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그림 작가 이내 “고양이 선생님과 오늘도 냥마스테!”
그림 에세이 『오늘도 냥마스테』
제가 즐거우면 보는 사람도 즐겁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눈이 아닌, 마음으로 그리자.’ 다짐하며 그리고 있습니다. (2021.02.08)
고양이와 요가, 그림이 함께 하는 하루! 그림 에세이 『오늘도 냥마스테』는 일상의 기쁨과 불안, 행복이 가득한 책이다. 장강명 소설가의 『책 한번 써봅시다』, 마쓰모토 게이스케의 『청소 시~작!』에 일러스트를 그린 이내 작가는, 언제나 특유의 그림체로 위트와 따뜻함을 전해왔다. 이번 에세이에서는 고양이 선생님 ‘모리’와 요가를 통해, 몸과 마음을 다져나가는 날들을 공개한다. 소소한 불안들이 있지만, 작은 용기로 하루하루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남들도 다 똑같이 사는구나”하며 미소 짓게 된다. 현재 『월간 채널예스』에서 칼럼 ‘장강명의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의 일러스트를 맡고 있기도 한 이내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이내 작가는 어린이책 편집 디자이너로 일했고, 지금은 그림 작가로 일하며 만화를 그리고 있다. 자주 소심하고 가끔 용기가 솟구친다. 그 용기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최근에는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청소 시~작』, 『책 한번 써봅시다』에 그림을 그렸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책 출간을 축하드려요! 작가님 그림을 닮아 책이 너무 따뜻해요. 오래 품어서 고생을 많이 한 책이라 각별하시다고 들었어요. 처음 책을 받아보셨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요?
기쁜 동시에 복잡 미묘한 감정이 계속 오르내렸어요. 저녁 식사 때 음식 맛이 안 느껴질 만큼요. 그날은 긴장한 얼굴로 밤늦게까지 책을 읽고 또 읽었어요. 작업하면서 원고를 수차례 살펴봤기 때문에 감각이 무뎌져서 이 책이 잘 읽히는지, 어색한 부분은 없는지 감이 안 왔어요. 물성을 띤 책을 손에 쥔 순간부터 이 책이 만나게 될 사람들을 생각하게 됐어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생각이 궁금해요.
언제 기획이 시작된 책인가요? 2018년 『냥마스테』로 독립 서적을 내시기도 하셨지요. 이번에 나온 이 책과 관련이 있나요?
요가를 배우면서 재미 삼아 그린 첫 이야기가 2016년 3월 즈음이었고, 그게 하나둘씩 점점 불어났어요. 책이 될 줄 모르고서 시작된 일인데, 2018년 일러스트 페어에 참가를 계기로 32쪽짜리 얇은 책으로 만들었어요. 이때는 한 권의 책이라기엔 분량이 부족했지만 짧은 이야기 안에 핵심을 담았다고 여겼어요. 『냥마스테』 를 독립서점에 입고하는 경험도 할 수 있었지요. 인스타그램에 비정기 만화로 연재하는 동안 열 곳이 넘는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받았는데 얼떨떨했죠.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에피소드의 연결이 툭툭 끊기고 미숙한 점이 많았거든요.
처음 연락해준 출판사와 계약했고, 에피소드를 늘리는 데에 집중했어요. 한 권의 책을 완성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내가 그만큼의 분량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자신이 없었지만, 안도 타다오의 말처럼 실패하면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하면 된다.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애썼어요. 그렇게 생각했더니 실제로 부담감이 꽤 줄었고요. 다행히 사과할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본업에 매진하다 보니 출간이 점점 늦어졌는데, 병행이 잘 안 되는 사람이라서 조바심이 났지만 아닌 척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어요. 『오늘도 냥마스테』는 『냥마스테』의 완성본이에요.
작가님의 요가 스승인 고양이 ‘모리’도 소개 부탁드려요. 대범하고 호기심 많고 느긋한 모리의 매력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모리는 집 안의 큰어르신 같은 듬직한 매력이 있어요. 주춧돌처럼 온 가족이 모리에게 기대거나 의지할 수 있는데요.(웃음) 고양이는 오늘만 생각하고 내일은 내일의 몫으로 미뤄두는, 현실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듯한 특유의 표정이 있거든요. 불안한 마음이 들면 모리에게 달라붙어 안정을 되찾곤 해요.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에 얼굴을 비비고 나면 제 걱정거리가 별거 아니게 되는 기분이 들거든요. 벌써 모리 나이가 열네 살이에요. 할머니라서 잠자는 시간도 길고, 관절이 아파서 더 이상 점프를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호기심만큼은 아직도 어린 시절만큼 왕성하답니다.
어린이책 편집 디자이너로 일하시다가, 그림 작가로 일하고 계시지요. 직업이 바뀌면서, 작가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디자이너였을 땐 몰랐던 작가의 입장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지요.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편집자, 디자이너, 작가로 역할이 나뉘는데, 의료 전문의처럼 자기 분야 외에 다른 영역까지 이해할 순 없거든요. 마감 앞에선 그럴만한 여유가 없으니까요. 디자이너와 작가. 두 가지 영역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인 것 같아요. 이해의 폭이 넓어진 만큼 더 사랑하게 되거든요. 그런 의미로 독립출판물을 혼자서 만들어보는 경험도 좋았어요. 각자의 역할을 더 존중하게 된 것 같아요.
오랫동안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하셨어요. 처음 ‘작가가 되고 싶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그림 작가가 맞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은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야기를 만든 경험이 없어서 그랬죠. 삽화가와 작가 사이에서 넘을 수 없는 커다란 벽이 있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림도 계속 그려야지 느는 것처럼, 이야기도 부끄럼 없이 시작해야겠다 싶었지요. 그 뒤부터는 잘하는 것보단 한다는 것에 집중했어요.
