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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미의 작업실 인터뷰] 깊이 애호하는 마음으로 다리를 놓는 일 - 최혜진 작가

[엄윤미의 작업실 인터뷰]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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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에 탐험의 시간이 있었어요. 시각적인 예술 매체에 늘 노출되어 있었던 어린이였거든요. 영화와 만화를 너무 좋아해서 미친 듯이 많이 봤어요. 만화 대여점에 나오는 신간은 다 보고, 영화는 많이 보다 보니 헐리우드 상업 영화들이 동어반복으로 느껴져서 지겨워지기도 했어요. (2021.12.08)

(왼쪽부터) 최혜진 작가와 엄윤미 대표

“작가들이 처해 있는 출판 환경이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겉싸개를 열고, 열고, 또 열어야 만날 수 있는 작은 얼굴.”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8쪽)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2016년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에서 10명의 그림책 작가들을 인터뷰했던 최혜진 작가는 2021년 5년만에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 10명을 인터뷰한 책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출간했습니다. 권윤덕, 소윤경, 이수지, 유설화, 고정순, 이지은, 유준재, 노인경, 권정민, 박연철.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열 분의 작가들과 작업실에서 나눈 이야기가 담긴 책입니다. 



많은 그림책 작가들 중 책에 담을 열 분을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셨나요?

책에 모신 열 분은 ‘한국의 대표 작가 10인’ 이 아니고, ‘돌파하는 힘’ 을 이야기하기에 좋은 작가 열 분입니다. 이 책을 기획하던 때, 한국 그림책 작가 인터뷰집이 없던 건 아니었어요. 연구자 선생님들이 만들어 놓으신 책이 있는데, 애호가들이 보기엔 조금 딱딱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연구자가 아니고 애호가에서 깊어진 사람이거든요. 그림책을 아예 몰랐던 사람들이 그림책을 왜 봐야만 하는가에 대한 이유부터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림책하고 상관없이 살던 사람들이 그럼 한번 볼까, 하고 집어들 수 있는 진입로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요. 그러면 어떤 말로 초대해야 할까, 그 말을 찾느라고 시간이 걸렸는데, 어느날 ‘돌파하는 힘’ 이라는 단어가 제 안에서 피어 올랐어요.


최혜진 작가 
돌파하는 힘

‘돌파하는 힘’ 이라는 키워드 때문일까요? 그림책 작가들의 인터뷰니까 아기자기하고 다정한 내용도 있을 거라 막연히 기대했는데 전반적으로 묵직한 내용이 많았어요.

저는 예술서를 오랫동안 읽어온 독자고, 철학 책도 좋아하는데, 그림책이 예술 인문서나 철학책에서 하는 이야기와 같은 이야길 한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그림책이 깊고 심오한 부분이 있는데 그걸 잘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인터뷰를 읽으면서 이 작가의 그림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책을 들고 도서관에 가서 그림책을 하나하나 찾아 보면서 읽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이런 평을 들을 때 인터뷰한 보람을 느껴요. 진입로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목적에서 쓴 책이니까요. 실제 이 책을 중심으로 일주일에 작가 한분씩 따라가면서 공부모임을 하시는 분들도 생겼다고 해요.

인터뷰에 참여하신 작가님들도 좋아하시겠어요.

미디어에서 그림책 작가들을 많이 조명하는 편이 아니니까, 나를 만나러 와 줬다는 사실에 대한 1차적인 감동이 있으셨고요. 그리고 비평적인 시선을 가지고 인터뷰한다는 점을 좋아하셨어요. 작가들은 외부의 시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거든요. 왜 이 문장이, 이 표현이, 이 장면이 나에게 떠나지 않고 달라붙어 있는지, 본인은 거리를 두고 보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비평가나 저널리스트의 역할이 중요한데, 한국 그림책에 대해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어요.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 또 한 명 나타났다는 반가움이 크셨던 것 같아요. 성인 문학계에는 다리 역할을 해 주는 저널리스트들이 많거든요. 유튜버도 있고, 책 이야기를 다루는 <월간 채널예스> 같은 매체도 있고요. 그런데 그림책엔 그런 역할을 하는 존재가 드물어요. 

각 분야의 깊은 애호가들, 다리를 놓아 주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오랫동안 해 온 잡지가 좋아요. 잡지가 뭘까 오랫동안 생각해 봤는데, 결국은 판에 사람들을 모으는 작업을 하는 공간이더라고요.

다리 역할을 하시는 분들이 전문성이나 만들어내는 콘텐츠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받으려면 시장이 커져야 하는 부분도 있겠네요.

