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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의 짧은 소설] 꿈결

<월간 채널예스>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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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이 녹아 흐르기 전에 정민은 연필을 들고 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윤이를 만났다’로 시작되는 글을. (2021.11.04)


정민은 매일 꿈을 꿨다. 어두운 밤에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꿈, 엘리베이터가 계속해서 추락하는 꿈, 강 건너편의 아름다운 성을 바라보면서도 그곳으로 건너가지 못하는 꿈, 알지도 못하는 스페인어를 학생들에게 강의해야 하는 꿈, 결혼식이 시작되었는데 그제야 드레스를 고르며 조급해하는 꿈, 로켓을 타고 지구 궤도를 도는 꿈, 공중화장실에 갔는데 변기가 모두 더럽거나 문이 달려 있지 않아서 어디에도 들어갈 수 없는 꿈……

꿈에서는 늘 가는 장소가 있었다. 갈 때마다 외로웠던 친척의 집, 고등학교 3학년 때의 교실, 고등학교 급식실, 중학교 1학년 때의 교실과 중학교 근처의 골목길,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냈던 복도식 아파트의 작은 방, 먼 미래에나 있을 법한 거대한 주상복합 건물도 항상 등장하는 장소였다. (그곳에서 자신이 사는 집을 계속해서 찾는 꿈이 잦았다.) 

꿈속에서 길을 잃어서 한참 헤매거나 고된 일들을 겪으면 일어나고 나서도 피곤했다. 암막 커튼으로 모든 빛을 차단하고, 귀마개를 하고, 최대한 편한 잠옷을 입고 잠을 자도 깊이 자지 못했다. 잠에서 깰 때면 영화를 보고 일어난 기분이 들었다. 마그네슘이 숙면에 좋다고 해서도 먹어봤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고, 운동 또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릴 때는 너무 깊이 잠들어서 문제였었다. 너는 잘 때는 누가 업어가도 모르겠다니까. 정민은 어려서 그런 핀잔을 많이 들었었다.

꿈에 잠식되는 잠을 자기 시작했던 건 성인이 된 이후였다. 기질적으로 예민하기도 했지만 무슨 이유였는지 나이가 들수록 작은 스트레스에도 쉽게 지쳤다. 고양이 금덕이를 키우면서부터는 금덕이의 작은 기척에도 마음이 쓰여 잠귀가 밝아졌다. 정민은 금덕과 십오 년을 함께 살았다.

금덕이는 정민의 얼굴 옆에서 같이 잠을 자곤 했다. 한밤에 문득 눈을 떠보면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자고 있거나 우두커니 앉아서 자신을 바라보는 금덕이가 보였다.

정민아.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잠결에 종종 정민의 이름을 불렀다. 창밖을 보고 있다가도 정민아, 싱크대 앞에 서 있다가도 정민아, 하고 혼잣말을 했다. 할아버지 왜? 정민이 물어보면 아니야, 라고 대답했다. 자신이 정민의 이름을 부른 사실조차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할아버지는 물리적으로 그곳에 있는 정민을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금덕, 금덕이, 금덕아.

금덕이가 세상을 떠난 지도 삼 년이 되었지만 정민은 자기도 모르게 금덕이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 

그런데 넌 왜 내 꿈에 나오지 않아? 어떻게,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을 수 있어? 

정민은 종종 금덕이를 원망하며 속으로 말했다.

금덕이만 그런 건 아니었다. 정민의 꿈에는 그리운 존재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오래전에 헤어진 윤이도 나오지 않았다. 꿈에 죽은 가족이나 반려동물이 나왔다고, 정말 꿈 같지 않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정민은 그들이 부러웠고, 꿈이라도 좋으니, 환상이라도 좋으니 단 한 번만이라도 그리운 존재들을 만나고 싶었다.

푹 자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일상은 진행됐다. 정민에게는 일이 있었고, 출근을 위해 매일 여섯 시에 일어나야 했으니까. 그런 규칙적인 일상이 자신을 살아가게 한다는 것을 정민은 알았다. 그런 강제가 있기에 삶이 돌아갔다. 휴일이 되면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하고 누워서 정신 없는 꿈을 꿨으니까. 일어나서 살아갈 하루에 대한 기대가 없으니까, 재미가 없을 테니까 일어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지도 몰랐다.

언제까지 어린이집 일을 할 수 있을까. 처음 이 일을 시작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십 년 차였다. 스물여덟에는 자신보다 열 살 더 많은 선생님들이 정말 나이 든 사람들로 보였었는데. 지금의 자신 또한 어린 선생님들에게 그렇게 보일 터였다. 십 년은 많은 것들을 바꿔 놓는 시간이면서도 장난처럼 금방 지나갔다. 시간은 손끝으로 정민의 뺨을 때리며 약올리듯이 지나갔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당황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금덕과 함께 산 십오 년의 시간도 그랬다. 금덕이를 화장하고 그 따뜻한 재가 담긴 분골함을 들고서 정민은 새끼 고양이였던 금덕이를 떠올렸다. 그때가 손에 잡힐듯한데 그사이 십오 년이 흐른 거였다.