이야기를 발견한 반짝이는 순간과 좋은 사람들과의 소중한 시간이 생겨나길 바라는 마음에 서 ‘이내’(곧)라는 이름을 지으셨다고요. 그래서인지 작가님의 그림에는 온기가 가득한 것 같아요. 특히 모나지 않은 선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데요. 처음 그림 스타일을 잡아나가실 때,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하셨나요?
‘이내’는 제가 행동하게끔 힘을 주는 이름이라서 마음에 들어요. 저는 드로잉같이 틀이 없는 즉흥적인 선을 좋아하는데요. 그리는 재미가 있어서 밑그림 없이 그릴 때가 가장 즐거워요. 제가 즐거우면 보는 사람도 즐겁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눈이 아닌, 마음으로 그리자.’ 다짐하며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냥마스테』 가 내면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앞으로는 더 큰 주제도 해보고 싶어요. 우리 일상과 가까운 이야기를 전하고 싶고, 소외되고 남겨진 존재의 목소리를 담고 싶어요.
요가는 작가님 생활의 큰 부분인데요. 요가를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프리랜서가 건강하게 오래 일할 수 있으려면 근력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저는 정적인 걸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요가에 끌리게 되었어요. 때마침 집 근처에 아쉬탕가 전문 요가원이 생겨서 좋은 선생님께 요가를 배울 수 있었어요. 요가원에 가면 따뜻한 차도 마시고, 명상 음악도 듣고요. 심신이 편안해지니까 생활의 질이 좋아졌어요.
작가님의 생활이 요가의 호흡과 비슷해져 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요가 전후 체감하는 변화가 있다면요?
예전에는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한 면이 있어서 스스로에게 자주 화를 냈던 것 같아요. 요가가 움직이는 명상이란 말이 있어요. 눈을 감고 동작을 하는 동안 내면을 많이 들여다봤던 것 같아요. 스스로를 돌봐주는 시간을 가지면서 제 자신에게 많이 미안했죠. 화도 줄었어요. 주변 사람들과 주어진 환경에 감사함을 느꼈어요. 뭐든 당연한 것은 없더라고요.
“소소한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된다”(49쪽)이라는 말이 와닿았어요. 작가님의 하루 일과 중 특별히 좋아하는 루틴이 있다면요?
새벽에 일어나서 독서하는 시간을 좋아하고요. 독서가 끝나면 아침밥을 지어먹는데, 요리하는 과정을 좋아해요. 음식도 그림 그릴 때처럼 드로잉 하듯 즉흥적으로 해요. 요리할 때마다 음식 맛이 다르고, 분명 망칠 때도 있지만 이상하게 요리가 좋아요. 케루에게 점심 도시락을 싸주는데 기뻐하는 모습도 좋고요. 좋은 식재료로 정성을 들여서 건강을 챙기는 기분이 들고, 잘 먹어야 행복한 것 같아요.
작가님 일러스트를 보면서, 와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싶은 것들이 많았어요. 예를 들면, 장강명 작가님 칼럼에서 SNS를 수많은 거울로 표현한다거나, 고양이 모리의 표정 같은 것들이요. 평소에 어떻게 아이디어를 내시는지, 작가님의 작업 스타일이 궁금합니다.
외주 작업할 때 원고를 받으면 여러 번 읽어요. 주파수를 맞추듯 많이 읽다 보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 처음에 읽었을 때와는 다른 게 생각이 나요. 그걸 스케치해서 케루에게 보여주면 글과 그림이 달라붙는지 의견을 준답니다. 『오늘도 냥마스테』를 작업할 땐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핸드폰 메모장에 글로 써놓고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지면서 글이 익기까지 기다렸다가 그림 작업을 합니다.
‘불안’을 마주하는 작가님의 태도가 인상 깊었어요. 작업을 시작하기 전, 망칠까 봐 두려워질 때, 귀퉁이에 연필로 낙서를 하고 다시 지우개질을 하시는 습관이 있다고요.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려 내시는 작가님도 매일의 불안과 함께한다니 위로와 공감이 되었는데요. 작가님은 어떻게 불안을 다스리시나요?
저는 불안 지수가 높아요. 시도 때도 없이 불안해서, 예전에는 제가 잘못된 줄 알고 불안을 없애려고 노력했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불안하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는 그저 ‘지금 내가 불안해하고 있구나.’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했어요. 청소도 하고 산책도 하고 바쁘게 몸을 움직이다 보면 마음이 괜찮아지더군요.
한 명의 독자에게 이 책을 건넬 수 있다면, 누구에게 주고 싶나요?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주고 싶어요. 나도 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고 싶어요. 많이 외롭고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시간을 통과했더니 성장한 기분이 들어요. 하면 할수록 느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같아요. 두 번째 책을 쓰기 위해 준비 중인데요. 다시금 작아지는 기분이 들지만 약간의 용기만 낸다면 못할 건 없다고 봐요. 첫 책을 쓰고 나니 고민만 했던 시간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쓸걸. 매일 쓰기만 하면 오지 않을 것 같던 끝이 기어코 오더라고요.
*이내 198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어린이책 편집 디자이너로 일했고, 지금은 그림 작가로 일하며 만화를 그리고 있다. 자주 소심하고 가끔 용기가 솟구친다. 그 용기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최근에는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청소 시~작』 『책 한번 써봅시다』에 그림을 그렸다. 웹사이트 inaeinae.com 인스타그램 @inaeillu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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