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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솔의 적당한 실례] 성대모사를 하는 글방

<월간 채널예스>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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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기 삶에 '성대모사'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카테고리가 방금 묵직한 소리를 내며 추가되었음을 인지한다. (2022.10.04)


수상한 것이 등장했다. 이름하여 '까불이 글방'. 대관절 알 수 없는 이름이다. 어딘가 맹꽁이 서당처럼 입에 착 붙는 것 같기도 하고... 홍보물에는 '무조건 쓴다'라는 문장이 떡하니 적혀 있고, 어딘가 엄하게 생긴 인물의 사진 아래에는 '나는 까불 테니 너는 글을 써라'라는 낯익은 문장이 적혀 있다. 그러니까 '까불이'라는 작자가 운영하는 글쓰기 워크숍이라는 듯한데, 기존의 강연 시장에 나와 있는 '유명 작가의 베스트셀러 책 쓰는 법', '잘 팔리는 글쓰기', '소설 입문반' 등과 나란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22년 1월에 별안간 출범한 이 이상스러운 글방의 행보는 생각보다 우습지 않은데... 수상쩍은 포스터, '빡센' 규칙과 높은 수강료에도 불구하고 매번 오픈할 때마다 10분 안에 정원이 마감되는 기염을 토한다. 환불 사태가 속출하며 웬만한 사람들은 신청서도 못 쓰고 튕겨 나왔다. '해병대 글방'이라는 소문답게 매주 한 편의 완성된 글을 쓰고, 모든 동료의 글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읽어 와야 했는데도 과제 참여율은 100%에 육박했다. 글을 짓고, 글을 읽고, 글에 대해 말하고, 글을 들으며 이야기로 꽉 찬 한 바퀴를 돌았다. 그렇게 까불이 글방에 몸을 담은 71명의 참여자는 8개월간 700편에 달하는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다. 매주 A4 용지 200쪽이 넘는 따끈따끈한 글들이 글방에 어김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저녁에 글방이 시작되면 자정이 넘게 이어졌다.

글방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는 그야말로 '핫'했다. 게시글과 댓글이 SNS 뺨치는 속도로 달렸다. 첫 번째 기수에 별생각 없이 문을 두드렸다가 지금까지 출구를 못 찾고 터를 잡은 이들이 수두룩했으며, 워크 라이프 밸런스가 아닌 글방 라이프 밸런스를 고민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글 쓰는 게 너무 괴로워서 인생의 다른 고민이 다 하찮아졌다는 이들도 있었다. 조용히 사라지는 이도 있었고, 책 한 권은 거뜬히 엮을 만큼 원고를 쌓아낸 사람도 있었다. '직장 관뒀습니다', '연애 정리했습니다', '아싸됐습니다'라는 게시글이 심심찮게 보였다. 지난 반년간 교양 있고 지성이 높으며, 호기심이 가득하고 언제나 조금은 다른 생각을 말했던 당신의 사려 깊은 친구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면, 까불이 글방에 있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이 글방의 이상함은 신청란에서도 드러난다. 신청서의 마지막에는 이런 질문이 있다. '주어진 기간 동안 까불이가 뭘 하자든 믿고 따를 준비가 되셨나요?' 이 질문에 대한 선택지는 두 가지다. '1번 그러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2번 완전 준비됐습니다' 이 이외의 선택지는 없으며,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선택하지 않으면 신청 완료 버튼을 누를 수조차 없다. 참여자의 결정권을 초장부터 완전히 박탈시키는 이 질문에 대해, 지난 통계에 따르면 무려 80%가 넘는 사람들이 1번을 선택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지성인들, 이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조금의 마조히스트 경향을 가진 교양인들의 모임지기는 이러한 반강제적 합의로 기꺼이 무솔리니가 된다. 절대적 권력을 말 그대로 '양껏' 활용한다. 서슴없이 간섭하고 실례를 범한다. 누군가 글에 '병신'이라는 단어를 써 오면 그 사람에게 말한다. 

"자, 복창하세요. 나는 글에 병신이라는 차별적인 단어를 쓰지 않는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당황한 목소리로 까불이의 말을 여러 번 크게 복창하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 외에도 누군가 무례하거나 성의 없는 합평을 하면 표창처럼 빠른 속도로 까불이의 말이 날아가 꽂혔다.

"죽을래요?"

까불이는 그 커다란 입을 길게 늘어뜨려 기괴하고 호쾌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이제부터 지각자와 결석자는 성대모사를 하겠습니다." 

참여자들이 웅성거렸다. 그 방에 있는 누구도, 사람들 앞에 서서 성대모사를 하는 일 따위는 해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그들에게 그런 역할을 맡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혼란의 도가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까불이는 말한다. 

"사람들이 여러분 글방 한다고 하면 샌님이라고 놀리죠? 이참에 성대모사를 연마해서 진정한 재주꾼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는 겁니다. 하하!"

사람들은 웃고 있지만 눈은 울면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무조건 써야겠다고 이를 악문다. 그의 말을 따르기로 해서다. 까불이는 누군가에게 약속을 하고, 그걸 지키는 장면은 늘 아름답다고 확신한다.

"재밌는 글을 쓰기란 돌처럼 굳은 똥을 싸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쓰는 순간과 쓰지 않는 순간 모두 글 생각에 시달리며 왜 이런 고문을 자청했는가를 되물을 즈음, 마감 시간은 얄짤없이 우리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지요. 그때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같은 시간에 다른 곳에서 싸우고 있을 동료의 얼굴뿐입니다. 함께 쓰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죠. 하여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면, 우리가 근본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바로 그 '재미'를 가져와야 합당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삶에 '성대모사'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카테고리가 방금 묵직한 소리를 내며 추가되었음을 인지한다. 까불이는 마음만 먹으면 성대모사를 해야 하는 쓸데없는 이유를 100개라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까불이 글방은 이렇게 시작된다. 

"앞으로 나오시죠."

방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하고, 모두의 입술이 귀까지 걸려 있다. 몇 사람이 슥 앞으로 나와, 일을 시작한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문재인 대통령이다. 

"마감이 먼저다." 

이금희 아나운서가 글을 낭독한다. '도라에몽'과 '스폰지밥'은 단골손님이다.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명장면, '호박고구마'를 기막히게 열연한다. 리코더를 불고, 아마존 익스프레스 아르바이트생이 되며, 대학생 때 이후 놓고 있었던 문선을 춘다. 할 수 있는 게 없어 칼림바를 사서 연습했다며 생애 첫 연주를 선보인다. 덕분에 우리는 배가 찢어질 듯 웃고 난 후에야 글방을 시작할 수 있다.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서로의 얼굴, 그런데도 내어보는 용기 앞에서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그것이 글을 가져오는 마음과도 몹시도 닮아 있다고 생각하며. 아 물론. 나, 까불이도 지각을 하면 어김없이 성대모사를 한다. 나는 박재범의 '몸매' 춤을 추고, 짱구를 기가 막히게 흉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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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양다솔(작가)

글쓰기 소상공인. 에세이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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