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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준의 짧은 소설] 돌멩이

<월간 채널예스> 202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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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덩이에 동물들이 모여 서로를 경계하며 물을 마시고 있었다. 사자도 있었고 하이에나도 있었고 코끼리도 있었고 입을 벌린 악어도 있었다. 평화로워 보였지만 신씨는 긴장됐다. 한 번의 움직임만으로 어떤 동물은 목덜미를 물릴 것이다. (2022.01.03)


세신사 신씨는 문을 열고 탕내로 들어섰다. 고요하다. 텅 빈 목욕탕. 깨끗한 온수가 가득 찬 탕에서 희미하게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물기 없는 단단한 타일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발바닥에 느껴질 때 신씨는 미량의 염소가 섞인 물 냄새를 음미하며 심호흡을 했다. 폐가 크게 부풀어 올라 갈비뼈를 빡빡하게 밀어냈다. 호흡을 멈췄다. 눈을 감고 속으로 10초를 샌 뒤 후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짝짝. 손뼉을 두 번 친 뒤 허공을 향해 말했다.

“오케이. 오케이.”

티비 전원을 켜고 채널을 뉴스에 맞춘 뒤 볼륨을 크게 키웠다. 면봉 상태를 살피고 마른 수건으로 화장대 거울을 꼼꼼하게 닦아냈다. 화장지를 채워 넣고 휴지통이 비어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했다. 통통한 치약 두 개를 꺼내 입구 세면대에 올려뒀다.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오른쪽 다리를 바닥에 끌며 들어왔고 뒤이어 위아래로 까만 트레이닝복을 입은 청년이 통화를 하며 탈의실로 향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온 김 집사와 서 장로는 온탕에 들어가 눈을 감았고 서로를 꼭 닮은 늙은 남자와 더 늙은 남자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서로의 등을 밀었다.

“어이 신씨.”

바닥에 떨어진 칫솔과 타월을 줍던 신씨는 하던 일을 정리하고 침대로 걸어갔다. 오른쪽이 마비된 노인을 능숙하게 안아 침대 위로 올렸다. 수건을 알맞게 접고 장타월로 꼼꼼하게 두른 뒤 손바닥에 끼웠다. 따뜻한 물 한 바가지를 벌거벗은 몸 위로 부드럽게 끼얹었다. 노인 입에서 으으, 소리가 절로 났다. 손님이 없는 한가한 수요일 오전 11시. 신씨가 좋아하는 시간이다. 채널을 돌려 동물을 보며 고구마와 삶은 달걀을 먹었다. 아프리카의 벌판을 힘차게 뛰어다니는 가젤이나 높은 나무의 잎사귀를 뜯는 키 큰 기린을 보면 왜인지는 모르지만 기분이 좋았다. 푸시업 20개, 스쿼트 20개. 3세트를 한 뒤 제자리에서 1분 동안 전력으로 달리기를 했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몸에 열기가 올랐다. 서씨는 숨을 빠르게 내쉬며 창문을 열었다. 12월의 차가운 공기와 몸에서 나는 열기가 만나 안경이 뿌옇게 흐려졌다. 신씨는 안경을 벗어 티셔츠로 렌즈를 닦았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날아온 비행기가 서로를 스쳐 지나간 자리. 창백한 하늘에 X자 모양의 비행운이 남았다.

한 소년이 커다란 가방을 왼쪽 어깨에 걸치고 탈의실에 들어섰다. 누군가 발로 밟아 한쪽이 찌그러진 알루미늄 깡통처럼 소년은 왼쪽으로 기운 모습 그대로 느리게 걸었다. 헝클어진 머리는 지저분했고 흙밭에서 뒹군 듯 옷과 가방에는 흙과 진흙이 묻어 있었다. 소년은 배터리가 다 된 장난감처럼 팔다리가 삐걱거렸다. 수요일 오전 11시 20분에 목욕탕에 온 학생이라. 신씨는 신경이 쓰였다. 

