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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엔 다 읽겠지] 내 영혼이 머무는 곳
<월간 채널예스> 2022년 9월호
그제야 깨닫는 것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어딘가의 여행지가 아니라 마음의 안식처라는 것을. (2022.09.02)
퇴근길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오늘을 보내는 것이 너무 지치고 지겨워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때가 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 어딘가로. '이번 주말이라도 당장!' 외치는 마음을 달래며 여행지의 숙소나 교통편을, 가볼 만한 곳과 맛집들을 찾아보다 보면, 어쩐지 그것만으로도 금세 질려버리고 만다. 그제야 깨닫는 것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어딘가의 여행지가 아니라 마음의 안식처라는 것을.
김지혜 작가의 『책들의 부엌』을 꺼내 든 건, 책 속에서나마 잠시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책들의 부엌』은 책과 어울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힐링하는 곳, 북카페 '소양리 북스 키친'을 찾아온 9명 손님들의 사연을 통해 지친 일상에 휴식과 위로를 전해주는 소설이다. 서점에서 일하면서 더 이상 서점을 '휴식처'로 삼지 못한 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역시 서점만큼 마음이 편해지는 공간 또한 없는 것도 사실이다.
통유리 창을 통해 내리쬐는 포근한 햇볕 아래 마음 가는 대로 골라 책을 읽는 북카페나, 오로지 책밖에 없는 공간에서 마음껏 한가해질 수 있는 북스테이는 어쩔 수 없이 책덕후를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때로는 새로움이 주는 신선한 자극이 아니라 익숙함이 주는 안락함이 필요하다. 그럴 때 책만큼 편한 친구가 어디 있을까. '소양리 북스 키친'을 방문한 사람들의 면면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어제의 내가 한 고민과, 오늘의 네가 갖는 감정을 공유하는 평범한 이야기. 하지만 시간이 한 템포 느리게 흘러가는 이곳에선 얽히고설킨 고민도 한 올 한 올 풀어지고, 꽉 막힌 감정의 타래들도 작은 쉼표를 맞는다.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든든한 마음이다. 에세이를 읽는 마음 역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게도 '소양리 북스 키친'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그곳에서 읽을 첫 책으로는 에세이를 고르고 싶다.
이를테면 김상현 작가의 『당신은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 같은 책은 어떨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삶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만 같을 때, 불안감에 사로잡혀 길을 잃을 것만 같은 순간에도 우리는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고 말한다. 책 제목에도 담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입니다. 다 잘 될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을 믿으세요.'라는 구절은 어떻게 보면 사실 특별할 것 없는 말이지만, 그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함이야말로 에세이가 주는 위로가 아닐까. 에세이야말로 보통의 우리들이 살아가는 보통의 나날들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으니까. 우리는 언제나 흔들리고 넘어지는 존재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의 문장은 지친 마음을 다정하게 토닥여준다.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책장을 덮고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공간이 있다. 봄이면 벚꽃과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 하늘을 가득 메우던 동네 도서관의 나무 벤치가 그중 하나고, 두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동고동락하며 네 권의 책을 함께 만들었던 교지 편집실이 다른 하나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마냥 아름답고 평화로워서는 아니다. 그곳은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꾸며내지 않아도 받아들여지고, 자연스럽게 일부가 될 수 있는 곳. 그곳이야말로 내 영혼이 머무는 곳, 내 마음의 홈그라운드니까. 인생의 어떤 순간은 공간으로 기억된다.
도망치고 싶을 땐 도망쳐도 된다는 걸 이제는 배웠다. 하지만 사실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찾고 싶었다. 일과 사람 모두에서. 언젠가 죽기 전엔 그런 곳을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믿고 싶다. 그래도 혹시 아직 나만의 안식처를 찾지 못한 미래의 내가 방황하고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고 말해줄 것이다. 나는 결국 무엇이든 해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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