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의 조레스, 당의 조레스, 노동자의 조레스』 출간 기념 특별 기고
김민철 교수 특별 기고
불의가 지배하는 사회의 앞날에 대한 조레스의 응시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작가의 깊은 고민이 책 전체를 가로지릅니다. (2022.08.22)
한 연구자가 반평생을 바친 작업이 책 한 권에 녹아들었습니다. 『의회의 조레스, 당의 조레스, 노동자의 조레스』를 쓴 노서경 작가는 수십 년째 장 조레스와 19세기 말~20세기 초 프랑스와 유럽의 정치사와 제국사를 연구했습니다. 필자의 소략한 서평 따위로 도저히 재단할 수 없는, 작가의 긴 세월 성실한 연구의 결실이 마농지 출판사의 책으로 출간되었으니 몹시 반가운 일입니다.
프랑스 조레스학회의 회장인 질 캉다르가 서문을 썼고, 제목처럼 조레스와 의회, 조레스와 통합사회당, 조레스와 노동자-농민-프롤레타리아-인민 문제가 서사와 분석의 중심을 이룹니다. 이 자리에서는 현대의 독자들이 조레스에게서 흥미를 느낄 만한 요소를 몇 가지만 짚어보겠습니다.
어쩌면 가장 위대한, 그리고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사회주의자로 알려진 조레스는 기성 질서가 보존한 소유 구조가 지난한 노동의 결과를 모두 자본가의 손에 쥐여주고 있다고 한탄했습니다. 농촌에서도 "깊은 숲에 들어가 도끼날이 들지 않는 뻣뻣한 나무들을 악착같이 도끼질하고 외양간에서 겨우 한숨 눈을 붙이고는 새벽녘에 가축을 돌보는 수고는" 농민의 몫이었지만 그 과실을 따가는 것은 지주들이었습니다(61쪽). 조레스는 아리는 마음으로 외쳤습니다. "농부는 자기 손아귀에서 여름날의 왕성함이, 가을의 풍성함이 날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기진맥진하게 일하는 것은 언제나 다른 이들을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그 농부가 아무리 체념하고 종속되었어도 그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여러 세기 동안 강자들에게 경고하고 항의해왔습니다. 그 역시 즐길 줄 알고 즐기기를 원한다고(62쪽)."
인구의 1%가 국부의 절반을 갖는 소유와 노동의 엄혹한 질서는 생의 어느 영역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태어난지 1년도 되지 않아 죽는 아기들을 말하며, 조레스는 외쳤습니다. "죽음은 아기의 요람마다 찾아다닙니다. 부자의 요람이든 빈자의 요람이든 다 둘러봅니다. 그러나 죽음은 부자의 요람에서는 한 아이를, 빈자의 요람에서는 열 명의 아이를 데려갑니다(85쪽)."
이처럼 돈이 있는 곳에는 향락과 삶이 있고, 돈이 없고 오직 노동만이 있는 곳에는 메마르고 지친 일상과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르주아 국가의 법질서는 신성한 소유권의 이름 위에 세워졌고 자신의 정당성을 맹신했습니다. 1888년, 어느 유리병 공장 파업에서 사장이 3천 명을 해고하고 공장을 폐쇄하자 29세의 조레스는 분개했습니다. 노동과 자본은 도무지 평등할 수가 없었습니다. "두 가지는 다르다. 자본은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힘이며 때문에 커다란 의무를 진다. 노동자들이 노동을 거부하고 물러날 때 그들이 가진 것은 오직 자신뿐이다. 자기 하나밖에는 처분할 것이 없다. 그때 그는 오직 주권을 지닌 자신일 뿐이다. 반대로 고용주가 파업을 하면 그는 사회적 순환으로부터 그의 노동, 지력, 행위만 빼내지 않는다. 자본 역시 빼낸다. 아무리 소유권이 신성하다 할지라도 수천 명이 그것 때문에 일하고 살아가는 공동의 그 부분을 무로 만들어버리는 데까지 갈 수는 없다(80쪽)."