소년은 온탕에 걸터앉아 복숭아뼈까지만 잠기게 발을 물에 집어넣고 웅크리고 있었다. 뼈마디가 피부 밑으로 드러나 보일 정도로 말랐고 또래에 비해 키도 한 뼘쯤 작아 보였다. 열다섯? 많이 잡으면 열일곱? 딱히 정리할 것도 없는데 신씨는 탕내를 돌며 비누 상태를 확인했고 의자의 위치를 바꿨다. 소년의 몸엔 색깔이 다른 멍이 퍼져 있었다. 등에는 희미한 반점처럼 옅은 보랏빛 멍이, 왼쪽 팔과 갈비뼈엔 진한 연필로 그려 넣은 것 같은 푸른빛의 멍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손등과 턱 주위엔 피부가 찢겨져 생긴 상처와 피가 굳은 딱지가 보였다. 소년은 바위처럼 그 모습 그대로 앉아만 있었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시선은 보글거리며 올라오는 물거품을 향했지만, 눈동자엔 아무것도 맺혀 있지 않았다. 신씨는 탈의실 평상에 앉아 반쯤 남은 고구마를 먹기 시작했다. 웅덩이에 동물들이 모여 서로를 경계하며 물을 마시고 있었다. 사자도 있었고 하이에나도 있었고 코끼리도 있었고 입을 벌린 악어도 있었다. 평화로워 보였지만 신씨는 긴장됐다. 한 번의 움직임만으로 어떤 동물은 목덜미를 물릴 것이다. 기도가 막히면 숨을 쉴 수 없고 식도가 막히면 물을 삼킬 수 없고 혈관이 눌리면 피가 돌지 않겠지. 어? 신씨의 시야를 가리며 느닷없이 한 장면이 끼어들었다. 몇 장인지 일일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창문이 깨져 있는 풍경. 산산이 부서진 유리 조각으로 가득한 복도. 조심스럽게 걸어도 발 밑에서 더 작게 부서지는 유리 조각들. 복도 끝에 서 있는 한 사람. 신씨는 고개를 빠르게 흔들었다. 칠판에 적힌 글씨를 지우개로 닦아내는 것처럼. 그렇게 하면 기억이 지워지기라도 할 것처럼. 왜 갑자기 그 생각이 나는 걸까. 신씨는 들고 있던 고구마 한 조각을 접시에 내려놓고 물을 마셨다.

소년은 이십 분째 그렇게 앉아 있었다. 신씨는 소년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소년은 고개를 돌렸다. 실핏줄이 터져 오른쪽 눈에 핏물이 맺혀 있었다. 신씨는 바가지에 온수를 반쯤 담아 소년의 등에 끼얹었다. 놀란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씨는 소년의 팔목을 잡고 침대 쪽으로 이끌었다. 소년은 꼼짝하지 않았다. 경계심을 품고 신씨를 노려보기만 했다. 무섭게 쳐다보는 눈동자일 텐데 어째서인지 힘도 없고 빛도 없었다. 약한 애가 기를 쓰니까 짠했다. 신씨는 한 번 더 바가지에 물을 담아 소년의 몸에 끼얹었다. 이번에는 소년이 아! 소리를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신씨는 세신 가격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냥 해줄게.”

“….” 

“괜찮아.”

신씨는 아이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달래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다고.”

침대에 누운 소년은 사로잡힌 강아지 같았다. 두려워서인지 몸을 보이는 게 부끄러운 것인지 모로 누워 자꾸 웅크리려고만 했다. 신씨는 따뜻한 물을 가득 담아 소년의 몸에 끼얹었다. 물이 닿는 순간 깜짝 놀랐지만 막상 따뜻한 물이 몸에 닿자 소년은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걸 느꼈다. 굳었던 몸과 묶여 있던 마음도 아주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신씨는 수건으로 소년의 배꼽과 사타구니를 덮어줬다.

“돈 주고 때밀어본 적 한 번도 없지?”

