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식물갤러리, 책읽아웃 유니버스, 의식의 흐름
책읽아웃 - 김하나의 측면돌파 (183회) 『컨트리 다이어리』 『새의 언어』 『술과 농담』
시작은 책이었으나 끝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코너, 삼천포책방입니다. (2021.04.15)
이디스 홀든의 수채화 자연 일기 『컨트리 다이어리』, 조류 관찰자가 쓰고 그린 『새의 언어』, 술에 취한 여섯 작가의 농담 『술과 농담』을 준비했습니다.
이디스 홀든 저/황주영 역 | 키라북스
제가 인스타그램에서 식물 세밀화가 이소영 작가님의 계정을 참 좋아해요. 이소영 작가님은 식물 세밀화를 그리시다 보니까 그 작업실 풍경이라든가 요즘 작업 중이신 그림, 들판에서 이제 찍은 꽃이라든가 자연물들의 사진을 올려주시는데 그걸 볼 때마다 너무 기분이 좋기 때문에 참 좋아하는데요. 하루는 어떤 예쁜 그림이 올라온 거죠. 그 그림에는 식물들이 그려져 있었고 새도 그려져 있고 그리고 영어로 March, 3월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그림은 『컨트리 다이어리』의 원서였어요. 그런데 밑에 이디스 홀든의 수채화라고 써주신 걸 보고 누구일까 싶어서 찾아봤더니, 국내에 책이 딱 한 권이 나와 있는데 그게 이 책이었던 거죠. 그래서 이 책을 주문했고요.
이 책은 이디스 홀든이라는 영국 레이디가 1906년 1년 동안에 달마다의 변화를 포착해서 그림을 그린 거예요. 그런데 책이 아니었어요. 어떤 여학교에서 식물 교재로 쓰려고 그린 거였어요. 이디스 홀든은 염료 제조업자의 딸로 태어났다고 하는데 삽화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 그림들을 그렸고요. 또 부모님이 실을 아주 즐겨 입는 분들이어서, 사이사이에 있는 글들을 보면 영국의 명시들이 다 나와요. 테니슨, 워즈워스, 셰익스피어, 브라우닝 같은 사람들의 시들이 그 달에 맞게 적재적소에 인용이 되어 있고요.
이 그림을 그렸던 것이 1906년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디스 홀든은 1871년에 태어났다가 조금 일찍 사망했어요. 50세가 되기 직전인 1920년 3월 16일에 밤나무 꽃봉오리를 꺾으려다
템스강에 빠져서 익사했습니다. 그렇게 사망하고 나서 아름다운 수채화와 명시로 가득한 이 원고, 원고라기보다 종잇장들이었겠죠. 그것이 집에 계속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물려받은 손녀가 출판사에 가져가서 1977년에 출판을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이 너무 아름답고, 1970년대의 사람들에게 너무 큰 향수를 자극한 거예요. 어떤 곳에서는 ‘1970년대 최대의 베스트셀러다’라고 이야기를 했을 정도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어요. 그리고 여기 그려져 있는 꽃이랑 이파리, 새들의 그림이 너무 예쁘기 때문에 막스앤스펜서에서는 지금도 이 그림 패턴을 사용해서 포켓 다이어리를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데이비드 앨런 시블리 저/김율희 역/이원영 감수 | 윌북(willbook)
이 책의 저자가 어렸을 때부터 조류학자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새를 관찰했대요. 7살 때부터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조류도감을 만들기 시작했고요. 지금까지 수천 종의 새를 그림으로 그렸고, 그동안 책도 많이 집필을 해서 미국의 대표적인 조류 관찰자로 자리매김했다고 합니다.
이 책의 원제가 ‘What It’s Like to Be a Bird(새가 된다는 것)’라고 합니다. 관찰하는 인간의 입장이 아닌 새의 입장에서 ‘새는 왜 이렇게 살아갈까’, ‘어떻게 살아갈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총 84종의 새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고요. 각 새마다 이야기하는 주제가 다릅니다. 예를 들면 가장 처음에 캐나다 기러기가 나오는데 캐나다 기러기를 통해서는 새끼를 어떻게 양육하는지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나오는 흰 기러기를 통해서는 새들이 어떻게 비행을 하는지 이야기하고, 고니에 대해 말할 때는 고니는 (상대를) 위협하고 싶을 때 어떻게 몸을 이용하는지 들려줘요.
이 책의 추천서를 이야기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청호반새’를 사랑하는 분이시죠, 정세랑 작가님이 추천사를 쓰셨고요. 이원영 작가님도 추천사를 쓰셨고, 이 책을 감수하셨습니다. 정세랑 작가님의 추천사 중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새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사랑의 다른 이름은 호기심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수만 킬로미터를 매년 오가는 철새의 감각을 궁금해하며, 영영 알 수 없을 것들을 그럼에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많은 것들이 시작되지 않는지 헤아린다.”
‘그럼에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새에 관한 입문서 같은 책이 될 것 같습니다.
편혜영, 조해진, 김나영, 한유주, 이주란 저 외 1명 | 시간의흐름
시간의흐름 출판사에서 나온 일곱 번째 시리즈 중에 하나인데, 끝말잇기 놀이로 책을 만들고 있어요. 한 사람이 두 개의 낱말을 제시하면 다른 사람이 끝 낱말을 잡고 새로운 낱말을 제시하고, 또 다른 사람이 그 끝의 낱말을 잡고 새로운 낱말을 제시하고... 이런 식으로 쓰여지고 있는 책입니다. 처음 시리즈가 『커피와 담배』로 시작을 했고요. 그 다음에 금정연 작가님이 『담배와 영화』라는 주제로 책을 지었고, 그다음에 정지돈 작가님이 『영화와 시』라는 주제로 책을 지었고요. 그 다음에는 『시와 산책』, 『산책과 연애』, 『연애와 술』, 그러고 나서 『술과 농담』이라는 책이 탄생을 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제까지 여섯 권이 한 저자가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면 『술과 농담』은 여섯 분이 약간 앤솔로지 형식으로 책을 지었어요. 농담은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앤솔로지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생활에 기반한 에세이 같은 느낌의 글들이 많은데요. 약간 잠언스러운 문장도 조금 많아요. 술을 먹으면 사람들이 조금 진지해져서 그런지, 뭔가 특이한 느낌의 글들이 많아요. 기본적으로는 에세이가 맞는 것 같긴 한데 ‘이건 왠지 픽션 같아’라는 느낌도 있고, 어느 순간 들어가 보면 서사가 없이 그냥 죽 흘러가는 사변이라든지, 약간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그냥 그대로 흘려보내고 있는 느낌도 들어요. 영미 문학 단어 중에 ‘Stream Of Consciousness(의식의 흐름)’라는 게 있거든요. 그런 식으로 지어지는 것도 많아요.
한 두 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고 한다면, 두 시간 동안 술을 마시면서 농담을 들었는데 어떻게 그 농담이 시작되고 끝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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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