십오 년.

윤이는 우리의 삶이 학교라면 한 학년이 십오 년이라고 말하곤 했다. 태어나서 열다섯까지가 일 학년, 열여섯부터 서른까지가 이 학년, 서른부터 마흔다섯까지가 삼 학년…… 명이 길어 아흔까지 산다면 육 학년을 졸업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윤이다운 엉뚱한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정민은 그 이야기를 오래 의식했다. 그런 시간법을 사용한다면 정민은 윤이와 이 학년에서 삼 학년으로 넘어가던 겨울에 헤어진 거였다. 정민의 이 학년은 윤이로 가득했다. 그 학년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는 윤이였다.

육 학년이 되면 이 학년 때 친했던 친구는 희미해지잖아.

윤이와 헤어지며 정민은 호기롭게 말했었다. 우리는 그저 한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이고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게 어떤 자만이었는지 정민은 이제 아프게 안다. 서른에 윤이는 호주로 이민을 갔고 이제 둘은 이제 페이스북 친구조차도 아니었다.

그냥 한 번만 안아볼까.

지하철역 입구에서 윤이가 두 팔을 벌렸고 정민은 윤이의 품에 안겼다. 방수 처리된 외투가 까끌까끌했고 푹신했다. 슬프면서도 한편으로는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안아보는 것이지만 이 느낌을 알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안전하고 따뜻한, 편안한 기분. 그런 상황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먼저 몸을 뗀 건 윤이였다. 윤이는 굳은 얼굴로 정민을 한참 바라보다가 지하철 입구 계단으로 내려갔다. 정민은 윤이의 뒷모습을 보지 않고 얼마 전 비가 내려 축축하게 젖은 보도를 바라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날 윤이는 정민에게 말했다.

우리 둘 다 우리를 위해 더 노력했어야 했다고 생각해.

정민은 윤이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마음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넌 내게 솔직하지 못했어.

알아.

정민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너를 사랑했어.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모든 게 수월했을 텐데. 내가 너를 조금만 덜 사랑했더라도 우리는 이런 모습이 되지 않았을 거야.

후회할 일이라는 것을 몰랐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마치 그런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너무도 배가 고픈데 눈앞에 있는 따뜻한 죽을 입에 댈 수 없는 꿈. 숟가락을 들고 죽을 떠서 입으로 옮겼는데 도무지 먹을 수가 없는 꿈. 몇 입이라도 먹고 싶은데 도무지 그럴 수가 없는 꿈. 정민은 윤이의 사랑을 받는 법을 알 수 없었다. 윤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확신한 순간 두려워졌다. 도망가야 했다. 스무 살부터 이어오던 윤이와의 관계를 망가뜨릴 수는 없었다.

나는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해.

윤이의 말에 정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적 없어.

그렇게 말하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던 윤이의 표정을 정민은 기억한다. 정민은 윤이에게 숨길 수가 없었다. 최선을 다해서 자기 마음을 숨겨왔지만 윤이가 아무것도 모를 수는 없는 일이라는 걸 정민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거짓말하는 자기 모습을 윤이는 실망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리고 지금, 정민은 윤이를 처음 만났던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 앉아 있다. 윤이를 기다리고 있다. 헤어진 지 구 년 만이다.

정민아.

윤이는 흰색 폴로 티셔츠에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고 있다. 얼굴 살이 빠져서 예전보다는 날카로워 보였지만, 웃을 때 입가에 주름이 지는 모습이 그런 날카로움을 지우는 듯하다. 왜 너를 이렇게 밝은 시간에 보자고 한 걸까. 햇빛이 너무 강해서 얼굴에 있는 모든 보기 안 좋은 것들이 드러나는데. 내 흉터들, 주름들, 잡티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일 것 같은데. 정민은 그런 이유로 윤이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요즘 잠은 잘 자?

윤이가 묻는다.

구 년 만에 보는데 꼭 최근에도 만났던 사람처럼 물어본다.

그렇게 답하고 나자 정민은 윤이와 떨어져 있던 시간이 실감 나지 않는다.

우리 어디 그늘로 갈까? 여긴 너무 밝아서 눈이 부셔.

정민의 말에 윤이가 고개를 젓는다.

그냥 여기 있자.

윤이가 그렇게 말하고 정민의 얼굴을 본다. 밝은 빛이 비치고 있다는 실감만 날 뿐이지 빛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이 가을인가? 정민의 질문에 윤이는 조용히 웃을 뿐이다.

우연히라도 마주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단 걸 알았어. 우연이 계속된다는 건 가능한 일이 아니니까.

정민이 말한다.

