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초고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이용재 작가 인터뷰
수학의 ‘영원함’에 끌렸어요. 수학적으로 증명된 정리는 결코 뒤집히지 않잖아요? 그 진리의 절대성에는 매력을 넘어 신비함이 있어요. (2022.04.06)
탈북한 천재 수학자가 신분을 감춘 채 고등학교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수학을 포기한 학생을 만나 벌어지는 감동 드라마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대한민국 대표 배우 최민식의 스크린 귀환으로 일찍부터 관심을 모았다.
각본집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초고를 함께 실어 작가가 쓴 장면들을 배우와 감독이 어떻게 취사 선택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영화에 담기지 않은 부분과 영화와 상당히 다른 부분을 별도 표기했다.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즐길 수 있다.
출판 시장에 드라마 대본집은 많이 나와 있는데 영화 각본집은 귀한 책이긴 합니다. 이번에 초고를 함께 실은 독특한 각본집을 출간하셨는데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어디서 소재를 얻어 작업을 하게 되신 건가요?
머릿속에 두서없이 흩어진 장면들이 있었어요. 탈북한 의사가 남한에서 고층 건물 유리창 청소를 하다가 추락사한 사고, 강남 모 고교 교사가 시험답안을 제 자식에게 유출한 사건, 특목고에서 대학 진학을 포기한 사배자 학생의 이야기 같은 거죠. 기사 스크랩이거나 직접 들은 이야기 조각들이었는데 어느 순간 맞아떨어지면서 각본의 얼개가 됐어요. 물론 수학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훨씬 전부터 있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수학을 소재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특별히 수학을 소재로 삼은 이유가 있으실까요? 선생님은 수학을 좋아하시나요?
수학을 좋아했어요 (수학이 저를 싫어했다는 게 함정이겠네요). 이번 각본집 말미에도 소개했지만, 수학 관련 교양서를 틈틈이 읽으면서 수학자에 대한 경외감이 자랐고,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 수학자를 주인공으로 세워둔 거 같네요. 수학의 ‘영원함’에 끌렸어요. 수학적으로 증명된 정리는 결코 뒤집히지 않잖아요? 그 진리의 절대성에는 매력을 넘어 신비함이 있어요. 당장의 쓸모에 연연하지 않고 절대 진리에 헌신하는 사람들, 왠지 멋있지 않나요?
각본집을 보신 독자들이 영화에서의 모호함이 풀리기도 하고, 각본집이 읽어보니 영화보다더 감동적이다라는 평을 남겨주셨어요. 선생님께서는 영화를 관람하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상업 영화는 2시간 안에 마무리돼야 한다는 점이 안타까웠어요. 시간 제약 때문에 빠지거나 압축된 장면이 많으니까요. ‘전반부는 좋았는데 후반부가 별로’라는 관람평이 많은 이유에요. 무삭제 각본과 영화를 비교하면 대략 30개 가까운 장면이 생략됐는데, 그중 2/3가 후반부에서 빠졌어요. 제가 각별히 애정을 기울였던 인물(지우 친구인 딸봉)의 이야기가 통째로 편집되기도 했죠. 그러다 보니 독자에 따라 영화보다 각본이 더 찬찬하다 느끼실 수 있을 거 같네요. 한 10분만 더 길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보통 각본을 쓰는 작가님들이 머릿속에 캐스팅할 배우를 염두에 두시기도 하는데...작가님이 생각하신 이학성 역할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감히 캐스팅을 염두에 두진 않았지만 집필 내내 컴퓨터 바탕화면에 띄워놓은 사진 속 주인공이 바로 최민식 배우였죠. 45도쯤 옆으로 앉아 눈을 내리깐 흑백 사진이었어요. 최민식 배우의 긴 속눈썹이 잘 드러난 얼굴이었는데, 그 사진을 보며 사연 많은 중년 사내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최민식 배우가 출연을 결정했다는 소식에 기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제가 바탕화면에 띄워두었던 사진은 공교롭게도 포스터 사진(책 표지에도 쓰인)과 포즈도 아주 비슷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통해 작가님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두 가지예요. 하나는 수학은 배워 뭐에 쓰느냐는 볼멘소리에 답하고 싶었죠.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수학도 뭐에 쓰려고 배우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배우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거죠. 논리적 사고력을 키운다는 식의 실용성 말고, 뭔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집요한 시도, 거기서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용기, 그런 걸 익히는 게 수학이란 얘기가 하고 싶었어요.
두 번째는 과도한 자기 연민에 대한 경계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나(와 우리 가족)만 불쌍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너무 강한 것 같아요. 타인에 공감하거나 남을 동정할 여유는 없죠. 부와 지위를 향한 노골적인 욕망과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향한 암묵적인 혐오가 공존하는 각박한 사회죠. 과도한 자기 연민에서 벗어날 때 다른 이의 슬픔이 보인다는 것, 슬픔을 함께 나누고 서로 다독일 때 스스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써놓고 보니 퍽 거창하네요.
신문 기자 출신이세요. 작가로 전향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구체적인 계기라면 방송국 드라마 공모에 당선된 것이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논픽션의 세상과 픽션의 세상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착각 또는 오만 탓입니다. 글이란 게 거기서 거기지, 라는 생각으로 픽션을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후회막급(?)입니다. 흔히 픽션을 ‘있을 법한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잘 쓴 픽션은 삶의 단면을 통해 세상의 전모를 보여주지요. 그 길이 엄청나게 험난하단 걸 아주 조금, 뒤늦게 깨닫는 중입니다.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를 최선을 다해 쓰다 보면 목적지에 조금은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음번 영화라고 해야 할까요? 단행본으로 독자들을 만날 계획이 있으신가요? 단행본으로 독자를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계획일까요?
TV 연속물 한 편, 장편 영화 한 편을 써둔 게 있는데 모두 각본 형태로 제작사와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영상으로 완성물이 나오기 전에 단행본으로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새로 구상 중인 이야기는 소설로 쓸 작정입니다. 매우 인간적인, 그래서 인간적인 약점까지 가진 로봇이 주인공인데요. 독자들과는 그 이야기로 만나 뵙게 되겠네요.
*이용재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 증권사로 옮겨 파생상품을 거래했다. 재직 중 KBS 미니시리즈 공모에 당선, 늦깎이 작가가 됐다. <미두, 일확천금의 전설>로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오리지널 각본 가운데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가 처음. 시나리오 외에 소설, 논픽션 쪽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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