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I would prefer not to, 철학 여행, 카피바라
책읽아웃 - 김하나의 측면돌파 (187회) 『필경사 바틀비』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카피바라가 왔어요』
시작은 책이었으나 끝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코너, 삼천포책방입니다. (2021.05.13)
노동절에 딱 어울리는 고전 『필경사 바틀비』, 기차를 타고 품는 철학적 질문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사랑스러운 연대의 동물 『카피바라가 왔어요』를 준비했습니다.
허먼 멜빌 저/공진호 역 | 문학동네
고백을 드리자면 저는 어제까지 『필경사 바틀비』를 읽은 적이 없습니다. 사실 하나의 문장만 기억되는 고전들이 너무 많고, 저도 그냥 ‘~하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 ‘~하지 않기를 택하겠습니다’라고 번역되고 있는 이 문장(I would prefer not to)만 알고 있었지, 실제로 『필경사 바틀비』를 읽은 적이 없어요. 그래서 약간 반성하는 마음으로 이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봤고요. ‘아, 이런 내용이구나’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영어 원문이 같이 실려 있어요. 제 생각에는 소설이 너무 짧아서 같이 실은 것 같은데(웃음) ‘I would prefer not to’가 굉장히 영문법에 특화된 문장이에요. 이 책으로 고전을 보고 영어를 공부하라는 거죠(웃음).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이 본문만 167쪽이거든요. 그런데 영문이 들어가 있으니까 실제 책은 80쪽 정도인 거예요. 사실 우화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생각을 하고요.
저는 이제야 『필경사 바틀비』를 허먼 멜빌이 지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허먼 멜빌은 『모비딕』을 지은 사람이죠. 그리고 필경사라는 것도 이름만 듣고 뭘 하는 직업인지 몰랐는데요. 필경사는 글 쓰는 일이 직업인 사람이고, 창작을 한다기보다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손으로 기록을 하던 사람이었던 거죠. 또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부제로 ‘A Story of Wall-Street(월스트리트의 이야기)’가 붙어 있어요. 그리고 월스트리트에 있는 어떤 사무실이 배경입니다. 이 배경조차도 사회를 굉장히 풍자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잖아요. 저희가 생각하고 있는 월스트리트는 금융의 최전선 최전방이고 모든 사람들이 엄청나게 바쁘게 돌아가고 돈과 부와 명예를 위해서 미친 듯이 쫓는 그런 종류의 장소인데, 사실은 바틀비가 월스트리트에서 일하고 있었다니, 저는 ‘이래서 사람들이 현대에도 바틀비 이야기를 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저는 이 소설이 짧아서 사람들이 더 고전으로 이야기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짧은데 계속해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부조리한 일들이 일어나고, 인간들은 어떻게든 그 부조리함을 해결하고자 하기 때문에 여기에 철학도 넣어보고 우리 자신도 대입해보고 계속해서 살을 덧붙이다 보니까 지금에 와서 고전이 이른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에릭 와이너 저/김하현 역 | 어크로스
이 책은 모든 장이 ‘How to(~하는 법)’로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여기 한 사람 한 사람의 철학자가 붙어 있어요. 첫 번째는 이런 식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 그리고 맨 마지막은 ‘몽테뉴처럼 죽는 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목에 소크라테스가 들어가니까 ‘철학에 관련한 책이겠거니’ 하는 느낌이 들죠. 이 책에서 열네 명의 성별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고 나라도 달랐던 철학자, 또는 철학적인 인물들을 꿰어내는 하나의 장치가 익스프레스(기차)입니다. 비교적 짤막한 글들의 시작은 저자인 에릭 와이너가 실제로 타고 있는 기차 안의 풍광을 잠시 묘사한 후 그 철학자와 관련된 실제 장소에 가서 뭔가를 느끼는 것도 있고요. 그곳은 아니고, 이를테면 공자 편은 공작의 어떤 가르침이나 생각을 뉴욕에서 느끼기 위해서 뉴욕의 지하철 F노선을 타면서 거기서 느꼈던 것들 그리고 뉴욕 안에서 공자 상이 있는 곳에 잠깐 갔다 오는 장면으로 되어 있기도 해요.
