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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의 K열 19번] 사장님은 지지 않는다 - <굿 보스>
아버지 같은 보스라는 허울
‘우리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진부한 수사가 블랑코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바로 그 순간, 공장 밖에서 소란이 벌어진다. (2022.02.17)
손희정의 K열 19번 : 코로나와 OTT의 시대에도 극장에 대한 사랑은 계속된다. 극장에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즐거움과 시시함이 있다고 믿는다. 'K열 19번'은 우리가 언젠가 한 번 쯤은 앉아보았을 좌석이다. 극장 개봉 영화를 소개하는 지면에 딱 어울리는 제목 아닌가. |
저울을 제작, 판매하는 중소기업 ‘블랑코 스케일즈’의 조회시간.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이는 블랑코 사장(하비에르 바르뎀)이 아침 댓바람부터 직원들을 모아놓고 공치사를 늘어놓고 있다. 그는 블랑코 스케일즈가 지방정부에서 선정하는 우수기업상 최종 후보에 오른 사실을 알리며 “모두 여러분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심사위원단이 공장 실사를 나올 때까지만 좀 더 파이팅해보자고 독려한다.
“심사위원들이 방문해서 블랑코 스케일즈에서 일하는 게 어떠냐고 물으면, 사실대로 말하세요. 끝내준다고요. 블랑코씨는 우리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말이죠. 여러분은 내 자식이에요. 여러분이 좋으면 나도 좋습니다.”
‘우리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진부한 수사가 블랑코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바로 그 순간, 공장 밖에서 소란이 벌어진다. 얼마 전 정리해고로 회사에서 쫓겨난 해고노동자 호세(오스카 데 라 후엔테)다. 그는 아이들까지 데리고 나타나 복직을 요구한다. 블랑코는 호세의 호소를 묻어버리려는 듯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가족을 위해서 때로는 (해고와 같은)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합니다.” 노동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해고노동자와 사장 사이에 불협화음이 펼쳐진다. 이는 우수기업상을 향한 길이 그저 꽃길만은 아닐 것이라는 불안을 자아낸다. 그렇게 생긴 균열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커지고, 깊어지고, 흉해진다.
블랑코는 나름 직원들을 ‘가족’같이 여기면서 ‘가장’ 노릇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굿보스’다. 블랑크 스케일즈의 오래된 직원이자 블랑코 집에서 잡일을 돌보는 포르투나(셀소 부가요)의 아들이 사고를 치고 구치소에 들어가자, 블랑코는 직접 나서서 그를 꺼내준다. 아들은 “너네 집으로 돌아가라!”며 아랍인을 폭행한 참이다. 뿐만 아니다. 아내와의 불화로 회사 일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미랄레스(마놀로 솔로)를 위해 직접 그의 아내 오로라를 찾아가 “남편과 사이좋게 지내라”며 훈수를 두기도 한다. 이제 막 근무를 시작한 젊은 인턴 릴리아나(알무데나 아모르)를 차에 태워 숙소까지 데려다주는 친절을 베푸는 것은 덤이다. 물론 “딸같아서 그런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 머리 위엔 물음표가 뜰 것이다. “응? 이런 사람이 굿보스라고?” 그렇다. 그의 행동은 21세기의 상식에는 전혀 걸맞지 않으며, 이 모든 것이 이미 부적절하다. 영화 제목 ‘굿 보스’는 노골적인 조롱이다. 블랑코 스케일즈라는 세습 중소기업에서 블랑코는 ‘사장=아버지=왕’으로 군림한다. 그러므로 직원을 “내 아이들”처럼 돌보는 태도는 이내 회사 경영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해고하는 부당한 기업 운영으로 이어진다. 왕 자리에 있을 때에야 발휘되는 시혜적인 태도의 이면은 가혹한 갑질이다.
블랑코는 부당한 것을 정당한 것으로 포장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귀재다. “무게를 재기 위해서는 저울도 속여야 한다.” 블랑코의 아버지였던 선대 ‘블랑코 사장’이 남긴 말은 블랑코의 인생철학이다. (그러나 사실상 누구도 그 말에 속지 않는다. 다만 속는 척 할 뿐이다.) 이런 마인드로 우수기업상 수상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려는 블랑코의 시도는 점점 더 진흙탕으로 빠져든다.
페르난도 레온 데 아리노아의 영화 <굿 보스>(2021)는 블랑코 사장이 우수기업상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약 열흘간의 시간을 따라간다. 월, 화, 수, 목, 금... 흐르는 시간 속에서 하루를 열흘처럼, 열흘을 하루처럼 사는 사장님은 결국 원하는 것을 성취해낸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신이 초래한 모든 불리한 상황을 우수기업상으로 가는 길을 닦는 벽돌로 사용한다.
영화를 보면서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2014)을 떠올렸다. 이 작품 역시 중소기업을 배경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사람의 시간을 따라간다. 하지만 <굿 보스>와는 사뭇 다른 시간을 보여주는데, 그건 바로 노동자의 시간이다.
지병으로 휴직했던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는 복직 직전 금요일에 해고를 통보받는다. 이 해고는 동료들의 투표 결과였는데, 그들은 산드라의 복직과 보너스 중 보너스를 택했다. 산드라가 항의하는 와중에 이 투표가 공정하기 못했다는 제보가 들어오자, 사장은 월요일 재투표를 결정한다. 산드라는 남은 시간 동안 동료들을 한 명 씩 찾아가 ‘자신을 위한 보너스’가 아닌 ‘동료의 복직’에 투표해 주기를 설득한다. 그러면서 동료들에게도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블랑코와 달리 산드라는 졌다. 복직에 실패하는 것이다. 블랑코와 산드라의 차이는 결과에만 있지 않다. 블랑코가 발버둥을 칠수록 더 추잡해지는 것과 달리, 산드라는 한 사람 한 사람 만날 때마다 조금씩 더 단단해진다. 그리고 패배를 인정한 순간 산드라는 남편에게 말한다. “여보, 우리 잘 싸웠지?” 두 영화에서 흐르는 시간은 모두 자본가의 승리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시간의 질은 사뭇 다르게 묘사된다.
<굿 보스>는 자본가의 속물성을 비판하는 블랙 코미디다. 그러나 위선보다 위악을 선호하고 나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악행도 선행으로 해석하는 시대를 살다보니, 블랑코가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계발서 속 모델처럼 받아들여질까봐, 조금 입맛이 씁쓸하기는 하다. 이런 염려에는 언제나 근사한 하비에르 바르뎀이 한 몫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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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미디어 연구X영상문화기획 단체 프로젝트38 멤버.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 이론을 전공했다. 『손상된 행성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 『페미니즘 리부트』 『성평등』 『다시, 쓰는, 세계』,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등을 썼고, 공저에 『21세기 한국영화』 『대한민국 넷페미사史』 『을들의 당나귀 귀』 『원본 없는 판타지』 등, 역서에 『여성 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 『다크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