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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릭의 창작 일기] 종교가 내 인생에 들어온 날

슬릭의 창작 일기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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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과 눈이 마주쳤다. 불상도 사람처럼 생긴지라 나는 또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가만히 나를 지켜보는 그 쇳덩어리의 쇳덩어리같은 모습에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2022.11.07)

일러스트_한아인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의 일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중년 여성 한 분이 나를 붙잡았다. 여기 교회에서 재미있는 행사를 하고 있는데 한번 구경하지 않겠느냐고. 낯선 어른이 말을 걸면 일단 경계해야 한다고 배우긴 했지만 어른의 제안을 거절할 용기가 없던 소심한 나는 활짝 웃으며 내 손을 잡아끄는 그대로 그 교회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납치당하지 않은 것이 용하지만 정말로 그 교회에서는 달란트 시장을 하고 있었고 장난감이며 온갖 간식들이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중년 여성은 나에게 꾹 누르면 튀어 나가는 치타 장난감 하나를 선물로 주었고, 그 대가로 나는 우리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종교가 처음으로 내 인생에 들어온 날이다.

달란트 시장은 재미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예배는 재미가 없었다. 부모님도 딱히 종교를 믿지 않는 분들이었기에 내 종교 활동(?)에 크게 관여하지는 않으셨지만 관심을 주지도 않으셨다. 무엇보다 그 달란트 시장은 나만 재미있었는지 내 또래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니와 동생을 꾀어 몇 번 같이 가기도 했지만 우리 중 누구도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예배 시간에 내가 가장 관심 있던 것은 마이크였는데, 그즈음부터 래퍼들이 마이크를 잡는 방식을 따라하고 싶었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읽는 시간에만 마이크를 잡기 위해 반짝 집중하고 말았다. 다들 어떻게 종교를 갖게 되는 걸까.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일요일 아침 낮잠이 몇 배로 소중했기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성적에 맞춰 진학한 고등학교가 미션 스쿨이었던 것이다. 처음 입학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러 학교 강당에 갔을 때 강당 벽에 붙어 있던 천에 쓰인 '어린 양'이라는 단어를 보고는 '이 학교에는 양 목장이 있나?'했다. 내가 바로 그 어린 양이라는 것은 까맣게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시기가 좋지 않았다. 사춘기를 지나며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진 내게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해서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아니 왜 하나님은 모두를 사랑한다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보내지? 너무나 조건부의 사랑이 아닌가? 하나님이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신 거라면 애초에 악은 왜 만드신 거지? 이런 유치한 의문부터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한국 기독교 문화에 대한 거부감까지, 기독교 세계관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렇듯 예수님과 나의 관계는 큰 발전이 없었지만 딱 하나 잘 맞는 게 있었다. 음악. 기독교 사상에 대해선 당최 정이 가질 않았지만 찬송가와 찬양과 경배 음악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힙합과 알앤비에 빠져 있던 내가 그 장르의 조상쯤 되는 가스펠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미션 스쿨이다 보니 한 반에 서너 명 정도의 아이들이 교회에서 반주를 맡고 있었고, 나는 그 아이들과 함께 늘 피아노 앞에 앉아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다. 음악에 대한 동경이 마음속에 꽉 차 있던 나는 어딜 가나 음악 얘기만 했고, 담임 선생님까지 알게 되어 얼떨결에 반 대항 찬양 대회에 지휘를 맡았다. 음악이라고는 랩밖에 몰랐지만 어떻게든 무대에 서고 싶었기에 유튜브를 켜놓고 지휘자들의 움직임을 무작정 따라 해보았다. 대부분의 반은 여학생 혹은 남학생으로만 이루어진 분반이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우리반은 혼성 합창을 할 수 있었고, 학생 수도 다른 반에 비해 더 많았다. 합창 연습을 핑계로 지리나 국사 같이 지루한 수업을 빠질 수 있는 것도 짜릿했다. 우리 반은 우승했고, 당시 내가 좋아하던 선생님께 "령화 멋진데~"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벌써 뮤지션이 된 것만 같이 기뻤다. 어둡고 불안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몇 안되는 근사한 추억 하나를 예수님께서 만들어주셨다.

