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인생의 최저점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G. 임현주 아나운서)
책읽아웃 - 김하나의 측면돌파 (173회) 『아낌없이 살아보는 중입니다』
제일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던 시점에 여러 가지 이유로 제일 힘들어졌어요. 그러고 나니까 ‘앞으로 나는 뭘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마음을 어디에 토로하고 싶은데 그 대상을 찾지 못할 때 글을 쓰기 시작했고요. (2021.02.04)
인터뷰를 하며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무언가를 시도할 때 반대하는 시선이 두렵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망설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게 아닐까. 나는 그럴 때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본다.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걸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 바꿔도 된다는 확신을 가져도 좋다. 다들 눈치 게임을 하듯 따라가고 있거나 아예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거나
혹은 불편해도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웃어 넘기는 경우가 많았던 것뿐이다. 의문을 그냥 넘기지 말고 잠시 붙들고 생각해보자. 그럼에도 그냥 따르는 게 마음 편하다면 그리해도 괜찮다. 다만 무언가를 선택하게 된다면 그 선택이 본인을 자유로움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내가 바라는 모습대로 결정하고 살아갈 단단함 힘이 생기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임현주 아나운서의 에세이 『아낌없이 살아보는 중입니다』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오늘 모신 분은 내 마음의 끌림에 따라, 아낌없이 내 삶을 살고 있는 아나운서입니다. 앵커 계의 ‘안경 선배’이자 ‘노브라 공감의 장’을 열어준 여성이죠. 첫 번째 에세이 『아낌없이 살아보는 중입니다』를 쓰신 임현주 아나운서입니다.
김하나 : 인사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임현주 : 안녕하세요, 작가 임현주입니다. (웃음) 이렇게 말해보고 싶었어요.
김하나 :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세요. 그러면 오늘은 ‘임아나 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임현주 작가님’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임현주 : 좋습니다.
김하나 : ‘말하는 사람’에 이어서 ‘쓰는 사람’이 되셨습니다. 쓰고 싶은 욕망이 늘 있으셨어요?
임현주 : 네. 제가 쓰는 사람이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 처음 쓰기 시작한 계기가 인생의 최저점일 때...
김하나 : 아, 언제예요?
임현주 : 제가 방송사 이직을 여러 번 했잖아요. 그러다 MBC까지 합격하고 나서, 제일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던 시점에 여러 가지 이유로 제일 힘들어졌어요. 그러고 나니까 ‘앞으로 나는 뭘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은 여기가 힘들면 다른 직장을 가거나 벗어나면 됐는데 그러지 못하고 버텨야 했을 때, 내 마음을 어디에 토로하고 싶은데 그 대상을 찾지 못할 때 글을 쓰기 시작했고요. 언젠가는 나도 나의 경험이나 생각을 책으로 써보고 싶다는 마음은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올해가 된 것 같네요.
김하나 : 어느 날 문득 시작하셨어요?
임현주 : 여행을 가서. 혼자 여행을 가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사람이 싫었어요. 사람 때문에 너무 힘든데 여행을 같이 가서 신나게 놀고 이럴 텐션이 아닌 거예요. 진짜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나 혼자 고립돼 보고 싶다, 이런 마음에 노트북 하나 들고 간 거죠. 그때는 글이 아니라 약간 내 마음을 토해내는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고 나니까 후련해지는 거예요.
김하나 : 그렇게 하는 게 좋대요. 지난번에 나오신 전미경 선생님이 뭐가 화가 나거나 쌓여있을 때는 일단 밖으로 꺼내놓으라고 하시더라고요.
임현주 : 맞아요.
김하나 : 그걸 잘 선택하셨네요.
임현주 : 그러면서 제가 치유되는 게 느껴지고, 그러면서 책을 많이 읽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는데, 책 몇 권 싸간 것과 노트북이 있으니까 너무 든든한 거예요. 치유가 되고 힘이 되고. 그때부터 좋은 책을 읽게 되고 글을 쓰게 되고, 그런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제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을 때.