스무 살 가을의 정민은 아버지가 베이시스트로 세션에 참여한 가수의 공연을 혼자 보러 왔다.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것이 윤이였다. 윤이의 아버지도 세션에 참여한 기타리스트였다. 각자의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러 대기실에 갔고 그곳에서 정민은 윤이에게 처음 인사를 했다. 둘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세종문화회관의 긴 계단을 내려왔다. 서로의 아버지가 얼마나 철이 없고 말썽을 부리는지에 대해서, 하지만 얼마나 순수한 사람들인지, 공연장에서의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정민이나 윤이나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없다는 말을 하며 웃었다. 둘은 동갑이었고 알고 보니 같은 동네에 살았다. 정민이나 윤이가 다른 날 공연을 보러 갔다면 둘은 애초에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같은 공연을 본 것이 첫 번째 우연이었다.

두 번째 우연은 윤이가 정민이 아르바이트하던 영화관에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으로 온 일이었다. 둘은 그 영화관이 없어지던 스물다섯이 될 때까지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네 친구로 지냈다. 둘 다 그 나이까지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대학을 다녔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무리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자기 감정을 잘 숨긴다면 윤이를 잃지 않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정민은 마음을 다스렸다.

윤이의 인내심은 정민보다 강하지 못했다. 윤이는 정민이 자기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다면 정민을 친구로도 만날 수 없다고 했다. 그때 정민은 흔들렸지만 이런 상황에서 윤이를 잃는 것이, 윤이와 연인이 된 후에 서로에게 실망하고 상처 입는 것보다 덜 아플 거라고 판단했다.

정민은 지금 곁에 앉아 있는 윤이를 보며 생각한다.

너는 진짜였고 나는 그게 무서웠지. 네가 나를 좋아한다면, 네가 내 안에서 무언가 좋은 걸 본다면, 그건 오해일 뿐이고 넌 네가 속았다는 걸 곧 알아차리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떠날 거라고. 난 그걸 견딜 수 없을 테고.

정민은 속으로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구나.

윤이가 정민의 마음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도 어쩐지 정민은 이런 상황이 이상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네 사랑은 나를 초라하게 했어. 너는 이 마음을 몰라.

정민은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어 말한다. 

나한테 그렇게 솔직하게 말했으면 좋았을 거야. 그랬다면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거야.

윤이가 조용하게 답한다. 

후회하고 있어.

그렇게 말을 뱉고 나서 정민은 자신이 윤이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지금 이거, 꿈이구나.

정민의 말에 윤이가 엷게 웃는다. 

내 꿈 안이야.

그래. 

하긴, 우리가 어떻게 만나.

정민은 윤이의 얼굴을 보며 웃는다. 둘은 소리 내어 같이 웃는다. 너무 웃어서 정민은 꿈의 갈라진 틈으로 빠져나갈 뻔한다. 깨고 싶지 않다. 

윤이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정민을 바라보다 입을 연다. 

우리는 네 꿈에서 자주 만났어. 알잖아, 꿈을 기억할지 말지는 너의 선택이었다는 거. 넌 깨어나기 전에 선택할 수 있었어. 그리고 매번 기억하지 않는 걸 선택했고.

그랬구나.

그랬어.

그랬던 것 같아.

응.

윤이는 정민의 얼굴을 바라보며 애써 웃어 보인다.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건 아니었지만, 꿈에서 윤이를 만난 건 지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도, 금덕이도 꿈에서 만났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정민은 이해한다. 의식적으로는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더 깊은 마음속에서는 자신에게 그런 식으로 위로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었다는 것을.

너는……

윤이가 슬픈 표정으로 말한다. 

너는 너를 용서해야 돼.

정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 꿈은 또 지워질까.

윤이의 질문에 정민은 답하지 못한다. 

이제는 네 얼굴도 구체적으로 잘 떠오르지 않아. 화소가 낮은 사진처럼만, 뿌옇게 보여. 네 목소리도, 아주 멀리서 들리는 소리처럼만 기억돼. 

정민이 말한다.

꿈처럼?

응. 꿈처럼. 

그래도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이네. 

윤이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장난처럼 계단을 한 칸, 한 칸 천천히 내려간다. 윤이가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윤이야.

정민의 목소리에 윤이가 발길을 멈추고 정민을 돌아본다. 

윤이야, 윤이야.

윤이를 부르는 자신의 목소리에 정민은 꿈에서 깨어났다.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가던 윤이의 뒷모습, 그래도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이네, 라는 말속의 안도감이 눈을 뜨고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너는 너를 용서해야 해, 머뭇거리며 그 말을 하던 윤이의 얼굴은 꿈속처럼 모호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정민은 한동안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알람은 십 분 후에 울릴 것이었다. 아무리 생생한 꿈이라고 하더라도 꿈은 현실에 내려앉는 순간의 눈송이 같은 거란 걸 정민은 알았다. 그 꿈이 녹아 흐르기 전에 정민은 연필을 들고 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윤이를 만났다’로 시작되는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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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은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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