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경 “지혜를 구하고 싶을 때 찾는 인간화(人間話)”
『표범처럼 멋지게 변신하는 삶, 사기』 황희경 저자 인터뷰
『사기』는 역사서일 뿐만이 아니라 문학과 철학이 녹아든 다채로운 인문학책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2021.07.02)
『표범처럼 멋지게 변신하는 삶, 사기』는 『사기열전』을 통해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사색한 고전 에세이다. “표범의 무늬가 가을이 되면 아름다워진다”는 뜻의 ‘표변(豹變)’은 『주역』의 ‘군자표변’에서 유래한 단어로 ‘군자는 표변한다’는 좋은 말이다. ‘표변하는 삶’은 허물을 고쳐 말과 행동이 뚜렷이 달라져 삶이 좋은 방향으로, 높은 단계로 멋지게 변신하는 것을 말한다. 이 책은 『사기열전』 70편 중 12개의 명편을 뽑아 알맞은 때에 내린 선택과 결단으로 삶을 바꾼 인물들을 이야기한다.
이 책이 『사기열전』 가운데 12개의 명편을 다루면서, 가을이 되면 표범의 무늬가 짙고 아름다워지듯이 삶이 좋은 방향, 높은 방향으로 바뀐 인물들을 이야기한다고 하셨지요. 사마천이 쓴 『사기』는 어떤 책인가요?
세 가지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첫째 『사기』는 역사서일 뿐만이 아니라 문학과 철학이 녹아든 다채로운 인문학책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루쉰은 『사기』를 “역사가의 빼어난 노래요, 운율이 없는 이소경(굴원의 시집)”이라고 평했죠. (그런데 이 평은 『사기』의 철학적 측면은 빠트렸어요.) 두 번째는 서양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견되는 동아시아의 인간화(人間話)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혜를 구하고 싶을 때 찾는 인간의 이야기이죠. 세 번째로는 사마천 자신이 자부한 것처럼,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를 관통해서 일가의 말을 이룬”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전 가운데 가장 유명한 편은 「백이열전(伯夷列傳)」과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이라고 하셨어요. 두 열전은 이 책에서도 다루고 있지요. 선생님은 어떤 이유로 12편을 뽑았나요?
시를 짓는 것보다 좋은 시를 선택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특별히 뽑았다기보다 역대의 대가들이 선택한 것을 참고했습니다. 누구든 각자의 삶으로 들어가 살펴보면 모두 파란만장하겠지만 여기서 고른 인물은 특히 변화무쌍한 삶을 살았고 우리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생각하게 만드는 인물입니다. 물론 이외에도 좋은 열전이 많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오자서’나 ‘노중련’을 다루지 못한 것은 아쉽습니다. 종횡가(전국시대에 권모나 책략, 언변 등을 바탕으로 제후들에게 유세하며 정치 외교 활동을 펼친 일군의 사람들을 말함)를 대표하는 ‘소진’과 ‘장의’를 다룬 열전은 명문이라기보다 현재의 세계정세를 투사해보기 좋다고 생각해서 일부로 뽑았습니다. 「백이열전」은 『사기열전』의 요지이자 서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백이와 숙제는 역사에 무슨 커다란 공적을 남긴 인물이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그들은 영웅과 거리가 먼 실패자입니다. 그런 인물을 열전의 처음에 배치했다는 것 자체가 사마천의 철학을 드러내고 역사에 시적 운치를 더하지요. 다른 한편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부자들을 가장 나중에 기록했어요. 이들 사이, 상고(上古)시대부터 한(漢)대까지 시대적 전환기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인물을 적절히 골랐습니다.
