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8월 대상 - 여름나기를 위한 나의 액션 보고서
여름을 맞이하는 나만의 방법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에 깊이 몰두하면 그때만은 더위를 잊게 된다. 얼마나 버틸까 싶었는데 그 여름이 다 끝났다. (2020.08.05)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 마시고 있던 J가 “정말?” 하고 물었을 때, 앞서가던 아저씨가 뒤를 돌아보았다. 뜻밖에 큰 목소리였던 탓에 J는 민망한지 내 팔을 잡고 늘어졌다. 좀 놀랍긴 한 모양이었다. 냉면이 맛있다는 집을 찾아가던 중 그는 티셔츠를 펄럭이며 연신 덥다고 했고, 나는 그저 여름과 친하게 지내고 있는 근황을 얘기했던 것이다.
“대단하다. 너, 그게 가능하니?”
“응, 되더라니까.”
"무슨 수로 그랬어?“
J는 물냉면에 얹어진 달걀에서 노른자를 골라내며 어서 썰을 풀라고 했다.
“그게 말이지. 방에 가만히 있되, 무언가에 완전히 몰입하면 돼.”
“장난해?”
“들어봐. 그러니까 뭐냐면......”
학창 시절, 달콤한 복숭아가 제철일 때면 교실에 앉아 있는 반 친구들의 앞머리가 땀에 젖어 반들거렸다. 창가에 앉은 나에게는 선풍기 바람이 오지 않았고, 체육복을 갈아입지 않은 짝꿍에게서는 쉰 콩나물 냄새가 풍겨왔다.
“선생님, 더워요!”
한 아이가 불만을 꺼내자 모두가 동요하며 일순간 분위기가 흐트러졌다.
“맞아요. 너무 더워요.”
여름마다 나오는 단골 멘트에 선생님들의 답변은 대개가 이랬다.
“가만있으면 안 덥다. 자꾸 덥다고 하면 더 더운 거다.”
창 너머 뙤약볕이 내리쬐는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나무의 그림자가 짙었다. 짝은 체념한 듯 부채질을 세게 했다. 끈적이는 목덜미에 바람이 잠시 머물렀다. 고작 선풍기 두 대만이 돌았던 교실에서 여름이 우리들의 꿈처럼 익어가고 있었다.
재작년, 에어컨에서 곰팡내가 사라지지 않아 청소 업체에 전화했더니 비용이 10만 원이란다. 차마 그 돈을 쓰기가 아까워 미루다가 이럴 바엔 선풍기도 꺼내지 말고 한 번 지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련한 선택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참에 내가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난 인간으로서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는지 일종의 도전을 해보자는 심산에서였다.
나의 여름나기 프로젝트는 마치 사명대사가 뜨거운 방에서 고드름을 달고 있었단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이를테면 캐롤송을 듣는다. 눈으로 얼어붙은 추운 겨울의 이미지를 내내 그리며 해가 쨍쨍한 낮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다. 더구나 캐롤송이란 행복하고 신나는 리듬을 지닌 것이니까. 겨울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는 것도 몸이 서늘해지는 효과가 있다.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밤이면 샤워를 마친 뒤, 청량감을 주는 음악을 틀어놓고 북극의 이글루나 폭포수 아래 있는 상상에 빠진다. 선선한 가을에 들을 수 있는 풀벌레나 바닷가 ASMR을 듣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에 깊이 몰두하면 그때만은 더위를 잊게 된다. 얼마나 버틸까 싶었는데 그 여름이 다 끝났다.
나는 어른이 되고도 한참 지나서야 어쩌면 선생님께서 단지 상황을 종료시키고자 한 것만이 아니라 꽤 일리가 담겨있는 말씀을 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어떻게든 적응해 왔음을 몸소 경험해 보니 과연 그랬다.
얼마 전 J를 만났다.
“아, 올해 100년 만의 폭염이 온대.”
나는 이번 여름엔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하와이안 셔츠를 장만하겠다고 말했다. J는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싱긋 웃었다.
다시, 여름나기 중이다.
이다성 두부처럼 담백한 글을 쓰고 싶어서 가끔 우는 사람. 취학 전 아동일 때가 전성기였으며 한낮의 명랑한 기분을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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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처럼 담백한 글을 쓰고 싶어서 가끔 우는 사람. 취학 전 아동일 때가 전성기였으며 한낮의 명랑한 기분을 좋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