소년은 고개를 돌리고 가만히 있었다. 신씨는 알았다. 이 애가 지금 여기에 누워 있는 건 내 말에 설득돼서가 아니라 거절이라는 것을 할 수 없어서라는 것을. 이 애는 평생 무엇인가를 거부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 자신에게 주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받았고, 받아야 했고, 받아내야 했겠지. 신씨는 가장 부드러운 타월을 골랐고 평소보다 섬세하고 예민하게 힘 조절을 했다. 팔을 잡고 타월에 감싼 뒤 길게 쭉 밀어냈다. 그리고 반박자씩 조금씩 잘게 나눠 툭, 툭, 앞으로 밀었다. 올릴 때는 압력을 낮춰 부드럽게 타월을 걷어들였다. 소년은 처음엔 그것이 통증인 줄 알았다. 따가웠고 아팠다. 그런데 점점 시원함이 느껴졌다. 피부가 아픈 게 아니라 피부 밑에 멍이 아픈 것이었다. 신씨는 얼음을 녹이듯 집중적으로 그 부분에 미세하게 압력을 가해 뭉친 근육을 풀어냈다. 신씨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고도의 집중력으로 팔 하나를 끝냈고 반대편으로 넘어가 다른 팔을 밀었다. 목과 옆구리를 공략할 때는 타월을 고쳐 쥐었다. 손가락 두 개의 힘을 조절해 붓으로 털어내듯 툭툭 밀어냈다. 소년은 누군가 자신의 몸을 이런 식으로 만져준 것이 처음이었다. 이게 어떤 기분인지 비교할 경험조차 없었다. 잠들 때조차 이렇게 팔다리를 편하게 늘어뜨린 적이 없었는데 지금 이 순간 소년은 완전히 방심한 마음으로 처음 만난 이 남자에게 온몸을 맡겼다. 신씨는 소년의 헝클어진 머리에 조심스럽게 물을 끼얹고 시원한 멘톨 샴푸를 손바닥에 덜어 천천히 마사지하듯 거품을 만들었다. 으으. 소년의 입에서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군가 환한 꿈속으로 억지로 밀어 넣은 듯 소년은 깬 채로 좋은 꿈을 꿨다. 좋았는데,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흐르려고 했다. 꿀꺽꿀꺽 마른침을 삼키듯 눈물을 삼켰다. 신씨는 맨소래담을 듬뿍 짜내 소년의 몸 곳곳에 뚝뚝 떨어뜨렸다. 등과 팔은 손바닥으로, 옆구리와 목덜미는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소년은 재채기가 나오려는 것을 계속 참았다. 따갑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했다. 옆구리를 만질 때는 쿡쿡 웃기도 했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따뜻한 물을 소년에게 세 번 끼얹었다. 신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10여 년을 한 일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항상 기분이 좋다. 어두운 얼굴 굳은 몸으로 침대에 누웠던 사람이 밝은 얼굴 부드러운 몸으로 일어서는 마법 같은 시간. 20분.

“3만 원.”

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씨를 바라봤다. 신씨는 가격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세신은 1만 5천원인데 그냥 해줬고 마사지는 받아야지.”

“…. 돈 없어요.”

신씨는 무표정한 얼굴로 소년을 바라봤다. 소년은 신씨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그러면 어떻게 할래.”

“어떻게 …. 해야 해요?”

“시키는 대로 할래?”

소년은 목욕탕을 나와 무작정 걷다가 놀이터에 들어갔다. 노인 두 명이 시소를 타고 있을 뿐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그네에 앉았다. 앞으로 뒤로 흔들리며 방금 때밀이 아저씨가 한 말을 생각했다. 그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다. ‘뭐야. 씨발. 정신병자인가?’ 소년은 못된 친구를 따라 하듯 혼자 욕을 섞어가며 중얼거렸다. 그네는 멈췄고 하늘은 푸르렀다. 몸과 마음이 편안했다. 자꾸 기분이 좋아지려고 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때밀이 아저씨가 몸을 만져줄 때 정말 좋았다. 지금도 눈만 감으면 몸 곳곳에서 그 손길이 느껴지는 듯 했다. 까치 한 마리가 철봉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뭘 봐? 뭘 보냐고? 까치는 놀라지도 않았고 도망가지도 않았다. 때밀이 아저씨가 시킨 일 중 마지막 말이 자꾸 입술에 맴돌았다.

‘마지막이 중요해. 들고만 있어야 해. 절대로 그걸로 내리치면 안 돼. 알았니?’

소년은 주변을 서성이며 적당한 돌멩이 다섯 개를 찾았다. 가방을 열었고 돌을 집어넣었다. 

전화를 받고 학교로 찾아간 신씨는 아들이 한 일에 큰 충격을 받았다. 순하고 착했던 아들. 어쩌다 친구들과 다퉈도 항상 먼저 물러서는 아들. 못된 친구가 때려도 워낙 착해서 그냥 웃고 넘겼던 아들. 그 아들이 한 짓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들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맞고 왔을 때 사내새끼들이란 다 그렇게 크는 거지, 라고 생각했다. 학교 가기 싫다는 애 어깨에 억지로 가방을 걸치고 등을 떠밀었다. 이런 일도 이겨내지 못하면 앞으로 이 힘든 세상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냐고 호통도 쳤다. 아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듯 신씨의 눈을 한참 바라보더니 입술을 꾹 다물고 순순히 학교에 갔다. 순순히 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 날 아들은 신발장에 책을 모두 쏟아놓고 가방에 돌멩이를 잔뜩 집어넣었다고 했다. 1교시가 끝나자마자 주먹만 한 돌멩이를 하나씩 던져 유리창을 박살 냈다. 그리고 가장 큰 돌멩이를 들어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에게 다가갔다. 친구는 미안하다고 빌었다고 했다. 잘못했다고 사과했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그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리창을 깨듯 친구의 머리를 깼다.

