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여러모로 정신이 없었다. 그전까지 벌여왔던 일이 늘 그렇듯이 한꺼번에 밀어닥쳤고, 회사에서는 백신 휴가와 추석 연휴와 연차와 재택근무와 퇴사 등으로 일이 착착 진행되지 않고 점점 누적되었다.
심지어 회사원이라면 모두가 손꼽아 기다린다는 추석연휴과 빨간날이 반갑지 않았다. 직장인이 빨간날을 싫어한다고? 중증이다. 병원에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스스로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차분히 따지고 들어가면 휴일이 반갑지 않은 게 아니라, 휴일 전에 해치워야 할 업무와 휴일 이후 해치워야 할 일의 몫까지 미리 앞당겨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깜냥 이상으로 무언가가 밀어닥치는 기분.
요새는 모험을 하기가 싫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원래 모험을 싫어하는 기질이 나이를 먹고 더 심해졌다. 새 음식을 사 먹는 대신 먹어봤던 음식을 시키고, 만나던 사람을 만난다. 듣던 음악만 듣고 보던 프로그램만 본다. 피곤증 역시 매년 심해지는 느낌이다. 밤 11시 이후 무언가 해야 하면 짜증이 난다.
규칙이 너무 좋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일을 하는 게 편안하다. 오히려 매일 다른 시간에 일어나 매일 다른 일을 해야 한다면 질색했을 것이다. 회사에서도 무언가 새로운 일이 터지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가 해낼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무언가 나에게 닥치는 게 싫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비둘기』를 보면 30년간 같은 일을 해온 경비원이 어느 날 아침 나타난 비둘기에 당황한다. 비둘기 때문에 늘 하던 루틴을 빼먹고,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자기 인생은 망했으며 이제 죽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둘기는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갑자기 사라지고, 경비원은 다시 살아간다.
나는 『비둘기』의 경비원처럼 별거 아닌 일에 히스테리를 부린 것이 아닌가, 또 반성했다. 실제로 내 능력 이상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은 하다 보니 다 해결되었다. 문을 열기 전까지는 엄청 커 보였는데, 막상 문을 여니까 자그마한 존재가 그림자만 뻥튀기해서 보여준 것 같았달까. 사서 걱정하는 것도 버릇이라고, 몸 사리다가 비둘기에도 놀라 나자빠지는 인간이 된 것 같았다.
지치고 힘든 때 기분을 새롭게 하려면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지치고 힘든 한 마리 땡벌이 되었고 새로운 일을 못해서 다시 지치고 힘들고를 반복하고 있다. 최근 활동하는 모든 곳에서 나의 지침을 호소했더니 다들 내가 그만두는 것은 아닌지 한 번씩 확인했다. 아니 당장 그만둘 생각은 아닌데요, 그냥 지쳤어요. 그렇다고요...
휴가를 내야 지치는 게 줄어드는데 휴가를 내려면 지쳐야 하는 역설. 다음주는 또다른 휴가가 남아있고 나는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다. 빨간날이 하나도 없는 11월이 되면 '배부른 고민 했구나' 눈물을 흘리면서 일할 지도 모르지만,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현자가 계시다면 댓글로 자기만의 팁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휴일이 무서운 직장인, 어떻게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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