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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솔의 적당한 실례] 제물 바치기

<월간 채널예스> 202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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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제물을 바치는 행위와 비슷했다. 가장 중요한 일들은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일어나고, 그것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스울 정도로 적었다. 보이는 것을 손에 쥐고 그저 비는 수밖에. (2022.03.02)

언스플래쉬

그의 목소리는 허탈할 정도로 전형적이다. “내가 어제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이거든. 사람도 몇 죽였어. 근데 나오니까 돈이 없네. 그래서 길 가던 당신 엄마를 좀 납치했어.” 범죄 영화에서 보고 들었던 조폭의 그것과 놀랍도록 같았다. 웃음을 참아야 할 정도였다. 그런 때에 웃으면 곤란하다. 그 목소리가 내 전화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휴대폰에 표시된 발신인은 ‘어무니’. 분명 엄마로부터 온 전화였다. 그러니까 영락없이 조폭 목소리를 가진 낯선 남자가 우리 엄마를 납치 감금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당신 지금 회사지?” 순간 머릿속에 수만 개의 생각이 스쳐 가고, 나는 답한다. “네.” 실로 많은 이가 직장에 있을 평일의 오후, 나는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목욕탕의 로커룸에 서 있었다. 휴대폰을 쥔 손가락 끝이 살짝 불어있었다. 여느 때보다도 길고 여유로운 목욕을 기분 좋게 마치고 나온 참이었다. 티끌 없이 깨끗한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나를 이루는 가장 작은 원에는 그녀와 내가 있었다. 나의 세계는 거기서부터 뻗어 나갔다. 우리에게는 이런 사태를 대비해 정해둔 세이프 워드가 있었다. 내가 태어난 날과 주민등록상의 날짜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아주 소수의 사람만 아는 나의 진짜 생일을 말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 엄마로 추정되는 여자의 굉음과도 같은 통곡 소리가 울려 퍼지자 감히 “내 생일이 언제야?”라고 물을 수 없었다. “잘 들어, 아가씨. 이 아줌마 목숨은 당신 손에 달렸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당장 3000만 원 현금으로 준비해 와.” 3000만 원이라는 돈이 그때만큼 적게 느껴진 적이 없다. “전화 끊지 말고. 경찰에 신고하면 네 엄마 목에 가위 꽂힌다.” 순간 눈앞에 목에 가위가 꽂힌 엄마의 모습이 스쳐 갔다. 바로 그 순간 든 생각은 이것이다.

‘아, 연재는 어떡하지.’

구독료를 받고 이틀에 한 번씩 글을 발송하는 <격일간 다솔> 연재 프로젝트를 앞두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다이슨 에어랩을 구입한 것이다. 나는 믿었다. 책도 노트북도 연필도 아닌 이 헤어기기가 나를 쓰게 할 것임을. 이름하여 다이슨 에어랩 컴플리트. 그 기술이 대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엄청난 가격의 횡포를 부리는 수많은 상품 중 하나다. 중고 거래 사이트 당근마켓에 올라온 그것의 가격은 45만 원. 나에게 ‘저지른다’는 단어가 정확히 의미하는 값이었다. 그것을 사면 내 인생도 컴플리트 될 것만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고, 요란스러운 바람 소리를 내는 기계에 알아서 착착 감기는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모든 계획이 착착 실현되고 머리도 휙휙 돌아갈 것 같다는 묘한 확신을 얻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집 앞에 진을 치고 글을 기다리는 사람의 형체가 있지도 않았고, 내가 보내기로 약속한 글들은 아직 세상에 오기 전이었다. 모두 만져지지 않는 세계의 이야기였다. 그것이 당장 내 손을 달달 떨리게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손에 당차게 다이슨 에어랩을 쥐여주었다. 그것은 제물을 바치는 행위와 비슷했다. 가장 중요한 일들은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일어나고, 그것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스울 정도로 적었다. 보이는 것을 손에 쥐고 그저 비는 수밖에. 나는 마음 둘 곳 없는 밤마다 거울 앞에 앉아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머리를 휘휘 말았다. 어깻죽지 위로 떨어지는 탱글거리는 머리카락을 보며 생각했다. 이봐, 뭐가 컴플리트라는 거야.

“요즘은 바빠서 밥해 먹을 시간도 없겠어요?”라는 말에 “밥해 먹느라 바빠서 글 쓸 시간이 없어요.”라고 답하곤 했다. 글을 쓰느라 바쁘다고? 전국에 글 쓰는 사람들이 웃을 것 같다. 나는 유기농 협동조합 쇼핑몰의 채소 카테고리에서 호령한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다 주세요.” 냉장고는 언제나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이 차 있다. 신께서 뭘 먹고 싶어 할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예측할 수가 없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료를 다듬고 삶고 볶고 지지고 간을 본다. 불과 물과 칼이 오가는 그 위험천만한 순간에 글 생각을 하다간 손가락을 잃을 수도 있다. 머리카락을 홀랑 태워 먹을 수도 있고, 집 안이 연기로 자욱해질 수도 있다. 그 귀한 망각의 기회를 어찌 놓친단 말인가. 차려진 밥상을 보면 이 집에 식솔이 여럿 더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정도다. 신성한 제단 앞에 그릇을 가지런히 두고 빈다. “모쪼록 쓰기만 하소서.” 나에게 하는 말이다. “이거 엄청 맛있네.” 이 역시 나에게 하는 말이다. “솜씨가 보통이 아냐.” 칭찬 일색이다.

잘 먹고 나서 써지면 다행이다. 그도 안 되면 목욕재계를 해야 한다. 이것은 최후의 의식이다. 목욕탕에 다녀왔는데도 안 써지면 그야말로 비상사태다. “너희 엄마 지금 내 앞에서 놀고 있는데?” 엄마네 바로 옆집 사는 이모와의 전화 한 통으로 납치 사건은 막을 내렸다. 새로 생긴 휴대폰 해킹 수법이라는 모양이다. 때마침 엄마 옆에는 이웃이, 내 옆에는 친구가 있던 것이 천운이었다. “푸하하하, 무슨 그런 새끼가 다 있니!” 엄마의 천진한 목소리를 들었을 즈음에는 기쁨과 풀린 긴장으로 벅차 그야말로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아직 전화를 끊지 않은 조폭과 스피커폰으로 전환하여 삼자 통화를 하자고 제안했다. “고추를 순대처럼 썰어 먹을 놈아!”는 엄마의 말이다. 아무도 죽거나 다치거나 썰리지 않았으니 다행이었지만 집으로 돌아온 내 몸과 마음은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3000만원어치 얼이 빠진 기분이었다.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10분 뒤 커다란 것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항상 갖고 싶었으나 엄두도 못 내던 스피커였다. 내 머릿속 전광판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2900만 원.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그곳으로부터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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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양다솔(작가)

글쓰기 소상공인. 에세이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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