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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으로 그리는 시어(詩語), 몬테베르디의 «님프의 애가(1638)»

몬테베르디의 «님프의 애가(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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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어, 한 단어 더없이 섬세하게 표현되는 님프의 끝없는 절망이 오히려 상처받은 우리의 마음을 촉촉하게 달래주는 신비한 경험, 몬테베르디가 깊은 어둠을 뚫고 집요하게 찾아 헤매 우리에게 선물한 음악 시 덕분입니다. (2021.03.05)

«울고 있는 님프», Jean-Jacques Henner(1884), 파리 장-자끄 에너 미술관 소장 Photo (C) RMN-Grand Palais / Franck Raux

해설 (3중창) : 동이 트기 전, 집에서 나온 젊은이의 희고 창백한 얼굴에 슬픔이 그대로 묻어난다. 꽃을 지르밟으며 깊은 한숨으로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는 그의 눈에 가득 고인 눈물. 그의 사랑이 떠나 버렸다.

독백과 추임새 (독창 3중창) : 

« 내 사랑 (하늘을 바라보며 서서), 

사랑의 맹세가 어떻게 변해요? (아, 불쌍해라) 

원래대로 돌려주세요. 그렇지 않을 거면, 차라리 날 죽여 주세요.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불쌍한 사람, 더는 연인의 얼음장 같은 무심함을 견딜 수가 없는 거지) 

내가 힘들어할수록, 그는 더 기고만장해요.  너무 매달린 걸까요? 

내가 냉담한 모습을 보이면 그가 돌아올까요? 당신의 새로운 사랑은 진짜가 아니에요. 

그는 당신에게 나처럼 달콤하고 부드럽게 입맞출 수 없어요. 

아, 그만, 그만. 

그도 이미 알고 있어 »

해설 (3중창) : 쓰디쓴 눈물 사이로 그가 허공을 향해 읊조렸다.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불과 얼음은 이렇게 섞여 헝클어진다.

_몬테베르디 작곡, 리누치니 작시, «님프의 애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에서 나왔던 유명했던 문장입니다. 한때는 불같이 사랑했던 연인이었지만, 어느 순간 한 편의 사랑이 식었고, 결국 이별을 고하는 상대에게 상처받은 이가 던지는 대사였어요. 열렬했던 사랑의 맹세는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사랑이 변할 수 있는지 남겨진 사람은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상처받는다는 뻔한 이야기. 하지만, 내가 사랑과 이별을 경험하는 중이라면, 절대 뻔할 수 없는 이야기지요.

사랑의 대상이 연인이든 그 어떤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몰입했던 대상이 나를 떠난 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죽을 만큼 괴롭고, 나만 빼고 멀쩡하게 돌아가는 세상이 원망스러운 상태는 사랑에 달뜬 마음만큼이나 지울 수 없는 다채로운 감정을 우리에게 새겨 넣으니까요. 시인 리누치니는 «님프의 애가»에 찬란한 슬픔, 끝없는 절망, 죽음보다 괴로운 고통의 순간을 시어에 농축했고, 몬테베르디는 음으로 그 단어를 그려냈습니다. 시어에 전부 담기지 못한 님프의 마음을 몬테베르디의 해석을 통해 음악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베르나르도 스트로치 그림(1640)

1638년,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1567-1643)는 전쟁과 사랑을 주제로 작곡한 마드리갈을 모아 여덟 번째 작품집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님프의 애가»는 이 작품집에서 사랑을 주제로 노래하는 마드리갈에 속합니다. 마드리갈은 16세기에 태어나 르네상스 시기에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바로크 초입까지 유행했던 세속적 주제를 가진 무반주 다성 성악곡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마드리갈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었어요. 처음에는 무반주로 불렸지만 나중에는 다성부 합창에 기악 반주부가 더해지거나, 다성부에서 한 선율만 노래로 부르고 나머지는 악기로 연주하는 등 여러 형태로 다양하게 연주했거든요.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바로 몬테베르디가 있었습니다. 그는 총 아홉 권의 마드리갈 악보집(마지막 아홉 번째 작품집은 사후 출간)을 1587년부터 1651년에 걸쳐서 거의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작곡했습니다. 몬테베르디가 평생에 걸쳐 음악을 연구하고 기법을 발전시킨 만큼 마드리갈의 의미도 함께 확장되었죠.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르네상스 작곡가들이 시와 음악의 관계에서 추구했던 감각적 색채입니다. ‘마드리갈리즘’이라고 불릴 정도로 독특했던 마드리갈의 가사 표현법은 단어가 눈앞에서 이미지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소리로 그림을 그린다 해서 음화법 (Word-painting) 혹은 음형이론 (Figurenlehre)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하늘, 천사, 기쁨과 같은 단어가 나오면 높은 음으로 노래를 하고 지옥, 악마, 죽음과 같은 단어는 낮은 음으로 노래하고, 절망, 슬픔, 괴로움이 등장하는 가사에서는 불협화음을 쓰는 등 각종 음악 기법으로 가사를 표현하는 방법이지요.

