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 “알지? 흉터는 옷의 기원이라는 거”
『내 황홀한 옷의 기원』백지영 저자
의, 식, 주니까 옷부터 시작했어야 했는데 그때는 옷에 대한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그런데 음식은 마침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렇게 음식, 옷, 집, 이렇게 순서가 되었네요.(2020.11.18)
백지영 씨가 새 소설 『내 황홀한 옷의 기원』을 들고 독자를 찾아왔다. 그녀는 첫 작품집 『피아노가 있는 방』을 통해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집요하게 탐색”(고인환/평론가)하여, 이른바 ‘착한 소설’의 역습이라는 평을 받았다. 2018년에는 장편소설 『나의 노열 패밀리』을 통해 “가족소설의 문법을 바꾸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고 질주하는 사회, 그 속에 놓여 갈 길을 암중모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서경석/평론가)를 썼다. 첫 번째 장편이 음식을 다루었다면, 이제 두 번째 장편은 인간의 기본 욕망 중 하나인 ‘옷’을 다룬다.
소개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근황에 대해서도요.
어릴 때부터 글을 좀 쓴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작가가 되는 꿈을 꾸게 되었어요. 작가도 여러 분야가 있겠지만 소설을 좋아해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요. 그래서 제 오랜 친구들은 어릴 때 꿈을 이룬 사람을 생전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예요. 그러고 보면 행운아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 소설가로서 갈 길이 먼 사람이네요.
근황을 말하자면 『내 황홀한 옷의 기원』을 인쇄에 넘겼다는 말을 듣는 순간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온몸으로 달려들며 한기가 끼치더니, 그 후로 일주일 정도 몸살을 앓았어요. 그리고 지금은 현재 쓰고 있는 장편에 집중하려고 마음만 먹고 있고 첫 작품집 이후 문예지 등에 발표한 단편들이 책 한 권 분량이 돼 내년에는 단편집을 내야겠다고 역시 마음먹고 있습니다.
전작에서는 ‘음식’이라는 소재로 가족사회의 일면을 보여주셨고, 이번 작품에서는 ‘옷’을 소재로 다루셨어요. 인간의 기본 욕망 중에 의식주의 문제를 특별히 다루시는 이유나 계기가 있는지요?
이번 책의 '작가의 말'에서도 말했지만 첫 작품집을 낸 후 이제 장편을 써야겠다 생각했을 때 좀 막막하더라고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어떤 이야기로 시작해야 하지.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막막할 때는 주로 자전적 이야기로 시작을 하는 것 같던데 저는 왠지 그러고 싶지는 않았어요. 제 이야기는 나중에 정말 쓸 게 없을 때 쓸 생각이거든요. 처음부터 제 이야기를 풀어버리면 나중엔 정말 쓸 게 없고 더 막막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의, 식, 주부터 시작하자. 그러면 일단 세 권은 쓸 수 있잖아요. 그렇다면 의, 식, 주니까 옷부터 시작했어야 했는데 그때는 옷에 대한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그런데 음식은 마침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렇게 음식, 옷, 집, 이렇게 순서가 되었네요.
이번 소설은 대중들에게 매우 친숙한 매체인 영화판을 중심으로 서사가 짜였는데요. 영화배우인 현우와 영화감독인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중심이고, 그 전경에 옷(의상)을 만드는 세 여자의 이야기가 깔려 있죠. 이렇게 구상하게 된 계기를 '작가 후기'에서 알게 되었는데요, 작가님께서 이 소설을 구상한 이유에 대해 직접 말씀해 주시면 좋겠네요.
중학교 때 우리 학교에는 유명한 에로영화 감독을 아빠로 둔 학생이 있었어요. 어느 날 그 감독이 학부형 자격으로 초빙돼 우리 교실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고요. 제게는 아직도 재미있고 신기한 경험으로 기억되지만, 중학교 교실에서 에로영화 감독이 강단에 선다는 게 어울리는 일은 아니잖아요. 더구나 그때는 지금보다 더 엄격한 분위기였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그 교실의 모습이 마치 그 사회를 상징하는 한 장면 같더라고요. 1980년대가 그렇잖아요. 정치적으로 암울했고 사회는 엄격한 분위기였으나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에로영화가 성행하고.
그래서 그 교실을 아버지의 시대로 설정하고 그런 아버지의 시대에 반감을 갖고 있는 소년을 생각하게 되었죠. 아버지의 시대에 반감을 가진 소년, 그래서 아버지보다 깨끗하게 살고 아버지를 뛰어넘으려는 욕망을 가진 남자. 하지만 전시대를 뛰어넘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치 같은 걸 예로 들어도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새 시대를 만들겠다 다짐하지만 막상 권력을 잡으면 전시대의 잘못을 답습하고요.
말하자면, 아버지가 만들려 했던 영화와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가 묘하게 일치했다는 모티프에다, “부정하거나 초극하려 했지만 결국 부모 세대와 자신이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는” 주제의식을 더한 거군요? 그런데, 작품에서는 초반부터 배우 정현우가 엽기적인 흉터를 남긴 사고를 당한 것에서 출발해요. 이유가 궁금하네요.
