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이 아름다운 책 속에 무서운 용기가 숨어 있다 - 김누리 교수
『나는 독일인입니다』 과거청산에 충실한 작품
『나는 독일인입니다』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독일의 경우 68혁명 이후 과거청산이 상당 정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우리의 경우 지난 한 세기 동안 과거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는 ‘기이한 역사’를 가졌기 때문이다.(2020. 06. 12)
*이 기사는 『나는 독일인입니다 : 전쟁과 역사와 죄의식에 대하여』에
수록된 ‘추천의 글’을 토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데, 자기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독일인입니다』는 내게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놀라운 작품이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전후 2세대 독일인의 내면 풍경을 처음 엿볼 수 있었다. 전쟁 세대는 귄터 그라스, 크리스타 볼프, 우베 욘존 등을 통해서 그리고 전후 1세대는 페터 슈나이더, 페터 한트케 등을 통해서 나치즘의 과거가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청산’되었는지 살펴봐왔지만 전후 2세대까지 나치즘의 과거가 심리적 상처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을 통해서 처음 깨닫게 되었다. 이 그림 소설은 바로 이 세대의 내면을 놀라운 감정이입의 필치로 섬세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있다.
전후 2세대의 내면세계가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이 세대가 68혁명 이후 이루어진 교육개혁에 의해 탄생한 첫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아우슈비츠 교육’이라고 불리는 과거청산 교육을 받은 최초 세대에게 나치 과거가 어떻게 이해되고 수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들 ‘신독일인’의 내면 풍경을 나치 교육으로 훈육된 전쟁 세대의 내면세계, 아직 ‘과거청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전후 1세대의 정신세계와 비교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전후 2세대 독일인에게 ‘독일인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작품은 새로운 세대 독일인의 정체성 문제를 깊이 탐색하고 있다. 정신적 고향을 상실하고 과거의 시간을 부정해야 하는 독일의 젊은 세대의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오늘을 사는 독일인에게 가장 예민한 정체성 문제를 이 작품은 추적한다.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데, 자기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독일인이 정체성이 약한 이유는 자신의 기원에 대한 인식이 얕기 때문이다. 70년대 이후 ‘과거청산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사’로서의 과거는 여전히 금기 영역으로 남아 있었고, 그 결과 전후 2세대마저도 대단히 불안한 ‘시대적 자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깊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다.
정체성은 잡으려 하면 할수록 달아나는 그림자와 같다. 과거로의 여정을 통해 정체성의 근원에 접근할수록 노라 크루크의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진다. “나는 내 마음속에서만 존재하는 나라, 국기도 국가도 없고, 국민이라고는 단 한 사람뿐인 나라에서 온 스파이 같다.” 크루크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이르게 된다. 독일인으로서 부정적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 작품은 아프게 묻고 있다.
미학적 측면에서 보아도 『나는 독일인입니다』는 대단히 빼어난 작품이다. 이 작품의 고갱이는 “과거 내 고향이 견뎌야 했던 상실을 돌아보는 일”이다. 이러한 상실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더듬는 데 있어 이 작품은 미학적으로 매우 세련된 방법을 취하고 있다. 사진의 신비로운 아우라와 짧은 문장의 함축적 암시가 절묘하게 결합된 여백의 미학이 상실을 입체적으로 재현한다. 단아한 다의성의 언어가 주는 깊고 처연한 여운이 독자의 가슴에 오래도록 머문다.
그래픽 서사라는 장르는 아주 독특한 미학적 효과를 준다. 서사의 행간보다 그림과 글씨 사이에서 더 넓은 의미의 지평이 열린다. 그럼으로써 문학이, 문자가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표현한다. 독자의 머릿속에는 예기치 못했던 상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특히 ‘재현 불가능한 참혹한 역사의 재현’이라는 작품의 주제와 그래픽 서사라는 장르는 절묘하게 조응한다. 아도르노의 유명한 명제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라는 말의 의미에서 말이다. 언어가 절망한 곳에서 그림이 말한다.
『나는 독일인입니다』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독일의 경우 68혁명 이후 과거청산이 상당 정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우리의 경우 지난 한 세기 동안 과거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는 ‘기이한 역사’를 가졌기 때문이다. 식민시대의 과거와 냉전시대의 과거라는 이 ‘이중의 과거청산’이 우리에게는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어찌 보면 독일인보다 한국인에게 더 큰 울림을 주는 책이다. 세계 어느 나라 독자보다 한국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주리라 확신한다.
테오도어 아도르노에 따르면 “과거청산”이란 “과거에 종결점을 찍고 가능하면 그것 자체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것을 진지하게 정리하고, 밝은 의식으로 과거의 미몽을 깨부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독일인입니다』는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과거청산에 충실한 작품이다. ‘진지한 정리’를 통해 ‘밝은 의식’으로 ‘과거의 미몽’을 깨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의 반복을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교육이라고 본다. 그는 “주체로의 전환”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그러한 비행을 저지를 수 있도록 만든 메커니즘을 인식해야 하고, 그들 자신에게 이러한 메커니즘을 보여주어야 하며, 그 메커니즘에 대한 일반적인 의식을 일깨움으로써 또다시 그렇게 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죄는 살해당한 자에게 있지 않다. 죄가 있는 것은 오직 아무런 소신 없이 증오와 공격적 분노를 그들에게 쏟아낸 사람들이다. 그러한 무소신은 극복되어야 하고,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외부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교육은 비판적인 자기성찰을 위한 교육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
『나는 독일인입니다』는 아도르노의 이러한 교육담론에 의해 1970년대에 이루어진 교육개혁의 열매라고도 볼 수 있다. 노라 크루크가 가족사를 통해 과거와 만나는 태도는 바로 아도르노적 의미의 ‘과거청산’의 모범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노라 쿠르크가 자신과 가족의 역사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과정은 그 자체가 독일의 과거청산 교육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반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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