전체 시장의 규모는 모르겠지만, 학습 기능이 강한 그림책 위주였던 시장에서 작가주의적 관점의 그림책들이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는 건 보여요. 출판계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보다 다양한 그림책 시장이 먼저 만들어진 곳이 유럽일 것 같은데요. 유럽 그림책 작가들과 한국 그림책 작가들을 인터뷰하셨을 때, 활동하는 시장의 차이가 느껴지셨나요?  

제가 시장 전체를 보진 못했겠지만, 특히 제가 본 프랑스어권 그림책 시장의 특징은, 그래픽적인 시도가 값어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가격을 지불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었어요. 한국은 이야기가 중요해서 이미지 실험에 집중한 책에는 독자가 선뜻 주머니를 열지 않거든요.

프랑스 그림책 작가들도 전체 출판 시장 안 다른 분야에 비해 소외감을 느낀다고 토로하기도 하고, 그림책 작가를 예술가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셨지만, 프랑스는 어떤 실험을 해도 받아줄 매트리스가 있는 사회인 것 같았어요. 그 매트리스가 뭐냐면 우선 독자들이 다양한 실험에 마음이 열려있다는 사실, 그리고 공공 도서관이라는 존재예요. 취재하면서 초판은 대부분 도서관에서 소진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프랑스엔 공공도서관이 많고 도서 구입에 책정된 국가 예산이 크기 때문이죠. 그래서 종수가 많을 수 있고, 한국의 작가들보다는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에 비하면 한국은 열악한 상황이라, ‘돌파하는 힘’ 이 한국 그림책 작가들을 인터뷰하는 키워드가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른쪽) 최혜진 작가 

질문지를 받아들 때 이미 인터뷰가 시작된다

그림책 작가들은 말보다는 그림이 표현의 도구인 분들이신데, 인터뷰가 어렵지는 않나요. 책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 깊은 이야기까지 길어내셨어요.

에디터로 일하면서 천 오백 명 이상 인터뷰를 했으니까, 대처하는 순발력 같은 것들이 직업적으로 훈련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인터뷰 질문지를 항상 미리 보내드리는데요, 질문지를 받았을 때 인터뷰이가 감동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인터뷰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데이터의 기술이 아니라 인터뷰어가 제가 당신을 이렇게 봤다고 말하는 작업이니까, 내가 당신을 이렇게 잘 보고 있다는 것이 많이, 잘 느껴질 수록 상대방이 감동하게 돼요. 인터뷰할 작가의 작품을 다 보고, 저는 작품을 이렇게 봤고, 이 부분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질문지 안에 많이 담았을 때 좋아하시더라고요. 제가 가기 전에 이미 질문지를 받고 마음이 열려 있는 상태가 되는 거죠.

그리고 현장에서는 오히려 질문지를 따라가기보다 순간에 집중합니다. 눈빛, 몸짓을 모두 사용해 리액션하고 호응하는 데 집중하면서 저와 인터뷰이 사이의 소행성 같은 것을 만들려고 애써요. 인터뷰는 두 사람의 영혼이 잠깐 얽혔던 순간을 기록한 거라고 생각해요.

두 권의 책 모두 작가들의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셨죠. 

유럽 작가들은 대부분 별도의 작업실을 가지고 있었어요. 들어가는 순간 여기 오랫동안 시간이 쌓여서 저절로 만들어진 공간의 분위기, 에너지 같은 것이 느껴져서 사진을 찍을 때도 너무 좋았죠. 책이 나온 후에 작업실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았고요.

한국 작가들은 대부분 댁에서 방 하나를 사용하시는데, 그러다 보니 작가뿐만 아니라 생활인으로서의 모습을 계속 보게 되기도 했어요. 그래서 또 돌파하는 힘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도 했지요.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계속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책에 실린 권정민 작가님은 작은 방에 요만한 작은 책상을 놓고 작업하고 계셨어요. 볼펜이나 연필로 세세하게 작업하는 그림체로 작업하시는데,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라고 해요. 육아와 병행하다 보니 커다란 화판 같은 것을 펼쳐 놓고 일할 수가 없어서 가장 간소한 도구, 최소한의 도구만 쓰는 작업을 하고 계시는 거예요. 대학 때처럼 커다란 판을 앞에 놓고 어깨를 움직여가면서 작업하고 싶다, 언젠가는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씀하신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지금 그럴 수 없는 상황인데도 아주 작은 공간에서, 그림체를 바꿔 가면서 계속하고 계신 거잖아요.

돌파하는 힘이군요.

그렇죠! 그런 것들이 인상적이었고 멋진 삶의 태도라고 생각했어요. 환경이나 여건을 탓하거나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는 태도. 그런데 이 태도는 그림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주로 보여주는 삶의 태도이기도 해요.

