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의 이야기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253회) 『생의 실루엣』, 『플레이리스트 : 음악 듣는 몸』, 『백 오피스』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 이런 이야기들이야말로 생명의 모습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책을 좋아하고요. (2022.05.04)
미야모토 테루 저 / 이지수 역 | 봄날의책
미야모토 테루는 『환상의 빛』, 『반딧불 강』을 쓴 소설가입니다. 1947년에 고베에서 태어났고, 네 살부터 아홉 살까지 오사카의 ‘아지’라는 이름의 강 근처에서 자랐다고 해요. 미야모토 테루는 어린 시절에 비가 많이 내려서 홍수가 나면 이 강으로 사람을 실은 수상생활자들의 배가 떠내려 와서 여기저기 부딪히다가 가라앉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더 자라서 열 살 무렵이 되었을 때 부모님이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서 작가가 오사카 시내에 있는 고모에게 맡겨졌는데, 이 집이 터널식 연립주택이라는 불법 건축물이었다고 합니다. 빈민들이 사는 주택이었는데 일본인만이 아니고 한국계 주민과 북한계 주민도 살았다고 해요.
그리고 벽장을 통해서 이웃집으로 계속 건너갈 수 있는 구조였대요. 열 살 어린이였던 작가가 벽장을 통해서 남의 집에서 남의 집으로 건너 다니면서 놀다가 혼자 방치되어 있는 어린아이와 놀기도 하고, 그리고 사람이 죽는 싸움을 목격하기도 하고, 고독사한 노인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작가는 「터널 연립주택」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런 이야기를 쓰면서 ‘열 살 나이에 얼마나 많은 인생을 목격한 것인가’ 하고 회고를 하기도 해요. 이 집에서 뿐만은 아니고 작가가 사는 동안에 이런저런 장소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과의 짧은 인연, 그리고 이상한 인연들이 이 책 『생의 실루엣』에 실려 있습니다.
책에는 열아홉 개의 산문이 실려 있고 매우 작은 책입니다. 작고 얇은데, 책의 내용이 묵직해요. 짧은 산문을 모은 글인데, 작가가 인생에서 목격한 그런 일들이 써 있어서 내용이 마냥 가벼운 책은 아닙니다. 책이 출간된 과정이 재미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보자면, 교토에 ‘고다이지 와쿠덴’이라는 요릿집이 있는데, 그 요릿집을 경영하는 여성인 ‘구와무라 아야’라는 사람이 요릿집에서 발행하는 에세이 잡지를 만들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1년에 두 번 발행하고 책의 만듦새도 호사스럽게 만들어서 각계 인사들한테 글을 받아서 잡지를 만들고 이 요릿집을 아끼는 손님에게만 무료로 배포를 한다는 계획인데요. 미야모토 테루도 이 요릿집의 단골이었던 거죠.
그래서 이 계획을 처음 들었을 때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대구를 했다고 합니다. ‘해봐야 3호로 폐간되지 않겠어?’라는 초를 쳤다고 해요. 와쿠덴의 주인은 미야모토 테루에게도 원고 청탁을 합니다. 청탁 조건이 ‘1년에 두 번, 마음대로 자유롭게 내용을 쓰고, 원고지 매수 제한 없음, 매우 짧아도 됨, 단 잡지가 계속 나오는 한 연재를 이어가기’였습니다. 미야모토 테루가 평소에는 소설에 전념하고 싶다는 이유로 에세이 청탁을 거절을 해왔다고 해요. 그런데 이 청탁은 ‘기껏해야 3호까지 발간되겠지’ 싶어서 수락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잡지는 10년 동안 발행이 됩니다. 이 잡지의 이름이 ‘소유’였다고 하는데요. 『생의 실루엣』은 바로 이 잡지에 10년간 연재되었던 미야모토 테루의 글을 모은 책입니다.