김하나 : 가장 힘든 시기에 뭔가를 쓰기 시작하셨는데, 그게 쌓이고 쌓여서 지금 책으로까지 묶여 나왔어요.
임현주 : 네.
김하나 : 일단 책이 아주 귀엽습니다. 이 책의 표지에 나와 있는 임 작가님의 그림도 아주 귀엽지만, 이번에는 유튜브 영상도 촬영 중이니까 자랑을 조금 해야겠네요, 보시면 면지에 아예 임 작가님의 얼굴이 찍혀있어요. 아예 인쇄가 돼있는 건가요?
임현주 : 이거 도장이에요.
김하나 : 도장으로 찍으신 거군요.
임현주 : 여기 도장 있는데 구경 시켜줘도 돼요? (웃음)
김하나 : 네, 그럼요. (웃음)
임현주 : 혹시 몰라서 항상 도장을 갖고 다녀요. 누가 싸인 해달라고 할까 봐. (웃음) 그런데 안 하는 날도 많지만. (웃음) 이 도장을 제가 수동으로 찍는 거예요.
김하나 : 너무 귀엽네요. (웃음)
임현주 : 그냥 싸인만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무슨 아이디어가 있을까 하면서 제가 부탁을 했죠.
김하나 : 도장으로 찍혀 있는 그림에도 안경을 쓰고 계시고, 표지 그림에 보면 넥타이를 하고 있는 임 작가님이 있는데요. 이제는 딱 보기만 해도 ‘이것은 임현주 아나운서다, 임 작가님이다’ 알아보겠더라고요.
임현주 : 그게 너무 감사해요. 제가 평생 살면서 별명이나 캐릭터가 없는 사람이었어요. 뭘 해도 두루두루 하고 무난하게 하는 사람이었고. (방송사) 최종 면접에서도 많이 떨어진 이유가 ‘쟤는 다 두루두루 괜찮은데 딱 하나 임팩트가 부족해’라는 말을 들었었거든요. 어쨌든 제가 방송에서 넥타이를 하고 안경을 끼면서 저의 캐릭터가 생긴 것 같아서 그 점이 좋습니다.
김하나 : 뭘 해도 무난하게 한다고 하셨는데, 책에 보면 유난하던데요? (웃음)
임현주 : 성격은 유난하죠. (웃음)
김하나 : 대학교 다닐 때 콜로라도에 있는 작은아빠 댁에 가서 어학연수를 하면서도 혼자 미국 동부 서부 여행도 다 하고, 그러고 나서도 뭔가 근질근질 해가지고 주미한국대사관에 갑자기 연락을 해서 ‘제가 일을 잘한다, 거기 인턴 제도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한 번 써 보시라’라고 하셨어요. 인턴 제도도 없는 곳에 갑자기 일을 하러 가신 거잖아요. 일종의 열정페이로 ‘돈은 안 주셔도 됩니다’ 하면서 일을 만드셨는데, 원래 그런 성격이세요?
임현주 : 제가 엄마를 되게 많이 닮았어요. 싫어하는 점도 많이 닮고 좋아하는 점도 많이 닮았는데, 저희 어머니가 가만히 있으면 병나는 스타일이세요. (웃음) 저도 조금 그런 성향이 있는 거잖아요. 충전도 고속충전 되는 스타일이고.
김하나 : 너무 아무것도 안 하고 며칠씩 있으면 오히려 더...
임현주 : 우울해져요.
김하나 : 그렇죠? 뭐라도 해야 되는, 엄마 닮은 스타일. (웃음)
임현주 : 맞아요. (웃음) 책에 나오지만, (제주도에) 여행을 가서도 ‘행복한데 뭔가 조금 이상하다’ 싶을 때 감귤 따니까 오히려 에너지가 생기고. (웃음) 뭘 해야 조금 행복해지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제 자체가.
