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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맨스 특집] 나는 끝내 살아남을 거예요 - 핫펠트 예은의 편지

<월간 채널예스>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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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편지를 읽으며 울지 않고, 온전한 따뜻함과 평온함을 느끼게 됐을 때, 이제 정말 나아졌구나, 괜찮아졌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요. (2021.11.09)


사랑하는 소향 언니에게 

언니, 오랜만이에요! 항상 언니에게 편지를 받기만 했는데, 막상 제가 쓰려니 뭔가 민망하고 부끄럽네요. ‘나의 워맨스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에 참여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누구에게 써야 할까 고민하다가 언니가 떠올랐어요. 제가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하는 언니이기도 하고, 또 한 번도 답장하지 못했던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거든요. 저는 편지를 써본 적이 거의 없어요. 손글씨가 아주 못생겼기도 하고(그런 섬세함이 없다고 할까요?), 어딘가 좀 낯간지럽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러면서도 받는 건 참 고맙고 좋더라고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잖아요.

한 통의 편지도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언니는 저에게 꼬박 1년이 넘도록 편지를 보내줬어요. 빼곡하게 적힌 말씀 구절과 저를 위한 기도문을요. 하나하나 적고, 예쁘게 접고, 번호를 매겨 매번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보내줬어요. 얼마만큼의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일까요?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던 저였지만 언니 편지가 와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우편함을 열어보던 기억이 나요. 각종 청구서로 가득한 우편함 안에 ‘인천 연수구’에서 온 편지가 보일 때면, 너무 반가워서 “여깄다!” 하고 소리 내버린 적도 있어요. 읽어버리면 아쉬울 것 같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봉투만 쳐다본 적도 있고요. 전화도 카톡도 할 수 있는 시대에 받는, 주소가 적힌 편지는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한 번쯤은 답장을 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저 참 별로네요. 언니는 답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제가 언니의 편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말해야 했는데…. 그때 저는 그랬어요. 나를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없고, 무엇에도 감사할 수 없었어요. 힘내라는 말에 더 무기력해졌고, 괜찮아질 거란 말은 무책임하게 들렸어요. 배배 꼬여 있었죠. 자기 연민에 가득 차서,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했고, 누구도 내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고 여겼어요. 많은 사람과 멀어졌고, 상처받은 사람들과 어울리다 또다시 상처받기를 반복했어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해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신에게 욕을 하고 따져 묻고 싶다가도 그것조차 무의미했어요. 싫어하는 사람을 끊어내듯이 신에 대한 믿음도 끊어버린 거죠. ‘나는 더 이상 당신이 필요하지 않아’ 하고요. 하지만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누군가 매일 밤 날 대신해 눈물로 기도한다는 것. 그건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따뜻했어요. 더는 내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고 지켜야 할 이유, 끝까지 버티고 살아내야 할 이유가 됐어요. 

언니의 편지를 읽으며 울지 않고, 온전한 따뜻함과 평온함을 느끼게 됐을 때, 이제 정말 나아졌구나, 괜찮아졌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요. 지금의 제가 있게 해줘서, 끝없는 사랑을 보내줘서 고마워요, 언니.

우리가 못 본 시간이 어느덧 6개월이 넘었어요.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언니는 운전면허를 딸 거라고 말했고, 새로 준비하는 책에 대해서, 또 언니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해주셨죠. 그동안 언니의 삶에서 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언니의 열정과 사랑이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해요. 보고 싶어요, 언니. 

날씨가 많이 쌀쌀해지고 있어요. 올해 크리스마스엔 꼭 언니에게 카드를 보낼 거예요. 언니가 해마다 보내준, 직접 만든 카드처럼 예쁘진 않겠지만, 진심을 가득 담을게요. 언제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 10월 10일, 언니의 남은 2021년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예은 올림




*예은 

작가, 싱어송라이터. 활동명 핫펠트로 5인 연작 에세이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에세이와 정규 앨범 묶음집 『1719: 잠겨 있던 시간들에 대하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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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예은(뮤지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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