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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미의 작업실 인터뷰] 식물이라는 렌즈로 바라보는 세상 – 이소영 작가

[엄윤미의 작업실 인터뷰]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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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 우리'라는 제목도 생각했었어요. 식물과 나, 식물과 우리를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의도로 쓴 책이니까요. 편집자님이 '식물과 나'라는 제목을 처음 제안하셨을 때는 '나요?' 놀라서 되물었어요. (2021.10.13)

(왼쪽부터) 엄윤미 대표와 이소영 작가


식물은 내게 관찰과 기록의 대상이기 전에 이 세계에 존재하는 생명인 동시에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식물을 들여다볼수록 그 곁에 선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성찰하게 된다. - 『식물과 나』, 8쪽


우리는 좋아하는 대상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그 대상은 매일 하는 일일 수도, 관심을 쏟는 대상일 수도, 오랫동안 가져온 취향일 수도 있지요. 한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그가 세상을 읽는 렌즈를 이해하는 것은 새로운 장을 여는 일일 것입니다. 이소영 작가에게는 그 대상이 ‘식물’ 입니다. 이제까지 출간한 세 권의 책 (『식물 산책』『식물의 책』『식물과 나』) 에 모두 ‘식물’ 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식물과 나, 식물과 우리 

그동안 출간하신 책에는 모두 식물이 주인공으로, 제목부터 등장하고 있습니다. 『식물과 나』 에서는 ‘나’ 가 처음으로 등장했네요. 나의 전문 분야에 대해 쓰는 것과 그 글에 나를 드러내는 것은 다른 마음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잖아요.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이야기,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야기를 해온 것 같아요. 첫 책 『식물 산책』 은 식물세밀화에 대해 정확히 알리려는 의도로 썼어요. 『식물의 책』은, 멸종위기식물, 희귀식물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정작 우리 주변 식물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쓴 책이고요. 그 사이 식물 문화가 확산되면서, 나와 식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식물이 유행이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반발하는 목소리도 있죠. 식물을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식물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 밥상에 늘 올라가는 쌀과 채소, 과일도 식물이고, 매일 지나는 화단에도 식물이 있어요. 우리 모두 식물을 매개로 살고 있다는 것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제목의 ‘나’ 는 이소영 선생님 개인이 아닌 우리들 각자를 가리키는 ‘나’ 군요.

맞아요. ‘식물과 우리’ 라는 제목도 생각했었어요. 식물과 나, 식물과 우리를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의도로 쓴 책이니까요. 편집자님이 ‘식물과 나’ 라는 제목을 처음 제안하셨을 때는 ‘나요?’ 놀라서 되물었어요. 나, 라는 말이 식물과 동등하게 들어가는 건 부담되는 일이었거든요. 하지만 가장 단순하게 이 책의 내용을 잘 담은 제목이라고 생각해서 ‘식물과 나’ 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죠.



식물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작업실 뒤엔 주차장을 둘러싼 좁고 기다란 화단이 있다. 이곳에는 서양측백나무와 당단풍나무, 스트로브잣나무와 서양자두나무 등 평범한 도심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들이 심겨 있다.”  (13쪽, 「봄」)

본문 첫줄을 읽으면서부터, 길을 지날 때 보이는 나무와 꽃의 이름을 알 수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부러운 마음이 되었어요. 어릴 때부터 식물을 좋아했다고 책에 쓰셨는데, 식물에 대해 ‘알게’ 된 건 언제부터이신가요? 

대학 3, 4학년이었던 것 같아요. 원예학을 전공했지만 1,2학년에는 기초 과목만 배우니까 식물을 식별할 정도는 아니었고요. 졸업한 후에 국립수목원 식물 분류실에 소속된 식물 세밀화실에서 일하면서 식물 이름을 더 많이 알게 되었죠.

아직 식물에 대해 알 기회가 없었던 저와 같은 사람들이 식물과 관계 맺기를 시작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될까요?

