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나도, 에세이스트] 3월 우수작 – 재활하듯, 코인 노래방

3년 전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당시 나이가 서른셋이었으니 늦은 시작이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주 3회 코노를 간 지도 벌써 한 달이 됐다. 그간 노래 실력은 동결된 연봉처럼 늘지 않았다. 그래도 소득이 하나 있었는데, 사람들이 내 발음을 좀 더 명확하게 듣기 시작했다는 거다. (2020.03.02)

03송정훈.jpg
언스플래쉬

 

 

채널예스가 매달 독자분들의 이야기를 공모하여 ‘에세이스트’가 될 기회를 드립니다. 대상 당선작은 『월간 채널예스』, 우수상 당선작은 웹진 <채널예스>에 게재됩니다.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은 매월 다른 주제로 진행됩니다. 2020년 3월호의 주제는 ‘나, 요즘 이것에 빠졌다’입니다.

 

 

3년 전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당시 나이가 서른셋이었으니 늦은 시작이었다. 기타는 학창 시절 체조 운동 같았다. 하면서도 ‘참 소질이 없구나.’라고 자주 생각했다. 어릴 적 나는 구기 종목 쪽으론 제법 감이 있었지만, 구르기, 옆돌기 같은 운동에는 젬병이었다. 머리통이 성격처럼 삐뚤빼뚤한지 반듯하게 구르지 못했고, 옆돌기를 할 때는 팔다리가 게의 집게 마냥 엉거주춤한 모양새가 됐다. 기타도 그간 쌓아온 삶의 블록과 잘 맞지 않는지 일 년이 다 되도록 제대로 연주하는 곡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3년 정도 꾸준히 하다 보니 기본적인 코드와 주법에는 익숙해졌는데, 그때 나는 깨달았다. 십 대부터 꿈꿔 온 나의 로망이 기타를 치는 것이긴 했지만, 정확히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잘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나는 일을 하다 내 꿈은 이게 아니었다며 사직서를 제출하는 신입사원의 마음으로 새해 결심을 세웠다. 이제 기타 연습은 잠시 멈추고 노래를 연습하자고.


그리고서 작년 말부터 다니기 시작한 곳이 코인 노래방이다. 모임이나 데이트 전 자투리 시간에도 가고, 약속 없는 평일 퇴근길에 들리기도 한다. 나처럼 목소리가 작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 노래 연습을 하는 데 이곳만큼 유용한 곳은 없는 듯하다. 회사에서도 혼자 고심하는 시간이 많은 나는 좀처럼 성대를 쓸 일이 없어 가끔 오는 전화를 받다 목이 잠겨 헛기침을 하곤 한다.

 

성격과 생활 방식이 이렇다 보니 어릴 적 짱짱하게 울어대던 성대는 퇴화했고, 폐와 횡격막의 운동 능력도 절간 같은 생활에 맞춰 다운 튜닝되어 버렸다. 그런 내게 필요한 건 큰 소리를 자주 냄으로써 호흡압력을 키우는 것이지만, 방음이 취약한 집에서 그 연습을 할 수는 없다. 지금 사는 낡은 빌라는 이웃 간의 정이 있던 시대에 지어져서 그런 건지 옆집 아이의 울음소리나 윗집 부부의 격양된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달되는데, 이런 환경에서 고성방가는 예의가 아니기에 대안으로 찾아낸 것이 코인 노래방이었다.


요즘 코인 노래방은 시설이 꽤 좋다. 오락실 한 귀퉁이에 붙어 있던 시절에는 의자도 등받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소파가 있고, 방음도 나쁘지 않다. 방에 들어가 소파 한구석에 외투와 가방을 벗어 둔 다음, 지갑에서 오천 원짜리 지폐 하나를 꺼낸다. 돈을 투입구에 넣고 나면 화재 발생 시 어떻게 대피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모니터 오른쪽 상단에는 열두 곡을 부를 수 있다는 표시가 뜬다. 천 원이면 두 곡을 부를 수 있는데, 오천 원을 넣으면 두 곡이 서비스라 총 열두 곡이 된다. 충전 중인 무선 마이크에 위생 망을 씌운 다음, 10cm, 장범준, 김진호 같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하나씩 부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는 행위가 가진 본연의 흥과 너절한 가창력을 확인하는 슬픔과 어제보다 잘 부르는 것 같다는 착각의 즐거움을 냉탕과 온탕처럼 오간다. 그러고 나면 안에 받쳐 입은 티셔츠는 땀에 축축해지고, 안 쓰던 몸의 근육을 사용한 탓에 현기증을 느낀다. 다리가 조금 후들거리는 느낌도 든다. 


주 3회 코노를 간 지도 벌써 한 달이 됐다. 그간 노래 실력은 동결된 연봉처럼 늘지 않았다. 그래도 소득이 하나 있었는데, 사람들이 내 발음을 좀 더 명확하게 듣기 시작했다는 거다. 회사 일로 통화를 하다 메일 주소를 불러주면, 웅얼거리는 목소리 탓에 “네? 뭐라고요? tb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럼 나는 “아니요. 그 tb 말고 db 있죠? 데이터베이스 할 때 db"라고 추가 설명을 해야 했는데, 그간 목소리에 힘이 좀 붙었는지 이제는 상대방이 곧잘 알아듣는 편이다. 코인 노래방을 몇 달 더 다닌다고 실력이 많이 늘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재활 치료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들러 보려고 한다. 그 후에는 보컬 레슨도 짧게 받아볼 것이다. 지금까지 노래란 취기에 제멋대로 부르는 것이었지만, 올 연말에는 소중한 이들에게 마음을 담아 멋지게 불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

 

송정훈 주류회사 마케터. 직장에서 느끼는 허기와 빈틈을 채우기 위해 글을 쓰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연습하고 있다.

 

 

*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 페이지
//www.yes24.com/campaign/00_corp/2020/0408Essay.aspx?Ccode=000_001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송정훈

주류회사 마케터. 직장에서 느끼는 허기와 빈틈을 채우기 위해 글을 쓰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연습하고 있다.

오늘의 책

수학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엄마표 유아수학 공부

국내 최대 유아수학 커뮤니티 '달콤수학 프로젝트'를 이끄는 꿀쌤의 첫 책! '보고 만지는 경험'과 '엄마의 발문'을 통해 체계적인 유아수학 로드맵을 제시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수학 활동을 따라하다보면 어느새 우리 아이도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나를 바꾸는 사소함의 힘

멈추면 뒤처질 것 같고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인 시대. 불안과 번아웃이 일상인 이들에게 사소한 습관으로 회복하는 21가지 방법을 담았다. 100미터 구간을 2-3분 이내로 걷는 마이크로 산책부터 하루 한 장 필사, 독서 등 간단한 습관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내 모습을 느끼시길.

지금이 바로, 경제 교육 골든타임

80만 독자들이 선택한 『돈의 속성』이 어린이들을 위한 경제 금융 동화로 돌아왔다. 돈의 기본적인 ‘쓰임’과 ‘역할’부터 책상 서랍 정리하기, 용돈 기입장 쓰기까지, 어린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로 자연스럽게 올바른 경제관념을 키울 수 있다.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야

저마다 삶의 궤적이 조금씩 다르지만 인간은 비슷한 생애 주기를 거친다. 미숙한 유아동기와 질풍노동의 청년기를 거쳐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늙어간다. 이를 관장하는 건 호르몬. 이 책은 시기별 중요한 호르몬을 설명하고 비만과 우울, 노화에 맞서는 법도 함께 공개한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