많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의회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부르주아 국가의 존속에 봉사할 위험을 내포한다는 이유로, 따라서 사회주의 혁명의 대의를 배신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의회를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국회 의원으로 있으면서도 내각 참여를 주저했고, 민족 국가의 정치인으로서 사고하고 행동하기보다는 부르주아 체제의 괴멸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자로서 처신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와 달리 조레스는 의회 정치의 중요성을 역설했으며, 언젠가 노동자들이 교육과 자기계몽을 통해 스스로 "정치를 지도하는" 날이 도래할 수 있도록 "의회의 메커니즘을 간단히 하자"고 제안했습니다(175쪽). 이 문제는 사회주의의 도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버리지 않은 급진주의자들에게 여전히 중대한 문제지만, 조레스가 당면했던 다른 모든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그때에나 지금이나 해답을 찾기 어렵고 실천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조레스는 사회주의 혁명의 전망을 놓지 않으면서도 정치를 통해 드레퓌스 사건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때로는 계급을 초월하는 인간애를 중시했습니다. 작가는 그가 "혁명과 개혁"의 양자택일이 아닌 종합으로서 인본사회주의라는 길을 따라갔다고 말합니다. 적절한 때에 매번 조레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도록 인용문이 배치되어 있는 것은 이 책의 강점입니다. 이 사건에서, 조레스는 죄를 짓지 않고도 군 장성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징역을 살고 있는 드레퓌스를 두고 말합니다. "그는 더 이상 장교도 부르주아도 아니며 극심한 불행으로 모든 계급의 특성을 빼앗긴 한 인간이다. 그는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비참함과 절망에 처한 인류일 뿐이다." 드레퓌스가 사회 상층부 엘리트 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그의 편에서 운동하기를 꺼린 여러 사회주의자들과 달리, 조레스는 사회주의의 근원적 목표가 무엇인지 짚어가며 계급 투쟁과 인간애의 관계를 다음과 같은 외침으로 정리했습니다. "우리의 원칙을 저버리지도 계급 투쟁을 기만하지도 않고서 우리 불쌍한 이의 울음을 들을 수 있다. 우리의 혁명적 투쟁 안에서 인간의 내장을 지킬 수 있다. 우리는 사회주의 안에 머물기 위해 인류 밖으로 나가버려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107쪽)."
조레스는 노동자가 거부할 수 없는 세계적 추세인 노동 분업 체제 속에서도 긍지와 존엄을 잃지 않고 (작가의 표현으로는) "광대한 세계를 돌아보고 드넓은 관점을 지녀 직업이 무엇이든 실천가와 철학자가 되는 것"을 하나의 '용기'로서 요구했습니다. 또한, '용기'란 되살려낼 수 없는 과거를 회고하기보다는 다가오는 기계 문명의 미래를 인간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현실을 직시하고 대응하는 것이었습니다. "용기는 한 올의 실도 끊어지지 않도록 실 감고 천 짜는 기계를 정확히 감시하고, 기계가 해방된 노동자들 누구나에게 종사하는 그런 사회 질서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용기는 삶이 과학과 예술에 가한 새로운 조건들을 받아들이고 사건과 세부 사항에 깃든 거의 무한한 복잡성을 이해하고 그러면서도 이 거대하고 혼란스런 사실을 일반적 사상으로 해명하고, 형식과 리듬을 갖춘 경건한 아름다움으로 그 사실을 조직하여 사실이 봉기하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한 인간으로서, 노동자로서, 정치인으로서, 가져야 할 용기란 바로 "생을 사랑하고 죽음을 조용히 응시하는 것이며, 이상으로 가면서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33-34쪽).
이 책에는 이 밖에도 전쟁, 제국, 정당에 대한 조레스의 이야기가 있고, 또한 그가 어떤 시대에 어떤 문제들 속에서 실천적으로 전진했는지 알 수 있도록 그의 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들의 입장도 상세하게 소개하는 작가의 꼼꼼한 배려를 접할 수 있습니다. 불의가 지배하는 사회의 앞날에 대한 조레스의 응시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작가의 깊은 고민이 책 전체를 가로지릅니다. 누구든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간이 서로를 짓밟고 죽이기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하려면 통제하기 힘든 정념과 이해관계가 날뛰는 이 세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이편과 저편의 분계선을 쉽사리 단정할 수 없는 난제들에 직면하여, 작가는 조레스와 함께 인간에 대한 사랑과 불의에 대한 분노를 품고 무엇을 딛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계속해서 더듬습니다. 문장은 차갑지도 딱딱하지도 않고, 작가가 제어한 열정이 글의 바탕에 도도하게 흐릅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인간의 미래를 밝히기 위해 일생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한 어느 거인을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거인과 대화하는 작가의 목소리에 담긴 따뜻한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책을 만난 것은 우리의 복입니다. 작가가 서장에서 인용한 (겨우 44세인!) 조레스의 1903년 연설을 다시 음미하면서 미래의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자 합니다.
"… 하지만 약간 비감한 마음도 드는군요. 참으로 오랜만에 예전에 있던 자리에 다시 오면 우리는 지난날을 되살리다가 홀연히,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지나간 날들이 우리에게서 무엇을 앗아갔는지를 헤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시간은 우리들 자신을 한 자락 한 자락씩 벗겨버렸고 우리는 불현듯 우리한테서 멀리 떨어져 나간 커다란 삶의 뭉치를 봅니다. … 긴 세월이 순간마다 낱알 한 알씩 가지고 가버려 해는 다 졌는데 곳간은 텅 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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