식물을 자주 보고 접해야겠죠. 멀리서 보는 것도 좋지만, 가까이서요. 우리가 사자와 호랑이를 아는 건 동물원에 가서 봤기 때문이잖아요. 그래서 식물원이나 수목원이 본연의 역할인 연구만이 아니라 전시의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해요. 연구를 하는 이유는 결국 식물종 보존을 위한 것인데, 종 보존은 연구자들이 연구만 해서 이루어질 일은 아니잖아요. 사람들에게 우리 나라에 이런 식물들이 있으니까 소중한 식물을 보전합시다, 이야길 건네야 하는 것이죠. 

식물을 보다 보면 알고 싶어질 것이고, 그러면 책을 보게 될 거예요. 『식물의 책』을 쓰면서도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입니다. 식물 입문책엔 외서가 많아서, 외국 식물 이야기는 많은데 막상 우리나라에 흔한 맥문동 같은 식물들은 빠져 있었거든요.  연구기관에서 식물도감을 출간하는 것도 대중에게 식물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한 일이에요. 식물에 대해 알고, 중요하구나, 보존해야겠구나 라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식물에게서 답을 찾는다

“그 시기는 훨씬 더 빨리 왔다. 나는 30대가 되었고, 사람들은 벌써 식물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단군 이래 우리나라에서 식물 관련 전공자를 가장 많이 찾는 시대가 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기실 이것을 긍정적인 결말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자연의 위기가 그만큼 빨리 도래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20쪽, 「봄」)


미세먼지, 건강한 식재료에 대한 관심, 코로나19의 여파로 식물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글을 쓰셨습니다. 식물은 균형이 무너져가는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걸까요? 

식물은 우리에게 의식주를 모두 제공해 주는 존재입니다. 그에 더해, 코로나 시대에는 식물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 안정 효과가 강조되죠. 원예 치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화장품 회사나 제약 회사에서 약용식물 세밀화 제안도 많이 들어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황사, 미세먼지 때문에 공기 정화 식물을 집에서 많이 재배했었어요. 공기 오염, 질병 등의 위기가 다가와 집에서 지내게 될 수록, 기후변화 때문에 식량 문제가 닥쳤을 때도 우리는 식물을 찾게 될 것입니다. 위기가 많아질수록 인류는 대답을 식물에게서 찾게 될 것이 확실해요.

가장 약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식물은 강한 존재인 것 같아요. 

우리는 식물을 한 그룹으로 생각해서 연약하다, 잔잔하다, 조용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식물에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수록 다른 것들이 보여요. 벌레잡이 식물들은 공격적이고, 장미 가시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너무 뾰족하고 날카로워서 무섭기도 하죠. 장미 가시는 매개 곤충이 아닌 곤충들이 꽃으로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인데, 그 대상들에겐 무서운 존재일 겁니다. 우리가 가진 생각은 막연한 편견이에요. 



식물을 그리는 일

식물과 관련한 일들 중 세밀화를 그리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제가 잘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것을 선택했어요. 원예학 수업에서는 꽃 해부도 등 그림을 그릴 일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수목학 수업에서 교정에 있는 식물로 식물도감을 만들라는 과제를 내 주셨던 교수님이 제 과제를 보시고는 식물세밀화라는 분야를 공부해보라는 조언을 해 주셨어요. 친구와 같이 식물 그림 그리는 분을 찾아 그분께 그림을 배웠는데 친구는 2주 정도 만에 그만두고, 저는 계속해서 1년 반 정도 배우고 식물 그림 포트폴리오를 만들었어요. 국립수목원 면접에서도 그 포트폴리오를 보여 드려서 식물세밀화 팀에 들어갈 수 있었죠.

식물세밀화는 사진과 어떻게 다른가요?

사진이 한 개체를 선택해서 찍는다면, 식물세밀화는 여러 개체를 잘 관찰해서 그립니다. 예를 들어 해당화라는 식물이라면 해당화 여러 개체를 관찰한 결과를 종합해서 해당화의 공통적인 특성을 강조하고, 환경변이는 축소하면서 그립니다. 사진은 대상 개체의 특성이 강조된다면 세밀화는 대상 식물종의 보편적, 일반적 특성이 잘 드러나도록 그리게 되죠.

