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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임의 식물탐색] 숲속에서 만나는 위험하고 무서운 것들

허태임의 식물탐색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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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있는 일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찾아올 때, 나는 그 캄캄한 숲의 밤을 떠올린다. (2023.01.03)


전국의 숲을 탐사하고 식물의 흔적을 기록하는 '초록 노동자' 허태임.
식물 분류학자인 그가 식물을 탐색하는 일상을 전합니다.


지리산 노고단 능선으로 이어지는 문바우등 초입에 '문수사'라는 절이 있다.
'문수조릿대(좌측 첫 번째 사진)'는 그 절 주변에서 처음 발견된 조릿대를 닮은 식물이다.
문수조릿대를 조사하는 동료의 모습
 

깊은 산속을 헤매는 날이 많다 보니 그만큼 위험에 노출될 일도 많다. 덩치가 큰 야생 동물을 갑작스레 맞닥뜨리는 상상을 하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멧돼지를 못 봤거나 그들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채 하산하는 날은 오히려 이상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새끼들을 데리고 나온 어미 멧돼지를 특히 조심해야 한다. 타자에게 공격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그들은 모성애를 표출하기 때문이다. 

반달가슴곰은 훨씬 더 위협적이다. 그 거대한 앞발에 얻어맞거나 뒷발에 밟히기라도 하면 정말 사람 인생 끝이다, 끝. 일단은 안 만나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곰이 출몰하는 구간이라고 해서 조사 지역에서 제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난봄부터 가을까지 지리산 노고단 남쪽의 문바우등 주변을 부지런히 다녔다. 그 구간은 반달가슴곰을 방사한 지역이라 20여 년 전부터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산의 초입에 '문수사'라는 절이 있다. 우리나라 1세대 식물분류학자 이영노 선생은 1998년 그 절 주변에서 조릿대를 닮은 식물을 발견하고 '문수조릿대'라는 이름을 지어 신종으로 발표했다. 문수조릿대가 정말 거기에 사는지, 산다면 얼마나 어떻게 분포하는지, 세계적인 신종이 맞는지 등을 알아내는 게 지난해 나의 연구 과제 중 하나였다. 어쩌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사를 앞두고 평소보다 치밀하게 탐사 경로를 살피고 팀원들과 의견을 주고받고 꼼꼼히 짐을 챙겼다. 

무방비 상태에서 낯선 생명체가 갑자기 튀어나오면 곰이든 사람이든 서로 깜짝 놀라서 평상심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멀리서부터 일부러 기척을 내는 것이 상황을 대비하는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곰이 들으라고 딸랑딸랑 울리는 종을 배낭에 걸고 걷는다. 동시에 주의를 기울여 다른 기척에 귀를 기울인다. 곰은 큰 덩치만큼이나 숨소리도 커서 그르렁대는 소리가 먼발치에서도 들린다. 그걸 알아챘다면 탐사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각자도생 줄행랑쳐야 한다. 이것이 야생에서 내가 익힌 곰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 금단의 땅에서 우리 팀은 곰의 기척을 듣고 물러났다가 잠잠해지면 나아가길 몇 번이고 반복했다. 봄에 조사가 시작된 이래로 여름이 다 돼서야 문수조릿대를 찾을 수 있었다. 

덩치가 큰 포유류는 그나마 덜 무서운 편이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진드기는 산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 가운데 하나다.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드기에 물린다고 해서 사람이 모두 죽는 건 아니다. 그 진드기가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보균하고 있을 때는 생명을 들었다 놨다가 할 수도 있다. 몸에 없던 검붉은 점이 하나 생겼네, 하고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건 점이 아니고 피부에 머리를 콕 처박은 채 피를 빨아 먹고 있는 '진드기 꽁무늬'다. 야생의 일에 워낙 익숙해져서 내 피부에 박힌 진드기 뽑아내는 일 정도는 언젠가부터 어렵지 않게 하는 편이다. 

비무장 지대의 산지 중에 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곳을 타깃으로 식물 탐사를 얼마간 이어 나갈 때였다. 강원도 인제와 양구의 산들을 매일같이 다니다가 9월 중순 어느 날 나는 어쩔 수 없이 진드기에 물렸고 여느 때처럼 잘 찾아서 빼냈다. 그런데 며칠 후부터 고열에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결국 대학 병원에 실려 갔다. 

"위험한 정도가 아니라 금방 죽어요."

나를 진료하던 감염내과 전문의가 말했다. 

털진드기는 쯔쯔가무시증을, 참진드기는 라임병을, 작은소참진드기는 중증혈소판감소증후군(SFTS)을 일으키는 매개충이다. 병원에 입원하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내가 얻은 병이 쯔쯔가무시증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얼마간 치료를 받으니 나의 증상도 호전되었다. 질병관리청의 감시망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중대한 감염병으로 별도 관리하는 중증혈소판감소증이 아니라고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당 의사는 여전히 심각했다.

