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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매우, 무조건, 아름다운 글이었습니다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273회) 『친밀한 이방인』, 『그러나 아름다운』,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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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장르가 어디에 속하건 저한테는 매우, 그리고 무조건 아름다웠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2022.07.14)


그냥의 선택 

『친밀한 이방인』

정한아 저 | 문학동네



한 OTT 플랫폼에서 배수지 배우님이 출연하시는 드라마 <안나>를 방영하고 있는데요. 이 책이 원작 소설이에요. 

화자인 ‘나’가 평소처럼 신문을 보고 있었는데 한 광고에 눈길이 갑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을 찾습니다’라고 쓰여 있고 소설의 일부가 실려 있었는데요. 무심코 읽다 보니 ‘나’가 쓴 소설인 거예요. 그런데 이 소설은 발표한 적이 없는 작품입니다. 소설가인 ‘나’가 등단하기 전에 공모전에 출품했던 작품이었어요. 살면서 처음 써본 소설이었고요. 서재를 뒤져봤더니 이 작품의 인쇄본은 ‘나’에게 있지도 않아요. 그런데 신문에 실려있는 거죠. 다음 날에도 광고가 실리고, 어제 실렸던 부분에 이어지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마치 연재소설처럼요. 

더는 좌시할 수 없는 ‘나’가 신문사에 연락을 합니다. 원작자의 허락도 없이 이렇게 실어도 되는 거냐고 항의를 하니까 신문사에서 확인해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는데 ‘진’ 이라고 하는 여성에게서 전화가 와요. 신문사에서 연락을 받았다면서 그 소설을 당신이 쓴 거냐고 물어보는 거죠. ‘그렇다, 신문에 내 소설을 싣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했더니 ‘진’이 한다는 이야기가 ‘그 소설은 내 남편이 썼다고 했어요’라는 거예요. 이어서 ‘내 남편은 6개월 전에 실종됐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꼭 할 이야기가 있으니 한번 만나달라고,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습니다. ‘나’는 고민 끝에 그 자리에 나가요. ‘진’은 남편의 이름이 인쇄된 책을 보여주는데 표지에 ‘이유상’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책 속에서 한 장의 사진을 꺼내서 보여주면서 이 사람이 내 남편인데 본 적 없냐고 물어봐요. ‘나’가 없다고 하니까 ‘진’이 말하기를 ‘잘 보세요, 꼭 남자가 아니더라도 비슷하게 생긴 여자라도 기억나는 사람 없으세요?’라고 하는 겁니다. ‘남편을 찾는다고 하지 않았어요?’라고 되물었더니 ‘진’이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 사람의 본명은 이유미, 서른여섯 살의 여자예요. 내게 알려준 이름은 이유상이었고, 그전에는 이안나였죠.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아요. 여자라는 사실까지 속였으니 이름이나 나이 따위야 우습게 지어낼 수 있었겠죠. 그는 평생 수십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았어요. 내게 이 책과 일기장을 남기고 육 개월 전에 사라져버렸죠.” 

이 만남 이후에 ‘나’는 이유상, 이안나, 이유미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는 거예요. ‘나’는 소설가이지만 지난 7년 동안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유미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으면서 직감적으로 느껴요. ‘이것은 쓸 거리가 된다, 소설 감이 된다.’ 그래서 다시 ‘진’을 만나서 남편이 두고 갔다는 일기를 자신에게 줄 수 없냐고 묻습니다. ‘진’은 한 가지 조건을 내건 다음 일기장을 건네주는데요. ‘나’는 일기에 등장하는 장소나 인물들을 찾아가면서 이 사람을 점점 구성해 봐요.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같이 전개가 됩니다. 