어린이들은 정말 피곤할 것 같아요. 갑자기 내가 아무 질서도 모르는 거대한 세상에 도착한 거잖아요. 새로 알아야 할 것,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은데 배우는 과정도 만만치 않고, 내 안에서 정리되지 않는 욕구나 충동들이 막 불쑥불쑥 나오고요. 우리도 어릴 때를 생각해 보면 어떻게 감당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잘 표현도 안되고, 그랬지 않나요. 여러모로 어려운 상태에 놓여진 거죠.

그런 어린 존재들이 분명히 어렵고 피곤하고 심리적으로 쉽지 않을 텐데도 배워서 뭐 해, 라고 말하지 않아요. 엄마가 하라는 것, 학교에서 하라는 것을 열심히 하죠. 그렇게 하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걸 믿어주기 때문에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좋아질 거라는 믿음, 달라질 거라는 믿음, 세계가 그렇게까지 엉망은 아니라는 믿음.  저는 믿음이 없이는 배움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어린이들의 믿는 마음이 너무 예쁘고 소중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최혜진 작가 

잡지의 매력, 그림책의 힘

책에 담지 못했지만 눈여겨 보고 있는 작가님이 있다면 어떤 분일까요?

그림책 애호가로서 너무 많은데요. 한분을 꼽자면 사이다 작가님. 『고구마구마』『고구마유』 같은 책들을 쓰셨는데 엄청나게 재밌어요. 표면적으론 말장난하는 그림책 같아 보이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때마다 계속 다른 것이 보이는 그림책의 매력을 느낄 수 있어요. 『고구마구마』 는 여러가지 생김새의 고구마들이 나오면서 끝에 ‘구마’ 를 계속 붙이는 말놀이를 하는 책이거든요. 크구마 작구마 멋지구마 빛나는구마… 이렇게요. 그런데 다시 보면 작은 고구마가 처음부터 계속 책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보게 돼요. 얘가 계속 자기 자리를 못 찾고 계속 옆에서 친구들을 보고 있어요. 너무 작아서 자기 쓰임이 마땅치 않은 거죠. 그런데 나중엔 이 아이가 싹을 피워서 다른 여러 고구마들을 또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납니다. 사이다 작가님은 작은 존재들이 얼마나 고유의 쓰임이 있을 수 있는지를 책으로 이야기하시는 분이에요.

아이들 눈에도 작은 고구마가 보일까요?

오히려 아이들이 그렇게 작은 부분을 더 잘 발견한다고 해요. 그림책은 낭독을 위한 매체에 가깝거든요.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화면을 펼쳐 주고, 글은 양육자나 성인인 어른들이 읽어주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눈이 글자를 따라갈 필요가 없고, 아이는 귀로 정보를 들으면서 눈으로는 이 이야기와 내가 보는 시각 정보 안의 관계를 찾아내려 하게 됩니다. 그래서 디테일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고 해요. 오히려 어른 그림책 애호가들이 그림을 읽어내는 능력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기도 해요. 우리는 문자 중심으로 교육받았기 때문에 그림을 놓칠 때가 많은 거죠. 권윤덕 작가님께서는 어린이처럼 누군가 낭독해주는 것을 들으면서 그림만 보는 경험을 해 보라고 권하시기도 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림책을 좋아하시는 것이 작가님의 삶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무엇을 좋아하느냐가 삶에 영향을 미치잖아요.

맞아요. 한편으론 제가 문자 언어와 시각 언어가 동시에 있어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림책에 끌린 점도 있을 거예요.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진로를 결정할 때도 이미지가 없는 신문이나 텍스트가 없는 방송에는 끌리지 않았는데, 양쪽을 가진 잡지를 발견했을 때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이후 오랫동안 잡지 에디터로 일했는데, 글과 이미지가 동시에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담장이 낮은 매체라는 점에서 잡지를 좋아해요.

그림책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지혜를 쉽게 이야기하는 건 어려운 일이잖아요. 다섯 살 어린이에게 평화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되는지 생각해 보면 그림책 작가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하는지 알 수 있어요. 그림책은 모두에게 열려 있으려고 애쓰죠. 소통의 수고로움을 상대에게 넘기지 않고 만들어 내는 사람들 본인이 수고를 감수하면서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는 제가 닮고 싶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글과 이미지가 동시에 있는 매체를 좋아한다는 걸 일찍 아셨네요. 중요한 발견인데,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잖아요.

