 파는 일을 해 본 적도 있는데, 호객을 너무 못 해서 삼십 분도 안 되어 잘린 적도 있어요. 사장님은 생계가 걸린 장사를 하는 중이시니, 남의 눈이 신경 쓰여서 목소리도 높이지 못하는 저를 봐줄 이유도 여유도 없으셨겠죠. 그 후로도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양한 어른들을 만나 보았는데요. 일은 곧 익숙해지곤 했지만 나보다 훨씬 경험과 노하우가 많은, 게다가 내 노동력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건 언제나 좀 어려웠어요. 그들에 비하면 전 너무나 어수룩하고 서툴렀으니까요.
하지만 나보다 먼저 세상을 살아본, 그래서 나보다 셈이 밝은 사람들과 이해관계로 얽히는 일은 살면서 언젠가는 겪게 될, 피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개중에는 착한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고 착한 면과 나쁜 면이 뒤엉켜 있는 사람도 있겠죠. 저는 늘 그 복잡성에 마음이 끌리기 때문에 당연히 '단태희'와 '공미호' 둘 다 단순한 빌런이 아닌 복합적인 인물로 그리고 싶었어요. 다만, '단태희'는 변화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열린 결말의 캐릭터였다면, '공미호'는 강렬하게 내뿜는 매력만큼이나 위험하기 그지없는 인물임에 좀 더 방점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공미호가 아주 약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앞서 말한 세계의 부조리함에 누구보다 먼저 무릎을 꿇은 사람이니까요. 공미호를 압도하는 냉소주의와 허무감, 그 대척점의 무엇을 찾아가는 여정을 파람과 함께하며 저 또한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독자님들의 마음속에 '파람'을 응원하는 마음과 더불어 자기 자신을 응원하는 마음이 피어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인상적입니다. 전작의 '독고솜', '서율무', '단태희', 그리고 『노파람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날』의 '노파람', '탠저린', '공미호'와 '공비수'까지... 한번 들으면 잊기 힘든 독특한 이름들인데요. 등장인물의 이름을 정할 때 작가님만의 방식이 있나요?
인물들에게 딱 맞는 이름을 지어 주는 순간부터 이야기 속 톱니바퀴가 제대로 맞아 돌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이름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요. 소설을 절반 넘게 쓰고 난 뒤에야 마음에 꼭 드는 이름을 정하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매력적인 이름이 떠오를 때마다 재빨리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 놓습니다. 특히, 드라이브를 할 때 편안하게 조수석에 앉아 표지판에 적힌 도로명을 보며 여러 가지 이름을 조합해 보는 걸 좋아해요.
노파람이 겨울 방학 아르바이트에 종지부를 찍고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장면이 무척 감동적입니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구체적으로 말하진 못하겠습니다만, 파람이의 '믿는 마음'이 빛났어요. 그 믿는 마음에 부응한 누군가의 믿는 마음이 있어, 더욱 근사했던 마지막 장면이었고요.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히기를 바라시나요?
이전까지 저는 제가 희망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저를 움직이게 했던 건 결국 '사랑'이었어요. 나를 숨쉬게 하고, 음식을 먹게 하고, 잠을 자게 하고, 산책하게 하고, 읽고 쓰게 하고, 대화하게 하고, 포옹하게 하고, 음악을 듣게 하고, 춤을 추게 하고, 웃고 울게 하고...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제가 누려 온 모든 것들은 전부 다 사랑에 기초했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있어 이 소설의 결말은 '사랑을 믿는 마음'에 대한 헌사와도 같아요. 하지만 독자님들은 제 의도에 국한되지 않고 이야기를 즐겨 주셨으면 좋겠어요. 읽는 사람이 이야기의 세계를 자유롭게 넓혀 가는 것, 그게 바로 소설의 매력이자 힘이니까요.
*허진희 한겨레아동문학작가학교에서 공부했다. 2015년 한우리문학상 청소년 단편 부문에 「군주의 시대」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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