읽다 보면 이유미라는 사람이 어쩌다가 거짓말을 하게 됐는지, 그 정황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지만요. 속인다는 것과 속는다는 것, 그것으로 지탱되는 평화로운 일상이나 어떤 한순간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자(황정은)의 선택

『그러나 아름다운』

제프 다이어 저 / 황덕호 역 | 을유문화사



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이미 인기가 많은 작가죠. 일단 제프 다이어는 존 버거를 매우 좋아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여행, 재즈, 사진 등 다양한 소재를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로 담아내는 탁월한 작가입니다. 몇 해 전에 한유주 소설가가 이 책을 번역한 적이 있는데, 저는 한유주 작가의 문장도 좋아해서 그 번역본도 가지고 있습니다만, 올해 3월에 새 번역으로 제프 다이어의 산문집 세 권이 동시에 출간이 되어서, 나오자마자 사서 읽었고요. 정말 오랜만에 문학적으로 충만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은 듀크 엘링턴과 해리 카니가 자동차를 타고 들판 사이의 도로를 달리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이 두 사람이 밤새 차를 몰아서 어디론가 가고 있어요. 어떤 장소에서 공연이 있고, 거기로 가는 길이라는 내용이 책의 후반에서야 등장을 합니다. 그런데 둘 다 목적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요. 두 사람이 자신들이 공연할 장소를 찾아가는 방식이 좀 재미가 있기도 했는데. 차를 세우고 그냥 아무 데나 들어가서 ‘이 근처에서 듀크 엘링턴의 공연이 있는 곳이 어디죠?’ 이렇게 묻는 방식이에요. 책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약간 알고 나면 조금 더 보이는 장면들이 있어서 소개를 조금 해보자면, 듀크 엘링턴은 1920년에서 1970년대까지 활동을 하면서 재즈 연주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고, 해리 카니는 바리톤 색소포니스트이자 클라리넷 연주자로 엘링턴과는 사십 년 이상을 함께 한 동료입니다. 

두 사람의 드라이브가 책에 실린 일곱 명의 재즈 연주자들 사이사이, 인물에서 인물로 건너가는 사이에 실려 있는데요. 일곱 명의 재즈 연주자를 소개하자면, 재즈 섹소포니스트이자 클라리네티스트인 레스터 영, 재즈 피아니스트인 텔로니어스 멍크, 그리고 버드 파월, 재즈 테너 색소포니스트인 벤 웹스터, 재즈 더블 베이시스트이자 피아니스트 작곡가 밴드 리더인 찰스 밍거스, 재즈 트럼페터이자 보컬리스트인 쳇 베이커, 알토 색소포니스트이자 클라리네티스트인 아트 페퍼인데요. 여기에 듀크 엘링턴과 해리 카니까지 더하면 아홉이 될 테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재즈 연주자들이 일곱이다 또는 아홉이다라고 세는 것이 저는 좀 애매하더라고요. 그게 재즈라는 장르의 특성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이 책에 이름이 언급된 연주자들 모두가 재즈라는 '오솔길'에 있는 사람들이라서 앞선 연주자와 후발 연주자가 다 연결이 되어 있어요. 음악뿐만은 아니고 재즈 연주자들이 미국 사회에서 겪은 차별과 학대라는 면에서도 연결되는 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프 다이어는 이 책의 형식을 허구인 동시에 '상상적 비평'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전에 제프 다이어의 다른 산문을 읽으신 분들은 조금 느슨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프 다이어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할 때 어떤 형식으로 쓸지를 미리 정해두지 않고 즉흥적으로 썼다고 해요. 음악은 물론이고 사진, 다큐멘터리, 군 법정 기록 문서, 기사들, 동영상, 재즈 연주자들에 대한 평론들, 다른 사람들의 책들 혹은 자서전 등등 다양한 문헌을 통해서 이 연주자들의 삶에 근접한 다음, 그들의 삶에서 어쩌면 가장 고통스럽고 상처를 받은 순간을 소설 형식으로 썼어요. 그중에는 심지어 이 작가가 창작한 부분들도 있습니다. 이 글의 장르가 어디에 속하건 저한테는 매우, 그리고 무조건 아름다웠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었지만, 책을 다 읽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저와 마찬가지로 이 책을 다 읽고 책을 덮은 독자는 책의 절반 혹은 아주 일부만 읽었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될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음악이 남아 있어요.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난 저와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재즈를 듣게 될 것입니다. 