김하나 : 약간 일개미 스타일? (웃음)
임현주 : 맞아요. 또 소띠이고. (웃음) 그때 미국에 갔을 때도, 저는 항상 저만의 특별한 경험을 본능적으로 찾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시간 보내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여러 사이트를 뒤지다가 워싱턴 D.C.의 주미한국대사관에서 한 번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찾아보니까 인턴 공고가 없고 인턴을 뽑은 적도 없더라고요. 저는 뭐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한 번 제안해 보고 일단 한 번 물어봐요.
김하나 : 아니면 말고. (웃음)
임현주 : 네. (웃음) 까이면 마음은 잠깐 아프지만 안 되면 그만이고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리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도전하는 데에는 돈 드는 것도 아니고. 또 생각만 하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오히려 한 번 저질러 봐야지.
김하나 : 그리고 안 하고 지나가면 계속 후회되고 근질근질하고.
임현주 : 네. 그래서 그때도 OK를 해주셨는데, 항상 그런 식의 기회를 많이 잡았던 것 같아요.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기회가 없으면 뭔가를 두드려 보거나 뭔가를 그냥 시작해 보거나. 아나운서 지망생 때도, 그때는 인터넷 카페에서 스터디를 모집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제가 시험 경험도 없고 고차까지 올라간 경험도 없으니까 안 껴주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스터디를 만들죠. 이런 스터디를 만들겠습니다, 하면 정말 우수한 인재들이 저한테 지원을 하는 거죠. 그런 식으로 뭔가 길을 항상 만들었던 것 같아요. 조금 비틀어서.
김하나 : 그렇게 적극적으로 뭔가를 시도해서 자리를 만들어오면서 MBC 아나운서가 되셨습니다. 무려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그러면 ‘아, 내가 해냈다!’인 거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아나운서가 되고 보니 뭔가 많이 달랐다는 내용이 있어요.
임현주 : 저는 어릴 때부터 늘 뭔가 할 걸 찾아서 되게 열심히 부지런히 하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하나에 꽂히면 별로 힘든 줄 모르고 되게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고. 그런데 아나운서는 이직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경력직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게 있는데 초년생 때는 그런 거 없이 무조건 시험을 봐야 되고. 그렇게 해서 지방사부터 시작해서 케이블, 종편을 거쳐서 저의 꿈의 방송국이었던 MBC에 입사를 했고 ‘이제 더 이상 시험 볼 필요도 없고, 내 인생은 앞으로 행복해지겠지’ 엄청 기대를 했죠. 그런데 그때부터 불행의 시작이 된 거예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그때 회사 자체의 상황이 MBC가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김하나 : 파업도 하고.
임현주 : 네. 정권 교체 이런 것들에 막 휘말려 있는 시기이기도 했었고. 또 하나 근본적으로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의 현실을 제가 그때서야 마주하게 된 거죠. 그 전까지는 아나운서로 일하는 게 힘들어도 ‘고용 형태가 프리랜서나 계약직이라서 힘든 걸 거야’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서 내가 느끼는 한계일 거야’라고 생각했던 게, 그런 것들이 다 제거됐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불안한 거예요. 제가 아침뉴스라는 어떻게 보면 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매일매일 불안에 시달렸어요. ‘지금 당장은 방송을 하고 있지만 길어봐야 2~3년인데 그 뒤에 나는 뭐가 되는 거지? 그냥 열심히 일만 하다가 끝? 그 다음은 뭐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하루하루는 열심히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것을 만들지는 못하는 직업인 거예요. 그리고 계속 선택을 받아야 되고. 내가 이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계속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제작진에게 선택을 받아야 되는 환경들인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거예요. 외적인 스트레스도 되게 심했어요. 외모를 가꾸지 않으면 선택받지 못할 거라는 압박감에도 엄청나게 시달렸고요. 그래서 어떤 날은 하루의 대부분을 내가 뭘 먹는지, 어떤 옷을 입어야 될지,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하는 데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계속 쓰는데 행복하지가 않았어요.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그게 너무 불행하고 ‘이게 내가 원하던 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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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주> 저13,32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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