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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차 11번가 MD가 전하는 큐레이션의 법칙

『PROFESSIONAL 커머스의 조건』 서법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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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MD 또는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셀러 등 직접적인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현장 실무자의 관점에서 본 시장 이야기를 통해 인사이트를 얻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2020. 08. 20)


코로나 19 이후 달라질 미래 윤곽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인공지능 출현 후 급변할 커머스의 미래 또한 예측할 수 있을까? 『프로페셔널 커머스의 조건』 저자 서법군은 “변하지 않는 것에 변화를 위한 해법이 있다”라며 상업이 태동하던 고대 장안에서부터 세계 최초의 백화점, 조선 최초의 백화점 등 상업의 원형이 된 플랫폼을 살펴 그들만의 원칙과 철학을 분석했다. 

저자 서법군은 18년 차 MD. 2002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해 10년간 일했고, 현재는 11번가 재직 중이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경계를 넘어 동분서주하고 있다. 커머스의 영역에서 벗어나진 않았으니 멀리 가진 못했다. 높고 멀리 도달하진 못했으나 한 영역에 오래 머문 자로서 역할을 다하고 싶어 『PROFESSIONAL 커머스의 조건』을 썼다. 책에 18년간 일하며 보고 들은 바를 토대로 커머스에 대한 고민을 풀어내고자 노력했다. 지난 5년간 주말과 휴일의 상당 부분을 글쓰기와 읽고 정리하기에 매달렸다.



작가님께서는 18년차 MD라는 직업을 가지고 계신 데,  『PROFESSIONAL 커머스의 조건』 이라는 책을 집필 하신 계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솔직히 말하면 또 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많은 실패를 거쳐왔습니다. MD로서 상품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실패 한 것은 물론이고, 잘 다니던 회사에서 나와 사업을 시작했지만 크게 실패했으니 직업 경력에서도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까웠죠. 그저 경험으로 치부하기엔 곤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2015년에 다행히 현재의 회사로 옮겨와서 MD 직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3년이나 실패의 늪에서 허우적대다가 현재 회사로 옮기게 되면서 아주 잠깐 안도도 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위기를 실감하게 되었고, 이유는 ‘내가 발 담그고 있는 이커머스라는 세계는 정말 광활하구나.’라고 느꼈거든요. 경계 없이 무한확장이 가능하니까요. 문득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싶었습니다. 처음엔 부정하다가, 조금 지난 후에는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위안했지만, 얼마 안 가 ‘이거 이러다 대책 없이 휩쓸릴 수도 있겠구나’하는 위기의식이 들었습니다.

특히 2016년. 이세돌 9단이 AI에게 지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이 성장과 확장을 견인하는 이커머스의 세계를 목도하는 와중에,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었고 그래서 커머스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책과 자료를 찾아서 읽고 정리도 하고요. 그렇게 시작한 읽고, 정리해서 쓰는 작업이 매주 주말마다 계속되면서 일종의 루틴이 만들어지더군요. 책을 쓰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 했지만 매주 만들어진 원고가 모이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망하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 세상의 큰 변화를 마주하면서 느낀 위기의식이 책을 쓰게 했으니 너무 세속적인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만, 이렇게 현장에서, 현실적인 이유로 쓰인 책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웃음)

프롤로그를 보면 '회사에 MD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작가님께서 느끼시는 인공지능 MD와 인간 MD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공지능을 포함한 기술 발전이 경쟁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기술의 격차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결국 기술만으로는 차별성을 획득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겠죠. 이러한 때, 인공지능 MD보다 인간 MD의 지극히 인간적인(주관적이며, 취향의 개별성이 존재하는) 큐레이션이 플랫폼의 차별성을 보강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커머스 플랫폼이 인공지능의 큐레이션과 인간 MD의 큐레이션을 함께 버무려서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이 개인별 맞춤 추천을 정교하게 제공하는 가운데 인간 MD에 의해 만들어진 독특한 관점의 추천을 함께 제공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MD의 업무는 다른 여타의 직무와 마찬가지로 객관적인 관점과 합리적 근거를 중요시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앞으로는 독특한 관점, 주관적 견해를 제시하는 데 훨씬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책 내용 중 커머스의 성장 파트를 보면 고대부터 19세기, 조선시대까지의 시장 내용이 들어가 있는데, 집필하시면서 자료를 모으는 것에 대해 어렵지는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확실히 쓰는 작업보다 자료를 찾아서 정리하는 작업이 더 힘들었습니다. 다른 분야에 비해 커머스 영역은 관련한 자료가 부족해서 찾고자 하는 내용을 정확하게 구하기가 어려웠죠. 저와 같은 현장 실무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막상 집필을 위해 자료를 찾으며 정리하다 보니 문득 ‘어쩌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문적 연구 대상은 아니지만, 실용적인 연구는 꼭 필요한 분야에 이렇게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은 그만큼 ‘미개척지’라는 뜻이거든요.

