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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다정한 그림책] 다정한 스웨터 - 『오토의 털스웨터』
그림책 『오토의 털스웨터』
오토가 자전거 벨을 울리면서 도착하자 리사와 닐스는 만세를 부르면서 달려와 오토를 껴안습니다. 긴 여행을 마친 오토는 리사와 닐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2022.05.06)
매주 수요일, 김지은 아동청소년 문학평론가, 한미화 출판평론가, 이상희 시인, 최현미 기자가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
오로라를 아세요? 이 말은 라틴어로 새벽을 의미하는 ‘아우로라(aurora)’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태양에서 방출된 플라즈마 입자가 지구 대기권 상층부의 자기장과 부딪히면서 빛을 내는 광전 현상을 극광이라고 부르는데요. 극광의 빛이 새벽녘의 빛과 닮아서 오로라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형태가 화려한 커튼형 오로라를 가장 선명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대는 한밤중입니다.
그림책 『오토의 털 스웨터』는 표지에서부터 오로라가 등장합니다. 눈 쌓인 산봉우리 너머로 오로라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 그림책의 배경이 극지방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면지를 펼치면 더욱 강렬한 옥색의 오로라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스라소니 리사와 곰 닐스와 여우 원숭이 오토입니다. 빨간 기와로 지붕을 얹은 사우나의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오늘은 리사와 닐스가 친구 오토를 맞이하는 날이에요. 자전거를 타고 먼 길을 오는 오토가 따뜻하게 몸을 녹일 수 있도록 사우나에 불을 잘 피워두었습니다. 리사와 닐스는 커피를 끓이고 쿠키를 굽고 지붕에 올라가 잔디를 깎으면서 오토를 기다립니다.
오토가 자전거 벨을 울리면서 도착하자 리사와 닐스는 만세를 부르면서 달려와 오토를 껴안습니다. 긴 여행을 마친 오토는 리사와 닐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한밤의 오로라를 보는 것입니다. 그들은 만나자마자 오로라 이야기부터 합니다. 오토는 일생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오로라를 그림으로 남기겠다고 말하고 리사와 닐스는 좋은 생각이라며 그런 오토를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오토는 챙겨온 물감과 붓을 펼쳐놓고 오로라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오토가 짐작조차 못 한 일이 있었습니다. 북쪽나라의 기나긴 밤과 매서운 추위입니다. 벌벌 떨려서 붓을 잡을 수조차 없고 오로라를 그리려는 계획은 엉망이 됩니다. 이쯤에서 오토가 어디에서 살다 왔는지 다시 짚어보는 게 좋겠습니다. 여우원숭이가 사는 곳은 지구에서 딱 한 곳, 동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섬입니다. 다른 원숭이들과 달리 마다가스카르섬에 고립되면서 그곳에서만 진화한 종이 여우원숭이입니다. 여우원숭이들이 모여 사는 마다가스카르섬 북부는 열대기후입니다. 오토도 몸에 털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 털은 리사와 닐스가 지닌 털과는 다릅니다. 더운 나라에서 온 오토의 털로는 한밤의 추위를 견딜 수 없고 오로라를 그리는 일도 포기해야만 합니다. 리사와 닐스는 어떻게든 오토를 도와주고 싶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합니다. 그들에게는 양털에 관한 책이 한 권 있지만 너무 어려워서 읽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도와달라고 부탁할 양이 한 마리도 없습니다.
이제 제가 이 그림책에서 가장 아끼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오토를 위해서 리사와 닐스가 털을 빗기 시작하는 부분입니다. 작은 몸집의 닐스에게서는 털이 조금, 큰 덩치의 리사에게서는 털이 많이 나옵니다. 언제나 추위를 버티며 살아온 닐스와 리사의 털은 포근하고도 풍성합니다. 친구를 위해서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무한한 우정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둘은 그렇게 모은 털을 자루에 담아 이웃에 사는 여우 레나에게 갑니다. 레나에게 물레를 빌려 털실 잣는 법을 배우고 먹고 남은 양파와 붉은 양배추를 함께 삶아 털실을 물들입니다. 오토의 털 스웨터를 만들기 위해서 그전까지 몰랐던 것을 하나씩 배워갑니다. 추위에 떨다가 지친 오토는 사우나에서 푹 쉴 수 있도록 구석구석 챙겨둡니다. 감기에 좋은 따끈한 블루베리 수프를 가져다주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여기서 또 다른 그림책 한 권이 떠오릅니다. 해리엇 지퍼트가 글을 쓰고 아니타 로벨이 그림을 그린 『안나의 빨간 외투』(A New Coat for Anna)라는 그림책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온통 폐허가 되어버린 어느 마을에서 딸 안나에게 겨울 외투를 마련해주고 싶었던 엄마가 기적처럼 코트 한 벌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서 안나의 엄마는 산딸기를 바구니 가득 따서 털실을 물들입니다. 안나가 빨간 코트를 입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안나 엄마의 간절한 마음을 읽은 이웃들이 이 대장정을 조금씩 거들고 나섭니다. 누군가는 함께 실을 잣고 누군가는 같이 옷감을 짜고 누군가는 바느질을 돕습니다. 무려 1년이 걸려서 한 벌의 코트가 완성되는데요. 그 코트는 안나에게 꼭 맞았고 그날이 마침 크리스마스여서 다들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는 결말입니다.
안나의 외투가 꼭 맞았던 것처럼 오토의 털 스웨터도 몸에 꼭 맞았습니다. 오토가 “남쪽나라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하나도 춥지 않다고 말하며 일필휘지로 오로라를 그리는 장면에서 우리는 더불어 뿌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오토가 그린 옥색 오로라 그림 아래서 차를 마시고 말판놀이를 하는 세 친구의 모습은 우정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증명사진 같습니다. 오토는 털스웨터를 선물해준 친구들에게 오로라 그림을 선물하고 떠납니다. 오로라를 보고 싶으면 다시 놀러오면 되니까요. 남쪽나라로 돌아온 오토의 집 벽에는 오로라 그림 대신 털 스웨터가 걸립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있어요. 그 털 스웨터에는 오토가 그렇게 그리고 싶어 했던 오로라가 수놓아져 있다는 것입니다. 나무로 깎은 스웨덴의 말 인형이 선반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보니 오토가 받아온 선물은 스웨터 하나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몬스테라 화분이 놓여 있는 이 열대의 거실은 털 스웨터 덕분에 더욱 훈훈해졌습니다. 이런 훈훈함은 아무리 더운 마다가스카르섬이라고 해도 당연히 환영받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무엇이 길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게 하는지, 무엇이 멀고 험한 길을 걸어 친구를 찾아가게 하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한꺼번에 입증할 수 있는 사랑은 없고 순간에 확인할 수 있는 진심은 드뭅니다. 은은한 시간이 쌓여 견고한 관계를 만듭니다. 오로라라는 낱말을 볼 때마다 오토와 리사와 닐스가 생각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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