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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백기'가 달라진다 : 케이팝과 군대의 관계
공백기를 성장기로
짧지 않은 군 복무 기간을 인생의 의미 없는 공백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건 아이돌이어도, 아이돌이 아니어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2022.11.09)
'군대'는 케이팝을 처음 접하는 해외 팬에게 가장 낯선 개념이다. 그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신체 건강한 남성이 좋아졌을 뿐인데, 그는 일정 나이가 되면 나라의 부름을 받아야 하기에 정해진 기간 동안 무대 위에서 만날 수 없다. 단순히 내 최애가 언제 군대에 가야 하는지 궁금한 팬부터 "군대는 왜 가나요?"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한반도 전쟁과 분단의 역사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팬까지 군대를 둘러싼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쏟아진다. 마치 2PM의 닉쿤이나 GOT7의 뱀뱀을 통해 태국 징병 제도는 검은 공과 빨간 공을 뽑는 추첨식이라는 걸 알게 된 한국인처럼, 다국적으로 이뤄진 케이팝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을 통해 한국의 역사와 정치, 징병 제도의 허와 실을 알아간다.
케이팝이 한국에 뿌리를 내린 순간부터 군대와 케이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의 실로 엮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아이돌 활동의 전성기인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에 걸친 10년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기간과 거의 일치하는 것이 주요 쟁점이었다. 치열한 연습과 실전을 통해 뾰족하게 다듬은 실력은 잠깐의 휴식만으로도 균형이 무너질 수 있었고, 한 번 궤도에 오른 인기는 예측할 수도, 잡아 가둬놓을 수도 없는 일종의 흐름이었기 때문이다. 7년으로 규정된 엔터테인먼트 표준 계약서 규정도 미묘했다. 데뷔 후 7년은, 평균적으로 멤버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더 이상 입대를 미룰 수 없는 나이대에 진입하는 시간이었다. 군대와 활동 휴식기를 뜻하는 공백기를 더한 '군백기'가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의미로 쓰이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유명 그룹의 경우에는 입대 자체가 정치적 이슈로 불거지기도 했다. 어떻게 봐도 달가울 리 없는 만남뿐이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처럼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에 느슨한 자극이 더해지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변화의 주역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군백기'를 보내는 그룹들이다. 지난 10월 '계룡군문화엑스포'에서 선보인 뉴진스의 'Hype Boy' 커버 댄스로 화제를 모은 그룹 온앤오프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말 케이팝 최초 멤버 전원 동반 입대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이들은, 이날 전우들과 함께한 'Hype Boy' 커버는 물론 자신들의 노래인 'Beautiful Beautiful', '춤춰(Ugly Dance)' 등의 무대를 선보이며 그룹의 건재를 과시했다. 공연을 본 사람들의 입에서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일본인 멤버 유가 오히려 군대에 간 것 같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얼마 전 육군을 만기 제대한 성진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현재 군 복무 중인 그룹 데이식스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각각 카투사, 해군, 육군인 이들은 10월 1일 국군의 날 특집으로 방송된 KBS2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부른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로 때아닌 주목을 받고 있다. 이날 이들의 모습을 담아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음악 잘하는 군인들'이라는 제목으로 260만 뷰(11/8일 기준)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릴스 영상은, 영상의 인기에 힘입어 멜론과 벅스 등 한국을 대표하는 음원 사이트의 일간 차트 순위에서 해당 곡의 눈에 띄는 상승 그래프를 만들고 있다. 다소 이를 수도 있지만, '군대도 콘텐츠'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케이팝과 군대의 관계도는 지금도 꾸준히 변화 중이다. 사정상 업로드가 중지되었지만, 입대 전 자신의 군복무 기간인 1년 9개월 동안 매달 업로드 할 수 있는 양의 새 영상을 촬영한 것으로 유명했던 엑소 백현의 사례나, 수년 전부터 꾸준히 공연 중인 군 뮤지컬로 자신의 숨겨진 재능에 새롭게 눈을 뜬 아이돌까지, 군백기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물론 조심스러운 부분은 있다. 국가 의무를 다하는 기간과 사적인 영역의 교류가 깊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짧지 않은 군 복무 기간을 인생의 의미 없는 공백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건 아이돌이어도, 아이돌이 아니어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신성한 국민의 의무이면서도 가수와 팬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공백일 수밖에 없는 시간을 개인과 직업인으로서 어떻게 똑똑하게 채우고 또 어떻게 현명하게 활용할 것인가. 군백기를 앞둔 모든 케이팝 그룹의 공통된 고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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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