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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12명의 의사 이야기

『반항하는 의사들』 곽경훈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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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불꽃을 당긴 이단자 파라켈수스로 시작하여 에이즈 예방을 위해 보수 세력과 맞선 독실한 기독교인 보건총감 에버렛 쿱까지, 의학 발전에 이바지한 12명의 이야기를 엮었다. (2021.05.21)


곽경훈은 의대에 가고 싶지 않았다. 종군기자가 되고 싶었고, 그게 너무 위험하다면 인류학자가 되고 싶었다. 어쩌다 보니 고등학교 내내 성적이 좋았다. 종군기자나 인류학자를 반길 만큼 여유로운 집안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꿈을 이루고 싶을 만큼의 재능이나 의지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의대에 갔다. 그저 ‘성적에 맞춰’ 의대에 갔으니 수업을 따라가기도 벅찼다. 한 번의 유급을 거쳐 7년 만에 ‘끄트머리에서 3등’으로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지원하고 싶던 전공은 정신과였으나, 이번에도 ‘성적에 맞춰’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되었다.

곽경훈의 새 책 『반항하는 의사들』은 혁명의 불꽃을 당긴 이단자 파라켈수스로 시작하여 에이즈 예방을 위해 보수 세력과 맞선 독실한 기독교인 보건총감 에버렛 쿱까지, 의학 발전에 이바지한 12명의 이야기를 엮었다. 그러나 모든 인물이 영웅의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고결한 영웅도 있지만, 편협한 인간, 끔찍한 국수주의자도 있다. 의학사의 가장 역동적인 순간을 만들어 낸 그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나 보자.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에 이은 원더박스에서의 두 번째 책인데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응급의학과 의사 곽경훈입니다. 제 소개는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전 책이 메디컬 에세이였다면 『반항하는 의사들』의학사를 담은 책입니다. 파라켈수스부터 시작하여 현대 의학을 만든 열두 명의 의사를 살펴보는 책인데요, 특히 당시 주류 세력에 맞서 새로운 의학을 시도했던 의사들의 이야기입니다. 말 그대로 ‘반항하는 의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당시 옳다고 여겨졌던 것에 반대하고, 주류 세력에 반항하여 세상을 바꾼 발견 혹은 발명을 해낸 의사들의 이야기를 엮었습니다. 딱딱한 역사책은 아니고요. 재밌는 이야기를 곁들여 술술 읽고, 교양도 쌓을 수 있는 그런 책입니다.(웃음)

의학사를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의학사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부탁드립니다.

의학사는 문자 그대로 의학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의학사를 배우는 학문이 의사학(醫史學)입니다. 보통 의료 윤리학이나 예방의학의 하위 개념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의학사가 왜 필요하느냐라는 질문은 역사가 왜 필요한가와 같은 질문인 것 같은데, 역사라는 게 인류가 살아온 흔적을 이야기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기술의 발달, 사람들의 관습이 바뀌는 것 등 모두 역사라고 볼 수 있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한 번쯤은 오늘날의 의학이 어떻게 발전을 해 왔는지, 어떻게 오늘날의 의학이 만들어졌는지, 언제부터 의학이 이런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 특히 지금 너무나도 강조되는 ‘손 씻기’만 하더라도 과거에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던 생각입니다. 이 간단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우리가 안다면, 앞으로 의학의 새로운 발견을 접할 때 잘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또 지금 우리가 정말 당연히 여기는 것도 잘못 알고 있는 것일 수 있지요.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건, 재밌잖아요?(웃음)

우리는 히포크라테스를 의학의 아버지라 부르고,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할 정도로 의학사에서 그의 존재감은 큽니다. 그런데 책은 “우리는 히포크라테스의 후예가 아니다”라는 다소 파격적인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이 선언에 담긴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나라의 한의학이나 중국의 중의학의 경우 ‘우리는 허준의 후예다’, ‘우리는 화타의 후예다’라는 말을 쓸 수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의학에서는 여전히 『동의보감』을 사용하고, 중의학에서는 화타의 『황제내경』을 사용합니다. 그 책에 나와 있는 원리를 따라서 질병을 규명하고 환자를 치료하기 때문에, ‘화타의 후예’, ‘허준의 후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양 의학의 경우 히포크라테스가 주장했던 의학, 그 당시의 의술을 오늘날에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히포크라테스가 오늘날의 의학을 보면 잘못된 방법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고 할지도 몰라요. 단순히 2000년 전 사람이라 기술의 발전이 낙후하여 그런 것이 아니라 질병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다릅니다. 

