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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보통 맛』, 뭐든 잘해 보고 싶은 사람들

『보통 맛』 최유안 소설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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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제 직업이나 학술적 전공이 시의성 있는 사회 이슈를 다루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다만 이슈를 어떤 방식으로 감각하느냐가 시선에 따라 달라져요. (2021.05.21)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최유안 작가의 첫 소설집 『보통 맛』이 출간되었다. 『보통 맛』에 수록된 8편의 소설 속 주인공은 뭐든 잘해 보고 싶은 이들이다. 가까이는 회사 안에서 좋은 동료가 되고 싶고, 멀게는 자신의 일을 통해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 동시에 자기 자신을 소모시키거나 잃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자신을 잃지 않으며 좋은 사람이 되기란, 현실의 문제에 직면해 나의 이상과 원칙을 지키기란 결코 쉽지 않다. 타인과의 적절한 경계는 늘 변하고, 책임과 의무 역시 매순간 달라지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나의 영역을 지키면서 공동의 집을 짓기. 『보통 맛』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도를 계속하는 이야기다. 

최유안 소설가는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들을 예리하게 포착해 낼 뿐 아니라 묵직한 사회 이슈를 개인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읽는 이로 하여금 함께 고민하게 만든다. 이때 공감과 고민을 가능하게 하는 건 역시 탄탄하고 짜임새 있는 서사다. 그 생생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소설에 녹아 든 작가의 경험이 궁금해진다. 최유안 작가를 만나 소설을 읽으며 떠올랐던 질문들을 건네 보았다.




첫 책을 낸 소감과 근황이 궁금해요.

거의 모든 ‘처음’이 그럴 텐데, ‘이게 맞나’, ‘잘 가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해요.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하고, 앞으로가 궁금하기도 하고요. 한편 ‘첫’이라는 단어에 많은 힘을 싣지 않으려고 일부러 생각을 돌리기도 해요. 힘을 빼고 자연스레 그 ‘처음’이 두 번째, 세 번째로 이어질 수 있도록. 물론 다짐하는 것만큼 쉽지는 않지만요. 요즘의 저는 매일의 루틴을 변함없이 지켜가려고 노력합니다. 여름에 마감할 소설을 준비하고, 청탁받은 여러 가지 글을 쓰고요, 평일에는 회사에 다닙니다. 요가로 하루를 시작하고, 170일 된 조카 사진을 보면서 하루를 마감해요.   

첫 번째 소설「본게마인샤프트」는 한국인인 '혜령‘이 독일 기숙사에서 겪는 일을 다루고 있어요.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해외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내가 아시안이라 그런가?‘ 하고 합리적인 의심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는데요. 작가님은 어떤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쓰게 되셨나요?

맞아요, 저도 그런 일을 많이 겪었어요.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말씀에 공감이 되는데요. 겉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뉘앙스상의 차별적 언행이나 태도를 보게 될 때, 겉으로 드러나는 차별을 받을 때보다 더 깊은 비참함을 느끼곤 했어요. 한편으로는 누구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강조하고 싶었어요. 주인공 혜령은 스테파니나 멜라니로부터의 차별을 의심하면서 멍에 대해서는 함부로 판단하죠. 

「본게마인샤프트」에는 제가 독일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경험이 녹아 있어요. 상황이나 인물은 허구지만 그때 제가 느꼈던 감정이 곳곳에 들어 있고요. 제가 지나가면 놀리듯 서툰 중국말을 내뱉는 사람들이 있던 때였고, 원/유로 환율이 사상 최고였던 슬픈 때였어요. 돈 없는 대학생이었던 저는 1유로짜리 바게트를 뜯어 먹으며 아낀 돈으로 유럽 여행을 다녔어요. 그때 기숙사에서 함께 지내던 친구들과 해 먹은 서로 다른 국적의 요리들, 다투고 화해하고 또 다투던 날들, 다락방 지붕의 경사진 유리창으로 쏟아지던 별들이 이 소설의 재료가 되었어요. 학교 안에서는 인종, 성별, 계층 따위를 잊어버리고 모두 친구로 지내다가도 학교 밖에서는 그 차이를 또렷하게 느끼곤 했죠. 그때의 복잡한 마음들이 소설에 담겨 있어요. 

데뷔작이기도 한「내가 만든 사례에 대하여」는 난민 문제에 대한 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영은’이 주인공이에요. 논문의 내용이나 학회에서 발표를 하는 등의 상황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인 점이 인상 깊었는데요. 이 소설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나요?