정보를 종합하는 과정에서 판단과 해석이 들어가겠군요.

그 판단과 해석이 주관적이지 않으려면 식물을 잘 알아야 하는 거고요. 

식물 세밀화는 어떻게 사용되나요?

기본적인 용도는 기록을 만드는 거예요. 새로운 종이 나타나면 식물세밀화가 그 식물의 첫 초상화가 되는 거죠. 우리가 장미를 아는 것은 ‘’이런 식물을 장미라고 하자’ 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예요. 그 ‘이런 식물’ 을 보여주는 것이 세밀화죠.

식물 해부도나 초상화의 경우 연구기관이나 대학 등 식물학자가 있는 곳에서 주로 제안하세요. 그 외 화장품 회사, 제약 회사에서는 약용식물에 관련한 제안이 많고, 매거진, 전시 등에서도 다양한 제안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받는 세밀화 제안을 식물원의 전시 기능과 같은 목적으로  생각해요. 우리나라에 이런 식물이 있구나, 흥미를 느끼고 식별하고 이름을 알고 관심을 갖게 되는 매개가 되는 거니까요. 식물이 활용되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제안을 선택합니다.

한편으론, 식물세밀화가 돈을 벌 수 없고 직업이 되기 힘들다는 편견을 깨고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식물세밀화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식물에 대해 알리는 일, 식물세밀화라는 일에 대해 알리는 일에 대해 계속 말씀해 주시네요. 두 일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고요. 팟캐스트 <이소영의 식물라디오>를 진행하시는 것도 같은 맥락일까요?

2017년에 <이소영의 식물 라디오>를 처음 시작할 때는 식물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고, 주변 식물에 대한 내용을 쉽게 접할 곳이 없기도 했어요. 대학에서 원예학을 공부하고 수목원에서 자생식물을 공부하면서 저의 특수성이 생겼다고 생각했고, 그걸 살려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편으론, 식물원이 이렇게 좋고 수목원도 예쁜데 왜 내 또래 사람들은 안 올까,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당시엔 식물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선생님들이셨고, 식물 문화를 향유하는 분들도 대부분 중장년층이었어요. 저는 당시 제 또래였던 20대 후반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젊은, 새로운 스토리텔러의 등장이네요.

한가지 다르게 하고 싶은 것이 있었어요.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식물에 대해 이야기할 때 꽃을 여성에 비유한다거나 하는 걸 하고 싶지 않았어요. 식물을 식물로 바라보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팟캐스트는 또래의 청취자들이 많이 듣나요?

정말 다양한 연령대의 청취자들이 들어주세요. 시간이 4년쯤 흐르고 나니 임신 중 태교로 듣던 분의 어린이가 자라는 이야기도 듣고요. 유튜브로 가지 말고 팟캐스트로 남아있어 달라는 편지를 받기도 합니다. 오디오 콘텐츠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4년 동안 꾸준히 콘텐츠를 업로드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요. 

예전부터 한번 시작하면 계속하는 성격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항상 통지표에 ‘끈기있다’ 는 말이 있었지요. 부모님 기억 속의 저는 산에 한번 올라가면 정상에 올라갈 때까지 계속 가는 아이였다고 해요. 세밀화도, 팟캐스트도, 잘해서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시작했으니까 당연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합니다. <서울신문> 칼럼 연재도 4년이 넘었어요. 

세밀화 프로젝트는 한번에 몇 개 정도를 동시에 진행하세요?

3-5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세밀화 3-5개 프로젝트, 팟캐스트, 칼럼까지. 하고 계신 창작 작업의 양이 만만치 않은데요. 