그때까지의 의학은 체액설에 기반한 것이었는데, 체액설은 혈액(blood), 점액(phlegm), 황담즙(yellow bile), 흑담즙(black bile)이 인간의 몸을 구성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주장에 따르면 외상을 제외한 모든 질병은 네 가지 체액의 균형이 무너져서 발생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치료라고 해 봐야 증상을 기록하며 상태 변화를 관찰하기보다는 환자에게 어떤 체액이 부족하고 어느 체액이 지나치게 많은지 설명하는 게 전부였어요. 말하자면 당시 의학은 철학 이론과도 같은 학문이었죠. 

이를 깨뜨린 것이 파라켈수스입니다. 파라켈수스는 직접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질병을 분류하고 규명하여 환자를 치료하라고 주장했습니다. 근거 중심주의에 기반한 현대 의학의 씨앗을 뿌린 셈이지요.

방금 말씀해 주신 파라켈수스라는 인물이 의학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인물인 것 같습니다. 책의 부제 역시 ‘파라켈수스부터 에버렛 쿱까지 세상을 바꾼 12명의 의사들’이고, 프롤로그에서도 ‘오늘의 의사는 파라켈수스의 후예’라고 주장하실 정도로 이 책의 핵심적인 인물인데요, 파라켈수스에 대해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파라켈수스는 굉장히 혁신적인 의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면면이 좀 독특한데요, 그의 본명은 필리푸스 아우레올루스 테오프라스투스 봄바스투스 폰 호엔하임(Philippus Aureolus Theophrastus Bombastus von Hohenheim)입니다. 파라켈수스가 살았던 르네상스 당시 라틴어로 이름을 짓는 게 유행이었다고 하는데요, 스스로를 ‘파라켈수스’라고 칭합니다. 이는 ‘켈수스를 능가하는 자’라는 뜻이에요. 요즘 말로 관종끼가 다분했던 사람이었죠.

이런 독특한 면모를 가진 파라켈수스는 체액설에 반기를 듭니다. 체액설에 기반한 사혈 요법 같은 검증되지 않은 치료를 할 게 아니라 어떤 증상이 있는지 관찰하는 게 더 중요하다라는 주장을 펼친 것이죠. 지금은 당연한 말이지만, 당시에는 신성모독이나 다름없는 주장이었지요.

그런데 파라켈수스가 일을 저지릅니다. 체액설을 주장한 갈레노스와 이븐 시나의 책을 불태워 버린 것이죠. 이는 교황의 문서를 공개적으로 불태운 마르틴 루터를 떠올리게 합니다. 역시 관종 성향이 강한 파라켈수스다운 일이긴 하지만, 이로 인해 바젤 대학에서 추방당합니다. 하지만 ‘관찰을 통해 확인한 사실을 바탕으로 질병을 규명해야 한다.’라는 그의 주장은 의학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의학의 아버지는 파라켈수스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파라켈수스를 ‘전통 의학에 반기를 든 혁명가’라고 표현하신 이유를 알 것 같네요. 책 제목이 ‘반항하는 의사들’인데요. 여기 실린 인물들의 특징, 공통점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책에 인물들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요, 그 사진을 가만히 살펴보면 눈빛이 다들 맹렬합니다. 뭔가 고집 세고, 남의 말 잘 안 들을 것처럼 생겼고, 사회랑 불화하는 듯한 눈빛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약간 또라이 같은 사람들인 거지요. 자신이 추구하는 무언가를 향해 달려간 사람들입니다. 의학사의 중요한 업적을 남긴 사람 중에 자신만의 고집스러운 면모를 보인 사람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당시 많은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옳다고 생각한 것을 고집스레 밀고 나간 사람들이지요. 그리고 결국 세상을 바꿨다고 할 정도로 위대한 발견을 한 의사들입니다.

