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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하 시인 “단 한 사람을 위한 시”

<월간 채널예스> 2020년 8월호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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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삶이 어렵지 시는 어렵지 않아요. 현실이 고달프면 시는 저절로 써져요. 이야기하고싶은데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없을 때 글을 쓰면 시가 되더라고요. (2020.08.04)


이원하 시인을 움직이는 건 오직 사랑이다. 제주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시를 썼고, 행여나 알아채지 못할까 봐 산문을 썼다. 그렇게 두 권의 고백,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와 산문집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이 세상에 나왔다. 솔직한 사랑시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동안, 시인은 한 사람을 기다렸다. 진심을 다 털어놓았으니 이젠 그가 대답할 차례. 그러나 열쇠를 쥔 사람은 이미 정해졌다. 꽃을 선택한 건 그가 아니라 ‘시인’이니까. 



삶이 어려워서 쓴 사랑시

첫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가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산문집이 출간됐어요. 

마음속으로 시와 산문을 나란히 내기로 정해 두었어요. 시를 먼저 쓰고, 산문을 나중에 썼죠. 산문집에 있는 사진도 직접 찍은 거예요. 

시 하나와 산문 한 편이 짝을 이뤄요. 시와 동일한 제목의 글에 구체적인 사연이 적혀 있죠.

한 편의 시를 쓸 때, 어떤 상황과 감정이었는지를 산문으로 풀어 썼어요. 시 하면 왠지 어렵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근데 저는 시가 제일 쉽거든요. 별거 아닌 일상이 이렇게 시가 되는데, 전혀 어렵지 않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사실 시는 이렇게 만들어졌어 하고요. 

시인이 되기 전, 다양한 직업을 거치셨죠. 원래 미용 일과 배우를 하기도 했다고요. 

꾸미는 걸 좋아해서 미용 일을 했는데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 좀 더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 연기를 시작했어요. 제가 원래 표현을 잘 못 했어요. 전 슬프면 울어야 하는데 웃고 있었거든요. 연기 학원에서 웃고, 울고, 화내는 법을 배우면서 표현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연기의 길을 접고, 시를 쓰게 된 거죠?

연기할 때, 목표가 딱 하나였어요. 좋아하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꼭 출연하자. 그것만 이루어지면 인생이 끝나도 상관없다. 결국 오디션을 봤는데 원하는 배역에서 떨어졌고, 미련 없이 그만뒀죠. 서른이 되기 전에 무언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마음이 급했어요. 맞지 않으면 빨리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았죠.

처음에는 여행에 대한 산문을 썼다고요. 

아는 오빠가 여행 관련 책을 많이 읽더라고요. 저거나 해볼까 하고 여행 작가 아카데미에 등록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제 글을 보고 시를 써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다 한 사람에게 관심이 생기면서 시를 쓰게 됐어요. 그전에는 시집을 읽어본 게 딱 한 권밖에 없었어요.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가 어렵지는 않았나요?

전혀요. 저는 삶이 어렵지 시는 어렵지 않아요. 현실이 고달프면 시는 저절로 써져요. 이야기하고싶은데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없을 때 글을 쓰면 시가 되더라고요. 시를 가르칠 때도, 1분이면 끝낼 수 있어요. ‘사랑해라. 가능하다면 짝사랑을 해라.’ 저한테는 사랑이 가장 아프거든요. 짝사랑을 하면 삶이 힘들어지고 시가 나와요. 

힘든 현실이 글이 된다면, 시와 산문은 어떻게 다른 건가요?

항상 머릿속으로 한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글을 쓰는데요. 그 사람이 못 알아듣게 말한 건 시고, 좀 알아들어 하고 쓴 건 산문이에요.(웃음)



그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것

제주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글을 썼죠. 왜 제주였나요?

서울을 일단 벗어나서 시를 쓰고 싶었어요. 시 수업에 가니, 저 빼고 다 쟁쟁한 대학교의 문예창작과 학생들이더라고요. 남들과 다른 게 없을까 하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시를 쓰니까 가장 먼 제주도로 갔죠. 

실제 제주 생활은 어땠어요? 

