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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의 창작과 독서] 마구 집어넣다보면 언젠가는 (2)

<김초엽의 창작과 독서>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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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란 무엇인가’ 질문에 당황하기를 여러 번, 그러니 앞으로도 인터뷰든 강연이든 수백 번은 들을 법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며칠이면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인 줄 알고. 큰 착각이었다. (2022.04.20)


SF 작가도 모르는 사이언스 픽션

“작가님도 알다시피 SF라는 장르가 아직 국내 독자들에게는 많이 낯설잖아요. 일반 소설을 쓸 수도 있을 텐데 하필 SF를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SF라는 장르가 어떤 건지 한번 소개 부탁드립니다.”

데뷔 직후 정말 많이 들은 질문이었다. 인터뷰에서도, 북토크나 강연을 해도 절대 빠지지 않았다. 왜 SF를 쓰냐니, 데뷔 전까지는 그런 질문을 스스로 해본 적이 없었다. 너무 단순한 이유여서였다. 어릴 때부터 과학이 좋았고, 과학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좋았고, 그런 걸 찾아다니다보니 SF가 좋아졌고, 마침 소설 습작을 시작한 시기에 SF를 쓸 기회들이 생겨났다. 아마 다른 작가들도 그다지 특별한 이유는 없을 것이다. 소설을 취미로 쓸 때는 SF를 쓰든 판타지를 쓰든 ‘그걸 좋아하시나봐요’ 하고 납득했을 텐데, 취미로 쓰던 글로 데뷔하게 되면 갑자기 ‘좋아서요’ 이상의 그럴싸한 대답을 생각해내야 하다니.

더 난감한 질문은 그다음이었는데, SF가 무엇인지 소개해달라는 질문이었다. 예전에는 인터뷰를 당한 적도 해본 적도 거의 없으니, 다들 평소에 이런 질문을 받고 사는 건지 알 수가 있나. 원래 소설가에게는 소설이란 무엇인가, 시인에게는 시란 무엇인가, 무용가에게는 무용이란 무엇인가, 래퍼에게는 힙합이란 무엇인가 묻는 걸까……(써놓고 보니 정말 묻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대개 그런 질문이 당신에게 소설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하고 개인적 의미를 묻는 듯한 반면 ‘SF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말 그대로 ‘우리가 아직 SF가 어떤 건지 잘 모르겠으니 설명해주시죠’처럼 들려서 더욱 곤란했다. 음, 제가 SF소설로 데뷔하긴 했지만, 사실 SF가 뭔지는 잘 모르는데요……. 그렇게 솔직하게 대답하면 기사에 뭐라고 나갈지 걱정스러웠다. ‘SF란 무엇인가’ 질문에 당황하기를 여러 번, 그러니 앞으로도 인터뷰든 강연이든 수백 번은 들을 법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며칠이면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인 줄 알고. 큰 착각이었다.

데뷔 이후 반년 정도 나는 발표 기회도 의뢰도 몇 없는, 반백수 처지였으므로 ‘SF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료를 찾으며 보낼 시간이 많았다. 먼저 국내 SF 작가들의 인터뷰를 죄다 찾아 읽었다. 다른 신문기사와 채널예스 등 웹진의 인터뷰도 유용했지만 특히 ‘환상문학웹진 거울’에 정리된 인터뷰가 소중한 자료였다. 지난 이십 년간 비슷한 질문, 그리고 반복되는 질문에 작가들이 고민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왜 SF를 쓰고 있냐는 질문에는 특별히 SF를 쓰려고 한 건 아닌데 쓰다보니 SF로 분류되더라는 답이 많았고, SF를 정의하는 말도 작가마다 제각각이었다.




국내 SF 작가들의 인터뷰를 잡히는 대로 읽은 다음에는 구글에서 ‘Science Fiction’에 대한 문서를 찾았다. 위키피디아부터 SF 사전, SF 매거진, SF 리뷰 블로그, SF 칼럼을 차례대로 읽었다. 지금은 『에스에프 에스프리』나 『SF 연대기』처럼 SF 비평이론을 상세히 소개하는 좋은 번역서가 나와 있지만 그때만 해도 단행본으로는 찾기 쉽지 않았다. 파편화된 자료와 쏟아지는 SF의 정의 앞에서 혼란스러웠다. SF는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장르일까. 경이감이라는 감정이 핵심일까. 인지적 소외의 문학일까. 세계의 변화를 다루는 장르일까. 과학적 요소가 전혀 나오지 않아도 그것을 과학적 태도로 접근한다면 SF인 걸까. 작가가 그것을 SF라고 부르면 어쨌든 SF일까. 그럼 작가가 SF가 아니라고 하면 아니게 되는 건가.

대부분의 정의가 그럴싸했고,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한편으로는 그 정의에 들어맞지 않는 작품을 하나쯤 생각해낼 수 있었다. 수많은 작가와 평론가가 자신이 생각하는 SF를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표현을 앞세웠고, 그 모든 것이 SF인 게 맞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다면 결국 SF를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남았다.

