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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름이 뭐니?

식물과 친해지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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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궁금해진다는 것은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것. 애정은 시간에 비례한다. 길게 키운 식물일수록 더 많은 걸 알고, 그만큼 더 신경 쓰고 싶다. (2020. 06. 08)


집에서 조금씩 요리를 해 먹기 시작하면서 식재료를 제때 활용하지 못하고 버리는 일이 늘어났다. 매번 고구마 한 봉지를 사면 꼭 한둘씩은 싹을 틔웠고, 다른 것들은 무심히 버렸지만 싹 난 고구마만큼은 이상하게 물컵에 담아 뿌리가 내리는 모습을 보고는 했다. 그렇게 하나씩 고구마가 늘어나다 올해 봄에는 작정하고 상추씨를 뿌렸다.

주말이 되면 창문을 열어놓고 멍하니 상추를 본다. 관상용 상추라니 좀 웃기긴 하는데, 푸르고 생기 있는 잎을 보면 희한하게 기분이 좋다. 내가 들인 마음보다 더 크고 무성하게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면 기쁘다. 어린이를 좋아하는 마음과 닿아있는 걸까.  

프로필 사진에 꽃이 올라오면 중년이라는 말이 있다. 세대를 한 기준으로 묶어 놓고 놀리는 말에 가까울 텐데, 요새는 나이 상관없이 다들 식물을 좋아하는 추세가 생겼다고 한다. 2016년 전미생활원예 설문조사에 따르면 그해 식물을 기르기 시작한 600만 명 중에 500만 명이 밀레니얼 세대였다는 결과도 있다. 어린 세대일수록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서 동거할 만한 존재를 찾는다는 해석도 있고, 점점 환경이 나빠지면서 자연친화적인 식물이 필요하다는 해석도 있다. 무언가 보살피고 싶지만, 동물이나 어린이는 팍팍한 생계에 부담이 되어서 식물로 눈을 돌린다는 이야기도 설득력이 있다.

시대에 편승하는 것인지, 집에 고구마가 생기고, 덩달아 싹 틔운 감자가 생기고, 상추가 생기고, 분양받은 다육식물이 생기고, 마트에서 사 온 아이비가, 나중에는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씨앗이 싹을 틔워 화분에 한 자리를 차지했다. 반려동물과 주인, 자식과 부모는 서로 닮는다던데, 식물과 식물을 키우는 인간도 서로 닮을 수 있을까. 어수선하게 한 화분 안에서 뒤엉켜 자라는 식물을 보고 있자니 지금 내 상태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식물이 늘어나면서 점점 각자의 특성도 배우고 있다. 상추는 날이 더워지면서 이틀이 멀다 하고 잎이 시들해지고, 고구마는 흙을 더 가벼운 걸 썼는데도 물이 없을 때 상추보다 더 오래 버틴다. 웃자란 친구들은 물을 세게 주면 넘어가기 때문에 조심조심 줘야 한다. 다육식물은 한 번 물을 주면 한 달은 너끈히 간다. 


마트에서 사온 아이비는 아이비인줄도 모르고 그냥 데려왔다. 식물 카페에 물어봤더니 금방 아이비 종류라고 답변이 달렸다. 제대로 찾아보지 않고 다짜고짜 물어보는 핑거 프린세스가 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기초지식이 없는 사람은 검색도 어렵기 마련이니까... 모쪼록 귀엽게 봐주시길. 네이버에 식물 사진을 찍으면 사진 데이터를 토대로 비슷한 식물을 불러와 준다. 식물 이름 찾아주는 앱도 있다고 하니까 정체 모를 친구의 이름은 직접 찾아봐야겠다.

이름이 궁금해진다는 것은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것. 애정은 시간에 비례한다. 길게 키운 식물일수록 더 많은 걸 알고, 그만큼 더 신경 쓰고 싶다. 무엇보다 이름을 알고 싶다. 이름에 따라 흙의 종류를 달리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기준으로 물을 줄지, 저면 관수로 물을 줘야 하는지, 온도가 너무 오르면 잠시 안에 들여놔야 할지 찾을 수 있는 열쇠가 된다. 보살피고 싶다는 마음은 어떤 대상이든 비슷하다. 

어제도 마르다 못해 누렇게 변하려던 상추에 간신히 물을 줬다. 누레진 잎이 다시 파릇해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기운 없이 늘어져 있던 잎은 정신을 차렸다. 철이 지날 동안에는 집에 있는 모든 식물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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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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