아버지의 시대는 부정하거나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닌, 마치 흉터 같은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차라리 얼굴의 흉터처럼 내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때 오히려 전시대의 극복이 쉬워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옷에 대한 책을 읽다가 흉터가 옷의 기원이라는 인류학자들의 주장을 알게 됐고, 그렇게 옷과 흉터를 매칭할 수 있었어요.
독자의 흥미와 긴장도를 위해서, 추리소설이나 미스터리 소설에서 쓰는 기법을 적절히 섞으셨는데요. 그러다 보니 작품의 말미에 가면 전체 소설의 얼개가 확 그려집니다. 전에 쓰셨던 작품들과는 다르게 이렇게 장르소설의 요소를 넣은 이유가 있으신지요?
솔직히 추리소설 기법을 쓰겠다 생각했던 건 아니에요. 주인공 정현우라는 캐릭터가 우선 영화배우니까 외모적으로도 아름답게 그려야 했고,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여인들도 아름답고요.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그렇게 아름다운 남자를 사랑하는 아주 볼품없는 여자가 떠올랐어요. 너무 볼품없어서 사랑을 표현하기는커녕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도 없는 여자. 그런 여자가 아름다운 남자를 사랑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그런 방법이 있기는 할까. 만약 있어도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 여자가 하는 사랑은 엽기적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지요. 그런데 그런 여자를 만들고 보니 정현우라는 인물과 또 다르게 제게는 매력이 있고 애정이 가는 캐릭터였어요. 그래서 그 인물을 돋보이게 하고 보다 중요한 인물로 만들려다 보니 엽기적인 방법으로 사랑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스릴러적 요소가 가미된 것 같아요.
“흉터는 옷의 기원이다.”라는 명제도 그렇고, 또 소설의 장마다 ‘패션, 옷’ 관련한 디자이너들의 코멘트를 발췌하여 넣으셨어요. 소설에는 옷을 만드는 여자들이 나오고, 각각에 스토리가 있습니다. 작가께서 생각하시는, ‘옷’이란 어떤 것인가요? 그리고 각각의 옷 만드는 여자들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했던 ‘옷’에 대한 생각은요?
저는 솔직히 패션이나 옷에 관해서 정말 1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옷을 신경 써서 입어본 적도 없고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고요. 오히려 옷에 관해 관심이 많은 여자들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별로 안 좋게 보이기도 했던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패션에 관한 여러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디자이너들의 자서전이나 그들에 관한 자료를 보면서 옷을 만드는 것도 소설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전에는 그저 옷을 사치품이나 소비재같이 인식했다면 이제는 창작품이나 예술품으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옷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식하게 그렸고, 저 또한 이제 그렇게 옷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혹시 이 작품을 쓸 때에, 염두에 두셨거나 영향을 받은 작품이 있는가요? 아니면, 작가님의 소설이 독자에게 어떻게 읽혔으면 좋겠습니까? 그리고 이 작품에 이어서 앞으로 어떤 주제와 방향으로 작품을 쓰실 것인지요?
원래 패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떤 브랜드에서 나오는 옷은 다 한 사람이 만드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관련된 책을 읽고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 하나의 브랜드에도 여러 디자이너들이 옷을 만들더라고요. 그래서 숨어서 옷을 만드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고 그렇게 스릴러적 요소를 가미할 수도 있었어요.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새삼 여러 분야 다양한 책을 읽는 게 소설을 쓰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겠구나 다시 한번 느꼈어요. 이 작품은 정현우가 주인공인 이야기지만 실제 주인공은 이름 없는 여자거든요. 작품을 읽으신 분들이 이름 없는 여자에게 연민과 애정 등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쓰는 작품은 집이 소재예요. 어려서부터 셋방살이 설움을 너무 많이 겪어서 집에 한이 맺힌 싱글녀 하우스푸어가 주인공인 이야기죠. 그런데 그녀가 집을 끝까지 지키는 게 맞는지 아니면 집을 포기하고 여러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게 맞는지 갈림길에 있네요. 그녀가 어떤 길을 선택하게 될지 저도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 선택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앞으로 백지영의 작품을 읽고, 백지영 소설의 팬이 될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저는 세련된 문체를 갖고 있지도 않고 지식이 차고 넘쳐 많은 정보를 줄 수 있는 작가는 아니에요. 그런 작품들을 보면 부럽고 존경스럽기는 하지만 또 내가 그런 스타일의 작품을 쓰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나는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가 내 자신에게 물어보면 쉽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답이 들려요. 저는 우선 쉽게 읽히는 소설을 썼으면 좋겠고 재미와 감동을 주는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됐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많이 노력해야겠지만요. 그리고 또 하나 독자들이 제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에 연민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왠지 마음이 짠해 돌아보게 되고 생각하게 하는. 그래서 살다가 문득 한번쯤 떠올리게 되는. 그런 캐릭터가 나오는 쉽고 재미있고 감동도 있는 작품. 그런 작품을 쓸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할 생각이니 앞으로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백지영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세종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곰탕」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수혜했으며, 세종대에서 문학과 영화 등을 강의했다. 작품집으로 「피아노가 있는 방」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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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백지영> 저12,600원(10% + 5%)
백지영의 신작 『내 황홀한 옷의 기원』은 인간의 옷에 대한 욕망의 세계를 다룬 소설이다. 간결하고 정감 있는 문체로, 한 영화배우의 가족사와 1980년대 정치적 상황을 결합해 옷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 문제를 스릴러적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