그 시기에 SF의 정의에 대한 자료뿐만 아니라 SF 단행본들도 하나씩 독파해나갔다. 나는 <닥터 후>와 몇 개의 게임 시리즈, 일부 SF 작가의 팬이었을 뿐 SF 장르 매니아는 아니었으므로, 그전까지 내가 접한 SF는 매우 한정적이었다. 출간된 번역서와 국내 SF를 가능한 사들여 책장에 꽂았고, 다양한 시대의 작품을 접해보려고 했다. 황금기의 SF, 아시모프와 클라크, 하인라인, 뉴 웨이브, 1960년대, 1970년대, 분명한 흐름을 정의할 수 없는 20세기 후반에서 동시대 작품까지. 취향에 맞지 않는 작품도 있었지만, SF를 쓰기 위해 진작 했어야 할 공부를 지금 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재미있었다. 내가 좋아할 수 없는 작품에서도 반드시 배울 점은 있었다.

그렇게 읽다보니 SF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왜 그렇게 답하기 어려운 것인지 알 것 같았다. SF는 만질 수도 있고 모양을 빚을 수도 있지만 결국은 정형화할 수 없는 액체괴물과 비슷했다. 그 특징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틀에 가둘 수는 없었다. 무엇을 SF로 볼 것인지의 문제는 거의 항상 논쟁적이었고, 때로는 정치적이었다. 후대의 SF는 이전의 SF를 잇기도 하고 뒤집기도 하면서 장르의 영역을 계속해서 확장해왔다. 그럴싸한 답을 찾기 위해 시작한 여정은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명확한 SF의 정의는 없다’는 모호한 결론에 도달했다.

여전히 나는 SF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답하려고 머리를 굴리는 과정에서, SF 작가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밑천을 만든 셈이었다. 데뷔 직후에 나는 ‘도대체 이게 무슨 SF소설이냐’라는 말이 약간 신경 쓰였는데(재미있게도 이 말은 작품에 대한 칭찬으로도 멸시로도 쓰인다) 그 몇 달을 지나면서 나는 내가 쓰는 글들이 SF라는 폭넓은 세계의 어느 언저리쯤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가 뭐래도 이 소설은 이 장르 세계의 일부였다.

첫 소설집을 쓰면서 나는 SF의 고전적인 테마들을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일에 도전해보았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퍼스트 콘택트, 신체에 침입하는 외계 생명체, 마인드 업로딩, 사이보그. 이런 테마들은 오랫동안 SF 장르 내에서 사랑받았고 수많은 이야기로 다시 쓰여왔다. 첫 소설집의 단편들을 쓰면서 기존 SF작품들이 각각의 테마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갔는지 파악하려고 했고, 약간이라도 변주하려고 했다. 앞선 작품들이 없었다면 이 단편들도 결코 쓸 수 없었을 테니, 첫 소설집의 단편들이 독창적이라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나는 그 단편들을 좋아하고, 각각의 테마에 나의 고유한 무언가를 더해보려고 노력한 것도 맞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석사논문 정도의 독창성이라고 할까.

그래도 나는 이 소설집을 쓰면서 내 작업이 명확한 SF 장르의 계보 위에 있음을 알았고, 그렇기에 무엇을 참고해서 어디로 뻗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대략적인 지도를 얻을 수 있었다. 그건 첫 소설집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성과였다. 언젠가는 그 지도 밖으로 완전히 나가보는 것 또한 새로운 과제가 될 테지만.





몇 년이 지나면서 이제 SF 작가들은 예전만큼 ‘SF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듣지 않는다. 그런 질문을 들었을 때 “저는 잘 모르지만 이걸 한번 읽어보세요” 말하며 내밀 책들도 늘어났다. 본격 SF비평서뿐만 아니라 작가들이 각자 SF를 어떤 장르로 생각하는지 살필 수 있는 에세이도 많다. 어슐러 K. 르 귄의 『밤의 언어』나 마거릿 애트우드의 『나는 왜 SF를 쓰는가』를 추천할 수도 있고, 좀 더 가까운 이야기로 느껴지는 배명훈의 『SF 작가입니다』를 건넬 수도 있다. 다양한 SF가 소설을 비롯해 여러 매체로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이것도 SF고 저것도 SF구나, 하고 익숙해진 이가 많은 것 같다. 잘된 일이다.

그래도 나는 SF를 쓰려는 사람들에게는 ‘SF란 무엇인가’의 미로 속에서 한번 길을 잃어보는 것이 가치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그 시간은 가치 있었다. 결국 구체적인 이야기는 길목마다 하나하나 부딪혀가며 써야겠지만, 내가 앞으로 탐험할 너른 세계를 흐릿하게나마 그려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에스에프 에스프리
에스에프 에스프리
셰릴 빈트 저 | 전행선 역 | 정소연 해제
arte(아르테)
SF 연대기
SF 연대기
셰릴 빈트,마크 볼드 공저 | 송경아 역
허블
밤의 언어
밤의 언어
어슐러 크로버 르 귄 저 | 조호근 역
서커스출판상회
나는 왜 SF를 쓰는가
나는 왜 SF를 쓰는가
마거릿 애트우드 저 | 양미래 역
민음사
SF 작가입니다
SF 작가입니다
배명훈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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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초엽

소설가. 1993년생. 포스텍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쓴 책으로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원통 안의 소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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