작가가 60대에서 70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이 글을 쓴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 나이대에 겪은 일을 쓴 글은 아니고요. 작가의 말에 따르면 연재를 수락할 때 ‘소설로 쓰면 지나치게 소설 같아지는 추억이나 경험을 쓰자’라고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작가가 삶을 다 알아서 삶이란 이러하고 저러하다는 단언이라든가 장광설은 아니에요. 그렇지는 않고, 이야기마다 평범하게 이상하거나 이상하게 평범한 사람들이 순간순간 작가가 목격한 찰나로 등장을 하는데요. 그래서 해석이나 이해를 시도해 보기가 좀 어려운 순간들이 모여 있습니다. 작가의 말을 다시 인용을 하자면 ‘생명의 모습이 천변만화하는 단편’들을 쓰는 게 목적이었다고 해요. 천변만화하다는 말이 끝없이 변화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작가는 그 말의 끝에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생명보다 더 이상한 것은 없다.’ 그래서 이 책의 원 제목이 ‘이노치노 스가타(いのちの姿)’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 이런 이야기들이야말로 생명의 모습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책을 좋아하고요.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산문인 「소멸하지 않고」의 마지막 문단을 조금 낭독하면서 책 소개를 마칠까 합니다.
“누구든 모두 떠나는 법이야.” 아버지가 조용히 말한다. 나는 아버지가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슬퍼할 필요는 없어. 좋은 걸 남겨두고 가니까.” _『생의 실루엣』 중에서
김호경 저 | 작업실유령
석사 논문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에요. 석사 논문의 원래 제목은 '스트리밍 시대 새로운 음악 감상 방식의 출현과 그 의미 연구'입니다. 김호경 저자는 클래식 음악 전문 기자로 활동했고 『아무튼, 클래식』이라는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작사가로도 활동을 하셨어요. 김윤아, 하성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승희(오마이걸)의 곡 가사를 쓴 적이 있다고 합니다.
석사학위 논문 제목을 말씀드렸는데 ‘스트리밍 시대에서 어떤 방식으로 음악을 감상하고 그리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 대해서 쓴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자가 기본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건, 이제까지의 음악 예술 분야에서 평론가라든지 학자들이 음악 자체가 얼마나 미학적인가를 분석해 왔거나 아니면 음악 산업이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가의 측면에만 집중을 해왔다면, 감상 환경이 변화하는 흐름 자체에 대해서는 학내에서나 혹은 어떤 평론 내에서 별로 이야기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감상 환경이 변화하는 이 부분을 좀 다루고 싶다, 라고 서론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음악 듣는 환경이 바뀌어서 MP3와 CD보다는 스트리밍이 대세가 되었잖아요. 그리고 이제는 스트리밍을 넘어서 플레이리스트가 대세가 되고 있죠. 다들 유튜브에서 플레이리스트를 한 번씩은 경험해 본 적이 있으실 것 같은데, 저자는 개별 곡보다는 플레이리스트가 더 힘이 세지고 각각의 곡의 음악가보다는 편집하는 큐레이터의 능력이 더 큰 권력을 가지게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상자가 음악을 판단하는 데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서 ‘활기찬 아침을 위한 음악’ 같은 플레이리스트가 있다면,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활기찬 아침을 위해서는 이런 장르의 음악을 들어야 된다고 판단하게 된다는 거죠. 감각 경험 자체가 다른 사람하고 비슷해지는 효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퇴근길의 칠 아웃’ 같은 플레이리스트를 들었을 때, 모든 사람들이 퇴근하면서 비슷한 느낌의 곡을 듣게 된다면, 그 사람들의 감각에서 ‘퇴근길에 이런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져’라고 균일화된다는 거죠.