선생님이 특히 공들여 소개했거나 우리가 꼭 알았으면 하는 열전의 인물은 누구인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국시대 네 공자(중국 춘추전국 시대 각국의 제후, 종실, 공족의 자제 가운데 명망이 높았던 네 명인 조나라의 평원군, 초나라의 춘신군, 제나라의 맹상군, 위나라의 신릉군을 말함) 모두 매력이 있지만 그중에서 최고는 신릉군 위공자입니다. 공자(公子)의 신분으로 문지기, 백정, 노름꾼, 술꾼과도 잘 어울렸고, 그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자신의 나라를 위해 일했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훌륭한 인물도 진나라의 반간계(상대의 첩자를 이용하여 적의 내부를 이간시키는 계략) 때문에 불우한 말년을 보냈지요.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들을 보면 하나같이 곤욕을 참고 분발, 노오-력하여 빛나는 성취를 이루었어요. 엄격한 신분 사회였는데도 말이에요. 이와 달리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체념과 무기력의 정서가 우리 사회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2천 년이라는 간극만큼 『사기』가 쓰인 시대와 현대 한국 사회가 달라 보입니다. 그래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사기』를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사마천 자신도 그런 삶을 살았어요. 이들의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어요.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하거나 응분의 보답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셀 수 없이 많지요. 하지만 그렇게 분투노력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중국에선 ‘탕핑’이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합니다. 누워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젊은이들이 힘센 자들에게 더 이상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누워서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말은 없지만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비슷한 풍조가 있지요. 사실 저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상당히 공감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태의 원인이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 금융자본주의나 기술혁명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해도 분투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력한다고 꼭 보답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지만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무언가 이루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루었다고 해도 의미가 없어요. 우연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요.
『사기열전』 가운데 세속적으로 가장 성공한 인물은 누구인가요? 우리가 참고할 만한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은 무엇이었나요?
이 책의 12장에 소개한 ‘범려’가 아닐까 합니다. 비결은 네 글자. 지시지인(知時知人). 때를 알고 사람을 아는 것입니다. 또한 성공에 안주하면 안 되고 욕심을 줄이고 주변에 많이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마천은 ‘성패’로 영웅을 논하지 않는다고도 하셨는데, 사마천이 말하고자 한 좋은 삶, 아름다운 삶은 어떤 삶인가요? 성공한 삶과 좋은 삶은 같은가요, 다른가요?
성공한 삶과 좋은 삶은 다른 것입니다. 백이가 무슨 공을 이루었습니까? 그러나 그가 잘못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삼불후(三不朽)라는 말이 있습니다. 썩지 않는 세 가지라는 말입니다. 입덕(立德), 입공(立功), 입언(立言)입니다. 최고는 단연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다음이 공을 세우는 것이고 마지막이 훌륭한 말을 남기는 것입니다. 죽어도 썩지 않는 삶을 ‘좋은 삶’이라고 한다면 ‘성공한 삶’은 좋은 삶의 일부분입니다. 물론 이때 성공이라는 것도 우리가 현재 말하는 성공과는 다른 것이지만요.
대학교에서 『사기열전』을 강의하셨지요? 학생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학생들에게 강의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으셨나요?
언제나 그렇기는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특히 고민도 많고 불안해하는 일도 많은 것 같아요.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으로 한편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제 강의엔 ‘회’보다 ‘쓰키다시’가 많아요. 사실 ‘회’가 많을 수는 없지요. 제가 살아온 삶을 틈틈이 이야기하면서 질문을 던져 학생 스스로 생각하도록 합니다. 답보다도 질문이 중요하거든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제 착각인지는 모르지만 반응이 나쁘지 않습니다. 제 강의 때문이라기보다 『사기』 자체가 사실 감상 포인트를 알고 보면 엄청 재미있고 여운이 있는 텍스트예요. 이런 강의평을 남긴 학생이 기억납니다. “제대 후에 힘들 때 성경 잠언을 읽곤 했는데 앞으로는 『사기열전』을 펴볼 것 같다.”
*황희경 강화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성균관대학교 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펑여우란(馮友蘭)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이후에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와 불경서당(봉선사)을 다니면서 한문을 공부했다. 진보적 학술단체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활동하면서 현대중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중국과 수교 직후에 중국인민대학에서 고급진수생 과정을 수료했다. 귀국 후에 잠시 출판사를 운영한 일이 있으나 출판보다는 독서와 사람 만나는 일에 매료된 시간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수입되는 중국책을 구입해서 읽는 것과 바닷가에 있는 유치원에 큰아들을 통학시키는 것을 생활의 낙으로 삼고 있다. 현재는 영산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현대 중국의 모색』, 『우리들의 동양철학』, 『중국철학문답』, 『몸으로 본 중국철학』, 『삶에 집착한 사람과 함께 하는 논어』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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