그다음에 내가 기독교인을 만난 곳은 서울 시청 광장이었다. 나는 퀴어 문화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그들은 그 축제를 반대하기 위해 그곳에 가, 우리는 다시 만났다. 하나님은 누구를 차별해서 사랑하시지는 않는다고 배웠으니 이런 식으로 대치하게 될 줄은 몰랐다. 성경에는 문신도, 돼지고기나 랍스터를 먹는 것도, 여러 가지 천을 섞은 옷을 입는 것도 죄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런 규범에 대한 기독교 집회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왜 유독 동성애에 대한 반대 집회만이 이렇게 커다랗고 무서운 형태로 열리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뭐라고 적혀 있기에 저리도 기함을 하며 타인의 성 지향성에 대해 울부짖는 것일까 하는 마음으로 들춰본 성경에는,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라고도 적혀 있었지만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라고도 적혀 있었다. 시청 광장을 돌며 내내 들려오던 찬송가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절대자의 존재는 고난과 역경으로 힘든 삶을 구원한다. 삶의 의욕을 꺾어버리곤 하는 불행한 일들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인간은 이 세계 속에 너무나 작고 나약한 존재다.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세상의 범위는 좁은 반면 세상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은 그것에 비할 수 없이 크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 능력 이상의 감각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 혹은 그 세상을 창조한 - 절대자의 존재를 기대하고 의존한다. 또한, 고난과 역경은 주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가혹하게 주어지기 때문에 절대자는 이들에게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가스펠과 소울, 재즈와 힙합에 등장하는 예수는 인종 차별이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구조 따위를 초월하는 절대자로서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차별 없는 사랑을 약속한다. 예수님은 당신의 피부색이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당신을 사랑한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이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 나는 그 음악 속에 등장하는 예수의 사랑이 성 지향성 따위에 흔들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연히 조계사에 들렀다. 왜 살아야 하는지, 정확히는 왜 이렇게까지 살아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던 때였다. 누굴 만나 무얼 해도 즐겁지 않았고, 때때로 마음이 조금이라도 즐거울라치면 머릿속 어딘가에서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라고 호통을 쳐댔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울었고 그때마다 분에 넘치는 위로를 받는 것이 괴로웠다. 그런 위로를 받으면 괜찮아져야 하는데, 괜찮아지지가 않는 것이 괴로웠다. 방석이 죽 깔린 대웅전 안에는 커다란 불상이 작은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번도 절을 해본 적이 없어 대충 눈치로 다른 사람들과 리듬을 맞추었다. 누군가는 태엽이 감긴 듯 쉴 새 없이 절을 하고 있었다. 화려한 천장 장식, 쌓여 있는 쌀 포대 같은 것들을 구경하다가 불상과 눈이 마주쳤다. 불상도 사람처럼 생긴지라 나는 또 눈물이 줄줄 흘렀다. 불상은 사람이 아니니 당연히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초침의 움직임에도 지진이 나며 흔들리는 내 마음을 펑펑 쏟아내도 그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가만히 나를 지켜보는 그 쇳덩어리의 쇳덩어리같은 모습에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괜찮아. 다 지나갈 때까지 여기 있을게. 마음 놓고 흔들리렴. 처음으로 종교적 구원을 체험한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불교를 받아들여 불자가 되었느냐면 그건 아니다. 마음이 동해 기념품 가게에서 이런저런 책들을 훑어보긴 했지만 내게 필요했던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어떤 일을 겪어 또다시 흔들릴까 두려워도 그날의 그 순간의 마주침을 생각하고 싶어졌다. 작은 나를 빤히 보는 큰 불상. 우연히 사람이 없던 시간에 아무런 정보 없이 느낄 수 있던 절대자의 존재 이유. 종교는 정말로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일 거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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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슬릭(뮤지션, 작가)

뮤지션, 작가. 누구도 해치지 않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 『괄호가 많은 편지』를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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