최근에 바빠서 매일 가던 수목원에 사흘 못 갔는데, 그동안 식물이 너무 변화가 컸어요. 주황색이었던 열매가 빨간색이 되었더라고요. 식물이 너무 성실하다 보니까, 식물을 볼 때마다 나는 너무 게으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뭐야 너네 벌써 이렇게 됐어? 그동안 난 뭐했지? (웃음) 

식물세밀화는 한 종을 그릴 때 10년 넘게 걸리기도 해서, 제가 작업해 온 4년이 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는 시간 자체는 그리 길지 않아도, 식물을 찾아가는 시간, 식물을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뿌리부터 열매, 가지, 씨앗 모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해요. 한 시기를 놓치면 다음 해에 다시 찾아가야 하고요. 기후변화로 개화시기, 결실시기 등이 변화하는 바람에 시기를 놓치기도 하고, 매일 갔는데 계속 봉우리 상태였다가 일주일 후에 다시 가보면 그사이에 꽃이 피어있기도 하고요. 모든 것이 완벽하게 계획대로 이루어질 경우에도 봄에서 가을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리는 일이예요. 『식물 산책』 표지에 실린 진노랑 상사화는 관찰하고 다시 관찰하고 하다 보니 2009년에 시작해서 2018년에 완성하기도 했어요.

수목원을 매일 가세요?

수목원이든 숲이든 어딘가는 매일 가고요. 작업실 근처 광릉수목원에 가장 자주 갑니다. 광릉수목원은 우리나라의 자연 정체성을 한번에 볼 수있는 대표 수목원이에요. 

막연히 인내심이 필요한 일일 거라 생각했는데, 매일의 성실함도 필요한 일이네요. 

내가 움직인 만큼 결과가 따라오고, 그림이 더 정확해지는 일입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식물연구 자체가 그렇고요. 최소 3-5년, 길면 10년이에요. 그래서 올해 내가 뭘 그려야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평생 동안 그려야 할 식물들의 리스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평생 그려야 할 리스트 중에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무궁화예요, 200종 정도인데 우리나라가 육성한 종이라 외국 세밀화가가 그릴 수 없어요. 반드시 국내 세밀화가가 그려야 하는데, 자생식물 연구자들도 원예식물인 무궁화는 안 그리거든요. 저 혼자 마음이 급하죠. (웃음) 무궁화에 대해 책무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어요.



식물이라는 렌즈 


“중요한 것은 사회를 이루는 근간은 사실 안개꽃과 소국처럼 작고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특별한 취급을 받는 이는 대개 눈에 잘 띄는 특이하고 도드라진 몇몇 사람일 때가 많다. 보통 사람들은 그 특별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구심과 회의감을 갖게 되기도 한다.그러나 막상 직접 꽃다발을 만들다 보면 꽃 한 송이, 심지어는 잎이나 나뭇가지 하나도 아름답지 않고 귀하지 않은 게 없다는 걸 알게 된다.” (100쪽, 「여름」 )

식물은 언제나 나에게 작고 흔하고 평범한 것의 소중함을 알려준다.”  (192쪽)         

“땅속의 영양분, 빛과 물, 그리고 매개 동물 등 식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자원은 한정적이다. 이 한정된 자원을 세상의 모든 식물이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한꺼번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서는 안 된다. 순차적으로 고루 나누어 누군가는 봄에 또누군가는 가을에 꽃을 피우고, 누군가는 동물을 이용해서 또 누군가는 바람에 실려가 생장하고 번식해야 한다. 그래서 종마다 삶의 시기도 모두 다르다.”  (262쪽, 「겨울」)


좋아하는 것을 통해 세상을 보는 일은 삶에 색과 깊이를 더해줄 것 같습니다. 식물을 공부하고, 그리면서 생각하고 깨달으신 것들은 책에 아름답게 기록해 주셨고요. 식물이라는 렌즈가 작가님의 삶에 변화를 주었다면, 어떤 변화일까요? 

다양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돼요. 숲에 가보면, 식물들은 나 예쁘지? 나 대단해! 하고 서로 유별나게 나서는 것이 아니라 모두 조용히 각자 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특정한 시기에 눈에 띄는 꽃이 있어도 그 화려함이 영원하지 않고, 다음에 다른 식물이, 그 아래 있던 다음 식물이 꽃을 피워요. 며칠 전에는 층꽃나무라는 식물을 봤는데, 나무인데 키가 작아요. 자세히 보면 밑에서부터 차례차례 꽃이 핍니다. 잎도 엇갈려 나서 모든 잎이 빛을 받을 수 있고요. 관찰하면 관찰할 수록 보이는 식물들 만의 규칙과 질서를 보면서 제 개인이 아니라 제가 속한 집단, 사회 속에서의 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돼요. 