오래전 제가 처음으로 수산물 MD로 업무를 시작할 당시, 저는 고등어와 삼치도 구분하지 못하는 이른바 어맹(漁盲)이었습니다. 선배들에게 배우는 것은 한계가 있어서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류 도감마저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200년 전 정약전의 자산어보 이후 해당 분야에서 실용 연구서를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1974년에 출간된 정문기 박사의 어류 박물지가 있었지만, 이 분야에서 제가 가장 흥미 있게 읽으며 도움을 받은 책은 고등학교 생물교과를 가르치던 이태원 선생님이 집필한 <현산어보를 찾아서>입니다. 200년 전의 정약전 선생과 2003년 이태원 선생 모두 어류학자는 아니었지만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괄목할 만한 연구서를 집필한 것이죠. 전 그렇게 두 권의 어류 도감 책을 보면서 공부했습니다. 저 스스로 이런 경험을 겪으니 그분들 만큼 뛰어난 실용서를 쓰기는 어렵겠지만, 도전해볼 만 하다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도전이 시금석이 되어 커머스 분야에서의 실용적 연구가 활성화된다면 MD라는 직업의 사회적 사명도 정착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시장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게 되었는데요, 코로나 19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커머스 분야는 어떤 게 가장 많이 바뀌었나요?

저는 신선식품 MD이므로, 독자분들께서 이해하기 쉽도록 카테고리를 좁혀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혹시 코로나 19 이전 농산물 꾸러미, 대파, 명이나물, 양파, 마늘, 당근 등등 이런 품목들을 온라인몰에서 구매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아마 많지는 않을 겁니다. 이러한 품목들은 대개의 경우 마트에서 필요할 때마다 소량 구매하는 품목이죠. 대부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사례는 신선도를 위해 새벽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로 한정될 겁니다. 그런데, 코로나 19 발생 이후 이런 품목들이 엄청난 규모로 팔리게 됩니다. 이 변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분명한 것은 <언택트 커머스>의 가속화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를 “온라인 전이”라고 표현하는 데요, 코로나의 장기화에 따라 커머스 전체에서 온라인으로의 전이율이 훨씬 빠른 속도로 높아질 것이 분명합니다. 현재 온라인 전이율, 즉 소매업 내 이커머스의 시장점유율은 아직 30% 미만밖에 되지 않지만 마윈의 예언처럼 곧 50%에 근접하게 될 겁니다. 마냥 허풍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래 커머스 시장 상황에 대하여 하고 싶으신 말씀이나 혹은 '앞으로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있으시다면 얘기해주세요.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유례없는 위기 상황에 여러 나라 중 대한민국은 ‘연대 의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함께 이겨내자.”는 응원과 격려가 곳곳에서 들려왔죠.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저희는 적극적으로 온라인 판로를 제공하고자 노력했고, 대파와 명이나물 등 지역 농산물에 대해 지자체 및 지역 기관과 제휴하여 길을 찾았습니다. 평소 이러한 윤리적 소비에 대한 반응이 뜨뜻미지근한 상태였다면, 이번 판로 지원 프로모션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뜨거웠습니다. 실제로 충남에서 준비한 농산물 꾸러미는 행사 오픈 2시간 만에 준비한 물량 수 천 개가 완판되었고, 진도 대파와 홍천의 명이나물, 무안의 양파 역시 준비한 물량을 모두 팔았습니다.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음에도, 어디서 소문이 퍼졌는지 정말 많은 분이 응원과 구매 대열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더 이상의 성장이 불가능한 상태, 과잉이 만연된 소비 시장, 인간을 더는 부양하기 어려운 지구 생태계에 대한 경고로 인해 사람들은 “함께 이겨내자.”라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연대하게 된 것이죠. 저는 이러한 사회적 연대 의식이야말로 앞으로 우리의 커머스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날개를 단 커머스가 지금까지 달려온 궤적은 무한 성장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과 이익에 대한 욕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갈망과 욕망을 선악 개념으로 판단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언택트 커머스로의 전이’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저는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이러한 변화 앞에서, 커머스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오직 이익만을 바라보며 달려갈 수 있을까요? 저는 언택트 커머스에 대한 과잉 관심에서 조금은 벗어나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이 어디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커머스의 방향은 바로 그곳에 있을 겁니다. 커머스, 상거래의 목표가 ‘이익‘이 아니라 인간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시장에서 경쟁사 상호 간을 노려보던 시선을 소비자(인간)로 돌리고, 나아가 인간의 미래로 향할 수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작가님의 본 직업인 MD로서의 인생계획, 그리고 첫 책을 내신 작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우선 MD라는 직업을 가진 자로서, 직업적 고민이 많습니다. MD라는 직업을 규정짓고, 사회적 위상을 세울 수 있는 소명 의식도 갖고 싶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저의 일에 대해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고 싶다는 소망에서 비롯된 고민입니다. 저는 직업이 사회적 위상을 갖기 위해선 반드시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직업적 고민”이란 걸 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저의 18년 경력과 비교하면 불과 몇 년 전부터 고민을 시작했죠. 어느 날 아이에게 아빠의 직업을 설명해주는데, 이게 쉽지 않았거든요.