"벌목 작업을 하던 분이 재작년에 환자님처럼 털진드기에 물려 쯔쯔가무시증에 걸렸어요. 다행히 금세 호전되어 건강하게 퇴원을 했습니다. 병원 나가실 때 그분 붙잡고 제가 그랬어요. 그 일 하지 마시라고요. 그런데 그 이듬해 진드기에 물려서 다시 구급차에 실려 오셨어요. 결국 중증혈소판감소증후군 판정을 받고 다음 날 사망하셨습니다."

진드기를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고 의사는 치사율을 다시금 언급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현장에 나가 식물 조사하신댔죠?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그나마 젊으니 회복하신 겁니다. 저는 나이 드신 부모님 텃밭 농사도 못 짓게 해요. 제가 환자분 가족이라면 다른 직업 택하라고 말리겠어요."

사실 의사가 염려한 것보다 더 다양한 위험이 내 일터 곳곳에 있다. DNA 분석 실험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써야 하는 시료 중에는 무서운 발암 물질이 있다. 실험할 때마다 매번 어떤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자신의 불임이 그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고 흰자위를 붉히며 자책하던 선배는 결국 이 분야를 떠나고 말았다. 절벽에 붙어사는 측백나무 개체수를 로프를 매고 파악하다가 추락사한 후배를 학계가 모두 같은 마음으로 애도했던 때도 있다. 후배의 열정이 지금도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난다. 또 있다. 동물 쫓아 보내려고 사람이 쳐놓은 전기 울타리에 감전되어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 연구원의 소식을 들은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나와 식물분류학계 동료들이 우리 일터에서 정말로 가장 무서워하는 건 산에서 길을 잃고 혼자 맞게 되는 칠흑 같은 어둠일 것이다. 식물분류학연구실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배우는 안전 수칙이 산에서 조난을 당했을 때의 대처법이다. 깊은 산에서는 최소 2인 1조로 움직여야 한다는 게 우리 업계의 불문율과도 같다. 하지만, 보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식물을 관찰하기 위해서 한 팀이 찢어져서 일부 구간을 혼자 걷게 될 때가 있다. 

불과 몇 해 전 소백산에 조사를 나간 모 대학의 식물분류학 연구실원이 실종되었다가 제 발로 걸어 나온 사건이 있었다. 불행히도 그는 마침 그때 발목을 다쳐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휴대 전화 배터리는 방전되어 자신의 위치를 알릴 수도 없었다. 손전등마저 없는 상황에서 밤이 찾아왔다. 발을 동동 구르며 동료들은 관할 구역에 실종 신고를 하고 소방 인력이 대거 투입되어 밤새 구조 활동을 펼쳤으나, 실종자를 찾지 못한 채 날이 밝았다. 무사히 걸어 나올 거라고 가족과 동료들은 울고 기도하면서 서로를 보듬었다. 오전 7시께 가까스로 한쪽 다리를 절며 제 발로 산을 빠져나오는 실종자가 포착되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발목을 다쳐 걸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이 귀에 생생하다.

"밤이 와서 연구실에서 배운 대로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식물 채집용 봉투를 온몸에 두른 채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어요. 어둠이 너무 무서웠어요."

그 일이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학계 모임에서는 산에서 길을 잃고 마주하는 어둠이 얼마나 무서운지 저마다의 무용담을 나누는 자리도 있었다. 한 원로 선배께서는 요즘 젊은이들이 이렇게 위험한 우리 분야에 나서기나 하겠냐고 식물 연구가 고위험 직업군이라고 자평했다. 그걸 듣던 누군가는 자조적인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우리가 다루는 멸종 위기종보다 우리 식물분류학자가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 같다고. 

나는 경남 합천의 가야산 중턱에서 길을 잃었다가 어둠을 헤치고 겨우 하산한 적이 있다. 식물분류학 연구실의 대학원생이 되겠다는 호방한 기상을 품고 있을 때였다. 지금처럼 탐사 준비물을 챙길 줄도 몰랐고, 스마트폰을 쓰지도 않던 시절의 일이다. 숲속에서 어둠에 붙잡힌 나는 달과 별이 되쏘는 빛에 어렴풋하게 보이는 나무와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더듬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숲 아래로 한참을 걸었다. 도대체 얼마를 걷고 있는지 헤아릴 수 없을 때쯤 가까스로 산의 초입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제야 다리가 풀려 털썩 주저앉아서 엉엉 울었다. 숲을 향해 내게 길을 알려줘서 고맙다고도 외쳤다. 그런데 매일매일 찾아오는 밤이 너희는 무섭지 않냐고 눈물을 훔치며 나는 나무에게 물었다. 어둠을 통과했기 때문에 해가 뜨는 거라고, 빛은 그렇게 우리를 찾아오는 거라고, 그건 지극히 자연적인 거라는 답변이 환청으로 들렸다. 그날의 일은 그 이후에 내 앞에 찾아온 숱한 위험들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어떤 좋은 경험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찾아올 때, 나는 그 캄캄한 숲의 밤을 떠올린다.



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나의 초록목록
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나의 초록목록
허태임 저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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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허태임(식물 분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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