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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의 오늘 밤도 정주행] 행복해지기 위한 고통 - 마지막 회

<월간 채널예스> 202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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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사랑받으려고 노력한다. 그런 면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면, 삶은 고통이라는 하우스의 말은 어느 정도의 진실을 담고 있는 셈이다. (2022.12.12)

일러스트_김지희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에는 꼭 미국 드라마 <닥터 하우스>를 다루겠노라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방영 시기 덕분이겠지만, <닥터 하우스>의 거의 모든 시즌에는 눈이 펄펄 내리는 날씨를 배경으로 하는 크리스마스 에피소드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고집쟁이지만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의사이자 지독한 무신론자이기도 한 주인공, 그레고리 하우스에게 크리스마스는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에게 중요한 건, 자신이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에 불과한 환자, 신체적 고통을 덜어줄 바이코딘(그는 결국 바이코딘에 중독되어서 정신병동에 입원한다), 감자칩과 루벤 샌드위치(그럴 일이 아닌데, 하우스가 샌드위치 먹을 때마다 나도 너무 먹고 싶어진다)... 그 정도이다. 그는 자신이 근무하는 프린스턴 플레이즈버러 종합 병원의 로비에 설치된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절뚝이며 그저 지나칠 뿐이다. 그렇지만 가끔 병원 정문 밖에 멈추어 서서 눈이 펄펄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눈이 펄펄 내리는 날을 배경으로 하는, 내가 좋아하는 에피소드 중 하나의 제목은 '뉘우침'인데, 하우스가 예전에 잘못을 저지른 대학 동기에게 용서를 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닥터 하우스>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건 절대 하우스다운 행동이 아니다.(클리셰지만 이 문장을 쓸 수밖에 없다)하우스다운 행동이 뭐냐고? 하우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기적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으며,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의 괴팍한 횡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곁에 있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배신하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그리고 그들이 자신으로부터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든다)이 드라마에서 하우스가 자주 입 밖으로 내뱉는 신념들이 있다.

"삶은 고통이야. 삶은 비참한 거야. 모든 사람은 변하지 않아.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해."(나는 이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 공동 구매했던 'everybody lies'라고 적힌 빨간 머그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 

물론, 드라마를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하우스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환자들은 죽을 위기에 처해 있을 때까지도 진실을 숨기고, 때때로 진실을 밝히는 대신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하우스는 이런 환자가 죽도록 가만두지 않는다. 환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진단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환자들뿐만 아니라 하우스 밑에서 일하는 의사들 혹은 하우스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이유로 상대에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 그렇다면 하우스는? 하우스는 말한다. 

"모두 다 거짓말을 하지만 난 아니라네."

정말 그럴까? 정말로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뉘우침'이라는 에피소드에는 거짓말을 하는 것에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이코패스가 나온다. 사이코패스에게 하우스는 자신은 이기적인 사람이고, 인간은 모두 그런 식으로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덧붙인다.

"하지만 다른 한 부분에 양심이라는 것을 같이 가지고 태어나지. (...) 그게 논리적이라는 건 아니오. 그게 사람답다는 거지."

그 말에 사이코패스는 코웃음을 친다.

"인간에게 있어서 '양심'이란 동물의 본능 같은 거라는 걸 안다면 꼭 양심에 따라 행동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이 나오죠. 선생님은 알고 계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고요."

이를테면 하우스는 자신이 상처를 줬던 사람에게 사과 편지를 써야 하는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자신의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정말로 상처를 줬던 사람들 대신 자신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진 대학 동창을 선택한다. 어째서? 하우스의 유일한 친구인 윌슨의 말마따나 진짜로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사람들에게는 차마 직접 사과할 수가 없어서, 그런 식으로라도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었던 걸까?

죄책감을 느끼지 못해서 고통스럽지 않은 삶과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르는 삶.

눈이 펑펑 내리는 날, 기어코 대학 동창의 집을 찾아간 하우스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죄책감을 덜고 싶어 하는 하우스의 마음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어 하는 희망의 발로인 걸까? 아니면 자신은 절대 그런 식으로 살 수 없으리라는 비참함의 또 다른 표현인 것일까? 알 수 없다. 시즌3의 마지막 화에서 그는(그 어느 때보다 진심 어린 투로) 자신의 곁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도 전혀 상관 없다고 말하지만, 시즌4 마지막 화에서는 자신은 비참한 삶을 살고 싶지도 않고, 고통받고 싶지도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지막 시즌까지 하우스는 자신의 신념을 절대로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떨 땐 마치 삶은 고통이고 비참한 것이라는 자신의 명제를 증명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듯이,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지상 과제라도 된다는 듯이 행동한다. 그것만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순수하고 객관적인 진실이고, 자신이 그 진실의 화신이라도 된다는 듯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환자가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 하우스는 환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랑은 다르게 그 환자 기억력은 관계 있는 사람들에 대해 순수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보게 하니까. 마음의 창을 흐리는 작은 감정 같은 건 없는데, 그게 뭐가 그렇게 잘못됐어?"

하지만 순수하고 객관적인 눈은 불가능하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환자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는 있지만 언제나 나쁜 기억에 초점을 맞춘다. 그 환자가 나쁜 것을 더 많이 기억하기로 결정한 것처럼, 완벽하게 객관적이고 순수한 시선이라는 것은 없다. 거기에는 언제나 '마음의 창을 흐리게 하는 작은 감정'이, 거기에서 촉발되는 어떤 선택들이 존재한다. 그 어느 누구도 세계의 객관적인 관찰자가 될 수는 없다. 그러는 척하는 것일 뿐. 그러므로 하우스가 아주 순수하고 객관적이라고 믿는 진실 ― 삶은 고통이고, 비참할 뿐이다. ― 역시 하우스의 '마음의 창을 흐리게 하는 작은 감정'이 발현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 드라마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그 어느 때보다 하우스가 절망적으로 보일 때, 하우스의 곁에 정말로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 하우스의 부하 직원이었던 의사 포어맨은 여전히 삶은 고통이라고 주장하는 하우스에게 말한다.

"진실은 때때로 지랄 맞은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것, 그것이 삶이 아닐까요."

나는 앞에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해서 고통스럽지 않은 삶과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르는 삶'이라고 썼다. 이 문장을 이런 식으로 바꾸어서 쓸 수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삶과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서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삶.

이 둘 중 무엇이 더 나은 삶인가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그리고 현실에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에, 타인을 사랑해 본 적이 없기에,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다만, <닥터 하우스>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사랑받으려고 노력한다. 그런 면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면, 삶은 고통이라는 하우스의 말은 어느 정도의 진실을 담고 있는 셈이다. 하우스는 어떻게 될까? <닥터 하우스>의 피날레 에피소드는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훌륭하다고 꼽는 두 가지 피날레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다른 하나는 <소프라노스>이다) 나는 그가 마지막까지 삶은 고통이라는 자신의 명제를 밀고 나갔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부터 그가 떠맡을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자신이 직접 선택한 것이다. 그것은 비참해지기 위한 고통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한 고통이다. 행복해지기 위한 고통이라니! 포어맨의 말마따나 진실은 때때로, 아니 훨씬 더 자주 지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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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보미(소설가)

드라마와 빵을 좋아하는 소설가. 『디어 랄프 로렌』,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맨해튼의 반딧불이』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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