청소년기에 탐험의 시간이 있었어요. 시각적인 예술 매체에 늘 노출되어 있었던 어린이였거든요. 영화와 만화를 너무 좋아해서 미친 듯이 많이 봤어요. 만화 대여점에 나오는 신간은 다 보고, 영화는 많이 보다 보니 헐리우드 상업 영화들이 동어반복으로 느껴져서 지겨워지기도 했어요. 그럴 땐 한 감독의 주간을 설정해 놓고 그 감독의 작품을 다 보기도 하고. 어른들이 미디어에서 하는 비평을 흉내 내서 나름의 별점을 매기며 영화 리뷰장도 썼어요.

부모님이 야간 자율학습 같은 거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어서, 저는 학교에서 혼자 빨리 집에 올 수 있었어요. 학교는 너무 싫었지만 학교가 끝나면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었죠.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고, 생각해 보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그때 했던 일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게 탐험해 오셨으니, 잡지와 공통점이 있는 그림책을 발견한 것도 그렇게 놀랍지 않은 일이네요.

당연한 수순이지만, 또 감사하기도 하죠. 저도 그림책을 보지 않고 자랐던 세대니까요. 10년 동안 일을 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랑스에 가서 말 못하는 처지에 놓여 보면서 모든 게 시작되었어요. 말을 못하면서 주류 질서 안에 산다는 게 얼마나 무력감을 남기는지 매 순간 느꼈거든요. 문자 텍스트로 안내되는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면 온몸에 레이더를 달고 계속 눈치를 살펴야 되잖아요. 굉장히 에너지 소모가 많이 되는 일이더라고요.

어학원 초급반에서 선생님이 주말에 뭐 했냐고 매번 물어보는데, 주말 동안 이것저것 하고 이런저런 감정을 느꼈지만 그건 표현이 안되니까 재밌었어요, 하고 끝나는 거예요. 어린이가 이런 상태겠구나, 어린이는 신체적인 나이보다는 사회적인 지위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읽을 수 있는 책이 없으니까 서점에서도 자연스럽게 그림책 코너로 가게 됐어요. 오랫동안 조형 언어가, 그러니까 미술 작품이나 영화나 만화 같은 것들이 제 안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지켜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일단 그림이 많은 책이 주는 안도감이 있었어요. 어학원에서는 재밌었어요, 한 마디 밖에 못했지만 그림책을 보면 제가 말로 하지 못한 여러 감정을 그림이 이미 보여주고 있을 때가 많았어요. 네가 똑 부러지게 말 못하는 거, 그거 나는 알고 있어, 라고 그림이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공감 받는 느낌이 들었죠. 이게 그림이 갖는 힘인 것 같아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중간 지대의 것들을 그대로 잘 담아주는 힘. 

이제, 다음 작업은 뭘까요?

다음 작업은 에세이가 될 것 같아요. 오랜 독자들의 요청을 종종 받았는데, 왜 인터뷰가 아닌 에세이를 쓰는 것이 이렇게 면구스러운가 생각해봤더니 제가 자아에 별로 관심이 없더라고요. 나는 누구를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데 고정된 나라는 게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누구를 만났는지 이야기하는데 더 몰두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에세이에서도 저를 만든 타인에 대해, 만남에 대해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진실한 만남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이고요. 직업적인 만남이 아닌 일상에서의 만남에 대한 책이 될 거예요. 저를 만든 건 결국은 만남들이고, 저는 만남이라는 행위 자체에 예술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왼쪽) 엄윤미 대표 




최혜진 작가는 ‘창의성’ 에 주목하여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을 인터뷰했고, 다시 ‘돌파하는 힘’ 을 중심으로 열 명의 한국 그림책 작가들을 선정하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음엔 어떤 단어와 함께 새로운 그림책 작가들을 만나게 될까요? 자신이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깊은 애호의 마음을 부지런히 이어가고 있으니, 다음 만남을 아우를 세 번째 키워드도 머지 않아 발견하게 될 거라 믿습니다.  

아홉 번째 작업실 인터뷰를 마칩니다.




*최혜진

‘보다, 듣다, 읽다’ 뒤에 ‘쓴다’를 붙여 살아가는 자발적 마감노동자. 서울에서 활동하는 작가이자 잡지 편집자이다. 열아홉 살에 우연히 빈센트 반 고흐 생애를 다룬 어린이책을 읽고 미술을 좋아하게 됐다. 그림과 그림책을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다. 『우리 각자의 미술관』,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등을 쓰고, 옮긴 책으로는 『빈센트 반 고흐』와 『프리다 칼로』, 『클로드 모네』를 우리말로 옮겼다.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최혜진 글 | 해란 사진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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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윤미

벤처 기부 펀드 씨프로그램의 대표. 플레이 펀드를 통해 어린이들을 위한 제3의 공간에, 러닝 펀드를 통해 교육 실험에 투자한다. 새로운 실험이 많아질 때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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