신씨는 자신이 한 일을 후회했다. 아침에 아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아들은 돌멩이를 던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무력해졌다. 그때가 아니었으면 다음이라도 아들은 그렇게 했을 것이다. 돌멩이를 던져야 할 문제는 여전했을 것이고 아버지인 나는 그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을 테니까. 그땐 그걸 모르고 혼내기만 했다. 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느냐. 내가 언제 그렇게 가르쳤느냐. 화를 냈다. 아들은 물었다. 뭘 가르쳐줬나요. 신씨는 대답 대신 아들의 머리를 때렸다. 학교에서 상담을 하고 경찰서에서 진술을 했다. 아들은 자신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다가 옷을 벗었다.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잊을 수만 있다면, 맹장처럼 잘라낼 수만 있다면 배를 가르고 머리를 갈라 이 기억을 없앴을 것이다. 멍으로 가득한 울긋불긋한 몸. 그동안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이의 몸을 구석구석 보고 살았는데 정작 아들의 몸은 보지 못했다. 신씨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감정을 겪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좋겠다 싶었던 것이다. 신씨는 그날 이후로 아들을 더 좋아하게 됐다. 이렇게 용감했다니. 이렇게 터프한 녀석이었다니. 신씨는 이 사건 이후로 많은 것을 잃었다. 아들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 했고 신씨 역시 오랫동안 근무했던 목욕탕을 옮겼다. 아들이 한 일을 무마하고 책임지기 위해 나중에 집을 장만하려고 모아뒀던 적금도 헐었다. 하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아들이 머리를 박살 낸 녀석의 어머니 통장에 돈을 송금했을 때 기분이 정말 좋았다. ‘이러려고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때를 밀었구나’ 생각했다가 ‘이러려고 내가 열심히 때를 미는 거지’ 고쳐서 생각했다.

며칠이 지났고 소년이 돌아왔다. 소년은 주머니에서 만 원을 꺼내 신씨에게 건넸다. 꼿꼿하게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신씨는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게 뭐니?”

“마사지값이요.”

“왜 만 원이야? 3만 원인데.”

“아저씨가 시키는 거 했어요. 그런데 시키는 대로 하지는 못해서.”

신씨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소년을 봤다.

“돌멩이 다섯 개 들고 갔어요. 유리창 다 깨고 큰 돌로 그 새끼 겁주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유리창 두 개 깼더니 그 새끼랑 다른 새끼들이 쫄아가지고 다 도망가고 선생님이 하지 말라고 해서 관뒀어요.”

“그래서?”

“그래서 뭐요.”

“그 새끼들은.”

소년의 표정이 거만하게 변했다.

“그 새끼들은 뭐 그 후로 완전히 쫄아가지고 제 근처에도 못 와요. 머리 터질까 봐.”

소년은 터지는 웃음을 막으려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신씨는 만 원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오케이, 오케이. 그 정도면 됐다. 그 정도면 됐어.”

“아저씨.”

“왜.”

“때 미는 건 오늘도 공짜예요?” 

“왜, 밀게?”

“네.”

“탕에 들어가 있어. 몸 충분히 불리고. 오늘만이다.”

소년은 꾸벅 인사를 하고 탈의실로 들어가려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아저씨. 혹시 뭐 그런 거세요?”

“뭐.”

“깡패나 조직폭력배 같은 그런 거.”

“아니.”

“그럼 뭐예요.”

“세신사. 씻을 洗. 몸 身. 몸을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아… 알았어요.”

소년은 옷을 다 벗고 어깨를 쫙 펴고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얻어터져서 온몸이 울긋불긋한 멸치 같은 쪼그마한 녀석이 어깨에 힘주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 신씨는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왜 저렇게 얻어맞고 다녔는지 이해할 것도 같았고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험난한 날들에 뭔가 짠하기도 했다. 세신사 신씨는 정리하던 수건을 마저 정리하고 손뼉을 가볍게 두 번 친 뒤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정용준

소설가. 소설집 『선릉 산책』, 『가나』, 장편 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 『프롬 토니오』, 『바벨』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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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용준(소설가)

2009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가나』,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선릉 산책』, 장편 소설 『바벨』, 『프롬토니오』,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썼다. 젊은작가상, 황순원문학상, 문지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소나기마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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