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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TOMBOY : 여자아이들 (G)IDLE ‘TOMBOY’

여자아이들 (G)IDLE ‘TOM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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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을 따라 둥둥 떠다니는 저항은 결국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를 찾아가 시너지를 낸다. 그것은 때로는 음악적 진정성으로, 때로는 애티튜드로 발현된다. (2022.03.17)

큐브엔터테인먼트 제공

얼마 전 한 동료 음악 평론가가 넋두리처럼 말했다. ‘왜 너바나(Nirvana)’가 아니라 앨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일까요?’ 오랫동안 음악을 들어온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질 만한 의문이다. 21세기 들어 록 음악의 기세가 꾸준히 내리막이었다는 건 이제는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운 진실이다. 수십 년간 젊음과 반항의 최전선에 서 있던 록 음악의 긍지도 그만큼 내리막을 탔다. 대형 음악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는 힙합과 소울, 전자음악가들 차지가 되었고, 재능 있는 젊은이들은 기타나 베이스 대신 모듈러와 시퀀서를 잡았다. 시대를 평정할만한 대형 록스타 하나 나오지 않는 것도 억울한데 구세대 음악 취급까지 당하다니. 그런데 이제 와 록 음악이라고? 그것도 너바나도 아닌 앨라니스 모리셋?

아무리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이 질문의 설득력 있는 답은 결국 이것이 애티튜드의 문제라는 결론을 내려야만 나온다. 장르적 탐구나 회귀, 록 마니아들의 상처 받은 긍지는 아무래도 좋다. 그래야 말이 된다. 1년 2개월 만에 첫 정규 앨범 <I NEVER DIE>로 돌아온 (여자)아이들의 타이틀 곡 ‘TOMBOY’도 그 영향 아래 있다. 노래는 핏빛에 물든 것처럼 온통 새빨간 화면을 가르고 나타난 민니의 단호한 선언으로 시작된다. ‘넌 못 감당해 날’. 각종 누아르 영화를 연상시키는 배경을 바탕으로 한 사람씩 등장하는 전반부는 말 그대로 누구도 쉽게 감당 못 할 기세 그 자체다. 서서히 끓어오른 노래는 ‘I’m a Tomboy’라는 주문으로 파워를 최대로 끌어올린다. 관사 ‘a’와 ‘Tomboy’ 사이 들어간 삐 처리 안에 어떤 단어가 숨어 있을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것이다.

뒤이어 이어지는 노래는 후렴구로 한 번 터진 강렬한 기타 리프를 중심으로 마지막까지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올해 초 록의 재림을 희망적이고 밝은 터치로 풀어낸 예나의 ‘SMILEY’와는 또 다른 접근방식이다. 비비의 피쳐링으로 강약을 조절한 ‘SMILEY’의 로킹함에 비해, ‘TOMBOY’의 그것은 더 저돌적이고 나아가 노골적이다. 좀 더 깊게 파고 들어가자면 앞서 언급한 음악계 흐름의 주역으로 흔히 소환되는 앨라니스 모리셋과 에이브릴 라빈보다는 불세출의 여성 기타리스트 조안 제트가 10대 시절 활약한 70년대 밴드 더 런어웨이즈(The Runaways)나 커트니 러브가 리더로 이끌었던 90년대 밴드 홀(Hole)의 느낌이 더 강하다. 한마디로 더 뜨겁고, 강하고, 자극적이며, 제멋대로다.


큐브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폭발력은 두 개의 분명한 축에서 나온다. 하나는 팀을 이끄는 프로듀서이자 리더 전소연, 또 하나는 지난 1년간 이 팀이 겪어 온 풍화다. 데뷔 당시부터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앨범마다 작곡에서 랩, 퍼포먼스까지 전방위로 활약하며 ‘전소연이 전소연했다’는 감탄을 끌어낸 소연의 마력은 이번 앨범에서도 넘치게 유효하다. 타이틀곡 ‘TOMBOY’는 물론 앨범 전체를 감싸 안은 검붉은 빛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 건 여성 아이돌, 나아가 여성 뮤지션이 넘어설 수 있는 한계의 역치를 시험하는 듯 보이는 전소연의 활약 덕이 크다. 

‘화’를 일으키는 데는 데뷔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이들은, 지난해 그룹 안팎을 뒤흔들었던 소란스러운 이슈를 외면하기보다는 그대로 삼켜내며 보다 크고 뜨거운 불꽃을 뿜어내기로 결심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죽지 않아(I NEVER DIE)'라는 앨범 제목부터가 그렇고, 데뷔곡 ‘LATATA’의 ‘누가 뭐 겁나’가 ‘지금 우리가 딱 하고 싶은 말인 것 같다’는 소연의 말이 그렇다. 돌아보지 않고, 자꾸만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내 외면의 소리에 저항하며 그저 앞으로 나아간다. 

70년대에도, 90년대에도, 2020년대에도 세상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특히 여성과 여성 뮤지션에게는 더욱더 그렇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 둥둥 떠다니는 저항은 결국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를 찾아가 시너지를 낸다. 그것은 때로는 음악적 진정성으로, 때로는 애티튜드로 발현된다. 그래서 지금은 너바나가 아닌 앨라니스 모리셋이다. 그래서 죽지 않는 ‘TOMBO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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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등 각종 온·오프라인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KBS, TBS, EBS, 네이버 NOW 등의 미디어에서 음악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네이버 온스테이지와 EBS 스페이스공감 기획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TBS FM 포크음악 전문방송 <함춘호의 포크송> 메인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한마디로 음악 좋아하고요, 시키는 일 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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