마드리갈의 온갖 기술을 통달했을, 70을 넘긴 노장 작곡가 몬테베르디는 «님프의 애가»를 통해 또 다른 방법으로 가사를 표현하는 실험을 합니다. ‘액자 구조’를 음악으로 끌어들인 것이죠. 전체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처음과 마지막은 정황을 설명하는 3인칭 시점의 해설로, 가운데 부분은 님프의 독백과 해설자의 추임새로 구성했어요. 해설은 테너 두 명과 베이스가 노래하는 3중창, 님프는 소프라노가 담당했습니다. 인물의 캐릭터가 선명하게 살아있는 해설과 독백, 그리고 추임새는 듣는 이가 마치 연극을 보듯 장면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답니다. 

(*아래에 첨부한 더 콘소트 오브 뮤지케의 영상을 기준으로 시간대를 적어 두었으니 확인하며 설명을 읽으면 세밀하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youtu.be/z3ZX5hFN-is)

«님프의 애가»에는 독특한 구조뿐 아니라 마드리갈 특유의 수사(修辭)적 용법도 절묘하게 들어 있습니다. 바로, 음화법을 사용한 부분입니다. 유난히 눈에 띄는 시어 몇 가지를 예로 들어 볼까요? 전반적인 내용을 설명하는 첫 번째 파트, 3중창 해설에서 가장 귀에 꽂히는 부분은 바로 ‘그의 슬픔il suo dolor (일 수오 돌로르)’을 노래할 때입니다(0’45’’ //youtu.be/z3ZX5hFN-is?t=42). 가슴이 찢어지는 그의 슬픔을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으로 길게 늘여 노래합니다. 순간적으로 아, 뭔가 잘못됐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한 소리가 나는 부분이에요. 하지만, 그만큼 적절히 님프의 괴로운 ‘슬픔’을 묘사하기도 힘들 겁니다. 뒤이어 나오는 님프의 ‘깊은 한숨un grand sospir (운 그란 소스피르)’을 노래할 때는 쉼표를 사용해 진짜로 한숨을 쉬듯 노래를 끊어줍니다(0’56’’ //youtu.be/z3ZX5hFN-is?t=54). 



‘꽃을 지르밟으며’ 이리저리 방황하는 님프의 발걸음을 노래하는 부분에 이르면, 그전까지 같은 리듬으로 평온하게 노래하던 해설가 3인방이 분리되어 각각 시차를 두고 치고 나오면서 서로 잡아먹을 듯 어지럽게 노래합니다. 이렇게 시작부분이 같은 주제를 서로 다른 성부에서 엇갈려 연주하는 기법을 모방대위법이라 합니다. ‘꽃을 지르밟는 calpestando fiori (깔뻬스딴도 피오리)‘ 님프의 행동(1’08’’ //youtu.be/z3ZX5hFN-is?t=66) 부터 ‘떠나 버린 사랑suoi perduti amori (수오이 뻬르두띠 아모리)’까지 음악은 정신없이 내달립니다(1’17’’). 꽃을 짓이기는 님프의 분노와 원망이 ‘떠나 버린 사랑’으로 눈 깜짝할 새에 전환되는 부분이지요. 사랑이 떠난 후, 미칠 것 같은 님프의 마음이 대위법으로 급박하면서도 화려하게 묘사되었답니다. 악보에서 정신없이 튀어나오는 ‘si calpestando fiori’를 찾아보세요. 짓이겨 여기저기 흩뿌려진 마음이 눈에 보일 거예요.


‘사랑L’amour(라무르)’를 부르며 님프가 1인칭 시점으로 등장하는 두 번째 파트(//youtu.be/z3ZX5hFN-is?t=95)에서, 소프라노는 버려진 연인의 마음을 애절하게 노래합니다. 마치, 오페라 아리아처럼요. 몬테베르디의 수많은 마드리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꼽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반주를 맡은 악기는 ‘라-솔-파-미’ 연속되는 네 음 하행을 두 번째 파트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계속 반복합니다. 다른 말로, ‘바소 오스티나토’라고도 부르는 이 기법은 동일한 베이스 선율을 끝없이 반복하면서 다른 성부들이 그 위에서 자유롭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완전한 자유는 아닙니다. 아무리 위 성부가 높은음과 낮은음을 오르내리며 자유롭게 노래한다 해도 베이스는 항상 같은 곳을 맴돌고 있으니까요. 벗어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동일한 네 음 (다른 말로, 테트라코드) 위에서 소프라노는 최대한 말하는 듯한 리듬으로 유연하게 노래합니다. 떠나버린 연인을 원망하면서도 그를 놓지 못하는 자신을 향한 절망을 절절하게 노래하는 것이죠.