제 눈엔 안 보였던, 작가님의 렌즈로 본 세계네요. 사람들이 각자의 렌즈를 갖고 있다는 것도 다양성이겠죠.

편협해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생물다양성 이야길 많이 하거든요. 숲에 갔을 때 어느 한 식물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식물이 존재해야 건강한 숲이라고요. 식물을 보면서 내가 속한 인간이라는 종과 비교해 보게 되는데, 인간은 너무 달라요. 우리 스스로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왜 숲에만 다양성을 바라는 걸까, 질문해 보게 되죠. 저 스스로도 나이가 들수록 저와 비슷한 사람,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로만 주변을 채우게 되는 것 같아요. 나중에는 제가 좋아하는 말을 해주는 사람들만 제 옆에 남게 되는 게 아닐까, 식물을 보면서 저를 반성하고 성찰하게 됩니다. 


(왼쪽부터) 엄윤미 대표와 이소영 작가

좋아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


“원예학과에 진학하려던 내게 “어린 애가 무슨 원예를 공부하냐” 고 말하던 어른들의 굴레는, 사라지지 않고 식물을 공부하는 우리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그러니 이젠 나라도 식물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또 식물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어린이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식물은 그 무엇보다 고귀하고 소중한 생명이라고. 생명을 들여다보는 일은 곧 우리의 미래를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식물을 공부하는 일은 결코 시대에 뒤떨어진 일도, 촌스러운 일도 아니라고. (사실 그렇더라도 상관없지 않은가?) 인간이란 동물은 늘 식물에 기대어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니 무엇을 선택하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면 된다.  (22쪽) 


원예학을 공부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반대하셨죠.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던 용기는 어디서 왔던 걸까요? 

그때도 아빠만은 저를 응원해 주셨어요. 청소년기에 모든 사람들이 반대해도 한사람만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아이들에겐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들려줄 수 있는 경험이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을 계속 밀고 나간 경험이에요. 고등학교 때 막연하게 내가 50~60살 정도 되면 식물을 사람들이 많이 찾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날은 더 빨리 왔죠. 오히려 식물세밀화가라는 길을 정할  때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어요. 12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국립수목원에 들어갈 때는 세밀화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었거든요.

그 용기는 어디서 왔을까요?

나는 이걸 하고 싶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이것이다, 하는 마음인 것 같아요. 저만의 특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1세대 식물세밀화가 분들은 미술 전공자들이셔서 원예학을 전공한 제가 식물을 잘 안다는 강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반대로, 그림도 그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준비한 거였고요. 면접에 포트폴리오를 가져간 사람은 저밖에 없었어요. 면접 전에, 세밀화 그리는 일을 하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할 때도 그 포트폴리오를 보여드리면서 설득했죠.

그럴 수 있는 끈기나 에너지는 결국 좋아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 같아요. 식물이 조용하고 잔잔해 보이지만 강하다는 이야길 하셨는데, 말씀 나누는 동안 작가님이 식물 같으시다는 생각을 했어요.

식물 되려면 멀었어요. (웃음)




누군가에게 ‘식물 같은 사람’ 이라는 칭찬을 해 보셨나요? 저도 인터뷰 말미에 처음으로 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수동적이거나 에너지가 없는 사람에게 ‘식물 같다’ 는 부정적인 표현을 쓰죠. 강하고, 성실하고, 함께 살아가며 자신의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현명한 존재가 식물인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식물’ 이라는 렌즈를 가진 사람과 대화를 나눈 덕분에 식물에 대해, 그리고 식물 같은 삶에 대해 의외의 발견을 계속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다양한 렌즈를 만나며 늘려 가는 것이 인터뷰의 즐거움이 아닐까, 이 인터뷰를 통해 전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소영 선생님, 반드시 식물의 경지에 오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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