가장 마지막에 실린 에버렛 쿱에 대해서도 잠시 소개 부탁드립니다. 사실 에버렛 쿱은 소아외과 전문의로 선천성 기형을 치료하는 수술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지만, 의료행정가, 그러니까 미국의 보건 정책을 총괄하는 보건총감으로 더 큰 업적을 달성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요. 찰스 에버렛 쿱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찰스 에버렛 쿱은 소아과, 혹은 소아 외과 의사들에게는 엄청 유명한 사람입니다. 선천성 기형을 수술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던 의사였지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보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기형인 아이들을 수술로 치료하며 낙태를 반대하게 됩니다. 자신이 수술로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아이임에도 태어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이유였지요.

그런 배경 덕분에 보수주의 재건을 내세운 레이건 대통령 행정부의 보건총감으로 임명됩니다. 진보 진영에서는 난리가 납니다. 그가 동성애 금지, 낙태 금지 등의 정책을 펼칠 것이라 생각하고 반대에 나섭니다. 당시 가장 선두에서 반대하던 사람이 케네디 형제의 막내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입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보건총감 자리에 오르는데, 깜짝 놀랄 일이 발생합니다.

1980년대에 미국에 HIV가 퍼져나갑니다. 보수 진영에서는 ‘동성애 반대’를 주장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에버렛 쿱은 이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약 중독자에게 주삿바늘을 나누어 주고 학생들과 동성애자들에게 콘돔을 나누어 주며 안전한 성관계를 교육하지요.

또한 에버렛 쿱은 끝끝내 낙태를 불법화하지 않습니다. 레이건 대통령 측으로부터 계속해서 불법화할 것에 대한 압력이 들어오자 편지를 적습니다. ‘보건총감은 미국의 도덕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국의 보건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낙태를 불법화하기 위해서는 낙태가 여성의 건강에 위험을 끼친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근거가 없기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낙태를 반대하지만 보건총감으로서는 반대할 수 없다.’라는 내용을 담았다고 합니다.

이어서 에버렛 쿱은 흡연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모두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 내용은 책으로 살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웃음)



전통 의학의 반기를 든 파라켈수스로 시작하여 보건 정책으로 더욱 많은 사람의 건강을 지켜 낸 에버렛 쿱까지, 흥미진진한 의사 이야기가 가득하네요.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파스퇴르는 사실 애국심이 너무 넘쳐 국수주의자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광견병 백신을 접종한 것도 애국심 때문이라는 설도 있어요. 책 속 두 번째 인물로 등장하는 윌리엄 하비는 왕권신수설을 옹호한 완고한 왕당파였습니다. 이처럼 모든 인물이 영웅의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에요. 그들 가운데에는 고결한 영웅도 있지만, 편협한 인간, 끔찍한 국수주의자도 있습니다.

반항하는 의사들』은 현대 의학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인물을 통해 살펴본 책입니다. 당대 주류 이론과 다르더라도 이를 꿋꿋하게 주장해 나간, 주류 세력의 압력에 굴하지 않은 의사들의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어쩌면 이는 의사에게 필요한 자세이지 않을까요? 일단 이야기가 재밌으니 많은 분들이 읽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웃음) 


*곽경훈

1978년 겨울,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독서와 여행을 좋아해 소설가와 종군 기자를 꿈꿨다. 인류학이나 의사학(medical history)에 관심이 많았고, 역사학자, 연극배우 등 다양한 진로를 꿈꾸었지만 현실적인 고민 끝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현재 동해안 끝자락에 있는 한 도시의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다. 근무가 없는 날에는 체육관에서 주짓수를 배우고 틈틈이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의사가 뭐라고』,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 『침 튀기는 인문학』이 있다. 존경받는 인물은 못 되더라도, 전문직에 수반하는 최소한의 자존심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의사 가운을 입는다.



반항하는 의사들
반항하는 의사들
곽경훈 저
원더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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