두 번째 파트에서도 눈에 띄는 단어가 있어요. 님프가 ‘차라리 날 죽여 주세요tu m’ancidi(뚜 만치디).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non mi tormenti più(논 미 또르멘띠 삐우)’을 노래할 때 나오는 ‘죽이다ancidi(안치디)’와 ‘고통받다tormenti(또르멘띠)’입니다. 님프의 노래와 반주부가 만들어 내는 미묘한 불협화음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죽음과 고통이 그 어느 때보다 섬세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들립니다. ‘차라리 날 죽여 주세요’ 보다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구절을 여러 번 반복해 외치는 님프의 노래는 나중까지도 기억에 남습니다. 마치 그의 고통이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져 버린 것처럼요.

자신이 힘들어 할수록Perché di lui mi struggo (뻬르께 디 루이 미 스트룻고) 더욱 기고만장하는 연인에 관해 말할 때, 님프의 노래는 점점 낮아지면서 땅속으로 느리게 꺼져 내리는 절망감을 묘사합니다(3’38’’ //youtu.be/z3ZX5hFN-is?t=217). 그리고, 좌절하는 님프의 독백 사이사이를 우리의 3인방 해설자가 ‘불쌍하기도 하지Miserella(미제렐라)’라며 추임새로 메꿉니다.

님프의 독백 장면에서 빠져나와 다시 3인 해설가의 시점으로 돌아온 마지막 부분(//youtu.be/z3ZX5hFN-is?t=353)은 연인의 마음에 놓아진 사랑의 불과 얼음을 노래하며 끝을 맺습니다. 이렇게 몬테베르디의 액자구조는 균형을 이루게 되지요. 마드리갈에서 ‘불’을 전형적으로 표현할 때는 오르락 내리락 빠르게 활활 불이 타는 모습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님프의 애가» 마지막에 등장하는 ‘불과 얼음fiamma e gel(피암마 에 젤)’에서 음표가 묘사하는 불은 화려하게 타오르지 않고 천천히 꺼져갑니다. 그리고 노래 마지막은 얼음과 함께 차갑게 멈추어 버리죠. 사랑이 완전히 끝나 버린 것처럼요.

악기에 비해 좁은 음역을 가진 인간의 목소리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시어(詩語)를 노래하는 목소리는 어떤 악기도 따라올 수 없는 엄청난 강점이지요. 르네상스의 마드리갈은 인간의 감정을 가사와 음악으로 극도로 섬세하게 표현한, 복잡하고 어려운 그리고 기가 막히게 감각적인 장르였습니다. 동일한 단어, 혹은 비슷한 내용의 시에 작곡자들은 나름대로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 다양한 강도와 감각으로 자신만의 해석을 음악으로 덧붙였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틀에 박힌 단어는 작곡가가 예리하게 선택한 전형적인 음형 혹은 그만의 창조적인 기법으로 다채로운 옷을 입으며 음악 안에서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 수 있었답니다. 

한 단어, 한 단어 더없이 섬세하게 표현되는 님프의 끝없는 절망이 오히려 상처받은 우리의 마음을 촉촉하게 달래주는 신비한 경험, 몬테베르디가 깊은 어둠을 뚫고 집요하게 찾아 헤매 우리에게 선물한 음악 시 덕분입니다.


시어는 말,  돌멩이, 가시, 구름 같은 단어일수도 있고, 누군가의 얼굴이나 사건일 수도 있다. 

그것은 아주 깊은 곳에 잠겨 있어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예민하고 집요하게 찾아 헤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어둠 속으로 첨벙 뛰어들어야 한다.

사람은 매일 오늘을 잃고, 영원은 얻지 못한다. 그 상실을 나만의 시어가 달래줄 것이다. 

무언가를 희망할 용기가, 단 하루 솟아오르는 도시처럼 융기할 것이다.

_한정원, 『시와 산책』, 시간의 흐름 (2020)




더 콘소트 오브 뮤지케 연주 바로가기

소프라노: 엠마 커크비 

테너: 폴 아뉴, 앤드류 킹 

베이스: 알란 유잉

Virgin Veritas 1989-1990 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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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송은혜

음악 선생. 한국, 미국, 프랑스에서 피아노, 오르간, 하프시코드, 반주, 음악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의 렌느 2대학, 렌느 시립 음악원에 재직 중이다. 음악 에세이 『음악의 언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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