(철학자의) 일대기와 함께 그 사람의 철학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리해둔 열전 같은 형식의 철학 입문서 또는 맛보기용 도서 같은 것은 많이 봤죠. 옛날에는 제가 철학에 대해서 너무 무식하다 싶으니까 그런 책도 제법 읽어봤던 것 같은데, 그런 책이 다시 한 번 나왔으면 저는 그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책은 저자가 꽤나 강력한 컨셉과 함께 읽고 싶게끔 만들어놨어요.
이 책은 출발로 시작해서 마지막은 도착으로 끝이 나는데, 출발의 글에서 ‘우리에게는 philosophy라고 하는 단어와 practical이라고 하는 단어는 오직 사전에서나 가까이 붙어 있다’고 해요. 하지만 실제 모든 철학자들은 실용적인 사람들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동네 서점에는 ‘철학‘ 섹션과 ‘자기계발‘ 섹션이 붙어 있다. 고대 아테네의 ‘반스앤노블‘에서는 이 두 섹션이 하나였을 것이다. 그때는 철학이 곧 자기계발이었다. 그때는 철학이 실용적이었고, 철학이 곧 심리 치료였다. 영혼을 치료하는 약이었다.”
철학이라고 해서 어떤 어려운 학문이나 보통의 사람들은 범접하기 어려운 어떤 심오한 것, 천재들이 각축을 벌여놓은 지성의 장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너무 멀죠. 그런데 이 모든 철학자들은 자기가 살기 위해서
자신의 지적인 도구들이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체력, 역량, 모든 걸 동원해서 삶을 사는 법, 인생에 대한 접근법이나 정의, 태도 같은 것을 추구해갔던 것이기 때문에 (저자는) ‘내가 이들의 생각 또는 이들이 질문하는 법이나 태도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나는 삶을 좀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한번 적용을 해보겠다’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알프레도 소데르기트 글그림/문주선 역 | 미디어창비
카피바라는 지구상에서 친화력이 가장 좋은 동물이죠. 어떤 동물과 함께 있어도 전혀 위화감 없이 어우러지고, 맨날 같이 있었던 사이처럼 사랑을 서로 주고받는, 아주 사랑스러운 동물입니다. 이 그림책은 카피바라의 그런 습성을 잘 녹여낸 이야기예요.
일단 알프레도 소데르기트 작가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면 우루과이 사람이고요. 영화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애니메이션 <내 이름은 아닌아>로 우리나라에도 알려져 있는 감독이라고 하는데요. 그림책으로는 『카피바라가 왔어요』가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가 됐습니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독일과 뉴욕에서 아주 좋은 책으로 선정된 작품이에요.
이 책의 좋은 점을 정말 여러 가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일단 메시지적인 측면도 너무 좋고요. 문장도 너무 좋아요. 정말 함축적인 짧은 문장인데 아주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이 있어요. “아무도 카피바라를 알지 못했고 누구도 카피바라를 기다리지 않았어요.” 몰라서 두려워하고 반기지 않는 이 존재가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를 일궈내요. 그 변화가 있기까지 먼저 선의를 베풀고요. 결말을 말할 수는 없지만, 끝에 가서는 이 변화가 더 큰 움직임으로 이어져요. 그래서 이 책을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연대’를 말하는데, 그 메시지 자체도 굉장히 좋았고요. 초반에 그림과 문장이 대조를 이루는 듯 한 장면들이 이어지는데, 그런 구성도 좋았습니다. 연필로 그린 것 같은 그림들로 채워져 있는데, 날카롭지는 않고 뭉툭한 선으로 그린 것 같은 그림들인데, 사실 다 블랙이에요. 그런데 몇몇 것들만 붉은색으로 채색되어 있고, 그것들이 상징하는 바가 있거든요. 이런 디테일들이 되게 많이 숨어있는 그림책이라서 하나하나 뜯어보는 게 너무 재미있고 의미 있고 남는 게 많은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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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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