국내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채널의 문화도 잠깐 언급을 하게 되는데요. 유튜브에 보면 플레이리스트 채널이 굉장히 많거든요. <예스티비>에도 있습니다. 이런 소설을 읽을 때는 이런 분위기의 곡이 어울린다, 라고 해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놓은 게 있어요. 그런데 (저자는) 개인 채널들은 마치 살롱처럼 소비가 된다고 보고 있어요. 채널 운영자와 이용자 사이에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는 어떤 순간이 있다는 거죠. 마치 살롱에 초대된 것처럼. 전체적인 예시가 그런 거예요. 요새 플레이리스트 제목을 보시면 ‘첫사랑 썰 푸는 곳’ 이런 식으로 되어 있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와서 댓글로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해요. 마치 방에 모여서 다 같이 뭔가를 마시면서 웃고 떠드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노는 문화가 형성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점을 봤을 때, 이제까지의 보수적인 미학으로 봤을 때 음악은 음악가가 하는 것이고 청자들은 조용히 앉아서 감상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그것이 함부로 흐트러지고 있는 거죠. 어떤 음악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것을 만들었는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청자가 어떤 식으로 이것을 유희할 것인가’로 넘어가고 있는 순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이렇게 어떤 현상에 대한 학문적인 설명 같은 것들이 주로 나오고요. 중간쯤 가면 플레이리스트를 즐겨 듣는 사람의 인터뷰가 나옵니다. 어떤 때 플레이 리스트를 듣고, 왜 이런 걸 듣고, 그것을 들었을 때 자신의 경험이 어땠고, 그 상황이 어땠는가, 이런 것을 인터뷰를 하게 되고요. 저자는 이 책에서 플레이 리스트가 좋다, 나쁘다, 라고 이야기하진 않아요. 플레이리스트는 이런 경향이 있고,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음악을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즐기게 된 이유는 어떤 철학자의 개념을 빌리면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고 저런 문화 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고 플레이리스트 문화 자체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유안 저 | 민음사
프론트 오피스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호텔의 업무 전반을 다 관리하는 부서’를 백 오피스라고 부른대요. 이 소설에는 호텔리어가 등장을 하는데요. ‘강혜원’이라는 인물입니다. 퀸스턴 호텔의 백오피스 지배인이에요.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를 한 지 4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승진을 하지 못했고, 입사 동기들은 자신보다 높은 직급으로 승진을 한 상태예요. 그래서 강혜원에게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만한 큰 건이 절실하고, 자신이 일하는 퀸스턴 호텔에서 기업이 큰 행사를 열 수 있도록 유치하려고 합니다.
소설에 태형그룹이 등장하는데, 석유를 생산해서 돈을 버는 에너지 그룹이에요. 굉장히 큰 대기업이고요. 시대가 바뀜에 따라서 신재생 에너지 기업으로 이미지를 변화하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달라진 이미지를 알리는 행사를 큰 규모로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를 강혜원이 듣게 돼요. 그래서 ‘우리 호텔에서 행사를 열 수 있도록 (계약을) 따오겠어’ 하고 준비를 합니다.
이 행사를 잘 마치고 싶어 하고 참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강혜원 만이 아니에요. 다른 두 명의 여성이 더 등장하는데요. 이 소설은 그 세 명 여성들의 이야기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임강이’라는 행사 기획자예요. 아티스틱이라는 기획사에서 일을 하는데, 회사 상황이 어려워요. 굉장히 소규모 회사거든요. 지금 존폐가 걱정되는 상황이고 임강이는 어떻게든 회사를 살리고 자신도 살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태형그룹의 행사 소식을 듣고 ‘입찰을 따내야 된다’는 생각으로 엄청 열심히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비보가 들려와요. 태형그룹의 비리 관련 뉴스가 터집니다. 그래서 임강이는 좌절해요. 그런데 우려와 달리 태형그룹이 행사를 진행하겠다고 하고, 임강이는 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강혜원과 임강이 만큼이나 행사를 잘 치러내고 싶은 또 한 사람은 ‘홍지영’입니다. 태형그룹의 기획실에서 일하는 직원이에요. 태형그룹이 친환경 이미지로 바꿔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홍지영이었어요. 그런데 홍지영에게는 아주 빌런 같은 상사가 하나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오균성’이에요. 홍지영의 아이디어를 가로채고 마치 자신의 공로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태형그룹은 비리 사건이 보도된 상황에서 이 행사에 더 사활을 걸게 돼요.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야 하고 기업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게 되게 중요한 시점인 거죠. 그래서 행사의 규모를 더 키웁니다. 강혜원, 임강이, 홍지영은 각자 다른 이유로 이 일을 정말 잘해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모여서 같이 일을 하게 되는데요.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임강이가 자신이 속한 회사 아티스틱으로 입찰에 참여를 해요. 그 현장에서 홍지영은 임강이를 처음 만납니다. 그리고 홍지영은 현장에서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매긴 것을 다 봤어요. 그런데 다음날 보니까 결과가 바뀌어 있는 거예요. 오균성이 너무 의심이 돼서 뒷조사를 해보는데요. 결국 입찰에서 선정된 업체는 인터스라는 곳인데, 기획사들 중에서 굉장히 대형이고 파워가 있고 오랫동안 잘해온 회사예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오균성이 계속 인터스만 채택했던 흔적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인터스의 홈페이지에는 오균성이 비상임 고문으로 올라와 있는 거죠. 그래서 홍지영이 고민을 합니다.
이렇게 위기를 겪으면서 세 여성이,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위기를 타개해 나가는지, 그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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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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