단호박의 선택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브래디 미카코 저 / 노수경 역 | 사계절



부제는 ‘영국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 계급의 사랑과 긍지’입니다. 브래디 미카코는 1965년생이고 일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부유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펑크 음악을 좋아했고, 1996년에 영국으로 건너가서 정착하게 됩니다. 지금은 보육사로 일하면서 보육사, 에세이스트, 사회학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영국에 사는 베이비부머 세대인데 노동 계급인 사람들을 관찰하고 쓴 관찰기 같은 느낌이거든요. 그런데 특이한 점이, 저자가 일본 출신으로서 영국에 건너가서 영국 사람들을 보고 느낀 점을 일본어로 쓰고 그 책을 번역해서 나온 책입니다. 레이어가 상당히 많이 있는 책이죠. 브래디 미카코 씨가 씌운 필터로 본 영국 베이비부머 노동 계급은 ‘미워할 수 없는 배불뚝이 아저씨’라는 느낌이 있어요. 애정어림의 필터가 좀 끼워져 있거든요. 이 사람들을 굉장히 애정어린 눈으로 보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만약에 다른 사람의 눈으로 이 사람들을 관찰했더라면 다른 이야기가 나왔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저는 이 애정어린 필터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등장을 하는데요. 브래디 미카코 씨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브래디 미카코 씨가 영국인과 결혼했고, 그 영국인도 전형적인 노동 계급으로서 계속 일을 했던 사람이라고 하고요. 책에 ‘아저씨’라는 단어가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어떤 멸칭이자 동시에 굉장히 애정 어린 애칭으로 사용됩니다. 처음에 등장하는 아저씨는 '레이 아저씨'인데요. 중년이고 브렉시트 찬성파였어요. 그래서 아내와 아들한테 엄청 잔소리를 듣습니다. 계속 반목을 하다가 ‘서로 입장이 달라도 대화하고 함께 살아간다는 걸 어른으로서 보여주고 싶다’라는 얘기를 브래디 미카코 씨한테 합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갑자기 자기 몸에 ‘peace’를 새기겠다고 해요. 한자로 ‘평화’라고 새겼는데, 번역이 잘못됐는지 평화가 아니라 ‘중화’라고 새긴 거예요.(웃음) 이런 종류의 미워할 수 없는 애정어림의 필터가 있습니다. 브렉시트 찬성파는 굉장히 보수주의자일 것이고 사람들하고 말이 잘 안 통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다른 면도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합니다. 

저자의 다른 책을 봐도 그렇지만, 저자는 영국의 긴축 정책에 굉장히 반대하는 입장이거든요. 노동 계급 베이비부머 세대들과 MZ 세대들이 브렉시트를 놓고 굉장히 심하게 대립을 했었는데, 저자는 결국 이 대립이 긴축 정책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겠냐고 보고 있습니다. 긴축 재정 때문에 여유로움이 없어졌기 때문에 (세대 간에) 서로를 향해서 칼날을 겨누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유럽에서 인종 차별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긴축 재정과 연결돼 있는 게 아니겠냐고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보다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늘 옆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온 힘을 다해서 비난하는 거죠. 그 표적이 외국인이 되거나 생활 보호 대상자가 되거나 싱글맘이 되거나 좋은 시대를 산 베이비부머가 된다는 거죠. 

여러 가지 관점이 녹아들어 있는 책입니다. 백인 노동 계급이 점점 가난해지고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렇게 얘기하면 백인 노동 계급에게만 시선이 가기 때문에, 백인이 아닌 다른 노동 계급이라든지 다른 사람들의 문제는 덮이게 되는 문제점도 있고요. 그래서 이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백인 노동 계급의 부흥과 동시에 인종 불평등을 줄이는 프로그램도 시행해야 하고, 그러려면 결국 비용이 든다는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애정의 필터로 쓰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사회학 책이고요. 어려운 내용은 그렇게 많이 없습니다.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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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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