직업적으로 저는 국제 사회 이슈에 대한 글을 쓰는 연구원이고, 저희 연구원에서 주최하는 국제 세미나를 개최하는 일을 맡기도 해요. 제가 쓴 논문을 학회에서 발표하는 경우도 있고요. 「내가 만든 사례에 대하여」는 학회 발표 차 독일을 오가는 중에 한 신문 기사의 사진을 발견하고서 쓰게 됐어요. 지중해 한가운데에 반쯤 가라앉은 상태로 떠 있는 고무보트 사진이었는데, 지중해가 지독히도 검게 보였어요. 난민이 하루에 몇만 명씩 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가던 시절이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바다에 빠져 죽는 사람도 많았고요. 사진을 발견한 건 하필 유럽 안보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었어요. 한꺼번에 수만 명이나 들어온 난민이 안보 이슈의 최전선에 있었던 건 더 말할 나위없고요. 그 사진을 보면서 ‘다음 연구 주제로는 독일로 들어오는 난민 문제를 다뤄 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동시에 굉장히 부끄럽고 소름끼쳤어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명을 다투는 문제가 저에게는 논문의 소재일 뿐이라는 미안함과 창피함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날 비행기 안에서 내내 그 소설을 구상했어요. 그때 보고 들은 것을 소설로 써 등단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저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자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난민 문제, 불법 촬영물 문제, 임신, 출산, 육아의 문제…… 굵직한 사회 이슈들을 다룬 작품들이 눈에 띄었어요. 이런 문제들을 소설로 다뤄 보기로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제 직업이나 학술적 전공이 시의성 있는 사회 이슈를 다루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다만 이슈를 어떤 방식으로 감각하느냐가 시선에 따라 달라져요. 이슈가 일어난 원인을 객관화해 보여 줄 필요가 있는 연구원으로서는 문제의 바깥을 다루고, 소설가로서는 좀 더 내밀하게 문제의 안쪽을 다뤄요. 수치만으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을 다룰 수 있는 건 예술뿐이니까요. 그렇게 소설을 쓰며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아가는 것 같아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제가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문제들을 소설로 다뤄 보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가령「영과 일」은 어느 미국 인터넷 플랫폼에 올라온 광고에서 시작했어요. 우연히 발견한 글이었는데 ‘홈메이드 포르노 주인공을 구한다’라고 적혀 있었고, 동양인, 특히 한국인 여성이면 좋겠다고 적혀 있더라고요. ‘한국인 여성’의 이미지가 대체 어떻기에 미국의 사이트에서 ‘한국인 여성’을 ‘포르노 주인공’으로 가장 선호한다며 찾았을까요. 저 역시 ‘한국인 여성’이라는 사실을 종일 곱씹고 있었는데, 마침 그날 오후에 청탁 전화가 왔어요.

4차 산업 시대에 돈벌이 삼아 만든 영상들은 더욱 교활한 방법으로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어요. 성착취 영상을 통해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이 있고요. 이 문제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이걸 풀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의 비판적인 사유가 절실해요.

소설집 전체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인물 한 명, 가장 아끼는 문장 하나를 꼽아 주신다면요?

다른 인물들에게도 다 마음이 가고 특히 「보통 맛」의 현주를 이야기 하지 못해 아쉽긴 한데요, 그래도 지금 딱 한 명만 고르라면「거짓말」의 ‘세영’요. 그 인물의 마음을 고민했을 때 가장 무서웠거든요. 여러 번 앞이 캄캄했고요. 제가 출산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경험이 세영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도와주었어요. 그 소설을 준비하면서 난임 클리닉에 대해 조사하고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찾아 봤어요. 결혼-임신-출산-육아의 진영에 있거나, 공무원인 친구들을 괴롭히며 궁금한 것을 묻기도 하고요. 우리나라 출산율이 역대 최저라지만 속사정은 개인마다 다르니까요. 이 자리를 빌려 아이를 낳아 기르시는 분들, 낳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 낳지 않기로 해야 했던 분들, 낳을 수도 낳지 않을 수도 없어 고민하는 분들 모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어요. 

가장 아끼는 문장으로는「내가 만든 사례에 대하여」의 “용기란 주어진 상황을 헤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을 품고 가는 것이라네.”를 꼽고 싶어요. 힘든 시기에도 자기 자리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할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담긴 문장이에요. 

「집 짓는 사람」에서 주인공이 “인간은 자신이 사는 집을 완성해 가며 비로소 스스로가 누구인지 깨닫는다.”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지침 삼아 집 짓기를 계속해 나가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소설들을 구상하는 데 영감을 준 책이나 철학자, 작가가 있을까요? 이 소설은 이 한 문장에서 출발했다!라고 할 만한 작품이 있다면 말씀해 주셔도 좋고요.

「심포니」는 스피노자 『에티카』의 한 문장, "인간은 타인의 불행을 연민하는 동시에 안도감을 느낀다."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인간의 마음이란 참 미묘하고 그걸 글로 옮기는 일은 늘 실험적인 것 같아요.「심포니」속 친구들은 계속 서로를 이해하지 않으면서 이해하게 될 것 같아요. 그렇게 조금씩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겠죠.

「본게마인샤프트」의 깊은 곳에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있어요. 그 책에서 인간이 사고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부분을 읽다가 이 소설의 플롯을 떠올렸거든요. 철학은 인간의 생각과 삶의 방식과 존재 자체를 사유하도록 만든다는 면에서 매력적인 것 같아요. 인류의 지성과 고민이 켜켜이 누적된 결과가 책이라고 생각하고요. 앞으로도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타인의 사유에 공감하며, 또는 반박하며 제 생각을 소설로 써 나갈 것 같아요. 




끝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앞으로의 계획도 들려주세요!

지금은 연말쯤 출간될 경장편을 준비하고 있어요. 초고는 완성된 상태인데, 제가 초고보다 퇴고가 오래 걸리는 작업 방식을 선택하고 있어서 부지런히 쓰고 고칠 계획이에요. 겨울에 출간될 앤솔로지에 실을 단편도 준비 중이고요. 제 영역을 조금씩 넓혀 갈 수 있도록 부지런히 활동할게요. 『보통 맛』,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온 힘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앞으로의 활동도 지켜봐 주세요. 무엇보다 모두 건강하시고요.  




*최유안

1984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내 안에 갇히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쓰며 살고 있다. 소설집 『보통 맛』을 냈다 .



보통 맛
보통 맛
최유안 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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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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