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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스피(ESP), 여러 면에서 색다른 퓨전 국악 밴드
이에스피(ESP) <ESP>
한정된 재료로 비슷한 질감을 뽑아내니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그룹의 특징이 동전의 양면처럼 허와 실을 모두 갖고 있다. 그럼에도 매력적이다. 적어도 ESP가 원했던 방향으로 첫발을 뗐다. 여러 면에서 색다른 퓨전 국악 밴드. (2021.03.05)
기이하다. 한국과 서양의 악기가 결합한 많은 음악 중에서도 이 음반은 악센트를 강하게 주지 않는다. 2017년 미국의 인기 유튜브 채널 <엔피알 뮤직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NPR Music Tiny Dest Concert)>에 출연하며 큰 관심을 받은 씽씽을 비롯해 추다혜차지스, 잠비나이, 고래야, 악단광칠, 이희문이 만든 오방신과(OBSG), 그리고 최근 ‘범 내려온다’ 로 인기를 끈 밴드 이날치까지. 많은 퓨전 국악 그룹들이 사랑받았다. 대부분 한국인의 댄스 디엔에이를 가감 없이 저격하는 ‘뽕삘’ 을 내세웠다. 그렇지 않으면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드럼의 강렬함을 배합해 거친 사운드를 쏟아냈다. 음악의 폭이 넓어졌으며 선율이 선명해졌다. 그만큼 대중에게 다가갈 지점이 생겨난 것이다.
자신을 ‘모던 가야그머’ 라 부르는 가야금 연주자 정민아, 전자 음악 프로듀서 이상진이 만나 ESP를 꾸렸다. ESP는 Electronic Sanjo Project의 준말. 한국 전통 기악 독주곡인 산조와 전자음악이 만났음을 이름부터 내비친다. 보컬 없이 악기의 부딪힘으로만 이루어진 연주곡으로 전반을 채웠다. 쨍하고 화려한 색감보단 흑백의 무채색이 어울리는, 반복적이고 몽롱한 트랜스(Trance)가 이들의 핵심. 무언가에 취한 듯 지독하게 길어지는 ‘The whimori’ , 머릿곡 ‘Gaya DNA’ 등 수록곡의 몇 곡만 만나도 그룹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레트로, 뽕삘 사운드를 가미했다는 설명이 적혀있긴 하지만 그 특징이 잘 살진 않는다. 오히려 ‘ Electro chemical’ 에서 살짝 우회해 선보이는 흔히 말하는 ‘까까류’ 의 EDM 즉, 2010년대 초반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끈 사운드 소스를 사용해 변주한 지점이 더 귀에 들어온다. 시류를 반영한 ‘ Pandemic’ 은 영화 <매트릭스>시리즈에 넣어도 손색없을 만큼 4/4박자 하우스의 맛을 제대로 살려주고 ‘밤 산책’ 은 서정적인 가야금의 음색이 이야기를 품은 듯한 멜로디와 잘 맞아떨어져 귀 기울이게 한다. 조급함이 없고 그리하여 묵직하게 끌어가는 두 연주자의 호흡 역시 특기할 만하다. 조금 더 강하게 치고 기세를 몰고 갈 법도 한데 멈춘다. 전체의 무게중심 맞추기를 위한 과정으로 느껴진다.
이 절제가 음반의 ‘더하기’ 이자 ‘빼기’ 다. 이제는 익숙해진 국악과 서양 악기의 만남이지만 이를 그간 잘 다뤄지지 않았던 분위기로 풀어냈다. 다 같이 뛰어 보자가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흔들 수 있는 침착한 리듬의 반복. 분명 새롭고 일면 신선하다. 하지만 중심 악기가 가야금으로만 이뤄진 상황에서 힘이 빠지기도 한다. 특히 ‘모던 휘모리’ , ‘골방환상곡', ‘Raindrops’ 으로 이뤄지는 후반부, 곡사이 기조의 반복이 들린다. 한정된 재료로 비슷한 질감을 뽑아내니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그룹의 특징이 동전의 양면처럼 허와 실을 모두 갖고 있다. 그럼에도 매력적이다. 적어도 ESP가 원했던 방향으로 첫발을 뗐다. 여러 면에서 색다른 퓨전 국악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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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