시에만 집중한 귀한 시간이었지만 정말 힘들었어요. 외롭고 또 외로웠어요. 제주에 혼자 살면 신경 쓸 게 아무것도 없어져요. 동네가 너무 조용해서, 아침에 귀가 먹은 건 아닐까 혼자 말해보고 음악도 틀어보고 할 정도였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 사람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섬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았어요.

여기서 시를 쓰겠다고 마음먹었으니까요. 저는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바라보고 달려가거든요. 제주에서 한 사람을 위해서만 쓰겠다고 미리 정했어요. 죽을 만큼 힘들어도, 시를 쓰기 전에는 떠나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죠.

산문집이 야해서 좋았어요.(웃음) 남자에 대한 관심을 솔직하게 표현하죠.

저는 여자들이 다들 똑같은 생각한다는 거 알아요.(웃음) 왜 솔직하지 못해, 사실은 나랑 같잖아 하는 마음으로 썼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남자들은 ‘여자들도 그런 생각해?’ 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숨기지 않으려고 했죠. 

글의 화자도 구체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아도 마음만은 정말 적극적이잖아요.

맞아요. 제가 그 사람을 선택했기 때문에,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며 썼거든요. 그 시를 발표하고, 왜 한 남자에 목매느냐는 질문도 받아 봤어요. 그런데 전 오히려 이게 당당하지 않은가 되묻고 싶어요. 남자는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안 따라오면, 그 사람이 손해죠.(웃음)

소녀 같다고들 하지만, 알 거 다 아는 소녀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소녀는 알 거 다 알잖아요.(웃음) 여고 시절, 소녀들이 얼마나 이성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열여덟 살 소녀의 감성을 끌어와서 스물아홉 살의 저를 섞은 건 있어요. 순수함을 잃지 않는 게 밉지 않을 거라 생각했죠. 



부다페스트에서 살고 시를 쓸 거예요

“타고나기를 여행보다는 정착이 체질인 사람”(213쪽)이라 했는데, 시는 어딘가로 떠나서 쓰는 것 같아요. 

지금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가야 시가 써져요. 여행하러 가는 건 아니에요. 슬픔이 있어야 시가 써지니까 현실을 꼬아서 어렵게 만들려고 가요. 정해 놓은 건 없어요. 

슬픔에 집중해서 시를 쓰시는군요.

시를 쓰다가 눈물이 그렁그렁 하기도 해요. 작업할 때는 주로 슬픈 음악을 듣고, 다 쓴 다음에는 감정에 빠져나오기 위해서 클럽 음악을 틀어요. 그러다 보니 감정 기복이 심해지더라고요. 

다음 행선지는 부다페스트라고요. 

부다페스트라는 글자가 예뻤어요. 저는 받침 없는 단어를 좋아하거든요. 올해 초 사전 답사를 다녀왔는데, 우울한 분위기를 느꼈어요. 여기, 멋있네 하고 바로 결정했죠. 부다페스트에 대해 쓴 사람이 별로 없는 것도 마음에 들더라고요. 이원하 시 쓰려고 런던 갔대 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거기 나도 갔어 하겠죠.(웃음)

제주가 끝나고, 새로운 것이 등장할 시기군요. 

제주에서의 감정은 접었어요. 빨리 털어야지 미련을 가지면 안돼요. 독자들도 언제까지 제주에 대해 쓸 거냐고 할 수 있잖아요. 제가 독자보다 먼저 변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사랑이 이루어지면, 시를 그만 쓰게 될까요?

늘 시인으로 영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 있어요. 나는 시인으로서 성공하겠어 하면 시에 힘이 들어가서 오히려 망해요. 저는 한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시를 쓰게 됐지, 시인이 되고 싶어서 시작한 게 아니니까요. 

독자들이 두 권의 책을 어떻게 읽어주었으면 하나요?

순서 상관없이 끌리는 대로! 어떤 것을 먼저 선택하든 시와 산문을 자유롭게 옮겨갈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누군가를 떠올리며 읽어도 좋겠죠. 제가 한 사람을 위해 시를 쓴 것처럼요.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
이원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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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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