“아빠, 아빠 직업이 뭐야?”

“응, 아빠는 MD야.”

“엠디? 그게 뭔데?”

“음…그건 말이야….”

답변이 쉽지 않았죠. 상품 기획자와 같은 정의는 있지만 여덟 살 아이가 이해하기는 어려운 단어니까요. 의사, 변호사, 농부, 목수 등 오랜 시간 단어 자체로 지어진 직업은 설명이 필요치 않으니까요. 

그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진 MD라는 직업은 개념 설명이 어렵다 보니 어떤 MD가 될 것인가의 위상 수립도 어렵습니다. 제가 처음 직무를 시작한 후배들에게 MD라는 업무를 소개하면서 하는 말은 “MD는 욕망을 다루는 자”입니다. 사람들이 원래 가지고 있는 욕망이 아니라, 새로운 욕망을 불러일으키거나, 욕망의 크기를 부풀리는 것에 능숙해야 합니다. 상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람들의 소비 욕망을 관리하는 기술이야말로 지금까지 MD들이 갈고 닦아온 기술 중 핵심 기술입니다. 그런데 이 직업은 훨씬 잘하는 새로운 얼굴의 사람들이 매 순간 등장하기도 하고 다른 손기술들에 비해 차별성도 갖기 어렵습니다. 매일 매시간 거래액 실적이 곧 MD의 얼굴이 되곤 합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인공지능이라는 도저히 넘보기 어려운 경쟁자도 등장했습니다. 매일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입니다. MD라는 직업이 상품을 통해 욕망을 다루며 거래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직업의 본질이므로 욕망을 다룬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MD들은 어떤 욕망을 다루는 데 집중해야 할까요? 저는 시장에서의 욕망 관리 기술자로서 MD들이 사람들의 훨씬 다양한 욕망을 두루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아직 제가 MD로서 직업적 소명을 갖게 되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죠. 지나치게 큰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보지만 애초에 시작은 늘 어려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결국 새로운 생각으로 발걸음을 떼어야 진화, 발전이 가능하기에 일단 생각만 했던 일에 대해 실천해 보려 합니다.

『PROFESSIONAL 커머스의 조건』 를 읽고 커머스라는 분야를 처음 아실 독자분들 그리고 같은 업에 종사하고 싶으신 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먼저, 커머스 분야를 처음 접하실 독자들께. 

직업 MD 또는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셀러 등 직접적인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현장 실무자의 관점에서 본 시장 이야기를 통해 인사이트를 얻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최근 주식 투자 열풍이 불면서 기업들에 대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내용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는 학습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커머스 분야에서 지금 현재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들은 대부분 상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누가 먼저 깃발을 꽂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동업종의 선후배 동료들께.

현장에서 꽤 긴 기간 근무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상태에서 책을 쓰는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도전이 현장 실무에 기반을 둔 실용적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시작이 되면 좋겠습니다. 저는 평소에 늘 “좋은 기획은 많은 기획에서 나온다”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번 책은 좋은 기획을 만들어내기 위한 많은 기획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 현장에서 이러한 기획이 더 많아질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PROFESSIONAL 커머스의 조건
PROFESSIONAL 커머스의 조건
서법군 저
SI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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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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